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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2015년 6월 17일 — 0

음식인문학자 주영하는 도철이 아닌 노도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미식이라고 말한다.

글: 주영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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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개봉한 타이완 영화 〈음식남녀(飮食男女)〉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감독 리안은 이 영화의 제목을 중국의 고전 <예기(禮記)>에서 찾아냈다. “음식과 남녀는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욕구다”라는 내용이 이 책의 ‘예운(禮運)’ 편에 나온다. 여기에서 음식은 곧 식(食)이고, 남녀는 곧 색(色)이다. 이 식색(食色)은 인간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동시에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이것이 본성인 이유는 음식 남녀를 통해 인간 세상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정리한 공자는 동물도 식색의 욕구를 지녔기 때문에 이를 두고 군자가 왈가왈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음식에 대한 욕망을 지닌 지배자가 너무나 많았다. 이를 경계하여 마련한 장치가 바로 ‘도철(饕餮)’이다. 도철은 음식을 탐하고 재물에 눈이 어두운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도철의 모습도 그려졌다. 도철은 머리만 있고 몸이 없다. 도철이 사람을 잡아먹다 목이 마르자 자신의 몸인 줄도 모르고 먹어버려서 생긴 결과다. 고대 중국에서는 지배자를 위한 고기 요리를 할 때 어김없이 도철의 얼굴을 새긴 솥을 썼다. 심지어 궁궐의 문고리에도 도철의 얼굴이 새겨졌다. 모두 지배자의 탐식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지배자의 탐식이 왜 이토록 문제가 되었을까? 공자 이후 많은 사상가와 정치가들은 중국의 두 번째 왕조 상(商)이 멸망한 이유로 주왕紂王의 ‘주지육림(酒池肉林)’을 꼽았다. 술로 저수지를 만들고 고기를 숲에 매달아놓고 수시로 잔치를 벌인 주왕은 결국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 폭음과 폭식을 일삼으면 결코 덕치(德治)를 베푸는 성왕이 될 수 없었다. 백성이 굶주리지 않도록 농사 기술을 권장하고 새로운 식재료를 알려주고 음식 맛을 제대로 내는 조리 기술을 계몽하는 자만이 성왕이 될 수 있었다.

성왕의 이러한 정치사상은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이란 말로 압축되었다. “왕은 백성을 으뜸으로 여기고, 백성은 음식을 으뜸으로 여긴다. 능히 으뜸의 으뜸을 아는 자만이 왕이 될 수 있다”라는 관중(管仲, ?~기원전645년)의 말에서 ‘민이식위천’이 나왔다. 그 후 수많은 중국의 정치가가 백성의 먹을거리가 안정되어야 정치도 평안하다고 보았다. 이들이 말한 백성의 먹을거리는 농사가 잘되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 책인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 조선시대에 궁에서나 지식인들이 편찬한 요리책은 대부분 ‘민이식위천’을 목표로 둔 농업 정책을 담았다. 그렇다면 오로지 먹을거리만 풍족하면 정치가 안정되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병을 예방하고 건강하게 하는 음식 행위가 풍족한 먹을거리만큼 중요했다. <본초강목(本草綱目)>도 <동의보감>도 이런 생각에서 나온 음식 책이다.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蘇東坡, 1036~1101년)는 음식만 탐하는 것을 경계해 스스로를 ‘노도(老饕)’라고 불렀다. 돼지고기가 똥값인데도 맛이 없다며 사람들이 먹지 않자 그는 동파육(東坡肉)이라는 요리를 개발했다. 이후 중국의 문인들은 음식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을 ‘노도’라고 불렀다. 한류 드라마가 중국과 일본에서 대단한 유행을 하자 지난 정부부터 한식도 정책으로 삼아 외화벌이를 할 수 있다고 난리법석이다. 이즈음엔 텔레비전 속에도 온갖 음식이 가득해 밖으로 쏟아져 나올까 걱정이다. 인문학 열풍에서도 음식이 빠지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도철의 시대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농어민은 여전히 가난하고, 힘들고 외로운 젊은 1인 식구가 지천이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날로 늘어난다.

나는 음식인문학자다. 인문학이 사람에 대한 연민과 세상에 대한 의분에서 출발해야 하듯이, 음식인문학은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도철 같은 사람을 꾸짖고 사람들이 도철이 되지 않도록 경고하는 데 학문의 목적이 있다.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음식인문학을 학문으로 하는 이유는 진정한 ‘노도’가 이 땅에 넘쳐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