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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ADY SELLER

2020년 11월 19일 — 0

장장 75년. 해방 직후 문을 연 이래 태극당의 모나카 아이스크림과 단팥빵은 언제나 맛있는 먹을거리였다.

2015년이었다. 별다른 일 없어 보이던 빵집 하나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20대와 30대가 주축 이었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인스타그램의 확산과 맞물려 시너지를 냈다. 빵집은 방문 후 인증샷을 남기고 싶은, 혹은 남길 수밖에 없는 유명 관광지 아닌 관광지로도 각광받았다. 당시 젊은 친구들이 놀 거리라곤 하나 없어 보이는 서울 장충동을 찾게 된 건 오로지 태극당이란 빵집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 집’이라는 타이틀이 자랑스러운 곳. 어르신들만 좋아할 것 같은 모나카 아이스크림과 단팥빵으로 대표되는 옛날 빵들. 하지만 태극당은 3대에 이르러 젊은 손주가 경영을  맡으면서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옛날 빵이 새로운 빵이 되고, 옛날 맛이 낯선 맛으로 바뀌었다. 레트로 트렌드와 손잡으며 열풍을 일으켰다.

과자 중의 과자를 만들겠다는 일념
‘태극당’이란 단어를 듣고 어떤 뜻인지 몰라도 왠지 모르게 빵집을 연상케 되는 건 순전히 장충동의 태극당 때문이다. 경기 안양에도, 경북 영주에도, 충남 보령에도, 부산 수영에도 태극당이란 빵집이 있지만 원조는 서울 장충동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제과점에서 일하던 고故 신창근 창업주는 1945년 해방과 함께 남겨진 ‘미도리야’ 제과점의 제과 기계를 인수했다. 이듬해 서울 중구 명동에서 민족의 이상을 담아 이름 지은 태극당 문을 열었다. 전병, 월병, 카스텔라, 사탕, 양갱을 주 메뉴로 시작해 잘 구운 전병에 아이스크림을 빈틈없이 채운 모나카 아이스크림, 설탕과 함께 푹 삶은 팥을 꽉 꽉 채운 단팥빵까지. 2020년 오늘에도 그 맛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태극당이 지금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창업주의 열정과 고집이 컸다. “부산에서 빵을 만들다 서울 태극당으로 왔는데 깜짝 놀랐어요. 물을 전혀 안 쓰더라고. 반죽하는 데 전부 우유로 하는 거지. 그 때 우유가 얼마나 비쌌는데.” 태극당의 제빵을 총괄하는 이성길 장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신창근 창업주는 맛있는 빵에 천착했다. ‘태극농축원’이란 목장도 설립했다.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우유와 달걀을 매일 직접 조달했다. 태극농축원이 설립된 1960년 당시 국내에는 아직 낙농업 환경이 제대로 조성돼 있지 않았다. 태극당이 196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극농축원에 방문했다 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꺼내는 것도 그래서다. 태극당이 창업주의 고집 덕에 그만큼 앞서 있었단 얘기다. 군부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선진 낙농 기술 답사를 위해 일개 빵집이 운영하는 목장에 다녀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태극당은 1940년 중후반 ‘빵’이라는 새로운 음식을 서울에 널리 알린 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모나카 아이스크림도 1960년대에 ‘미고아이스크림’이란 이름으로 처음 선보였다. 식사 빵류도 마찬가지다. 배를 불리는 식사의 개념도 챙기며 특별한 먹을거리로 널리 사랑받았다. 1970년대 들어 태극당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명동, 남대문, 종로, 혜화동, 구의동, 을지로, 압구정동까지 서울에 무려 7개의 태극당이 성황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태극당의 최고참 한청수 장인은 당시 태극 당의 인기를 재밌는 일화로 기억하고 있다. “통일교가 전 세계 합동 결혼식 때문에 카스텔라 만 장을 주문했는데 다른 데는 못했어도 태극당은 했어요. 포항제철 준공식을 할 때도 차가 세 대가 나갔어요. 트럭이.” 김영일 전병 장인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에도 직원 입회하에 케이크 만들어서 엄청나게 들어갔어요. 1971년에 남북적십자회담 처음 할 때도 빵 다 가져갔죠.”

