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주’는 결혼을 뜻하지만 음료와 음식의 궁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두 사람이 함께해 더욱 시너지를 내는 공간 비전스트롤과 에그앤플라워를 찾았다.
에그앤플라워
김희은·윤대현 셰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상을 보내는 부부가 있다. 2012년 팝업 스토어 ‘준 더 파스타’를 시작으로 스와니예, 도우룸을 거쳐 국내 생면 파스타 열풍의 중심에 있는 윤대현 셰프와 요리연구가 겸 푸드스타일리스트를 시작으로 아름다운 음식을 표현하는 데 앞장서 온 김희은 셰프의 이야기다.
한 건물에 레스토랑, 스튜디오, 작업 공간을 만드는 것. 연애 시 절부터 막연하게 꿈꿔온 일이다. 두 사람은 결혼과 동시에 자 신들의 꿈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한식과 양식, 이국적인 식 재료와 친숙한 맛을 선보이는 소울다이닝은 <2021 미쉐린 가 이드 서울> 플레이트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는 그들의 또 다른 레스토랑 에그앤플라워가 주목받을 차례다.
같은 듯 다른 두 셰프
셰프는 외로운 직업이다. 모두가 쉬는 공휴일이 가장 바쁜 대목 이고, 하루 한 끼도 제때 먹지 못할 때가 많다. 윤대현 셰프는 이런 직업 특성 때문에 결혼을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 향인 포항에서 맞벌이 부모님 대신 형, 누나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던 막내로 컸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제가 떡볶이를 만들어주기도 했대요. 데커레이션으 로 과자를 위에 뿌리면서요.(웃음)” 직접 만든 음식으로 사람들 에게 기운을 돋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당시 포항 에는 ‘셰프’라는 직업에 대한 정보가 부재했다. 발품 팔아 건너 간 미국에서 경험한 인턴십과 스타주Stage는 지금의 윤대현 을 만든 토대가 됐다. 일찍이 적성을 찾은 윤대현 셰프와는 달 리 김희은 셰프는 돌고 돌아 요리의 세계로 들어왔다. 예술과 연이 깊은 가정에서 자라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고 만드는 게 좋아 도예를 전공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릇을 만들고 싶 다는 마음보다 완성된 그릇에 무언가를 담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단 걸 깨달았다. 부모님의 반대에 가출까지 해가면서 진로를 바꿨다. 4년 동안 또 한 번 학부 과정을 끝내고 그랜드 힐튼 호 텔에서 일을 시작했다. 대학원도 진학했다. 남편 윤대현 셰프 와의 관계가 깊어진 시기도 그때다. 둘 사이를 이어준 건 김 셰 프의 학교 동문이자 당시 윤 셰프와 함께 스와니예에서 근무하 던 김호윤 셰프다. “대학원 논문에 필요한 특수 식재료가 필요 했는데 윤대현 셰프가 재료를 구해줬어요. 난감한 상황이라는 걸 말하자마자 5분도 안 돼서 재료를 구해오더라고요.”
따로 또 같이 7월이면 결혼 4주년을 맞이하는 부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 질수록 서로를 닮아간다. 바라보는 시선이 같아지니 성향도 비 슷해진다. 두 사람이 늘 잘 맞는 건 아니다. 대범한 김희은 셰프 와 섬세한 윤대현 셰프는 한식과 이탤리언이라는 둘의 전공만 큼 개성이 뚜렷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시간이 많으니 다투 는 일도 있죠. 평소와 다른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면 직원들이 알아챌 수밖에 없어요. 직원들의 심기가 예민해지면 레스토랑 서비스에 영향이 가기도 해요. 그래서 출근하기 전에 억지로라 도 화해합니다. 주로 윤대현 셰프가 많이 포용하고 보듬어주는 편이죠.(웃음)” 호칭도 마찬가지. 주방 안에서는 서로를 꼭 셰 프라고 부른다.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함께인 두 사람이 정해놓 은 철칙이다. 간혹 밖에서도 애칭 대신 셰프라고 부르는 남편이 서운할 정도라고. 마주하는 시간이 많으니 힘들어 하는 모습을 봐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일이 새벽에 끝날 때가 많아요. 남 편의 마음으로는 쉬게 하고 싶죠. 지친 모습을 보고 있으면 힘 들고 미안해요.” 셰프의 역할을 넘어 정해진 시간을 틈틈이 쪼 개서 더 많은 일에 신경 써야 하는 오너의 입장이기도 하니 더 욱 그렇다. 힘들 때도 함께하니 서로를 존중하고 공감해주는 마음은 커진다.
