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nk Better
양반탈, 각시탈, 선비탈 등 하회탈이 그려진 8가지 맥주.
기존 맥주 라벨에선 볼 수 없던 형형색색 각기 다른 그림과 글자로 개성을 뽐내는 맥주들.
무엇보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탄생한 맥주.
전부 일산 방향 자유로에서 파주에 접어들 때쯤 등장하는,
‘자유로휴게소’ 옆 브루어리에서 만든 수제 맥주다.
외딴곳에서 만들어진 맥주가 2018년 점차 수도권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더니
이제 전국 편의점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다.
제대로 된 맥주 맛을 선보이기 위해 시작했다는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의 천순봉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Playground Brewery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
천순봉 대표
삼성전자와 코카콜라에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 맥주와는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데.
삼성전자 재무팀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원 졸업 후 취업한 회사가 코카콜라였고. 미국 생활 중 가장 좋았던 게 온갖 종류의 맥주였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 왔을 때가 2013년이었는데 여전히 맥주 하면 카스, 하이트가 전부더라. 수입 맥주도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하지만 맥주 수요는 분명 더 커질거라고 생각했고, 제대로 된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크래프트 브루어리를 시작했다.
브루어리가 차로만 갈 수 있는 곳인데도 항상 사람이 많더라.
홍보를 많이 하진 않았다. 처음에는 규모도 작았고 일산 끝이라서 음식점 위치로는 사실 좋지 않잖나. 차가 없으면 오기 힘든 곳이다. 하지만 요즘은 맛집이라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간다. 물론 유통을 생각해 지금의 위치를 선정했다. 도매업체가 은평구나 김포에 많다. 그런데 입소문이 나고 방송에 몇 번 소개되면서 찾는 분이 많아졌다.
‘하회탈 맥주’라는 게 재밌다. 기대감도 주고. 다른 하회탈은 어떤 맛일까.
수제 맥주 브루어리라고 하면 어느 정도 라인업을 갖춰야 하는데, 맥주 장르마다 특징이 있을거지않나.미국에있을때부터하회탈과스토리가잘맞겠다고생각했다.각탈이 가진 캐릭터와 개성이 각 수제 맥주의 특징과 매칭되더라. 자연스레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만약 하회탈로 안 한다면 회사 이름이 플레이그라운드니까 놀이터에 있는 미끄 럼틀, 시소, 그네를 매칭하면 어떨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
어떤 ‘하회탈’의 인기가 가장 좋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젠틀맨 라거의 인기가 가장 좋다. 사실 라거는 대중적이다. 브루어리라고 하면 으레 IPA처럼 국내 시장에 다소 생소한 맥주들로만 판매해왔다. 공정상으로도 라거는 에일을 만드는 것보다 오래 걸리기도 하고. 발효 시간이 더 기니까. 게다가 가격도 비싸게 받기 힘들다. 라거라고 하면 비교 대상이 카스나 하이트일 수 밖에 없는데 얘네는 너무 싸다. 그래서 수제 맥주 업계에선 라거를 거의 안 만들었다. 그런데 라거가 차지하는 비율이 90%가 넘는다. 심혈을 기울여서 개발한 맥주가 젠틀맨 라거다.
젠틀맨 라거가 ‘소맥’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맥주로 알고 있다.
소맥을 소위 ‘말아’ 먹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맥주를 소맥처럼 만들면 어떨까? 그런 생각에서 시작했다. 알코올이 7.6% 정도 되는 소맥의 질감과 마우스필 Mouthfeel을 가진 필스너 라거다. 하지만 소맥에서 느껴지는 강한 알코올 맛은 없고 맥아의 진한 풍미가 기분 좋게 다가온다.
맥주에 있어 알코올 도수의 영향이 큰 편인가?
해외 소비자들이 더 높 은 알코올 도수의 맥주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에선 높은 알코올 도수는 아예 다른 주종, 예를 들면 소주 같은데서 찾으려 하고, 맥주에선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청량감을 바라는 이들이 더 많다. 카스나 하이트 같은 페일 라거들이 길들여놓은 입맛인 것 같은데, 사실 해외 나가면 알코올이 10% 넘어가는 맥주도 많다.
국내 소비자의 입맛을 반영한 다른 제품도 있나?
