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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Trend

집밥에서 건강을 찾는 당신께

2021년 1월 14일 — 0

밖에 나가질 못하니 직접 요리하게 된 현실 속에서
더 건강해졌을 거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요리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몸에 살이 찌는 건 요리를 덜 하고 간편 식품을 더 많이 구입하기 때문일까. 마이클 폴란에 따르면 ‘그렇다’. 마이클 폴란은 자신의 책 <요리를 욕망하다>에서 미국 가정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데 쓰는 시간이 1960년대 중반 이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썼다. 이제는 고작 27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요리에 사용하는 시간은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과 가족이 어떻게 먹느냐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요리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건강을 해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비만 인구의 증가는 집 밖에서 사 먹는 일이 늘어난 걸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요리하는 시간을 많이 쓰는 나라일수록 비만율이 낮다는 하버드대학 경제학과 데이비드 커틀러Dave Cutler 교수의 연구 결과까지 인용하며 우리가 직접 요리하면 더 건강해지리라고 역설했다. 다른 연구 결과를 봐도 비슷하다. 2014년 <공중보건영양(Public Health Nutrition)> 온라인판에 게재된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에서는 20세 이상 9000명이 넘는 참가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 요리를 자주 할수록 더 건강하게 산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적은 칼로리를 섭취할 뿐만 아니라 당류와 지방 섭취도 더 적었다. 하지만 이들은 외식할 때도 요리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적은 칼로리를 섭취했다. 요리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인과 관계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요리를 자주하는 사람의 생활 방식 자체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2015년 <영양학 리뷰(Nutrition Reviews)>에는 41건의 연구를 분석한 결과가 실렸는데 여기서도 요리와 건강의 상관관계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혼자 살면서 요리해 먹는 일이 적은 사람은 과일, 채소, 생선 섭취가 부족했다. 전체적으로 다양성이 부족한 식단 탓에 건강에 유익한 음식 섭취도 적은 거로 나타났다. 대만에서 65세 이상 노인 188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주일에 5번 이상 요리하는 사람은 요리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보다 10년 뒤에도 생존해 있을 확률이 더 높았다. 유명 요리사처럼 멋지게 요리할 필요는 없다. 기본적 요리 기술을 배워라. 할 수만 있다면 직접 요리해서 먹어라. 그러면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도돌이표가 붙은 것처럼 방송과 미디어에서 같은 이야기를 셀 수 없이 쏟아내왔다. 마침내 모두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었다.

요리하면 더 건강할까?
봉쇄, 또 봉쇄. 영국 콜린스 사전(Collins Dictionary이 2020년 올해의 단어로 ‘락다운Lockdown’을 선정할 정도로 각국 도시의 문이 굳건히 잠겼다. 식당 방문이 어려워진 만큼 집에서 식사하는 일이 늘 수밖에 없었다. 집밥과 요리에 대한 관심이 늘고 레시피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접속량이 많이 증가했다. 지난 4월 미국에서 1000여 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에 이르는 응답자가 코로나로 전보다 더 자주 요리한다고 답했다. 배달이나 테이크아웃을 덜 이용한다고 답한 사람도 38%나 됐다. 독일에서도 4월 말 행한 비슷한 설문조사에서 네 명 중 한 명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보다 더 자주 요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응답자 중 38%는 집에서 빵을 굽는 횟수도 늘어났다고 답했다.
한때 독일 슈퍼마켓에서 밀가루와 이스트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럼 더 건강해졌을까? 이탈리아에서 3533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반드시 그렇진 않은 거 같다. 지난 6월 학술지에 발표된 이 연구 결과에서 참가자 15%가 농장 또는 유기농 재배 채소와 과일 구입을 늘리고 18~30세 연령대는 다른 연령대보다 지중해 식단으로 먹으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하게 됐다고 답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전체 참가자의 절반이 체중 증가를 느낀다고 나타났다. 우리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10월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20~65세 이하 성인 남녀 10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이후 생활의 변화에 대한 항목을 선택한 응답자의 비율을 보면, 배달음식 주문 빈도 증가(22.0%),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빈도 증가 (21.0%), 체중 증가(12.5%), 운동량 감소(11.4%) 순이었다.
답을 선택하는 식으로 조사한 방식이어서 앞서 다른 나라의 조사들과는 차이가 있음을 고려해야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마찬가지였다. 마이클 폴란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요리하는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미국이다. 코로나19는 그런 미국인들이 집에서 요리해 먹는 시간을 크게 늘렸다. 지난 6월 발표된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 60%는 전보다 요리해 먹는 일이 많아졌다고 답했다. 신선한 농산물을 세척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답한 사람도 30%였고, 음식에 대해 전보다 더 생각하게 됐다는 사람도 27%나됐다. 락다운으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건 불행한 일이지만 적어도 집에서 요리하고 식사하는 일이 늘어난 것만큼은 건강 면에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는지 짐작해볼 만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775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10월에 <비만(Obesity)> 학술지에 게재됐다. 설문조사 참가자는 주로 미국인과 캐나다, 호주, 영국인이었고 응답자의 평균 연령은 51세, 성별은 주로 여자였다.
전체적으로 식생활이 건강에 유익한 쪽으로 변했다는 답이 많았다. 집에서 요리해 먹는 일이 늘어나고 외식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응답자의 24.7%가 체중이 늘었다고 답했다. 비만인 경우 그 비율이 더 높아서 약 33%나 체중이 늘었다고 답했다. 비만인 사람이 식생활 개선의 폭이 제일 컸음에도 불구하고 체중 증가와 정신 건강의 악화를 경험하는 비율도 가장 높았다. 아마도 이런 체중 증가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운동량이 줄어들고 걱정과 불안이 늘어나며 달달한 간식과 음료를 찾는 일이 많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반대로 체중이 줄었다고 답한 사람도 17%나 됐다. 대체로 운동량을 늘리고 식생활을 개선한 사람일수록 그렇게 답할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다.