1973년 태극당은 지금의 장충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식장과 제과 공장을 역삼동에 새로 여는 등 사세를 확장해나갔다.  그러나 태극당의 위상이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맥도날드를 기점으로 물밀듯이 쏟아진 패스트푸드 음식 공세와 해외여행 자유화까지 가세하며 1990년대부터는 전에 없던 새로운 프랜차이즈 매장이 발에 차였다. 지점은 사라지고 본점만 남았다. 직원 수도 대폭 줄었다. 그저 오래된 빵집 중 하나로 전락해 2000년대를 맞았다. 기존에 익숙한 빵과 예전에 먹어본 맛은 새로운 모양과 맛과 냄새를 지닌 음식과 겨뤘을 때 승산이 없었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
2010년대에 들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들인 신광열 2대 대표가 창업주의 고집을 이어받아 경영을 맡았다. 역시 아버지 방식 그대로 맛만큼은, 만드는 방식 만큼은 유지했기 때문에 태극당 빵에서 옛날 추억이 느 껴질진 몰라도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초 단위로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나는 시대에 ‘추억의 맛’이라는 무기 하나만으로 ‘화려한 맛’과 싸우기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2013년 태극당의 근간이자 기틀이었던 신창근 창업주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광열 대표까지 쓰러졌다. 2012년 태극당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창업주의 손자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본 격적으로 경영에 뛰어들었다. 가업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태극당에 변화를 불러왔다.

“아버지가 1년간 병원 신세를 지셨거든요. 그때부터는 밥벌이가 최우선이었어요. 직원들 월급 주기에 급급했으니까요. 가장이 됐고 태극당이란 브랜드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신경철 전무는 원칙부터 지켜나갔다. 한때 위생 문제로 지탄받았던 생산 환경을 뜯어고쳤다. 제빵 공장을 신축하고 확장하며 시설을 바꾸고 공정을 정비했다. 누나들까지 불러들였고, 2014년부터는 합심해 브랜드 리뉴얼에 나섰다. 손자였고 가족이었지만 지금껏 잘 몰랐던, 할아버지가 만들고 아버지가 지켜온 태극당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오래된 빵이 사랑받는 이유가 뭐지?’, ‘태극당이란 이름이 가진 의미는?’ 태극당만이 갖는 존재 이유를 바탕으로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서체를 개발하고, 100가지가 넘는 패키지의 디자인을 전부 바꾸고, 브랜드 캐릭터를 만드는 등 1년간 치열하게 브랜드 리뉴얼에 매진했다. 새로 짓는 게 더 빠를 수 있다는 건물 리모델링도 단행했다. 세월이 주는 감성은 유지하되 빵과 맛의 본질은 지키고, 이를 전하는 방식을 바꿔나갔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아버지는 어떤 가치를 지켜가려 했을까. 위기 극복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고심한 결과, 태극당은 레트로Retro와 뉴트로 New-tro 한복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자 젊은 친구들이 단팥빵도 크로플 못지않은 깊이를 가진, 모나카 아이스크림도 마카롱 못지않은 달콤함을 지닌 먹을거리로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옛날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 있는 장충동 매장은 ‘요즘 것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더없이 ‘힙’한 장소가 됐다. “잘 만들어놓은 플랫폼 안에서 유연하게 대처 하는 브랜드가 됐으면 해요. 본질은 분명히 유지하면서요. 지금도 2100년에도 태극당의 색깔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이유로 같은 자리에 오래 남을 수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봐도 유재석이 최고의 예능인일 거라는 생각은 틀리지 않다. 여전히 롤스로이스가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일 거란 생각도 그렇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시간과 이야기로 다져진 ‘헤리티지’는 그래서 무섭다. 태극당은 3대로 넘어오며 여전히 맛있는 빵을 만들 준비를 마쳤다. 맛있는 빵을 더 많은 이에게 전하고 싶은 의지를 다졌다. 1946년부터 지금까지 유일의 스테디셀러 빵집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영화 <짝패>의 유명한 대사 그대로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

태극당은 2015년 오래된 본관 건물의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단, 철저히 태극당의 옛 모습은 고스란히 남기되 운영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외관은 오래된 간판을 새로 디자인 작업을 거친 태극당 폰트로 변경했고, 내부는 태극당을 상징하는 샹들리에와 간판 등은 두고 빵을 직접 골라 담을 수 있는 방식의 매대를 채용함으로써 오늘날 빵집의 형태를 갖췄다. 그 덕에 추억이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커피와 빵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재탄생했다.


