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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제2막

2020년 12월 30일 — 0

버려진 병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는 공예가 박선민. 그가 만드는 예술은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다.

새로운 쓰임으로
인류가시급히해결해야할과제중하나,바로환경문 제다. 일부 환경운동가의 몫이 아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 분리수거하면 일부는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그중엔 다시 쓸 수 없는 쓰레기도 많다. 그러나 박선민 작가의 손을 거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쓰레기라도 다른 운명을 갖게 된다. 박선민 작가가 사용하는 주재료는 다 쓰고 버려진 유리병이다. 그가 폐유리병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2014년 사회적 기업이 주최한 기획 전시에 참여하고 부터다. 당시 작업이 폐유리병의 활용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 현재까지 ‘리보틀Re:bottle’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리보틀 작업은 주로 연마 기법(Cold Working)을 사용한다. 절단된 병은 잘린 면의 크기에 따라 작품의 형태가 나뉜다. 잘라낸 부분은 7~8단계의 연마 작업 후 추가 공정을 거쳐 작품으로 완성된다. “유리병마다 형태와 두께가 다르고, 제조국에 따라 명도 차이도 심해요. 각각의 유리병이 갖고 있는 곡선과 표면의 질감을 최대한 활용해 작품을 구상합니다.” 박선민 작가의 작품은 폐유리병 본연의 특징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쓰임을 가질 수 있도록 제작된다.

평판기에서 잘라낸 폐유리병의 표면을 갈고 닦는 연마 작업. 유리병의 거친 입자를 부드러운 입자로 바 꿔주며 단면을 다듬는다.
연마 작업을 위한 ‘다이아몬드 디 스크’. 디스크는 사포와 같은 역할을 한다.
휠 커팅기를 사용해 유리병의 원하는 부분을 잘라낸다.

가치를 담은 미학
작품에 ‘업사이클링’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형태를 재가공하는 건 쉽지 않을 터. 결국 공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용하고 싶어하도록 만드는 심미성이다. 쓰레기였던 폐유리병에 대한 편견을 지우기 위해 박선민 작가는 조형적인 조합과 균형을 만들고, 섬세한 마감 처리와 표현 작업에 공들인다. 작업은 저 멀리 산의 능선을 바라보듯 병의 옆라인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팽창도와 두께, 형태가 각기 다른 병조각을 조합하는 건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만, 어떤 재료든 조형적인 균형을 잡아내는 건 박선민 작가의 특기다. 금속과 나무 등 다양한 재료로 공예를 배워온 덕분이다. “한 번의 쓰임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더 오래,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폐유리병이라는 소재에 주목하는 사람도 많지만, 지속 가능성에 대한 중요성은 작업 방식에서도 나타나야 해요.” ‘2020 공예 트렌드 페어’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작품은 열 가공법을 사용했다. 이번 작품은 하나의 병을 재가공해 제로 웨이스트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으로 만들어 소개할 예정이다.

박선민 작가는 ‘다시 쓰임’의 가치를 담은 공예품을 만든다.

edit 김지현
photograph 류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