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Dining

강릉에서의 2박 3일 PART1

2015년 6월 10일 — 0

강릉 여행은 지금이 좋다. 적당한 그린과 블루, 그 잔잔하고도 따스한 풍경 앞에서 음식을 먹는 일. 생각만으로도 허기진 몸과 마음이 신선해진다. 강릉에서의 2박 3일. 그곳에서 맛본 초여름의 7끼.

gangneung6
소돌해수욕장의 솔밭. 바다를 바라보며 회를 즐긴다
1st Day Lunch

느긋하게 일어나 짐을 대충 꾸렸다. 문을 나서자 공기가 유난히 달게 느껴졌다. 강남역 어귀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산 뒤 분주한 아침 거리를 무심히 바라봤다.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금요일 아침. 입안에 따듯한 커피를 흘려 넣으며, 서서히 바뀌는 들녘의 풍경을 감상하며, 그렇게 초여름의 강릉으로 향했다. 이따금 차창 밖에서 옅은 바람이 몇차례 불어왔다.

서울에서 차로 2시간 30분을 달리니 강릉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텅 빈 평일의 바다를 보는 것이었다. 그 앞에서 엄청나게 맛있는 막국수를 맛보리라. 그런데 왠걸. 검색에 걸리는 막국수 맛집만 160여 개다. 안 되겠다 싶어 강릉 토박이 미식가에게 막국수 맛집을 물었다. 그가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막국수 맛집”이라며 추천한 곳은 삼교리 동치미막국수. “막국수집은 큰고모님이 시작하셨어요. 댁이 버스 종점에 있었는데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라 항상 손님이 많았죠. 큰 고모님이 손님들한테 시원한 막국수를 내줬는데, 반응이 좋아 시작한 것이 삼교리 동치미막국수예요.” 주인장의 설명이다. 막국수의 동치미 국물은 가을에 수확한 단단한 고랭지 무를 1년간 자연 발효 숙성해 만든다. 국물을 한 입 들이켜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메밀과 전분을 8:2 비율로 섞어 만든 메밀면은 쫄깃하면서도 고소했다. 메뉴판에 적힌 대로 동치미 국물 세 국자, 식초, 겨자, 설탕을 넣고 달걀 노른자를 살살 풀어 먹었다. 심플하면서도 아삭한 것이 강릉 앞바다 맛 같았다.

막국수를 먹은 뒤 강릉의 커피를 맛보기로 했다. 좋은 커피숍이 많은 강릉에서 한 곳을 짚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고민 끝에 바리스타 1세대인 박이추 선생의 카페로 갔다. 본점이 아니라 최근 사천면에 오픈한 보헤미안 박이추커피로 향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선생이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막국수 집에서 차로 20여 분 걸리는데, 해안가를 거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카페에 도착해 한적한 창가에 자리잡은 뒤 반고흐가 즐기던 세계 3대 커피 예멘모카마타리를 시켰다. 그의 팬들 사이에서 ‘고흐와 소통하는 길은 마타리를 마시는 것 밖에 없다’고 회자되는 커피다. 바디감이 묵직하고 진한 다크초콜릿 향이 났다. 되도록 오래 머금고 느리게 삼켰다. 여유를 수반하지 못한 커피는 그냥 까맣고 씁쓸한 액체에 불과하니까. 바다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오는 3층에 앉고 싶었지만, 주말만 오픈해 들어가지 못했다. 카페 뒤편에 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커피 공장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완공되면 커피공정을 지켜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6월호가 나온다면 멋들어지게 완성되어 있을 거다. 그때 다시 한 번 구경을 오리라 마음먹었다.

