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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유기농?

2020년 10월 9일 — 0

많은 사람이 즐겨 찾게 된 유기농 채소와 유기농 과일.
그런데 유기농이란 단어가 정확히 어떤 의미이고, 어떤 영향을 주는 건지 알고 있는가?

유기농에 관한한 어느 쪽 방향으로든 ‘꼰대’가 되기 쉽다. 유기농은 환경 보호를 위한 재배법인데 우리는 너무 건강에만 치우쳐 바라본다는 비판이 그렇다. 국립농업과학원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의 88.3%는 안전성이 유기 농산물 구입 동기인데 반해, 유럽연합에서는 83%가 환경 보호 차원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진다. 그런데 언제 나온 통계를 가지고 이렇게 말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최근 자료를 보면 현대 유기농의 발원지라 볼 수 있는 영국에서도 ‘나와 내 가족의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 유기 농산물을 구입하는 주요 동기다. 영국 로컬푸드 운동을 주도하는 시민단체인 토양협회(The Soil Association)와 서스테인Sustain의 2012년 공동보고서에서는 그 수치가 52%에 달한다. 유기농이 높은 동물복지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34%), 더 윤리적이어서(33%) 구매한다는 비율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1991년부터 2016년까 지 235건의 연구 자료를 메타-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 구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속성은 유기농이 건강에 유익할 거라는 믿음이었다. 코로나19로 세계 각국에서 유기 농산물 판매량이 급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에서만 올해 봄 유기 농산물 판매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
나 증가했다. 영국의 식물학자 앨버트 하워드Albert Howard 경은 비록 한 번도 유기농이란 말을 쓴 적이 없지만 유기농업의 선구자로 불린다. “토양, 식물, 동물, 인간의 건강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하나의 주제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태동기부터 건강이 유기농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인간의 건강뿐만 아니라 토양, 식물, 동물의 건강까지 포괄한 전체 환경 생태계의 문제로 봐야 할 필요를 강조하긴 했지만 말이다.