66년 1월 입사, 아이스크림 담당

청수 장

“처음에는 자전거로 빵을 배달했어요. 미도파백화점 앞에서. 그때 아이스크림 만드는 노인네가 있었는데 시간 남을 때 거들곤 했죠. 그분이 나이가 많아서 그만둔 다음부터 아이스크림을 담당하게 된 거예요.” 태극당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하루 4시간밖에 못 자면서도, 한 달에 한 번만 쉬면서도 열심히 일했다는 추억을 떠올리는 한청수 장인은 신경철 전무가 오고 나서부터 태극당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고 말한다. “직원들 복지 시스템이나 휴무나 많이 바뀌었거든요. 옛날 방식 버리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으니까.”


68년 10월 입사, 전병 담당

김영일 장인

아버님과 태극당 회장님이 연락이 닿아 전라도에서 서울로 돈을 벌러 왔다는 김영일 장인은 태극당에 입사한 이래 전병 굽는 일을 전담하고 있다. 세월을 돌이켜보면 생긴 건 그대로지만 태극당의 빵과 과자, 아이스크림 맛도 바뀌어왔다고 말한다. “옛날에는 엄청 달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과자와 빵에 설탕을 줄여왔어요. 항상 지금 시대에 맞게 맛을 맞추려고 노력해왔죠. 요즘 사람들은 단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단, 철학만큼은 변함이 없다. “우리 가족이 먹는다 생각하고 만들어요. 그건 바뀌지 않지.”


75년 5월 입사, 제빵 총괄

이성길 장인

태극당의 모든 제빵을 총괄하는 이성길 장인은 군대 전역 후 67년부터 부산에서 제과 일을 하다 스카우트돼 서울에서 일을 시작했다. 태극당에서 일하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손주를 봤다며 “태극당은 기술자가 잘 안 바뀌었어요.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완전히 안 바뀌니까, 그대로 맛이 유지되지. 그래서 외국 나갔다 돌아와서 한 번씩 먹어봐도 그때 그 맛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태극당의 빵이 가진 힘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맛,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는 것.


창업주의 손자, 3대 경영인

신경철 전무이사

직접 태극당을 경영하기 시작한 이후와 이전의 가장 큰 차이라면 무엇일까요.
우리가 만드는 빵이 좀 더 맛있고 멋지게 보일 수 있도록 마케팅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인 거 같아요. 제품이 바뀐 건 거의 없거든요. 매장 리모델링은 손님을 맞는 공간으로써 꼭 필요한 부분만 최소한으로 진행했고요.

변화를 꿈꿨던 건 사업 확장의 측면이 큰가요? 태극당을 변화시켜서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함이 컸나요?
사실 태극당도 사업이기 때문에 더 오래 유지하려면 커져야 하는 게 전제조건이 되잖아요. 태극당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어떻게 사업을 키우면 좋을지 생각한 거죠.

위기 극복과 지속 가능성 두 가지 측면 모두를 고려한 거네요.
동시에 이뤄진 거 같아요. 매출이 너무 안 좋아서 올려야 했고. 리브랜딩을 진행하면서 태극당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태극당이란 브랜드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도 점점 강해졌죠.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었을 것 같아요.
당장 직원들 월급 주기 위해서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마케팅의 중심축 자체를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아버지는 어떤 가치를 지켜가려고 하셨을까. 이걸 1순위로 생각했어요.

무언가를 바꾸려고 했을 때 직원들의 반대나 어려움은 없었나요?
매출도 많이 안 나오던 시기였고 사장님은 중환자실 왔다 갔다 하고 있고 창업주는 돌아가셨어요. 우리 스스로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었죠. 옛날에는 저한테 경철아, 경철아 하시던 분들도 100% 제 의견에 따라주셔서 감사했죠.

