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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레스쁘아 뒤 이부

2015년 7월 20일 — 2

이달에는 오랫동안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임기학 셰프의 비스트로, 레스쁘아 뒤 이부를 재조명해본다.

text 이용재 / illustration 이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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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로는 어떤 존재인가. 1814년 파리 전투 이후 러시아 병사들이 빨리 마시고 가야 한다며 외친 러시아어 ‘빨리(bystro-быстро)’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19세기 말 이전에는 용례가 없으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식전주 ‘비스투유(bistouille)’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진짜 중요한 건 개념과 형식이다. 가격과 맛, 두 측면 모두 편하고 친근한 음식점이 비스트로다. 현대 비스트로의 개념은 1990년대에 출현해 재정립되었다. 오트 퀴진의 대안으로 ‘숨 좀 쉬며 먹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보여주기 위한 기교와 거품 낀 가격을 걷어내자는 의미다. 이브 캉드보르드(Yves Camdeborde) 등 미슐랭 별을 받은 레스토랑에서 전통적인 수련을 받은 젊은 셰프들이 주도했으며 유행처럼 퍼져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고정 코스와 ‘오늘의 요리’ 등의 선택과 집중으로 재료의 가짓수를 줄여 가격을 낮춘다. 비싼 정육 스테이크보다 목심처럼 운동을 많이 한 부위를 골라 조림이나 스튜 등으로 조리해 진한 맛을 낸다. 자투리 고기나 남은 음식 처리에 적합한 테린도 만든다. 빵은 작아서 맛이 금방 변하는 롤보다 큰 덩어리로 썰어 낸다.

이러한 사고의 산물인 비스트로는 한국에서 양극단의 보정을 거친다. 첫 번째는 다운그레이드다. 정신은 사라지고 가격만 남는다. 정체 및 국적 불명의 싼 양식집이 빌려 쓰는 개념으로, 국물 흥건한 파스타나 영혼 없는 도우의 피자를 파는 ‘이탈리아 비스트로’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같은 역할의 트라토리아가 존재한다는 걸 감안하면 두 단어의 조합은 수상쩍다. 외식의 악몽을 겪을 확률이 아주 높다. 두 번째는 당연히 업그레이드. 파인다이닝의 가격대와 분위기로 비스트로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다. 레스쁘아 뒤 이부(이하 레스쁘아)가 여기 속한다.

레스쁘아의 음식을 나는 뿌리와 가지로 이해한다. 뿌리는 조림이나 스튜가 품고 있는 프랑스 또는 서양 요리의 기본 문법을 바탕으로 한 재현이다. 단백질 재료를 팬에 익히고 육수로 닦아내(deglaze) 전체 맛의 바탕으로 삼는다. 그 위에 셀러리, 당근, 양파(mirepoix)와 허브 등으로 단맛과 향을 더해 주재료(고기)를 익힌 뒤 맛이 밴 국물을 졸여 소스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맛의 켜가 첩첩이 쌓인다. 입안에서 순간의 차를 두고 또렷하고 생생하게 드러나는 맛의 집합이다. 점이 아닌 선 위에서 풀리는 선상의 경험이다. 레스쁘아의 대표 메뉴인 양파수프도 켜의 요리다. 은근한 불에 팬을 올려 양파를 오랜 시간 캐러멜화하고 셰리나 브랜디 등으로 닦아내 맛의 바탕으로 삼는다. 중립적이라 많이 쓰는 닭 육수보다 양파에 더 잘 어울리는 쇠고기 육수를 붓고 월계수 잎과 타임 등을 더해 끓인다. 빵을 얹고 고소한 맛이 강한 그뤼에르나 콩테 치즈 등을 올려 녹인다. 국물의 뜨끈함과 젖은 빵의 걸쭉함, 치즈의 진득함 사이로 양파의 달큰함과 허브의 향긋함이 펼쳐지고, 도수 높은 술의 ‘킥(kick)’이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레스쁘아의 양파수프가 그랬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나 조금 밋밋하며 가운데가 비어 있다. 과장 좀 하면 ‘양파,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랄까. 메뉴의 붙박이지만 음식 내외로 얽힌 상징적 의미 덕분에 과대평가되었다.

수프로 식사의 문을 열고 찬 음식의 문을 두드리면 흥미로운 분열을 맛볼 수 있다. 찬 음식 사이에서도, 또 다음 단계의 단백질 주요리와 비교해서도 존재하는 분열이다. 간단히 말해 완성도의 차이. 미리 만드는 테린 등의 샤르퀴트리charcuterie(가공육)와 쇠고기 타르타르를 비롯한 샐러드류가 다르다. 기본적으로 미묘하지만 단맛 때문에 증폭되는 차이다. 염소젖 치즈테린샐러드가 그렇다. 헤이즐넛 드레싱이 조금 많고 또 너무 달다. 테린과 그 위에 솔솔 뿌린, 곱게 썬 차이브의 섬세함에 훼방을 놓는다. 물론 조리를 비롯한 실행의 책임이 일차적이다. 하지만 점심 코스 등에서 종종 맛본 헐거움(기본 조리나 간 등)의 원인으로 확대해석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요리사의 수련에서 찬 음식이 거쳐가는 과정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콘셉트 측면에서 이런 드레싱이 염소젖 치즈, 또 식사 초반에 등장하는 샐러드와 어울리는지도 의문이다. 치즈 특유의 향을 살리면서 조금 더 섬세할 수 있다. 시트러스 생각이 간절했다.

