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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정식당

2015년 6월 24일 — 0

이달의 레스토랑 비평은 새로운 곳으로 이전한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정식당이다. 음식 평론가 이용재가 정식당에서 두 번의 디너를 경험한 리뷰를 전한다.

text 이용재 | illustration 이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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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파인 다이닝화, 크게 보아 현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중심은 어쨌든 밥과 반찬이다. 형식에서 출발, 맛에 이르는 고민거리를 안긴다. 한상 차림(공간 전개형)을 고수할 것인가, 코스(시간 전개형)를 도입할 것인가? 후자를 택한다면 원점부터 재고해야 한다. 한식 맛의 핵심을 다른 형식에 이식하는 부담이 따른다. 각 요리는 반찬 이상의 완결성을 지니는 동시에 유기적인 흐름에도 공헌해야 한다.

여기에 맛에 대한 고민 2가지도 따라다닌다. 첫 번째는 탄수화물의 코스별 분배다. 밥을 각 요리에 나눠 낼 수 있을까? 없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이와 얽혀 김치 및 장류 등의 매운맛과 발효 풍미가 두 번째 고민이다. 밥 없이는 특히 반쪽짜리 맛이다. 존재 여부와 강도 모두 고민 거리다. 이래저래 한식의 파인 다이닝화는 쉽지 않고, 답도 하나일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논리의 일관성이다.

고민거리를 죽 늘어놓고 정식당을 들여다본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 특급 호텔조차 파인 다이닝 한식을 꺼리는 현실에서, 드물게 ‘한식’을 표방하는 독립 레스토랑으로 6년을 버텼다. 하지만 ‘과연 한식인가?’라는 회의가 따라다닌다. 호텔 한식당의 코스는 비교적 익숙한 한식을 낸다. 밥 없이 나오는 반찬 느낌도 든다. 반면 정식당은 양식의 방법론에 일부 재료를 치환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김치아이올리를 곁들인 황새치구이가 단적인 예다.

이 방법론 자체로도 정식당의 음식을 한식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를 본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파인 다이닝 한식은 백지에 가깝다. ‘고급 한식당=고깃집’의 인식이 지배하는 현실 탓이다. 고깃집은 비용이 재료의 원가로 몰리는 식사 형식, 서비스나 기술과 균형이 안 맞아 요리라 보기 어렵다. 어차피 백지라면 산수화를 그릴 수도, 시를 한 편 쓸 수도 있다. 일관된 논리가 존재한다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게 정식당의 아킬레스건이다. 방법론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만큼 예외도 많다. 2가지 의도를 읽는다.

첫 번째는 시각화다. 지극히 현대 요리처럼 생긴 한 접시를 내는 데 집중한다. 단백질 한두 덩이 사이로 소스가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점점이 자리 잡는다. 때로 음식보다 그림 같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데, 그게 문제인가? 보기만큼 먹기 안 좋다면 그렇다. 그림에 음식이 희생되어 맛과 장식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 그렇다. 신사동 시절의 오징어먹물굴튀김이 그 예다. 모든 요소가 맛보다 접시 위 바다 풍경을 묘사 하는데 더 집중했다. 하지만 음식은 먹는 것이다. 첫 방문에서 “이게 분자 요리라는 거래, 신기하지?”라는 말을 우연히 엿들은 기억이 난다. 신기함을 자아내려는 전략이 요리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두 번째는 맛이다. ‘각각 맛있으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코스 사이가 헐겁다. ‘트리플해장국’ 등 국에 만 밥 요리가 그렇다. 맛있지만 앞뒤로 등장하는 ‘한식 재료+서양 조리법’의 조합과는 이질적이다. 그래도 이전의 조잡한 ‘밀라노해물찜’ 등보다는 낫다. 적어도 시도는 멈추지 않고, 또 나아졌다.

지난해 11월, 정식당은 신사동에서 청담동으로 이전했다. 그와 함께 와인 테이스팅 코스를 통한 경험의 확장을 시도한다. 한상 차림의 한식은 와인 짝짓기가 어렵다. 대부분에 맞는 화이트는 고기와 겉돌고, 고기와 맞는 레드는 타닌 때문에 김치 등 매운 음식과 겉돈다. 코스화를 통해 개입 여지를 늘렸다면 어떤 가능성을 제안할까. 그래서 먼저 먹어 본 시그니처 코스(점심 13만원+와인 9만5000원)는 여러 측면에서 실망스러웠다. 무엇보다 실행(조리)이 나빴다. 결정적 실수도 있었다. 맨 처음 먹은 시금치(‘반찬’, 즉 아뮤즈 부시의 일부)에서 모래가 씹혔던 것. 그걸 빼더라도 매끄럽지 않았다. 코스 전반으로 들쭉날쭉한 기본 간이나 무딘 칼로 눌러 자른 듯한 낙지 다리의 거친 단면 등이 대표 적이다. 평소 정식당의 수준에 못 미쳤다.