트렌드 때문이 아니라, 태극당을 계속해서 찾아도 좋을 이유가 필요할 거 같아요.
유행하는 뉴트로나 레트로 트렌드에 맞춰서 움직인 건 없었어요. 저희가 세운 방향대로 작업을 진행했는데 태극당은 역사가 있기 때문에 레트로에 잘 맞았던 거고요. 태극당에 들어오면 뭔가 이상하잖아요. 옛날 건물이고 옛날 빵들만 팔고. 뉴트로에도 잘 맞았던 거죠. 지금도 마케팅에 있어서 저희끼리는 뉴트로라는 단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거든요. 그냥 우리 색깔에 따라서, 맛있는 빵을 만든다는 본질에 따라서 움직일 뿐이에요.

오늘의 태극당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화한 부분도 있을까요?
태극당을 하나의 회사로 만들고 싶어서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저도 처음 해보는 작업인데, 그런 작업들을 내부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조직이 좀 더 체계화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고요. 제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요.

그렇다면 태극당의 서브 브랜드를 론칭해도 재밌지 않을까 싶은데요.
안 그래도 고민하고 있어요. 태극당의 빵을 종류별로 나누면 아이스크림, 버터케이크, 로루케익에 필요한 사과잼 등 시그니처 상품을 중심으로 세분화할 수 있어요. 세분된 각각의 상품군 자체를 서브 브랜드로 만들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죠. 태극당은 태극당대로 두고요. 예를 들면 태극당이 아이스크림 가게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올해에 티저 형태로라도 선보이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거 같아요.

추후 매장이 더 많아지고 바람대로 회사가 되면, 한편으로 어떤 메뉴는 기계로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2014년에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손님이 늘어날 때 모나카 아이스크림이 매일 품절이었어요. 많이 팔려서가 아니라 못 만들어서 품절됐거든요. 전병을 하나씩 손으로 구워서요. 그래서 기계로 해봤는데 맛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물론 처음 드시는 분들은 맛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태극당의 맛을 아는 분이라면 확실히 다르다고 느끼셨을 거예요.

태극당은 어떤 빵집이면 좋을까요?
계속해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면 될 거 같아요. 본질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으면 계속 그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을 거고요.


1 종합전병세트
하나하나 장인들이 직접 굽는 태극당의 전병은 바삭함 안에 고소한 맛이 숨겨져 있다. 네 가지 전병은 지나간 시간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2 월병
태극당의 시그니처 과자. 견과류를 통째로 넣고 만들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의 진득한 앙금이 가득 들어 있어 간식으로 더할 나위 없다.

3 로루 케익
폭신한 카스텔라 안에 상처 없는 엄선된 특등급 사과로 만든 수제잼을 가득 넣었다. 달콤하고 촉촉한 태극당의 옛 맛이 듬뿍 담긴 케이크다.

4 야채 사라다
신선하고 아삭한 야채샐러드 소가 듬뿍 들어 있다. 낯설진 않지만 익숙하지도 않은 추억의 빵으로 태극당만의 맛이 확실히 느껴진다.

5 슈크림빵
최근 빵에 들어가는 크림 종류와 다르게 달콤하지만 살짝은 기름져서 느끼한 옛날 맛이 한입 가득 그 시절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6 모나카 아이스크림
태극당의 상징. 고소한 전병과 우유 맛 아이스크림 모두 직접 만든다. 수제품이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전병에 빈틈없이 꽉 차 있다.

7 버터빵
식빵과 식빵 사이에 달콤하고 고소한 버터크림이 발린 빵이다. 태극당의 설명대로 구워서 먹으면 훨씬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8 고방카스테라
옛날 그대로 두툼하고 폭신폭신하며 달콤하다. 변하지 않는 태극당의 맛을 대표하는 메뉴로 우유와 함께 먹으면 입 안이 더욱 즐겁다.

9 단팥빵
남녀노소 마다하지 않는 달콤한 단팥이 가득. 태극당의 단팥빵은 하루에 수백 개 이상 판매될 정도로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빵이다.


1946년 문을 연 태극당은 올해로 75년을 맞은, 명실공히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야채사라다, 단팥빵, 모나카 아이스크림으로 대변되는 추억의 맛을 만날 수 있다.

야채사라다 6000원, 단팥빵 2300원, 모나카 아이스크림 2500원
서울시 중구 동호로24길 7
매일 오전 8시~오후 10시, 명절 당일 휴무
02-2279-3152


edit 곽봉석
photograph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