한편 그 섬세함의 측면에서 쇠고기타르타르는 완벽한 실패인데 이것은 가지의 문제다. 뿌리가 재현이라면 가지는 응용이다. 뿌리에 얽힌 기술과 맛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재해석해 계속 뻗어나간다. 레스쁘아의 경우라면 ‘파인다이닝적인 손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때 손이 버릇처럼 의미 없는 복잡함만 늘어놓으면 실패한다. 접시에 잔뜩 늘어놓지만 맛에는 보탬이 안 되는 경우다. 쇠고기타르타르가 그렇다. 커리 향과 단맛이 지나치게 강한 소스가 날것인 쇠고기를 압도하니 나머지 요소(치즈, 물냉이싹샐러드)는 완전히 장식으로 전락한다. 설상가상으로 고기는 너무 잘게 다져 메추리알과 섞으면 곤죽이 되어버린다. 이런 맛과 질감의 매개체가 하필 버터와 달걀의 브리오슈인 것도 보탬이 안 된다.

이런 갈등이 주요리로 넘어오면 눈 녹듯 사라진다. 비스트로 음식의 콘셉트가 현대적이고도 섬세한 손길을 거쳐 흐드러지는 고급스러움으로 승화한다. 염지나 저온 조리의 공이 크다. 둘 다 재료의 수분 손실을 막아 오랜 조리에도 부드러움을 지켜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생선 요리도 좋지만 역시 육류에서 잘 드러난다. 푸아그라를 넣고 만 소갈비조림이나, 날개 뼈 하나만 남기고 뼈를 발라 익힌 뒤 껍질을 바삭하게 익혀낸 닭반마리가 대표적이다. 두 재료가 혼연일체로 입에서 끝없는 여운을 남기는 가운데, 심이 적당히 살아 있는 리소토가 견제한다. 한편 후자는 작으면서 건방지게 뻣뻣한 한국 닭의 현실을 비웃는 듯한 촉촉함을 거들먹거린다. 빼곡하게 들어찬 조리 과정이 손실 없이 또렷한 맛의 켜로 일대일 치환된다. 양고기 밑에 깔린 후무스의, 병아리콩의 고소함 뒤로 고개를 드는 카옌페퍼의 얼얼함은 1년 이상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한편 페이스트리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짠맛 위주의 음식(savory food)의 섬세함과 격차가 여전하다. 빵은 삼성동에서 이전한 뒤 한참 정점을 쳤지만 하강세다. 요즘은 껍질과 속살이 공평하게 질기다. 디저트도 초콜릿무스, 얼그레이 향과 기분 좋게 공명하는 사과퓌레의 프로피트롤 등 최근 등장한 것이 좋지만 크렘브륄레나 바바오럼은 여전히 미진하다. 전자의 브륄레, 즉 태운 설탕 막은 여전히 너무 두껍고, 식탁에서 뿌려주는 후자의 럼은 작은 극적인 효과를 내지만 강한 알코올로 맛을 뒤덮어버린다.

비평 작업의 성격상 갈등을 주로 논했지만, 모든 것을 헤아려 큰 그림을 보면 레스쁘아의 음식은 훌륭하다. 가장 큰 미덕은 익숙함의 근육이 자아내는 일관성이다. 양식-파인다이닝 문화 발전의 가장 큰 적은 습관처럼 배어 있는 낯섦이다. ‘우리 음식’이 아니라서, 음식이 비싸서, 짜고 기름기가 많아서 낯설다고 한다. 이젠 아마추어리즘의 핑곗거리로 제 몫을 톡톡히 하는 낯섦이다. 레스쁘아는 핑계를 대지 않는다. 쾌락 지향의 멘탈리티가 그저 꾸준히 파인다이닝의 본질에 근접한 음식을 낼 뿐이다. 한국에선 아마도 유일하고, 그래서 빛나는 존재다.

레스쁘아 뒤 이부(L’espoir Du Hibou)
분위기: ‘고급스러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비스트로
서비스: 섬 세함이 때로 살짝 떨어지는 친근함
소리: 공간의 한계가 빚어내는 소음 과빡빡한개인간거리
가격: 점심 코스 4만5000원, 저녁 코스 7만8000원 / 8만8000원 / 10만8000원. 단품 1만5000원부터 4만원 이상
주류: 다양한 반 병짜리(375ml) 및 적절한 가격의, 지나치게 합리적인 선택의 와인, 샤르퀴트리와 단짝인 고급 맥주 구비
› 서울 강남구 선릉로152길 33
› 02-517-6034 
› 월~일요일 점심 정오~오후 3시(마지막 주문 오후 2시), 저녁 오후 6시~10시(마지막 주문 오후 9시). 명절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