배도 꺼뜨릴 겸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주문진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로컬의 맛을 즐기기엔 시장만한 곳이 없다. 주말엔 늦은 저녁까지 하지만, 평일엔 낮 시간만 운영한다. 구석구석을 어슬렁대며 정신없이 구경하다 고무 대야를 헤집고 다니는 엄지만한 생선을 발견했다. 귀여워서 한참을 서서 지켜봤다. “이게 뭐예요?” 사지 않을 손님이란 걸 알면서도 맘씨 좋은 주인장은 ‘복섬’이라고 답해줬다. “복섬은 복어과의 생선으로 다 자라도 크기가 15cm밖에 안 된다” 했다. 2만원에 몽땅 주겠다는 것을 웃음으로 재빨리 거절했다. 그런데 갑자기 출출한 기분이 들었다. 알다시피 면은 소화가 빠르다. 주문진 수산시장 안에 있는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 포토그래퍼 심윤석의 단골집 ‘설희네 77호’ 로 갔다. 딱 받아야 할 값만 받고, 구하기 어려운 횟감도 말만 하면 척척 구해다 주는 집이다. 2만원을 내니 소쿠리 하나 가득 다양한 횟감을 담아줬다. 4천원을 내고 회를 뜬 뒤 근처 해진식당으로 가서 먹으면 된다. 상추, 초고추장 등의 양념이 4인 기준 한상에 5천원이다. 7천원을 내면 매운탕을 끓여주고 1천원을 내면 공깃밥도 준다. 하지만 이건 누구나 먹는 방식이다. 기자는 양념을 테이크아웃해 근처에 위치한 소돌해수욕장으로 갔다. 차를 타고 주문진항에서 북쪽으로 5분쯤 가면 나온다. 솔밭이 있어 햇살을 막아주고, 근처 화장실에서 손도 씻을 수 있다. 그리고 앞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 여기는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명당이다. 회 맛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먹고 떠들고 웃기를 반복하다 보니 하얀 백사장에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1ST DAY Dinner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주문진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걷다 보니 ‘장치찜’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눈에 띄었다. 장치는 동해에서만 나는 장어과 생선이다. 후배의 제보에 따르면 원조는 월성식당이라고 했다. 재빨리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생소한 음식 맛보기는 언제나 즐겁다. 강원도 감자를 넣어 칼칼하게 조린 장치찜이 나왔고, 떨리는 마음으로 맛을 보았다. 아귀와 비슷하지만 좀 더 리치한 맛이 났다. 껍질은 기름지고 속살은 보드라운 것이 술 한잔이 간절했다. 메뉴판을 보니 역시나 생소한 ‘주문진 우리쌀 동동주’가 있었다. 그래, 이거다. 드라이한 막걸리를 곁들이니 장치와 궁합이 잘 맞았다. 찜 국물은 무생채와 흰쌀밥을 넣어 살살 비벼 먹었다. 초여름의 보양은 장치로 했다.

첫날이니 2차는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기로 했다. 강릉의 제철 해산물 레스토랑 기사문으로 향했다. 해산물과의 와인 페어링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기사문은 정해진 메뉴판이 없다. 이곳의 메뉴판은 동해바다 그 자체다. 오늘 먹은 건 내일 없을 확률이 높다. 셰프가 그날그날 장에 나가 수급한 질 좋은 제철 재료로 즉흥 요리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예약할 때 적당한 가격을 말하면 그에 맞춰 음식을 준비해준다. “사람 들은 겉으로는 세련된 척하지만 속으로는 아날로그를 원해요. 기사문은 친숙한 음식에 변화를 더해 세련미를 가미합니다. 여기는 일식집도, 횟집도 아니에요. 그냥 기사문이죠.” 기사문의 조진호 오너 셰프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물회는 초장 대신 열무김치와 조개 국물을 넣어 만들고, 초밥은 손님이 직접 만들어 먹게 한다. 한 번 튀긴 우럭은 생강청을 만들어 강정으로 탈바꿈시킨다. 익숙한 듯 창의적인 메뉴가 즐비한 곳이다. 음식을 먹고 떠들며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새벽. 숙소인 선교장으로 향했다. 운정동에 자리한 고가(古家)로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이 지은 곳이다. 99칸의 사대부가 상류 주택으로 1965년에 국가에서 중요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했다. 낮에는 관광지로 운영하고, 저녁엔 체험 형태의 숙박이 가능하다. 습기 어린 방 안에서 무거운 솜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낯선 곳에서의 밤이 어색할 법도 한데, 먹고 노느라 지친 몸은 쉽사리 잠에 빠졌다.

gangneung4
왼쪽부터 기사문 어항 속의 꽃새우, 반 고흐가 즐기던 예멘모카마타라 커피, 강원도 감자를 넣어 칼칼하게 조린 장치찜.
gangneung5
왼쪽부터 고랭지 무를 1년간 자연 숙성시켜 만든 삼교리 동치미막국수, 강릉 최고의 숙소 선교장, 해 뜰 때 잡힌다 하여 어부들이 붙인 잡고기의 별칭 ‘해뜨기’

삼교리 동치미막국수 
막국수 7000원, 수육(중) 2만9000원 / 오전 9시 30분~오후 9시 / 강원도 강릉시 공항길 127번길 42 / 033-653-0993

보헤미안커피
예멘모카마타리 5000원 쿠바크리스탈마운틴 6000원 / 오전 8시~오후 10시(토요일은 오후 11시까지) / 강원도 강릉시 해안로 1107 / 033-642-6688

월성식당 
장치찜(중) 2만7000원 / 오전 9시~오후 9시 / 강원도 강릉시 시장3길 4-1 / 033-661-0997

기사문 
1인당 5만원부터 / 정오~오후 2시, 오후 6시~9시 30분 / 강원도 강릉시 정원로 78-22 / 033-646-9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