조화와 균형이 돋보이는 곳
에그앤플라워는 두 셰프의 합이 돋보이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재료의 합이 눈에 띄는 곳이기도 하다. 메뉴에서 제면과 서양 식 표현법에 강한 윤대현 셰프와 한식에 대한 깊은 조예와 식 재료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난 김희은 셰프의 시너지가 느껴진 다. 합을 맞출 때 가장 중요한 건 욕심내지 않는 것. 상대의 영 역을 존중하면서도 도움을 받는다. 제육볶음에서 영감을 받은 라구 파스타나 치즈가 아닌 볶은 참깨를 뿌리는 마무리 터치, 새우장에 곁들이는 당근 퓌레처럼 말이다. 곁들임찬도 특별하 다. 오이가 아닌 알배추로 만든 에그앤플라워만의 피클은 시원 한 백김치와 동치미를 먹는 듯하면서 피클의 존재감도 온전히 느껴진다. 하나의 메뉴를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밸 런스의 조절이 필요하다.
음식 외에도 레스토랑 위치부터 조 명, 음악과 온도 같은 전체적인 분위기 흐름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뷰 맛집으로 소문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방촌 끝자락 의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풍경을 담기 위한 큰 창을 뒀다. 식사 시간 동안 수시로 변하는 하늘을 보고 있으면 명화를 보는 듯 하다. 테이블 위도 놓치지 않았다. 두 셰프가 직접 디자인한 귀 여운 로고가 새겨진 플레이트와 김희은 셰프가 매주 고속터미 널 꽃 시장에서 사오는 센터피스, 말린 생면 장식은 메뉴를 더 욱 빛내주는 포인트다. “레스토랑은 종합예술이에요.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맛있는 음식이어야 하지만 다른 요소도 중요하 잖아요. 공간은 음식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하나의 마리아주를 이뤄야 해요.” 단순히 ‘셰프’라는 직업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함 께하는 모든 이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합’을 만드는 일. 플 레이트에 올라가는 에그앤플라워의 음식은 김희은·윤대현 셰 프가 음식을 주제로 완성한 하나의 콘텐츠다.


에그앤플라워 EGG & FLOUR @eggnflour.soul
밀가루와 달걀만 사용해 반죽한 생면 파스타와 독특한 재료가 곁들여진 메뉴를 선보인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26길 35, 2층
-문의: 02-3789-7681
edit 김지현 photograph 박다빈
카페 비전스트롤
김종헌·이재선 부부
‘망원동의 포틀랜드’로 불리는 비전스트롤은 바리스타로 10년간 활동한 부부의 애정이 담긴 공간이다.
아내는 미국 서부의 분위기가 물씬 배어 있는 공간을 설계하고 남편은 원두의 상태를 수시로 살피며 최상의 에스프레소 를 만들어낸다.
결혼 전 앤트러사이트, 테일러커피 등 유명 카페의 바리스타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김종헌·이재선 부부. 비전스트롤은 연애 시절부터 언젠간 자신들만의 취향을 담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꿈이 비로소 실현된 카페다. “결혼하고 나서 카페를 준비하는 데만 2년 정도 걸렸어요. 1층에 비전스트롤을 오픈하고 6개월 뒤 바로 2층에도 새로운 공간을 열면서 오직 비전스트롤을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온 것 같아요.” 부부가 말문을 텄다.
