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Trend

허니와 버터의 동행에 대하여

2015년 6월 16일 — 1

계속되는 허니버터 열풍. 변화하는 시대 속 둘의 상반된 태생부터 만남까지, 허니와 버터의 동행은 과연 옳은 선택일까.

글: 정재훈 / 에디터: 권민지 / 사진: 박재현

0615-honeybutter

미식가라면 반드시 허니버터칩을 맛봐야 한다. 맛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과자 맛은 분명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벌꿀과 버터가 만나 거둔 성공이라는 면에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온 둘의 만남이다.

벌꿀은 원래부터 잘나가는 집안 출신이다. 8000년 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 스페인 발렌시아의 아라냐 동굴 벽화는 야생 벌꿀을 채집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나무나 바위의 갈라진 틈에서 벌이 윙윙거리는 가운데 꿀을 따는 건 위험천만한 행동이지만, 꿀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모을 만큼 가치 있는 음식이었다. 4000년 전 수메르 시인이 꿀처럼 달콤한 신혼 침실을 노래했을 때도, 고대 그리스인들이 꿀을 제사에 바치고 로마인들이 꿀을 천상의 음식으로 칭송했을 때도, 16세기 영국에 허니문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꿀은 언제나 특별하고 신성하며 만족을 주는 음식이었다. 설탕이 악의 축으로 지목되는 현대에도 꿀은 자연의 재료이며 건강에 좋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반면 우유 가문에서 태어난 버터의 삶은 평탄치 못했다. 1세기 로마의 자연사학자 플리니우스는 버터를 ‘야만인의 음식’이라고 무시했다. 중세에 이르러서 버터와 유제품의 소비가 점차 늘어났지만, 버터가 유럽 상류층의 식탁 한가운데 자리 잡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렸다. 유제품은 빈곤의 상징이고, 버터는 가난한 농민의 음식이라는 오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17세기에야 마침내 버터가 고급 유럽요리의 중심으로 들어왔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건강이 문제였다. 버터와 유제품에 들어 있는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심장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었다. 1984년 3월 26일자 <타임>지는 대표 유해 음식으로 버터를 지목하며 “달걀과 버터는 빼라”는 표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2014년에는 하루에 우유를 세 잔 이상 마시면 사망 위험이 증가한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거의 모든 음식에 버터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스웨덴에서 그런 논문이 발표되었으니 버터로서는 정말 억장이 터질 일이었다.

꿀을 향해서는 달콤한 칭송만 이어졌다. 영양학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벌꿀의 주성분은 당이기 때문이다. 종류에 따라 조성 차이가 있지만 꿀의 주성분은 포도당과 과당 그리고 약간의 설탕(자당)이다. 원래 식물의 꽃꿀(화밀)에는 주로 설탕이 들어 있다. 사탕수수에 설탕이 들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꿀의 주성분이 포도당과 과당인 이유는 꿀벌이 전화 효소로 꽃꿀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설탕은 이당류라 에너지원이 되려면 대사 작용을 거쳐야 하지만, 단당류인 포도당과 과당으로 구성된 꿀은 바로 흡수되기 때문에 빠르게 에너지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서 “설탕보다 꿀이 건강에 좋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이당류인 설탕과 단당류인 포도당, 과당의 흡수 속도에 차이가 없다는 것은 1960년대에 이미 실험으로 증명한 사실이다. 인체의 소화 효소가 설탕을 분해하고 흡수하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꿀이 포도당과 과당이라 몸에 좋다면, 같은 이유로 단당류인 포도당과 과당을 설탕 대신 넣은 콜라와 사이다도 건강에 좋은 음료라고 말할 수 있다. 아이스커피에 시럽을 넣어 마실 때도 건강을 걱정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설탕을 물에 녹이고 전화당 효소를 넣어 과당과 포도당으로 만든 시럽은 제조 방법과 당분 조성에서 꿀과 흡사하니 말이다. 꿀이 설탕보다 열량이 낮은 건강식이라는 주장은 어떤가? 꿀의 열량이 100g당 294㎉로 100g당 387㎉인 백설탕보다 낮긴 하다. 그렇다고 꿀이 더 건강한 당분 음식이 되는 건 아니다. 꿀의 열량이 설탕보다 낮아 보이는 건 그저 꿀에 수분이 더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설탕을 물에 녹여 만든 시럽의 열량은 100g당 290㎉로 꿀과 동일하다. 꿀에는 당분 외에 비타민과 미네랄이 들어 있다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꿀로 비타민과 미네랄을 섭취할 생각은 거두는 게 좋다. 그러기엔 너무 적은 양이다. 올해 3월 발표한 세계보건기구의 당분 섭취 권고안에는 벌꿀도 섭취를 줄여야 할 당분에 포함시켰다. 꿀 또한 당분이며, 결국 문제는 우리가 섭취하는 양이다.

