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성 음료의 기능성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갈수록 늘어가는가.
스트레스를 줄인다. 몸과 마음에 활력을 더한다. 면역 기능에 도움을 준다. 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의 광고 문구 같지만 아니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기능성 음료에 적힌 설명이다. 뭐든지 큰 나라에서 마트의 규모가 큰거야 그러려니 하겠는데, 에너지 드링크를 필두로 한 별도의 기능성 음료 코너가 마련된 걸 보면 정말 입이 딱 벌어진다. 미국에서 마트에 가면 이런 제품이 벽면을 채우고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냉장고 한 두 칸이 아니라 냉장고 4~5개가 기능성 음료로 그득하다.
심지어 스타벅스 캔커피도 에너지 음료로 변신했다. 커피가 아니라 인삼 추출물, 과라나씨 추출물, 비타민 B군이든 에너지 커피 음료로 말이다. 과라나씨는 아마존 원주민의 자양강장제로 알려지면서 에너지 음료에서 뺄 수 없는 원료 중 하나가 됐다. 실제로 각성 효과도 있다. 과라나씨에는 커피 원두의 거의 네 배에 이를 정도로 카페인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 커피 음료의 과라나씨 추출물은 그냥 구색을 갖추기 위한 용도로 조금 들어간 거로 보인다. 인삼이 들어있다고 하면 뭔가 효과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주듯, 과라나씨 역시 그런 심리적 기대감을 높 이기 위해 넣는 원료 중 하나다. 굳이 카페인을 추가하지 않아도 되는 게, ‘스타벅스 트리플 샷 에너지 프렌치 바닐라’는 맥주 500ml 캔에 육박하는 443ml 용량의 캔에 이미 카페인 함량이 무려 225mg에 달한다. 커피 전문점의 커피 두 잔 정도를 한 번에 들이 켰을 때 섭취 하는 카페인의 양이 그 정도다.
왜 마시는가
태어나자마자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생애 첫 식사는 음료다.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테지만 우리는 액체 형태로 된 음식만 먹고 최소한 6개월 이상을 살아본 사람들이다. 모유든 조제분유든 말이다. 음료에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고 수분을 섭취하는 것 이상의 힘이 있다는 걸 포유동물인 인간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시간을 필요로 하는 단단한 음식과 달리 음료는 빠른 섭취가 가능하다. 성분이 미리 물에 녹아있어 흡수도 빠르다. 그 덕에 커피, 술, 차와 같은 음료는 약인지 음식인지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을 정도로 효과가 강력하다.
세계인의 90%가 매일 카페인을 섭취한다. 커피와 차에는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카테킨과 같은 다양한 성분도 들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들 음료에서 가장 강력한 약리 효과를 내는 물질은 카페인이다. 에너지 음료와 탄산음료도 마찬가지다. 기능 원리는 단순하다. 마심과 동시에 카페인이 중추신경을 자극해 다양한 경로로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주면, 잠이 깨고 정신적 에너지가 향상됨에 따라 집중력이 좋아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야근할 때 커피를 찾게 되는 건 다 카페인 때문이다.
에너지 음료에는 카페인뿐만 아니라 에너지 대사를 돕는 비타민 B 몇 종과 인간의 뇌가 가장 선호하는 에너지원인 당류도 함께 들어 있다. 인삼, 과라나, 타우린, 말토덱스트린, 글루쿠로놀락톤도 에너지 음료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성분이다. 이들 성분을 더한다고 얼마나 더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를 마신 뒤 힘이 나는 건 사실이다. 기분이 살짝 좋아지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인지기능과 운동기능을 높인다. 2010년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에너지 음료를 마신 참가자가 가짜 에너지 음료를 마신 경우보다 트레드밀을 뛰면서 버티는 시간이 12.5% 더 길어진 걸로 나타났다. 또 에너지 음료를 마신 참가자들은 운동 뒤에 피로감이 줄고 집중력과 에너지가 향상되는 느낌이 든다고 답했다.
