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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g the Farm

2020년 10월 12일 — 0

농장에서 재배된 농작물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생산자와 기획자 그리고 소비자를 대표하는 3인을 만나보았다. 건강한 먹거리와 풍요로운 식문화를 위해 각자의 역할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도팜 원승현 대표

최근 인플루언서의 SNS에 올라온 사진과 유명 채소 바 메뉴에 신기한 토마토가 등장했다. 울퉁불퉁한 생김새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토마토와는 사뭇 달랐다. 새로운 건 모양만이 아니다. 덜 익은 듯 푸른색을 띠거나 바나나처럼 노란 것도 토마토. 2020년 SNS를 달군 가장 핫한 푸드 키워드는 화려한 디저트가 아니라 토마토가 되었다. 화제의 토마토는 열매에서 직접 씨를 받아 재배하는 에어룸Heirloom 토마토다. 품종에 따라 개성있는 맛과 향, 모양을 가진다. 이런 토마토 트렌드의 중심에 ‘그래도팜’ 원승현 대표의 노력이 있었다.

에어룸 토마토는 여름 작물로 대부분 7~8월에 수확한다.
발효 중인 퇴비는 수시로 온도를 확인한다.


땅에대한가치

원승현 대표는 30년 동안 아버지의 농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농업이 가진 힘과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보여준 땅에 대한 애정과 노하우, 그리고 ‘먹거리’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 농부의 고집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원 대표는 비옥한 땅에서 맛있는 토마토가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토양이 건강하지 못하면 영양을 공급해도 뿌리에서 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팜은 근본적인 토질 개선을 위해 유기물이 풍부한 퇴비를 사용한다. 주로 유기물 함량이 높은 참나무 껍질이나 나무를 토양과 섞어 6개월간 발효시킨다. 이 발효 과정이 중요한데, 퇴비 더미의 온도를 확인하고 주기적으로 퇴비를 섞어 입자를 굵게 만들고 산소 함량을 높인다. 척박한 땅을 관리한지 벌써 6년,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토양과 수확물이 점차 나아지는데 보람을 느낀다. 원승현 대표는 토양에 대한 이해야말로 농업의 시작이라 생각해 토양에 대한 전시나 교육 활동에도 앞장 서고 있다.

에어룸 토마토는 품종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 모양 등을 가진다.

성숙한 식생활과 상생의 길
그래도팜에서는 15품종 이상의 에어룸 토마토를 재배 한다. 이탈리아 피에놀로델 베수비오, 스페인 몬세라트 등 나라와 지역에 따라 각기 품종이 다른 토마토다. 15 여 가지 토마토는 맛도 색도 향도 전부 다르다. 세계적으로 토마토는 2만여 가지의 품종이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국내에 유통되는 토마토는 품종이 한정적일 뿐 아니라 맛있는 토마토의 기준도 단맛이 강한 토마토로 단 순화된 경향이 있다. 하지만 토마토는 풍부한 맛을 가진 작물이다. 품종에 따라 향이 다채롭고, 산미가 높다. 그런가 하면 감칠맛이 강하고 짠맛이 도드라지는 등 무궁무진한 맛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이런 섬세하고 다양한 맛을 즐기는 수준 높은 식문화가 필요할 때다. 세상에 2만여 가지 토마토가 있다면 2만여 가지 맛이 있는 법, 새로운 맛에 대한 경험을 놓치는 건 왠지 삶의 즐거움 일부를 손해 보는 느낌이다. 다행히 그래도팜에서 다양한 품종의 에어룸 토마토를 재배해 우리에게 색다른 미식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몰랐던 토마토의 또 다른 맛을 경험하며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식재료와 미식의 즐거움을 만난다. 우리의 식탁이 여러 가지 농작물로 채워진 만큼 더욱 풍성한 미식생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맛이 유행인 시대에 섬세한 맛의 본질에 집중하는 원대표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원승현 대표는 농부의 노력과 동시에 소비자의 인식 또한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전한다. 농부가 재배 한 농작물과 식재료를 소비하는 것이 우리의 먹거리에 대한 투자이자 상생을 위한 노력이다. 만약 농부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은 맛있는 식재료를 잃는다는 의미다. 이는 곧 그렇기에 농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협력이 꾸준히 이뤄진다면 성실한 농부의 노력으로 우리의 식생활은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발전할 것이다.

TIP
토마토 맛있게 먹는 법

1 완숙 토마토를 고른다. 토마토는 손으로 잡았을 때 말랑말랑한 상태가 가장 맛있다.
2 토마토는 가로로 썰어 먹는다. 입안에 닿는 면적이 넓어져 토마토의 맛과 향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3 토마토본연의맛과향을즐길수있도록심플하게 올리브 오일과 소금, 후추만을 더한다.
4 부라타 또는 리코타 치즈 같은 생치즈와 곁들여 먹으면 다채로운 풍미를 맛볼 수 있다.


