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Soju Spirit
‘달과 함께 마신다면 혼자가 아닙니다.’ 이토록 낭만적인 말이 적혀 있는 소주가 있다.
뉴욕 여행에서 꼭 사와야 할 기념품 리스트 상위에 오르던 토끼소주다.
소주라고 다 같은 소주가 아니다.
우리의 둘도 없는 소울 드링크인 초록 병은 희석식 소주지만
토끼소주는 쌀과 전통 방식으로 만든 증류식 소주다.
한국인도 잘 모르는 증류식 소주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해주는
브랜든 힐 대표의 토끼 소주는 올해 뉴욕에서 충주로 양조장을 옮겼다.
이국적인 외모로 내뱉는 ‘고두밥’, ‘찹쌀’, ‘누룩’이라는 단어는 토끼소주에 대한 신뢰감을 주기 충분하다.
Tokki Soju 토끼소주
브랜든 힐 대표
어릴 때부터 양조장에서 일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맥주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등 소문난 ‘술덕후’였다고.
가족 중에 양조나 증류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도 양조장에서 일을 했다. 자라면서 예술과 그림을 좋아해 영감을 얻으려고 세계 여행을 자주 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소주를 만났다. 그전까지 술은 나에게 하나의 취미였지만 한국에 와서 전통주를 배우며 증류주에 대한 열정이 생겼다. 그 후 디자인 회사에서 프리랜스 아티스트로 일하며 토끼소주의 창업 비용을 마련했다.
토끼소주의 시작은 뉴욕 브루클린이었다. 미국에서 소주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전통주를 배우고 뉴욕으로 돌아가서도 위스키와 럼을 만드는 헤드 양조사로 일을 했다. 당시 미국에선 <미쉐린 가이드>로부터 별을 받는 곳도 생겨났을 정도로 한식 붐이 일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술과 음식을 함께 판매하는 곳은 드물었다. 그러던 중 2015년 ‘인사’라는 한식당에서 한식과 페어링할 수 있는 전통 소주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의뢰를 받은 그 소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결국 브랜딩과 라벨 디자인까지 하게 되었고, 그렇게 토끼소주가 탄생했다.
즐기는 건 쉬워도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술의 맛이 결국 브랜드가 전하는 가치와 성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론칭할 때 제조법에 가장 큰 힘을 쏟았다. 쌀과 누룩을 사용하는 전통 방식을 따라 제대로 된 한국 소주를 만들고 싶었다. 미국에서는 가장 품질이 뛰어난 캘리포니아산 유기농 찹쌀을 사용했다.
브랜드 이름과 라벨 디자인도 토끼소주의 인기에 한몫한다. 브랜든 대표가 소주를 만난 2011년 기묘년을 기념했다고?
내 브랜드는 한국에서 보낸 시간과 전통에 경의를 표한 거다. 라벨 디자인은 직접 했는데, 한국 민화에서 영감을 받은 색감과 빨간 낙관, 건곤감리의 괘와 미국의 우드 컷(Wood Block Folk Art) 스타일의 텍스처를 적용했다. 한국과 미국의 예술을 조화롭게 풀어내고 싶었다. 토끼는 한국 설화에 나오는 ‘달에 사는 옥토끼’에서 따왔다. 하늘을 대변하는 달과 땅을 대변하는 산, 그 사이를 채우는 토끼를 표현했다. 2016년 블랙라벨을 출시할 때는 비용 절감을 위해 기존 라벨의 선과 배경만 뒤집어 사용했다. 한 가지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뉴욕에서 생산할 때는 배치 넘버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거다. 국내에서 생 산되는 토끼소주 라벨에는 배치 넘버 대신 날짜를 표기한다.
이번에 한국으로 베이스를 옮겼다.