실행이 받쳐주지 못하면 정식당의 음식은 콘셉트의 약점을 쉽게 드러낸다. 맛내기의 콘셉트 몇 가지만 짚어보자. 종종 너무 달다. 신사동 시절 겹쳐 등장하던 무절임의 나쁜 습관을 못 버렸다. 치킨 무를 닮은, 지배적인 새콤달콤함은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여러 번 얼굴을 들이민 쌀뻥튀기도 눈치 없는 불청객이다. 짠맛 중심 요리에 어설픈 디저트적 맛과 질감을 얹으려 든다. 맛도 향도 없는 중국산을 쓴 송이국밥이나, 충분히 맛있게 구울 수 있음에도 쪄서 생기를 뺀 도미도 즐겁지 않다. 탄수화물의 부재도 의아했다. 예전의 된장빵, 청양 고추빵은 분명 임기응변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현대적 한식을 추구하던 이스트 빌리지에선 떡갈비에 쌈밥 두 덩이를 곁들여 냈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떨까.

한편 와인은 그 자체도, 의욕도 마음에 들었지만 짝짓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두 경우만 짚어보자. 송이국밥과 솔송주는 이름만 좋은 짝이다. 코스 중간에 민속주의 전형적인 단맛이 필요할까? 한창 오른 입맛을 잘라버린다. ‘나이브’한 조합에 얽매이지 말고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을 찾는 게 낫다. 얇게 저며 국물에 익힌 쇠고기의 살짝 감도는 쓴 맛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한편 주요리인 안심에는 프로방스 지역 방돌 Bandol AOC 와인(샤토 바니에르 루즈 2008)이 등장했다. 고기에 얹은 산초절임과의 궁합을 염두에 두었다지만, 이 와인은 무르베드르 위주에 허브, 담배, 카카오 향이 주도적이다. 유약한 안심보다 더 진한 부위(채끝 등)에 비슷한 향의 향신료 크러스트를 입히는 등, 더 적극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편 갈치속젓 등을 쓴 아뮤즈 부시와 함께 먹게, 첫 샴페인은 좀 더 빨리 내도 좋겠다. 바깥쪽 자리의 일행에게 먼저 와인을 따르는 소믈리에의 제스처는 프로페셔널하지 못했다.

매끄러운 조리와 더불어 ‘제주’ 코스가 오히려 정식당의 정체성에 더 중요한 실마리로 보였다. 찐 도미와 눈치 없는 쌀뻥튀기는 여전했고 관자를 담은 그릇의 빠진 이는 옥에 티였지만, 제주도 재료라는 콘셉트 하나만으로도 코스에 좀 더 질서가 잡혀 보였다. 비슷한 발상으로 지역과 재료의 조합, 더 나아가 지역 별미의 현대화 등을 주제로 잡은 코스를 연구해보면 어떨까. 그랜트 아케츠의 테마 레스토랑 넥스트 같은 콘셉트다. 코스의 흐름에선 이질적이었지만 정작 해장국, 매운탕국물파에야 등 한국적인 국물 바탕 음식이 더 맛있다는 점도 감안해볼 만하다. 한편 이와 더불어 선택과 집중의 고민도 필요하다. 조금씩 연계되어 있지만 2가지 코스에 별도의 선택 메뉴까지, 요리사에게 부담이다. 더 많은 고객층에게 호소하고픈 마음은 이해하지만, 포크 및 나이프와 함께 놓인 젓가락처럼 우유부단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디저트. ‘제천에 눈이 내리면(초콜릿 장독대)’부터 돌하르 방(녹차무스)이나 베르사이유의 장미(블루베리 크렘므)까지, 디저트의 직접적인 형상화는 페이스트리 셰프의 일이 아니다. 이는 크게 보아 ‘쇼피스’의 영역에 속하고, 독립된 전문 공예다. 일반 페이스트리 셰프 라면 콘셉트의 표현 수단은 모양이 아닌 맛이다. 장독대보다 두 층 높아진 완성도는 높이 사지만 불필요한 솜씨 부리기라는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정식당 서울
분위기 – 거대한 빛 상자가 깔아주는 아늑함
서비스 – 단정함과 친절함 사이의 산뜻한 균형
소리 – 조용한 편, 넉넉한 개인 거리
가격 – 점심 선택 5만~8만원, 코스 제주 10만5000원(와인 8만원), 시그니처 13만원(와인 9만5000원) 저녁 선택 9만~12만원, 코스 제주 13만5000원(와인 9만원), 시그니처 18만원(와인 10만5000원)
와인 – 30쪽짜리 목록의 선택, 복수로 존재하는 글라스 와인, 짝짓기 추천
예약 – 추천
서울 강남구 선릉로 158길 11 / jungsik.kr/seoul / 월~일요일 점심 정오(마지막 주문 2시), 저녁 오후 5시 30분(마지막 주문 9시). 신정, 설, 추석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