수카라, 큔 그리고 마르쉐@의 기획자 김수향 대표

생산이 보이는 소비를 만들다
한국은 팜투테이블 문화가 잘 보존된 국가다. 예로부터 벼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했고, 현대 도시인 중 많은 이가 여전히 고향에서 텃밭을 일구는 부모님이 보낸 채소나 오일장의 할머니가 직접 키워서 파는 나물을 먹는다. 우리가 오랜 기간 채소를 그렇게 먹어온 이유는, 생산자가 분명해 안심하고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자를 직접 만난다는 가치. 마르쉐@가 대중에게 주목받게 된 이유다. 2012년 10월 대학로에서 첫 번째 ‘마르쉐@’ 가 열렸다. 마르쉐@는 프랑스어로 시장을 뜻하는 마르 셰Marche에 장소를 나타내는 부호 앳(@)을 더해 ‘어디에서든 열릴 수 있는 시장’을 의미하는 도시농부시장이다. 지금의 농부시장이 자리 잡기까지 김수향 대표의 공이 컸다. 김수향 대표가 농부시장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고 난 이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염된 땅에서 난 채소를 먹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커졌고, 더 많은 판매를 위해 생산자와 소비를 단절시키는 현대 사회의 경제 체제에 불신이 생겼다. 결국 직접 발 벗고 나섰다. 멕시코와 일본의 파머스 마켓에서 영감을 얻어 ‘생산이 보이는 소비’를 기획하기로 결심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문래동 옥상텃밭에서 만난 마음 맞는 사람들과 도시농부들끼리 작게 시작한 시장이 산업화와 현대 문명으로 멀어진 농부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히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마르쉐@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비인기 작물을 판매하거나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농부들의 참여 수요도 높아져 갔다.

마르쉐@ 농부시장은 지속 가능한 농법을 사용하는 농부와 다품종 소량생산하는 농부의 작물을 판매한다.
큔에서 요리되는 모든 재료는 어떤 농부에게서 받은 건지 메뉴판에 기재된다. 원하는 익힘 정도를 농부에게 요청해 전달받으니, 당도 높은
완숙 호박부터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는 호박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도시와 농장의 연결자

김수향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생소한 농작물을 수확하는 농부를 위한 장을 열었으니 다음은 농작물을 구입하는 소비자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바로 ‘씨앗밥상’이다. 강민구, 이지원, 신창호 셰프 등 국내 유명 셰프들과 재료를 탐구하는 씨앗밥상은 마르쉐@의 유명세에 박차를 가했다. 준혁이네 농장, 자란다팜 등 ‘마르쉐@’ 하면 떠오르는 농장이 생겼고, 매회 참여하는 마니아도 생겼다. 인지도가 올라가며 마르쉐@는 더욱 풍성해졌다. 농산물 외 수공예와 요리, 커피, 디자이너나 아티스트와 진행한 협업과 워크숍으로 채워지며 배움의 장이 되었다. 새로운 삶에 대해 배울 수 있으니 대화는 끊이질 않고, 대화가 계속되니 생산자와 소 비자의 연결고리가 자연스레 생겨났다. 김수향 대표는 현재 마르쉐@의 기획자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수카라와 큔에서 여전히 팜투테이블 기획을 계속하고 있다. 마르쉐@와 팜투테이블을 ‘농부와 생산자 부흥 운동’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팜투테이블의 이점은 좋은 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된 소비자에게 가장 많이 돌아간다고 김수향 대표는 강조한다.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마르쉐@를 시작으로 지금 가장 맛있는 제철 재료를 선보이는 수카라, 여기에 채소를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요리를 제안하는 큔까지. 솔직하고 맛있는 채소의 정체성을 소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김수향 대표. 그의 또 다른 행보를 기대해도 좋다.

HOW TO COOK
단호박피클
김수향 대표가 추천하는 채소 저장 요리법 피클.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만의 레시피로 좋아하는 채소를 장기간 보관하여,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재료
단호박 1개(600g), 월계수 잎 1장, 애플사이다 식초 11⁄2컵, 물·설탕 1컵씩, 레몬 즙 약간
피클링 스파이스 시나몬 1개, 쿠민 씨·카르다몸 씨· 캐러웨이 씨·펜넬 씨·흰 후추 약간씩

만드는 법
1 단호박은 깨끗이 씻어 손질해 적당한 크기로 슬라이스한다.
2 피클링 스파이스 재료와 단호박을 제외한 나머지 재료를 냄비에 넣고 끓여 피클 물을 만든다.
3 살균한 병에 슬라이스한 단호박을 담고 만들어놓은 피클 물을 붓는다.
4 한 김 식힌 뒤 뚜껑을 덮어 상온에 하루 정도 숙성시킨 후 냉장 보관한다.