유기 농산물과 건강에 대한 진실

반대로 유기농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도 자칫하면 꼰대스럽게 들릴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첨예하게 맞선다. 하나는 유기농이라고 특별히 건강에 유익하거나 안전하진 않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유기 농산물이 건강에 더 유익한 건 사실이라는 주장이다. 과학자들이 내놓는 연구 결과도 매번 다르다. 2012 년 9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구팀은 유기 농산물과 일 반 농산물(기존의 관행 농산물)의 영양과 건강에 미치 는 영향을 비교한 237건의 연구를 종합해 분석한 결과 를 발표했다. 결론은 영양이나 안전성 면에서 둘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유기 농산물에 인 함유량이 약간 높고 유기농 우유나 닭의 경우 오메가3 지방산 함량이 높게 나타나긴 했지만 선택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또 유기 농산물을 섭취할 경우 잔류농약에 대한 노출이 적긴 했지만 일반 농산물도 대체로 허용치 내여서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7월에는 스탠퍼드 대학 연구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가 <영국 영양 저널(British Journal of Nutrition)>에 실렸다. 343건의 관련 연구를 종합해 유기 농산물과 일반 농산물의 영양과 안전성을 비교한 결과, 비타민과 미네랄 등 영양소의 함량 면에서 둘의 차이는 거의 없었고, 단백질 함량은 일반 작물이
더 높았다. 여기까지는 2년 전 스탠퍼드 대학 연구와 비슷하다. 하지만 유기농 채소와 과일의 특정 항산화 물질함량이 일반 채소와 과일보다 20~4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기 농산물의 경우 농약 사용량이 적어 식물 이 병충해에 스스로 맞서 싸워야 하므로 이를 위해 항산화 물질을 더 많이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연구진의 추측이다. 여기에도 반론은 있다. 과일이나 채소 에 들어 있는 성분은 매우 다양하다. 특정 항산화 물질 수치 차이를 보는 것만으로 유기 농산물과 일반 농산물 의 영양상 이점에 대한 전체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게다가 농업 방식 역시 다양하다. 유기 농업이라고 해서 단 하나의 형태를 띠는 게 아니며 국가별 인증 기준도 제각기 다르다. 가령 미국에서는 유기 축산물에 항생제 사용을 전면 금지하지만 영국에서는 제한적 사용을 허용한다. 유럽에서는 수경재배한 농산물을 유기농에 포함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포함한다. 국내의 경우 유기농산물은 대규모 온실에서 유기 합성 농약과 화학 비료 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농산물이며, 이를 재배 하는 땅도 농약과 화학 비료를 3년간 사용하지 않아 유기농 인증을 받은 경작지여야 한다. 친환경 농산물의 중요한 또 다른 한 축인 무농약 농산물은 엄밀한 의미에서 유기농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일반 농산물도 아니다. 유기 합성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화학 비료 는 권장 시비량의 ⅓ 이내로 적게 쓴 걸 말한다. 단 한 가지 형태의 유기 농법이나 일반 농법이 존재하 는 게 아니므로 모든 농산물을 유기농이냐 아니냐로 잘 라 구분하기도 어렵다. 각 카테고리 안에 이질적이고 다양한 농산물이 뒤섞여 있는데 둘을 비교해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고 소비자에게 의미 있는 결과 가 될 수 없다. 영양 및 노화 질병과 관련해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터프츠 대학 영양학과 교수 제프리 블룸버그Jeffrey Blumberg를 비롯한 다수의 전문가가 유기 농산물을 먹느냐 일반 농산물을 먹느냐보다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먹느냐, 혹은 적게 먹느냐가 건강 에 더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유기 농산물이 더 맛있을까
맛의 차원에서는 어떨까.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환경 운동가인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은 자신의 책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신선한 유기농 채소의 맛이 전반적으로 훨씬 더 낫다고 평가했다. 유기농 채소는 천천히 성장해 세포벽이 두껍고 수분이 적어 향이 훨씬 강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폴란의 평가는 유기농 채소의 맛에 대해 가진 기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유기농 토마토에 유기농 올리브 오일을 뿌려 만든 브루스케타가 일반 토마토에 일반 올리브 오일 을 뿌려 만든 브루스케타보다 더 맛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제로 맛을 보면 그때그때 다르다. 비싼 돈을 주고 사온 유기농 채소의 풍미가 더 밋밋할 때도 종종 있다. 물론 유기 농산물이나 유기 축산물의 맛이 확연히 더 뛰어날 때도 있다. 최근에 맛본 유기농 황소 고기가 그랬다. 유기농 인증 풀 중심의 습식 사료를 먹이고 넓은 사육 공간에서 키운 황소 고기는 거세하지 않은 수소의 고기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육향이 부드럽고 구수했다. 마블링으로 판정했을 땐 3등급이었지만 등급이 의미 없다는 걸 입안 가득 퍼지는 진한 감칠맛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기농 사료를 주느냐 아니냐 가 고기 맛을 달라지게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에게 풀을 먹이느냐 곡물을 먹이느냐, 사육 기간이 24개월이냐 36개월이냐에 따라서는 차이가 날 수 있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유기농 토마토냐 아니냐의 차이보다는 토마토를 거둔 시기가 언제인가, 거둔 뒤 어떻게 저장했으며 소비하는 시점이 언제인가에 따른 맛의 차이가 더 클 수 있다. 팜투테이블 레스토랑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다. 품종에 따른 차이도 크다. 분자요리 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물리화학자 에르베 디스Hervé This 가 여섯 곳에서 자란 세 가지 품종의 딸기를 비교하며 내린 결론처럼 “맛에서는 생산지보다 품종이 더 중요하다”. 맛이 싱거운 종자의 토마토를 유기농으로 재배한다고 뛰어난 맛의 토마토가 되진 않는다.

유기농의 미래
맛이나 건강 면에서 유기농 축산물의 이점이 분명치 않더라도 동물복지나 환경 면에서 나은 것은 사실이지않느냐며 반문할 수 있다. 이 역시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유기농 사료를 먹고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는 건 분명 동물복지 차원에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동물이 아플 때도 항생제와 같은 약물 치료를 받을 수 없다면 그것도 과연 좋은 일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다행히 많은 나라에서는 사육 동물이 아플 때 약물 치료를 받는 것을 어느 정도 허용하고 있지만 미국처럼 그런 치료를 받고 나면 유기농 인증에서 제외하는 나라도 있다. 유기농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다면적이다. 합성농약과 화학 비료의 사용이 줄어 좋을 것 같지만 농업 자체가 환경에 파괴적이며 탄소를 배출한다. 게다가 유기농의 생산성은 일반농의 절반에서 80% 정도밖에되지 않아 더 많은 경작지가 필요하다. 유기농, 일반농으로 칼로 자르듯 나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이분법을 버리고 저탄소 농산물 인증제처럼 둘을 섞고 서로 보완한 형태의 다양한 농업 방식이 더 많아지는 게 낫다. 어렵고 복잡하다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고 그걸 먹는다는 건 본래 이리도 복잡한 일이다. 그 복잡한 전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자. 그것이야말로 유기농의 바탕이자 출발점이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text 정재훈  edit곽봉석  photograph 박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