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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발효종 빵은 뭐가 다른데

2020년 11월 17일 — 0

늘 빵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알아두면 좋을 상식. 인공 효모와 천연 발효종이 만들어낸 빵의 차이점. 

재료는 단 두가지다. 밀가루와 물뿐이다. 둘을 섞고 천으로 덮은 뒤 2~3일 방치하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뽀글뽀글 거품이 일면서 천연 발효종(Starter)이 만들 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발효종을 2주 동안 매일 밀 가루와 물을 더해가며 키워 안정화해주면 천연 발효종 빵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단계가 완료된다. 여기에서 일부를 떼어낸 다음 다시 밀가루와 물을 더해 반죽을 만들고 하룻밤 발효시킨 걸 르방Levain 또는 스펀지 Sponge라고 부른다(용어가 통일된 건 아니며 부르는 명칭이 다양해서 일부에서는 천연 발효종을 르방이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밀가루와 물을 넣고 치댄 다음 글루텐이 형성되도록 30분 정도 두었다가 앞서 준비한 르방과 소금을 넣고 다시 섞어준다.

이렇게 밀가루와 물을 먼저 섞으면 소금의 방해 없이 밀가루가 더 빠르게 물을 흡수한다. 그 결과 글루텐 그물 조직이 미리 자리를 잡게 돼 반죽을 치대는 시간이 줄어들고 밀가루 반죽이 공기에 노출되는 시간 역시 줄어든다. 공기 중 산소에 밀가루가 노출되면 산화에 의한 표백 작용으로 빵 겉면의 색깔이 맛없는 흰색을 띠게 된다. 산화로 인해 빵의 풍미도 떨어진다. 반대로 밀가루와 물을 먼저 섞고 30분간 기다리는 오톨리즈Autolyse 과정을 통해 밀가루가 물을 먼저 빨아들이게 하면, 반죽을 치대는 시간이 줄어들고 옅은 황금빛 색깔에 향기가 감도는 빵을 구워내는 데 도움이 된다. 요리과학자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네이선 미어볼 드Nathan Myhrvold가 <모더니스트 브레드>에서 제안한 것처럼 르방과 밀가루, 물을 미리 섞어 반죽을 만들고 소금만 나중에 넣는 방법으로 발효 시간을 늘린 다음 부피를 키우기도 한다.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이 자신의 책 <요리를 욕망하다>에서 천연 발효종 빵을 만든 방식도 네이선 미어볼드의 제안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소금은 발효종 빵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맛 때문만이 아니다. 글루텐 그물을 짱짱하게 만든다. 젖산균의 발효가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돼 글루텐이 손상 되지 않도록 하고, 충분한 공기를 담아 폭신폭신한 빵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섞고 치대고 발효를 거쳐 공처럼 모양을 잡아준 반죽 덩어리를 오븐에 넣고 구우면 마침내 빵이 완성된다. 집에서 천연 발효종 빵을 만드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마이클 폴란은 <요리를 욕망하다>에서 한 번의 실패를 거쳐 밀가루와 물로 천연 발효종을 만들어 빵을 굽기까지 4주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완성된 빵도 실패작에 가까웠다고 썼다. 하지만 자신이 구운 빵의 식감과 풍미에 감탄했다.

효모와 젖산균이 만들어내는 빵
밀가루와 물과 소금만으로 빵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마이클 폴란이 첫 번째 시도에서 발효종 만들기에 실패한 것처럼, 집에서 천연 발효종 빵을 구워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세계인 다수가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상황에서는 해볼 만한 일이긴 하다. 뭔가를 직접 만들어냈을 때의 뿌듯한 성취감이 뒤따른다. 집에서 바로 구운 빵 냄새를 맡는 것도 기분 좋다. 직접 만든 빵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실 그런 면에서는 집에서 여느 요리를 해도 비슷하긴 하다. 차이점이라면 빵을 만들 땐 내가 하는 일보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생물이 담당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공기주머니를 만들어 반죽을 부풀리고, 그 속에 그윽한 발효 밀향기를 채운 빵을 만들어내는일은 대부분 젖산균과 효모가 담당한다.

보통 빵이라고 하면 효모(Yeast)를 먼저 떠올린다. 빵 이 부풀어 오르도록 만드는 이산화탄소 기체의 대부분 을 덩치 큰 효모가 만들어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은발효종반죽에사는젖산균의수가효모수보다 100배나 더 많다. 요구르트나 김치를 만드는 젖산균과 마찬가지로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키는 세균도 당을 먹 고 젖산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빵이 시큼해진다. 많은 사람이 천연 발효종 빵을 사워도우 브레드와 동일 한 것으로 여기는 이유다. 하지만 천연 발효종 빵이라고 반드시 신맛의 사워도우 브레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발효조건에따라산도를조절할수있다.집에서요구 르트를만들때온도와시간을조절해서신맛이덜나 도록할수있는것과마찬가지다.

