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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김유진

2015년 7월 13일 — 0

미식은 한마디로 푸짐하고, 경쟁 우위의 매력이 있고, 뇌를 피곤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푸드 칼럼니스트 김유진이 말하는 단순 명쾌한 미식에 대한 정의.

text 김유진(푸드 칼럼니스트) | photograph 심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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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미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상파, 케이블, 종편 채널은 경쟁적으로 먹방 프로그램을 양산하느라 정신이 없고 제작진은 이연복, 백종원, 최현석 등의 셰프를 잡느라 불철주야 전화통과 씨름을 한다. 분명 2015년은 요리 숫자보다 셰프 숫자가 더 많은 해로 기억되리라. 그런데 그 많은 식당은 누가 지키고 있을까? 혹시 압구정동 성형외과처럼 ‘페이 셰프’가 있는 건 아니겠지? 별의별 걱정을 다 한다.

그나저나 인류는 왜 먹는 것(食) 앞에 아름다움(美)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일까? 아름다운 것을 먹는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아름답게 먹는다는 뜻일까? 기실 ‘미식美食’은 한자어이니 어법상으로 치자면 ‘食美식미’라 했어야 옳을 텐데. 이쯤에서 사전의 힘을 빌려볼까 한다.

양羊+대大=미美. 이렇게 간단명료할 수가! 양이 크면 아름다운 거다. 즉 많이 먹을 수 있는 게 아름다움인 셈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식가=대식가’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모양이다. 미식의 첫 번째 단서다. 물론 <논어>에 나오는 ‘희생적 가치’도 미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동원되지만 B급 평론가인 난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그런데 왜 하필 양일까? 소도 있고 돼지도 있고 말도 있는데…. 슬슬 맛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종종 ‘맛은 주관적인 것’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맛은 상대적이다. 특히 ‘맛이 있다 없다’를 가늠할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느 집의 음식에 비해’라는 비교 평가가 무의식중 뇌를 조종한다.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를 먹어보지 않고 어찌 애플하우스의 떡볶이와 비교하겠는가! 우래옥의 순면을 먹어보지 않았다면 무슨 재주로 ‘능라가 맛이 있다 없다’에 한 표를 던질 수 있단 말인가! 평가에는 반드시 기준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대상을 분석한 뒤에야 정확한 비교가 가능해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소리는 여기서 기인한 거다. 미식의 두 번째 단서다.

왜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집들은 맛이 없는 걸까? 방송 작가들은 대부분 20~30대 초반이다. 이들은 10대부터 60대까지의 시청자를 상대한다.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취향과 입맛이 다르다는 사실을 숫자로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미식 경험이 판이한 시청자들이 느끼는 반응은 뻔하다.
“음식이 입에 안 맞고, 불친절하고, 1시간씩 줄 서야 하고… 내가 다시는 오나 봐라!”

맛은 혀가 아니라 뇌가 본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혀 이외의 네 감각이 스캔하고 판단한다. 거개는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그렇지 못한 부류도 있다. ‘<수요미식회>에서 전문가들이 추천한 집인데 뭔가 있지 않겠어? 아니면 내 입맛에 문제가 있는 거겠지?’ 감정 노동이 시작된다. 프로이드 선생의 방어 기재를 모두 동원해 본인의 혀와 뇌를 전문가들의 잣대에 맞추려 안간힘을 쓴다. 따돌림당하는 게 무섭고, 무식하다는 소리 듣는 게 싫어서다. 평양냉면 육수를 ‘행주 빤 물’같이 느꼈어도 동행인 앞이나 키보드 위에서는 속내를 감춘다.
“5대 평양냉면집다운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줄 서 있으면서 이 집에 대한 극찬을 들은 까닭이다. 미식의 세 번째 단서다.

늘어놓은 조각들을 모아 미식을 정의해본다. 푸짐하고, 경쟁 우위의 매력이 있고, 뇌를 피곤하지 않게 하는 게 미식이다. 그래서 오늘도 난 뇌를 설득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요새 불경기잖아. 싸고 맛있고 푸짐한 게 ‘장땡’ 아니겠어? 투뿔은 얼어 죽을… 그냥 돼지갈비로 가자. 그리고 TV에 나오는 전문가라는 사람들, 한 명 빼고는 다 너보다 하수잖아”
성수동이나 합정동 뒷골목에서 어슬렁거리는 김유진을 보신다면 씨익 웃으며 손이라도 한번 흔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