영양학적 가치만을 따지다 보면 음식 평가에 사회성이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기 쉽다. 많은 경우 음식과 식재료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영양과학이 아니라 희소성이다. 대량 생산한 과자라도 구하기 어려운 희소한 것이 되면 먹고 싶은 음식이 된다. 허니버터칩을 맛보고 싶은 이유는 맛 때문인가, 품귀 현상 때문인가? 2012년 11월 21일 미국의 초코파이라 할 수 있는 트윙키가 단종된다는 말에 많은 사람이 사재기에 나섰던 걸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과거로 돌아가 봐도 비슷하다. 브리야 사바랭은 이렇게 말했다. “[ ]을 물에 타면 [ ]물이 되는데, 그것은 원기를 회복시켜주고 건강에 좋으며 맛이 좋고 때때로 치료제로서도 유익하다.” [ ]안에 들어갈 말은 꿀이 아니라 설탕이다. 설탕이 아직 귀했던 시절 설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은 꿀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식재료의 희소성이 사라지는 순간 그에 대한 평가 또한 바뀐다. 향신료가 귀했던 시절 유럽의 부유층은 엄청난 양의 향신료를 넣은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즐겼지만, 향신료의 수입량이 크게 늘어 희소성이 사라진 16세기부터는 섬세한 지방질 요리를 찾기 시작했다. 음식역사학자 마시모 몬테나리 교수는 바로 이 시점부터 “프랑스 요리를 비롯한 서구 요리가 큰 변화”를 겪었다고 지적한다. 버터는 새로운 흐름에 잘 맞는 식재료로 떠올랐고 곧이어 부자들이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표시로 변모했다. 유럽인들도 처음부터 버터의 풍미를 즐긴 게 아니라 버터를 욕망하면서 그 맛을 배워나간 셈이다. 버터와 크림으로 범벅된 음식을 계속 먹어도 아무렇지 않다며 서구화된 미각을 자랑하는 오늘날의 한국인이나 당대 유럽의 미각 구조를 바꾼 프랑스인이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은 비슷하다.

희소성의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꿀이 좋은 음식이 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과거보다 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꿀은 설탕이나 당분 음료만큼 넘쳐나지 않는다. 인류의 기억 속에 꿀은 언제나 귀한 음식이며 거의 유일하게 정당화가 가능한 단맛이다. 꿀은 영양을 따지지 않아도 ‘생각하기에 좋은 음식’이다. 악마화된 버터는 이제야 겨우 누명을 벗고 있다. 2014년 6월 <타임>지는 과거의 입장을 번복하며 “버터를 먹으라”는 표지 기사를 실었다. 올해 들어 미국 정부 산하 식사지침자문위원회(DGAC)는 음식에 함유된 콜레스테롤을 ‘위험 영양소’에서 제외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음식에 들어 있는 콜레스테롤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그간의 연구 결과들을 반영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버터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이유 가운데 하나는 버터와 유제품이 동물성이며 송아지를 위한 음식이라는 사실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의학 고문이었다는 신야 히로미는 자신의 저서 <병 안 걸리고 사는 법>에서 ‘우유는 원래 송아지를 위한 것’이며 다른 동물의 젖을 먹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같은 논리로 보면 꿀도 벌을 위한 음식이지 사람을 위한 음식은 아니다. 자연계에서 남의 음식을 뺏어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일만 먹고 사는 길뿐이다. 실제로 엄격한 채식주의자들은 동물성 음식이라는 이유로 꿀을 거부한다. 영양과학으로는 꿀은 좋은 음식이고 버터는 나쁜 음식이라는 명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가 음식을 판단하는 기준은 사회적이다. 음식에 대한 관념은 고정적이지 않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도 꿀과 버터가 만난 적이 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에게 희망을 준 약속의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젖은 꿀과 마찬가지로 좋은 음식이었다.


정재훈
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 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