국내 소비자 입맛에 맞출 수 있다는 건 국내 수제 맥주 브루어리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이다. 우리 맥주 중 라이프 베스트라는 페일 라거가 있다. 카스나 하이트를 페일 몰트를 써서 만든 맥주라서 페일 라거라 고 부르는데, 페일 라거는 청량감이 좋 아 마시기 좋고 가볍고 크리스피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런 맥주가 우리나라 음식에 잘 맞는다. 양념이 강하고 간이 센 음식이 많잖나. 다만, 라이프 베스트는 페일 라거지만 홉의 풍미를 좀 더 넣었다. 그외에 복분자를 넣은 맥주나 볏짚에서 추출한 효모를 활용해 만든 맥주도 있다.
맥주 개발에 공을 많이 들이겠다.
영업하는 친구들이 어떤 제품이 있으면 좋겠다고 알려주기도 하고, 양조팀에서 해외 트렌드를 보니까 이런 제품이 각광 받는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해외에서 밀크셰이크 스타우트의 인기가 좋다는 등. 나 역시 항상 필드에 나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많이 찾는지 알게 되지 않나. 여러 맥주 잡지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기도한다. 모든 직원이 새로운 맥주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머리를 맞댄다. 그렇게 우리 한 번 해볼까? 얘기가 시작되면 양조팀에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한다. 보유설비나 관련 규제에 따라 불가능한 맥주도 있으니까 제반 조건을 검토해 최종적으로 진행 여부를 결정하고, 양조팀에서 레시피를 짠다. 다양한 홉과 맥아를 섞어보며 좋은 맛을 찾아간다. 100~200L 정도를 시제품으로 만들면서 레시피를 교정한다. 그 다음 판매해도 좋겠다는 확신이 서면 상품화를 진행한다.
어떤 맥주가 불가능한가?
우리나 라에서 안정적으로 구할 수 없는 원재료를 써야하는 제품도 있고 우리 설비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제품도 있다. 또 우리나라 주세법상 허용되지 않는 제품도 있다. 이를테면 해외에는 ‘오이스터 스타우트’라는 제품이 있는데 굴을 넣어 만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굴을 넣어 맥주를 만들 수 없다.
음식 메뉴 개발도 맥주처럼 적극적으로 하는편인가?
맥주를 마실때가 장중요한게있다.음식과얼마나잘어 울리느냐, 얼마나 좋은 경험 속에서 맥 주를 즐겼느냐. 맥주를 기억하는 데 가 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 년에 적어도 두 번은 메뉴를 개편한다. 시의성에 맞게. 가령 여름이면 여름에 맞는 메뉴, 핼러윈이면 핼러윈에 맞는 메뉴. 이번 겨울에는 해산물을 활용한 메뉴를 새롭게 선보였다. 살치살스테이크나 로메스코살사반건조오징어처럼 맥주와 페어링하기 좋은 음식들이다.
서울에 펍을 하나 내도 좋을 거 같다.
직접 해보려고 매장을 알아본 적도 있다. 그런데 생산량을 매년 늘리면서 새로운 설비나 시설에 투자하느라 못 하고 있다가 올해는 진짜로 서울에 펍을 하나 내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다시 미 루게 됐다. 그래도 조만간 서울에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 제품을 더 편하게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생각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계획과 비교하면 어떤가.
생각했던 길로 가고 있긴 하다. 물론 속도는 생각보다 느리지만. 2015년 주세법이 바뀌면서 우리 같은 소규모 제조자도 외부 유통이 가능해졌다. 음식점을 하는 것도 좋지만 맥주를 좀 더 전문적으로 만들어서 브루어리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회사가 되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의 다음 신제품이 궁금하다.
지금 오크 통에서 숙성한 제품들이 몇 가지 있다. 1년 반 정도 숙성한 것들인데 그중 하나는 한겨울에 나올 수 있을 거 같다. 1월이나 2 월중? 그리고 내년 늦봄 아니면 초여름에 오크통에서 깊게 숙성한 스타우트 제품이 나올 수 있을 거 같고.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PLAYGROUND BREWERY
맛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탄생한 브루어리. 각기 다른 하회탈이 그려진 재밌는 맥주가 맛도 좋다. 한국인의 입맛에 딱 들어 맞는 맥주와 페어링 하기 좋은 메뉴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젠틀 라거 5500원, 몽크 IPA 6000원, 조커 골든 페일 에일 5000원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이산포길 246-13
매일 낮 12시~오후 10시
@playground_brewery
edit 곽봉석
photograph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