젖산균이 이렇게 산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다른 잡균의 번식을 막기 위함이다. 젖산균이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 내는산은빵의부패를막는데도도움을주므로사워 도우 브레드는 같은 조건에서 보존재 없이도 다른 빵보 다더오래보관할수있다.효모도같은이유로알코올 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반죽 속의 효모와 젖산균은 서 로 공생 관계다. 효모(칸디다 밀레리)는 다른 세균이 버 티기 어려운 산성 환경에서도 잘 견디고, 젖산균도 효 모가 내놓는 알코올에 취하지 않고 살아남는다. 게다가 둘은 식성도 다르다. 효모는 포도당과 과당을 먹지만 젖산균은 엿당을 먹는다. 현재까지 20종이 넘는 효모 와50종이넘는젖산균이천연발효종속에사는것으 로 알려졌다.

이런놀라운공생을이루는미생물은어디서온것일 까? 2020년 미국의 미생물학자들이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제빵사 18명이 동일한 조건으로 발효종을 만들도 록해발효종속의미생물군락을분석했다.연구결과 발효종 속 미생물 대부분은 밀가루에서 온 것으로 나타 났으며, 일부는 제빵사의 손에서 기원한 것으로도 나타 났다. 같은 동네 빵집에서 같은 밀가루를 가지고 같은 방법으로 빵을 반죽하고 구워도 발효종에 들어 있는 미 생물은 제빵사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이러한미생물구성이시간이지나도계속지속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발효종에 먹이를 주는 시간이야 맞춰줄 수 있다고 해도 온도를 항상 동일하게 유지하기 힘들다. 먹이로 주는 밀가루의 조성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발효종을 만들 때 발효를 촉진하기 위해 오렌지, 블루베리 등의 과일이나 건포도 액을 넣기도하지만 많은 전문가가 과일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도 같은 이유에서다. 빵을 만드는 데 쓰이는 발효종에 는 밀가루 속의 효모와 젖산균이면 충분하다. 발효종에 밀가루와 물을 먹이로 주고, 키우는 과정에서 밀가루를 먹이로 하는 데 최적화하지 못한 과일 유래 미생물은 살아남기 어렵다.

천연 발효종 빵이 더 건강한가?
단일 배양한 효모를 사용해서 대량 생산한 빵보다, 다양한 종의 효모와 젖산균으로 발효해 만든 빵의 풍미가 더 뛰어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공장에서 생산된 빵은 비교적 긴 시간 유통되고 말랑말랑하긴 하지만 촉촉하지 않으며 풍미가 약해 그냥 먹으면 별맛이 없다. 잼이나 스프레드를 발라먹으면 그나마 먹을 만한 정도다. 전통 방식으로 반죽을 서서히 발효해 빵집에서 구워낸 빵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천연 발효종 빵이 건강에 더 좋다고 볼 만한 근거는 그리 많지 않다.

사워도우 발효가 일부 글루텐을 분해해 소화를 돕고 글루텐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젖산균이 발효 과정에서 단백질 소화 효소를 내놓고 이로 인해 글루텐 단백질이 일부 분해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빵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이걸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글루텐이 약해지도록 그대로 두면 반죽의 탄성이 떨어져 뻑뻑하게 맛없는 빵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워도우 브레드처럼 발효종 빵을 먹으면 흰 밀가루의 당이 우리 몸에 흡수되는 속도를 늦춰 건강에 더 이롭다는 주장도 있다. 2008년 캐나다에서 사워도우 흰 빵과 그냥 흰 빵, 통밀빵, 통보리빵을 가지고 실험한 결과 사워도우 흰 빵을 먹었을 때 혈당치가 제일 서서히 올라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는 곱게 간 밀가루로 만든 통밀빵을 먹은 사람이 일반 흰 빵을 먹은 사람보다 더 빠르게 혈당치가 올라가기도 했다. 빵을 만드는 방법뿐만 아니라 밀가루 입자를 얼마나 고운 걸 썼느냐에 따라서도 혈당치 상승에 영향이 있는 셈이다. 게다가 2017년 이스라엘 연구자들의 실험에서는 사워도우를 먹으나 그냥 흰 빵을 먹으나 혈압, 체중, 혈당, 혈중 콜레스테롤과 같은 수치에 별다른 임상적 차이가 없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발효종에 밀가루를 넣어줘도 이들이 먹는 영양은 전체 의 1~2%에 불과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차이가 안 나는 게 맞다. 여기에 우리의 전체 식단에서 빵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까지 생각해보면 그 차이는 더 적어진다. 맛 하나만으로도 발효종 빵을 즐길 이유는 충분하다. 굳이 억지로 이유를 더 만들진 말자.


text 정재훈
edit 곽봉석
photograph 박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