부부는 카페 오픈을 결심하고 자리를 알아보던 중 우연히 친구의 망원동 가게에서 잠깐 일을 도왔다. 한 달 동안 천천히 망원동을 둘러보면서 두 사람은 망원동만의 ‘바이브’를 느꼈다. 망원동은 소소한 동네지만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살아, 그 안에서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부부의 건강하 고 활기찬 이미지랑 잘 맞아떨어졌다. 그들에게 망원동 바이브 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물었더니 “소소한 삶을 만끽하는 것. 자기의 삶을 유지하지만 일에 치이기보다는 여유로운 것. 망원동에선 강남의 테헤란로에서 느껴지는 피로감과는 다른 여유로움이 느껴졌어요.” 부부는 망원동 거리에서 누구나 편하게 들러 맛있는 커피 한잔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카페 이름을 비전스트롤이라고 지었다. 비전스트롤은 ‘꿈속을 거닐다’라는 의미로 꿈속은 부부의 공간을 말한다. 비전스트롤은 간판도 없는 동네 카페지만 포틀랜드 어딘가에 서 만날 법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공간의 디자인을 맡은 아내 이재선 씨는 “저희가 신혼여행을 미국 서부로 다녀오면서 그때 받은 영향도 분명 있지만 처음부 터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기존에 단정하고 깨끗한 느낌을 주는 커피숍이 주를 이루었다면 저희는 정돈되지 않은 꽤 오래된 느낌을 주는 곳으로 꾸미고 싶었어요. 그건 저희 부부가 좋아하 는 감성이기도 하고요.” 시간이 많이 흘러도 낡은 게 아니라 멋스러운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부부의 바람이 느껴진다. 손길 하나 안 닿은 곳 없는 이 공간에 부부가 남다른 애착을 느끼는 건 당연지사. 한 달 동안 기획부터 시공까지 둘이서 함께 비전스트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인테리어를 기획하고 남편은 아내의 기획을 지지했다. 남편은 직접 하수나 전기 업무와 같은 시공까지 도맡았다. 앞으로 부부가 함께 커피를 내리고 일상을 보낼 카페를 서로 합심해 하나의 공간으로 완성한 것은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이다.
커피의 취향만큼이나 다른 두 사람
부부는 함께 출근한다. 함께 일하고 퇴근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모든 일상을 함께한다. 그러나 커피 취향만큼은 다르 다. 남편은 아침에 눈뜨자마자 커피부터 찾는다. 집 안 냉장고 에 콜드브루를 잔뜩 쟁여놓은 것만 봐도 커피를 얼마나 즐기는 지 알 수 있다. 반대로 아내는 하루에 딱 한 잔,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걸 선호한다. 특히 출근해서 처음 내린 에스프레소를 가장 좋아한다.
“원두가 가진 예민함 때문에 출근하면 원두부터 확인해요. 아침에 처음 내린 원두를 맛보면 그날 손님이 마실 커피의 맛을 예측할 수 있거든요. 테이스팅하려고 내린 커피 맛이 잘 나오는 순간만큼은 그 커피가 가장 맛있는 커피죠.” 아내가 커피를 맛보는 동안 남편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매장 에 틀 음악을 고른다. 비전스트롤에서 듣는 펑키소울이나 재 즈, 하드록 장르의 음악은 김종헌 씨의 취향이다. 매장에 음악 이 울려 퍼지면 아내는 2층으로 올라가 버터 푸딩을 만들 준비 를 한다. 부부가 각자의 역할을 사이좋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 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커피 취향도, 성격도 다 다른데 갈등은 없었는지. 부부는 서로 다른 성격이 오히려 둘 사이를 더욱 단단하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조급한 성격을 가진 남편은 아내의 꼼꼼하고 신중한 성격 덕분에 함께하는 일의 과정과 결론이 좋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반대로 아내는 남편의 추진력 덕분에 계획이 곧장 실행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고 한다. 부부는 각자 다른 성향을 존중하며 부부 또는 동료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 을 채워주고 있었다.
일상을 함께하다
부부는 집이든 카페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이야기를 나눈 다. 디자인은 물론 메뉴 개발, 직원 교육, 앞으로의 삶의 계획이 나 목표 등 거의 모든 것을 온전히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특히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메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고 있다. 일 이야기를 집에 가져가는 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과 일이 섞여 있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일이고 삶인지 따로 구분하지도 않는다. 일이 안정되고 여유가 생기고 나니 이제는 조금씩 각자의 시간 을 보내기도 한다. 남편이 세차를 좋아해 집 밖을 나서면 아내 는 책이나 TV를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부부는 개인적 인 시간도 좋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 다. 특히 함께 일하는 시간에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부부는 오늘도 비전스트롤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함께 맞는다.


비전스트롤 VISION STROLL @visionstroll_coffeemaker
시그니처 메뉴는 콜드브루 ‘마력’이다. 콜드브루와 곁들이기 좋은 디저트 메뉴로 버터 푸딩과 미니 오레오 도넛, 블루베리 갈레트 등의 베이커리도 준비되어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로 61
edit 박솔비 photograph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