소주의 본고장인 한국에서 소주의 위상을 높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국의 농작물로 만든 제품을 해외로 수출까지 하게 된다면 더 의미있는 사업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처럼 소비 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하게 기울어가는 시대에 쿠팡 같은 온라인 채널에서 소비자에게 더 폭넓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한국으로 옮기며 미국에서는 공동 대표인 더글라스 박Douglas Park과 나, 2명뿐이던 ‘팀 토끼소주Team Tokki Soju’ 의 팀원도 충원했다. 증류소의 경영을 맡고 있는 심광섭, 헤드 양조사 윌리 데일Willie Dale이 외식업 확장이나 칵테일 등 새로운 메뉴를 개발 중이고, 각종 행사를 담당하 는 브라이언 이Brian Yi까지 합류해 완전체가 되었다.
양조장 위치를 ‘충주’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충주는 재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토끼소주와 잘 맞는 지역이다. 충주는 찹쌀의 품질이 우수하고 생산량도 높으며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한국 주세법에는 전통주와 지역특산주 목록이 있는 데, 욕심나는 카테고리였다. 한국으로 거점을 옮기기로 결심한 뒤부터 토끼소주를 지역 농산물로만 빚고 싶었다. 전통주 제조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였다.
토끼소주는 조선 시대 방식으로 술을 제조한다.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제조법이라 들었다.
수수보리 아카데미에서 전통주를 배우면서 술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한국 역사를 같이 배웠다. 열심히 조사해보니, 조선 시대 때 술을 빚던 방식이 흥미로웠다. 소주는 고려 시대에 몽골에서 건너와 조선 시대까지 쌀과 누룩을 사용하는 다양한 제조법으로 만들어졌는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대부분의 전통 제조법이 사라져 아쉬웠다. 증류식 소주를 마셔보니 지금 대중적으로 마시는 녹색 병의 소주보다 매력적이었다. 조선 시대 방식은 증류하는 방법과 양조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그 원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원재료의 풍미나 향을 잘 살리면 우수한 술을 맛볼 수 있지만, 감미료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작은 실수를 해도 맛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술의 품질에 대해선 한치의 양보도 없다. 토끼소주는 국제 대회에 참가해 진이나 위스키, 브랜디와 공평하게 겨뤘을 때도 수많은 입상을 자랑할 정도다. 그만큼 ‘프리미엄’이란 명칭을 붙이는 데 자신 있다.
다른 브랜드와 차별되는 토끼소주만의 특별함이 있다면?
최근 ‘토끼소주의 특별한 점은 백인이 만들었다는 거다’라는 기사를 봤다. 하지만 토끼소주는 단순히 인지도나 사업을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다.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최대한 따르되 현대 과학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방법으로 소주의 맥을 이어 가려 노력한다. 깊은 철학과 함께 소주 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사명감으로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토끼소주를 만든 사람은 어떤 식으로 토끼소주를 즐기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40%인 ‘토 끼소주 블랙’을 더 좋아한다. 취향을 타지 않는 무난한 술이라 페어링에 자유롭지만 두부김치나 보쌈과 곁들여 먹었을 때 가장 맛있다.(웃음) 칵테일로 만들어 마시거나 실온에 뒀다가 깔끔하게 마셔 보길 추천한다. 화학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냉장 보관을 하지 않아도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토끼소주가 새로운 걸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만드는 증류주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자랑스러운 ‘토 끼소주’를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외식업에도 도전하려고 준비 중이다. 곧 토끼소주만 사용한 칵테일 바를 오픈할 예정이니 기대해도 좋다.
토끼소주TOKKI SOJU
찹쌀과 직접 개발한 누룩으로 발효시켜 빚은 증류식 소주. 부드러운 목 넘김과 입 안에 감도는 곡물의 단맛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 23%의 ‘토끼소주 화이트’와 40%의 ‘토끼소주 블랙’ 두 가지 모두 각각 375ml와 750ml 용량으로 구매할 수 있다.
tokkisoju.com
@tokkisoju
edit 김지현
photograph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