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ave Brewer
‘우리가 어제 빚은 술보다 오늘 빚은 술이 더 낫기를 바라며,
그렇지 않더라도 다시 한번 해볼 수 있는 즐거운 용기가 있기를.’
구름아 양조장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써 있는 문장이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술을 빚고, 실패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모습이 영락없는 젊은이다.
구름아 양조장은 개성 있는 쌀술을 빚어 판매하는 소규모 양조장이다.
이곳의 술은 주문 후 한달을 기다리고 매장까지 직접 찾으러 가야 하지만 없어서 팔못할 정도로 인기다.
이런 인기의 중심에는 양유미 주조사가 있었는데,
술을 빚는 솜씨는 물론 브랜딩과 마케팅 감각도 탁월해 만드는 술마다 품절을 시켰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이쁜꽃의 대표로 새롭게 출발한다.
지속 가능한 한국 술의 미래를 만드는 양유미 대표를 만났다.
EpKkot Company 이쁜꽃
양유미 대표
술을 빚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전통주나 한국 술을 만들기에는 너무 젊어서 놀랐다.
친한 친구들이 취미로 꿀술을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 삼아 홍보나 마케팅 업무를 도와주었는데, 어쩌다 보니 본격적으로 술까지 빚고 있더라.
그래도 술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전개일 텐데, 술의 어떤 매력에 끌렸나?
내 손끝에서 나오는 것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만화나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아마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국수 장인에게 국수 만드는 법을 배울까 고민도 했을 만큼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F&B 분야에 인연이 있는지 결국 술을 빚어 판매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만드는 술마다 이슈다. 도대체 어떤 술을 만드는가?
처음부터 개성 있는 술을 만들고 싶었다. 특히 쌀술, 막걸리는 이미 시장에 너무 많은 플레이어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었다. 대중적인 막걸리를 차별화하기 위해 세련된 풍미를 담고자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후추와 생강을 주재료로 사용한 ‘만남의 광장’이 라는 술이다. 알싸하면서 스파이시한 맛이 특징이다. 요리할 때 후추와 생강이 양념 역할을 하는 것처럼 술에도 후추와 생강으로 포인트를 더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의 페어링주로 많이 선보였다. 그 이유와 고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2017년 한국에 <미쉐린 가이드>가 들어오면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서는 페어링주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한국만의 로컬리티를 보여주면서 음식과도 잘 어울려야 하는데, 이전의 한국 술은 향이 너무 세고 탁한 맛이 강해서 페어링하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일선에서 처음 페어링주로 소개된 술이 곰세마리 양조장에 서 만든 꿀술이었는데, 맛 자체가 여리 면서 부드러워 섬세한 요리와 잘 어울렸다. 레스토랑에서도 손님들에게 먼저 시음을 권한 후, 어떤 술인지 맞혀보라는 식으로 술을 소개했다고 들었다. 꿀술도 생소하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직접 만 들었다는 스토리텔링까지 있다 보니, 고객들도 재미있어 했다.
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술은 섹시하고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은 배가 고파서 마시는 게 아니다. ‘궁금하니까’ 한번 마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야 한다. 맛본 후, 한 번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 더 알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맛있는 술에 매력을 불어넣는 작업이 브랜딩이라고 생각한다.
곰세마리 양조장이나 구름아 양조장 두 곳 다 디자인이나 브랜딩이 눈에 띄었다.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할 때 어떤점에 중점을 두었나?
술만을 만들기보다 콘텐츠와 브랜드를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브랜딩을 통해 우리 술을 마시고 싶게끔 호기심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브랜딩 작업에서 재미있는 디자인은 물론 술을 만들 때 생소한 식재료를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술은 어떤 맛일까?’라는 궁금증을 일으키기 위해서다. 이것은 개성 있는 술을 만들고 싶어 하는 생각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와 소통이 정말 중요했다. 구름아 양조장은 주세법상 전통주 카테고리가 아니어서 택배 배송을 할 수 없다. 인스타그램으로 주문을 받고, 술이 완성되면 메시지를 보내고, 고객이 매장까지 술을 직접 찾으러 와야 하는데 오히려 이런 번거로운 과정이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서로소 통하면서 술맛은 어떻고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 등등 직접적인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 SNS를 이용해 홍보하는 것이 처음에는 자금이 부족해서 선택한 방법이었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곰세마리 양조장 이후로 젊은 양조 브랜드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선구자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
한국 술을 만드는 국내 브랜드가 늘어나는 건 다양성 측면이나 시장이 커지는 것에 있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행만을 좇다가 품질이 저하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맛있는 술이 뒷받침 되지 않는 상태에서 재미만을 추구하다가는 소비자의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술은 이미 2000개가 넘는 종류가 있는데 그중 소비자에게 인지되고 있는 상품은 너무 적은 비율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집에서 혼술, 홈술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이번 기회에 소비자 들도 한국 술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것을 알고 한번씩 마셔보셨으면 좋겠다.
최근 회사 ‘이쁜꽃’을 설립했다. 어떤 곳이며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계획인가?
로컬리티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지역의 양조장과 협업해 전통주 개발에 도움을 주고 싶다. 지역의 특성과 개성을 끌어올 릴 수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고, 영상이나 만화, 글로 만든 콘텐츠를 이용해 홍보, 마케팅, 판매까지 전반적인 컨설팅 업무 를 담당할 예정이다. 단지 일회성 컨설팅이 아니라 자연재해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술맛과 브랜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함께 도모하고 싶다. 좀 더 먼 미래를 이야기하자면 술에 그치지 않고 지역 특산품 개발이나 라이프스타일 영역까지 확대해나가고 싶다.
쌀술이나 한국 술을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팁이 있다면?
막걸리같이 묵직한 쌀술은 하이볼처럼 잔에 얼음을 채우고 술과 탄산수의 비율을 1대 2로 섞어 마시면 훨씬 더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 사실 정해진 방식대로 마시기보다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좋아하는 술 스타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쁜꽃EPKKOT COMPANY
이쁜꽃은 지역 양조장의 조력자로서, 지역의 정수이자 문화의 정수인 술을 기획한다.
술의 본질은 매개체라는 믿음에 기반하여, 지역의 술을 토대로 지속 가능한 로컬 라이프를 설계하는 것이 목표이다.
edit 이유나
photograph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