이 시대의 기능성 음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이 세계인을 공포에 몰 아넣으면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불안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스트레스로 이를 악 물고 자거나 이를 갈아서 치아 손상으로 치과를 찾는 이가 많다는 기사가 <뉴욕 타임스>에 실렸을 정도다. 음료 회사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잠을 편히 청하도록 돕는 음료를 내놓기에 딱 좋은 구실이 생긴 셈이다. 펩시콜라를 제조하는 미국 펩시코는 2020년 12월 수면을 돕는 음료를 출시한다고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음료 이름은 ‘드리프트웰Driftwell’. 마시면 스르르 잠이 들게 될 거 라는 효과를 암시하는 상품명이다.
펩시코의 발표에 따르면 드리프트웰은 L-테아닌 200mg 과 하루 권장량의 10%에 해당하는 마그네슘이 들어 있어 수면의 질을 높이고 스트레스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L-테아닌은 녹차의 감칠맛을 담당하는 아 미노산이다. 1940년대 일본 과학자들이 발견했고 관련 연구도 일본에서 진행된 게 많다. 마치 명상할 때 처럼 긴장을 풀어주면서도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효과가 있어 기능성 음료나 건강기능식품에 종종 쓰인다. 카페인으로 인한 과도한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다. 차를 마시고 나서 잠이 안 올 때의 느낌이 커피를 마시고 잠이 안 올 때와 조금 다른 양상으로 느껴진다면 아마도 L-테아닌 때문일 것이다. 잠이 안 오는 건 마찬가지인데 왠지 편안하다.
또 마그네슘은 근육 긴장을 염두에 두고 포함시킨 듯하 지만 하루 권장량의 10% 정도를 함유한 정도로는 실제 효과보다 심리적 기대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듯 하다. 펩시코에서도 마그네슘보다는 L-테아닌을 전면에 내세우며 입증할 임상 자료가 있다며 효과를 자신했다. 한번 마셔보고 싶다. 일본에서 약학대학 5학년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L-테아닌을 복용한 학생들이 가짜 약을 복용한 그룹보다 약국 실습 중 스트레스 레벨이 낮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이런 연구의 대부분이 제조사의 협찬을 받아 진행된다. 자금을 댄 회사 측에 유리한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2004년 호주의 한 연구에서 는 L-테아닌이 편안하게 쉬고 있는 상태에서는 안정감 을 높여주지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을 앞두고 불안감이 높아진 상태에서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능성 음료의 미래
L-테아닌과 같은 기능성 식품 성분을 두고 논란이 생기는 건 효과가 강력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약과 독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효과가 강력하면 대체로 독성과 부작용도 심하다. L-테아닌은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감을 줄여줄 수 있을 정도로 효과가 강하진 않겠지만 심각한 부작용도 없다. 오히려 술에 든 알코올의 효과가 훨씬 더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알코올이 뇌에 미치는 영 향은 다양하면서도 복잡하다. 술을 마시면 진정 작용으로 긴장이 풀리고 졸음이 오지만, 수면의 질을 떨어뜨려 불면증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술과 커피는 역사가 오래된 기능성 음료다. 사실 식품 이라기보다 약에 가까울 정도로 효과와 부작용이 강하지만 이미 음식 문화 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기호식품이라는 이름 아래 관대하게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에너지 음료는 술과 커피보다 비교적 새롭다. 청소년으로까지 소비자층이 넓어지면서 그 부작용이 부각되는 면이 크다. 그러나 본질적으 로 카페인의 문제인 것은 마찬가지다. 음료를 통한 과도한 열량 섭취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하지만 최근 출시된 제품들은 저칼로리 음료가 많다. 300~500ml 한 병을 다 마셔도 60~80kcal밖에 되 지 않는다. 갈락토올리고당이 2100mg 들어 있다는 프리바이오틱스 음료는 500ml를 다 마셔도 50kcal에 불과하다. 대신 당알코올과 갈락토올리고당 때문에 많이 마시면 복통과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 문구가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다.
마트 음료 코너에는 음식인지 약인지 헷갈리는 이런 제품의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가장 아쉬운 건 맛이다. 에너지, 건강, 보충을 내세우는 음료는 하나같이 맛이 없다. 매달 글을 쓰면서 여러 제품을 시식하지만 이번 달은 유난히 맛이 없었다. 레스토랑에서 와인 대신 음료 페어링도 가능한 세상이다. 기능성이라는 수식어가 맛은 없어도 된다는 핑계가 되지 않길 바란다.
text 정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