요리하면 더 적게 먹을까?
마이클 폴란은 책에 식품 기업이 “우리를 대신해 요리해주면 양질의 재료는 아끼고 설탕과 지방, 소금은 많이 넣을 게 뻔하다”고 썼다. 집에서 요리해 먹더라도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식품을 먹기 때문에 체중이 늘어나는 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집에서 요리하다 보면 그런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요즘 집에서 제일 자주 해 먹는 요리는 올리브 오일에 얇게 썬 마늘을 볶고 주키니, 토마토, 새우를 넣어 만든 파스타다. 집에서 생면 파스타를 만들 여유는 없으니 링귀네 면을 사서 쓰고 이탈리아에 가서 직접 올리브 오일을 짜올 수도 없는 일이니 수입 올리브 오일을 쓴다. 여기 곁들여 마시는 와인은 또 어떤가. 집에서 만든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파스타, 올리브 오일, 포도주까지 다 직접 만들어야 ‘요리’라고 보는 건 지나치다. 그렇다면 미리 재료를 썰어 두고 분량에 맞춰 포장해둔 밀키트는 어떤가? 요리사가 분업화된 주방에서 미리 준비하고 전처리를 마친 재료로 요리한다고 요리가 아니지 않은 것처럼, 집에서 직접 재료를 씻고 썰지 않았다고 요리가 아니라고 할 순 없다. 라면을 끓이는 것도 당연히 요리다. 기본 레시피에 변화를 주느냐 혹은 예시된 조리법 그대로 끓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집에서 못 만드는 식재료가 있는 것처럼 집에서 못 해 먹는 요리도 있다. 하지만 직접 요리해서 먹느냐 또는 사 먹느냐는 우리의 건강과 체중에 식사량보다 더 큰 영향을 줄 순 없다. 집에서 요리하다 보면 냄새에 질려 정작 식욕이 떨어 질 때가 있다. 생리학에서 ‘감각 특정적 포만(Sensory Specific Satiety)’이라고 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냄새에 질려 식사량이 줄어들면, 적어도 요리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적게 먹을 테니 그만큼 체중 유지가 쉬워 건강해지지 않을까? 찾아보니 연구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잠깐 냄새를 맡든 10~20분 오래 냄새를 맡든 식욕 자극 효과는 같았다. 냄새의 종류에 따라 느끼는 식욕이 달라졌다. 감칠맛이 강한 음식 냄새를 맡으면 감칠맛이 강한 음식에 대한 식욕이 늘고 달콤한 음식에 대한 식욕이 줄어드는 식이었다. 과학 실험 결과를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요리한 뒤에 식욕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은 있지만 실제로 식사를 거른 적은 없었다. 역시 느낌이나 직관보다는 과학적 근거가 더 확실하다. 직접 만든 요리냐 아니냐보다는 식사량이 더 중요하다. 이거야말로 코로나 시대에 집에서 식사하며 배운 교훈이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text 정재훈 ——— edit 곽봉석 ——— photograph 김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