입말음식 하미현 대표

숨겨진 맛을 길어 올리는 일
세상은 넓고 음식은 많다. 한반도만 봐도 그렇다. 수백, 수천 가지의 식재료가 세월과 함께 이 땅에서 나고 자란다. 세상의 모든 것은 존재 이유가 있는 법. 각 식재료에는 해당 식재료가 가진 맛을 가장 잘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조리법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하나의 조리법은 하나의 음식이기도 하다. 식재료에 따른 조리법으로 음식 수를 어림잡아도 굉장할 텐데, 우리가 평소 먹는 한식이라는 음식은 아주 한정적이다.
“예를 들어 농협에서 내년에 수미감자를 매입한다고 하면 농부들은 농협에 팔아야 하니까 수미감자만 심을 수 밖에 없어요. 실은 우리나라에는 쫀득쫀득한 강원도의 중월감자, 고구마처럼 붉게 생긴 군산의 자갈감자를 포함해 60여 종의 감자가 있는데도요. 우리가 마트에서 수미감자밖에 살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에요. 그렇게 오랜 시간 즐겨왔던 식재료의 범위가 시대별 상황의 방향에 따라 무척 좁아지면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음식도 줄어들었고요. 안타깝죠”
감자에 담긴 이야기를 명확히 들려주는 하미현 대표는 원래 음식과 연 닿을 일이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의상학을 전공하고 광고 아트디렉터로 일하던 중 우연히 들른 사찰에서 맛본 음식이 인생을 뒤바꿔놓 았다. 난생처음 먹어본 음식. 하지만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다가오는 친숙함이 좋았다. 그때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입말음식과 식재료, 그에 따른 조리법을 찾아다니며 기록하기 시작했다.

해녀들은 오랜 시간 짠 바다에서 일하기 때문에 먹는 음식의 간을 싱겁게 맞춘다고 한다. 이렇게 하미현 대표가 길어 올린 지역과 그 지역의 음식,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래오래 기억될수록 우리의 식문화가 지니는 가치는 더욱 높아지지 않을까?
연희동에 있지만 이곳이 연희동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깊이 들어가는 하미현 대표의 작업실은 입말음식을 재현하고 구현하는 최적화된 공간이다.

본성과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
단순히 숨겨지고 대중적이지 않은 음식을 찾아다니는 게아니다. 고추 끝이 빨갛게 올라올 때 고추의 향이 가장 좋고 단맛이 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의 음식. 시와 때에 맞는 식재료와 그 식재료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지혜가 담긴 음식. 어떤 작물로 유명한 지역의 토박이나 그 작물을 직접 기르는 농부들의 간단하지만 훌륭한 음식에 하미현 대표는 관심을 기울인다. 찾아서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알리기 위한 노력도 더하고 있다. 특정 지역의 특정 사람들은 여전히 즐기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음식과 식재료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을까? 하미현 대표의 가장 큰 고민이다. 해녀, 농부와 함께 제주표 패스트푸드를 선보 이는 활동 역시 같은 고민에서 시작됐다. 제주도의 집집 마다 있는 작은 텃밭인 우영팟에 주목했다. 우영팟과 바다에서 수확한 식재료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했던 제주 해녀의 음식에서 햄버거와 피자를 떠올렸고, 패스트푸드라는 주제로 관심을 이끌었다. 음식과 식재료에 담긴 이야기는 그 자체로 관심을 이끄 는 교감의 매개가 된다. 하미현 대표가 생각하는 팜투테이블의 출발점이다. “팜투테이블은 본성이에요. 내가 먹는 음식에 들어간 식재료의 근원에 대해 알고 싶은 건 사람의 본성이죠. 궁금하니까. 식재료를 알고 싶으면 생산자와 땅, 재배방식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코로나 때문에 말 그대로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중요해지다 보니 그 관심은 더욱 커질거고요.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하미현 대표가 숨겨진 맛을 길어 올리는 일은 비록 과정은 복잡해도 결과는 간단하다. 결국, 우리 스스로 희망하는 본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팜투테이블을 실천하는 방법을 일깨워주고 있다. 지금까진 몰랐지만 의미있는 음식과 식재료에 관심을 기울이게 해주니까. 관심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어떤 결과일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일 테고.

제주식 패스트푸드

다섯 가지가 넘지 않는 식재료를 15분 안에 조리해 빠르게 끼니를 해결한다는 게 제주 해녀들이 즐기던 음식의 특징이다.
빙떡은 옥돔구이와 함께, 익히지 않은 뿔소라 절임은 젓갈 형태로 즐긴다.
간이 심심해 오래 두고 먹을 수 없어 대부분 그 자리에서 비운다.

빙떡
1 100% 메밀가루로 만든 반죽을 얇게 부친다.
2 무를 잘게 채 썰고 돼지기름에 볶는다.
3 부쳐놓은 메밀부침으로 볶은 무를 잘 만다.

옥돔구이
1 옥돔 꼬리를 자른다(자른 꼬리는 옥돔에 기름을 바르는 용도로 쓴다).
2 팬에 돼지기름을 흠뻑 붓고 옥돔을 튀기듯이 굽는다.

뿔소라절임
1 뿔소라 껍데기를 돌로 깨고 살을 발라낸다.
2 살에 붙은 고등 딱지, 내장과 이빨을 제거한 뒤 얇게 슬라이스한다.
3 잘게 썬 마늘, 홍고추, 청고추와 함께 볼에 담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4 마지막으로 성게 알을 넣고 잘 섞은 다음 접시에 담는다.
5 얇게 썬 오이와 당근, 우뭇가사리를 올린 뒤 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edit 이유나, 곽봉석, 김지현
photograph 류현준, 박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