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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People

김정묵의 묘미

2020년 9월 17일 — 0

강남에서 안국으로, 한식 레스토랑에서 한식의 조리법을 이용한 컨템퍼러리 레스토랑으로 묘미가 변신과 변화를 거쳤다. 새로운 묘미를 이끄는 김정묵 셰프는 미묘한 재미를 선보이기 위해 부지런히 발맞추고 있다.

단연 화제였다. 문을 연 지 몇 해 지나지 않았다. 새내기 레스토랑이었던 묘미가 2020년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하나를 당당히 획득했다. 별과 관련된 숱한 이야깃거리는 언제 가실지 모를 일이지만, 전 세계 어딜 가든 좋은 식당을 찾는 데는 별만 한 기준도 없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묘미는 친숙한 음식을 낯설게 제안하는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으로서 방문해도 좋을 충분한 가치를 보였다. 미식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나 회자되는 장소는 독특한 배경까지 더해졌으니 그 인기가 말할 것도 없었다. 20대의 젊은 카레이서라는 타이틀을 가진 대표, 정통 요리 코스를 밟지 않은 공대 출신이라는 재밌는 꼬리표가 붙는 셰프. 묘미는 흥미로운 두 가지 배경 아래 우리가 흔히 레스토랑에 대해 갖는 관념까지 허물었다. 그런데 별 획득의 일등 공신이었던 장진모 셰프가 묘미를 떠났다. 장진모와 함께 수셰프로 일하던 김정묵 셰프가 헤드셰프 자리에 올랐다. 지난 6월 말이었다. 묘미는 장장 35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큰 출혈을 감수하면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새로운 매력을 선보이기 위해 레스토랑 콘셉트를 전면 수정했다.

김정묵 셰프는 바쁘다. 좋은 식재료를 구입하고, 주방을 진두지휘하며 음식이 테이블에 오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시간이 없다.
짚에 감싸 찬 바람으로 2주간 숙성한 오리 요리는 묘미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묘미 중 하나. 코스의 절정으로 향하는 길을 이끈다.

체제 전환
“그전까지는 한식을 좀 더 제대로 소개하는 요리를 선보였지만 이젠 아니에요. 이전 색깔은 자리를 옮기면서 청담에 모두 두고 왔죠. 한식의 형태가 아닌 조리법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김정묵 셰프의 말대로 묘미가 문을 닫은 건 ‘묘미 ver. 2’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묘미는 한식이 가지고 있는 묘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레스토랑이었다. 과거의 한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한식 그 자체로서의 매력을 선보여왔다. 식사 마무리에 등장하는 국수를 처음 내오고 코스 중간에 만두를 선보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코스의 흐름을 조선 시대 진찬, 진연의 기조 구성에서 차용하는 등 우리가 몰랐던 한식으로 한식의 영역을 넓히는 방식을 택했다. 과거를 들여다봄으로써 한국인의 일상 음식에서 단절됐던 과거와 현대의 한식을 다시 이어 붙이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묘미는 언제나 한식이었다. 단, 이제부턴 김정묵 체제다. 김정묵 셰프는 한식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 한식만이 가지는 조리법에 관심을 둔다. 밥, 반찬, 국이란 형태의 한식 그 자체가 아닌 한식이 가진 문화와 조리법을 차용하되 장르나 형태는 구분 짓지 않는 음식을 꾀한다. 김정묵 셰프는 한식이 가진 묘미, 한식만이 줄 수 있는 여전함, 미묘한 재미를 선사하고 싶다. “메주와 소금으로 만든 간장에 비린 맛과 잡내를 제거하고 감칠맛을 높여줄 재료를 넣어, 게를 재워 먹는 음식이 간장게장이에요. 게장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누구나 비슷한 맛을 떠올
리죠. 그런데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같은 방식이지만 다른 맛을 낼 수는 없을까요? 게를 간장에 넣지 않고 재울 방법은요?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에 제 방식을 접목해서 완전히 새로운 음식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앞으로 묘미는 더욱 한식 레스토랑이라고 불리기 어렵다. ‘컨템퍼러리’의 의미가 가장 잘 담긴 레스토랑으로서 동시대 한국사람들의 음식을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자 한다.

묘미는 2020 <미쉐린 가이드> 1스타에 이름을 올렸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헤드셰프와 함께 더 좋은 결과를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식기 묘미는 장소를 이전하면서 식기, 수저, 심지어 수저받침까지 전부 새로 구성했다. 특히 식기는 단순히 좋은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는 게 아니라 김정묵 셰프가 꼭 필요한 사양을 도예 작가에게 전달해 직접 맞춤으로 제작했다. 앞으로 펼쳐 보이고 싶은 메뉴를 생각하면서.

한국 사람
오늘날의 한식과 묘미의 색다른 시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한다. 익숙함과 새로움이라는 틈바구니에서 한 번 더 비틀어낸 요리는 우리가 익히 알던 음식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묘미의 음식은 한식이라는 두 글자 안에 다 담기지 않는다. 아뮈즈부슈로 테이블에 오르는 성게 메뉴가 대표적이다. ‘성게’는 다양한 재료를 성게 알과 함께 비벼 먹는 비빔밥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지만 먹어보면 비빔밥이 아니다. 밥, 나물, 성게라는 주재료를 한입에 넣어 먹는 음식은 맞지만 각 재료를 익히고, 데치고, 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바이마을에 가보셨나요? 어떤 가게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어떤 가게는 한산해요. 사실 거리의 모든 가게가 비슷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아바이순대를 만들어요. 그런데 왜 차이가 나는 걸까요? 그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가진 요령과 노하우 때문인데, 그 미묘함은 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다고 생각해요. 오롯이 그 사람만의 것이죠. 앞으로 제가 가진 경험을 기반으로 우리 음식을 재해석하고 싶어요.” 김정묵 셰프가 시간만 나면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래서다. 더 많은 여행 경험은 곧 묘미의 경쟁력이 된다. 구성과 형태는 다르지만 한식의 본질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에스카르고의 나라, 파스타의 나라, 초밥의 나라 음식도 있지 않나. 김정묵 셰프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다른 장르의 요리에 관심을 두던 시기도 있었는데, 결국 한식으로 돌아오게 되더라고
요. 한식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고정관념을 가진 장르여서 어려운 점도 있지만, 선배 셰프님들의 노력으로 한식의 본질을 알아주시는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김정묵 셰프는 한식을 가장 좋아한다. 가장 많이 알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식도 한식이다. 한국에선 한식을 위한 좋은 식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한식에 관심을 두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욱이 묘미는 한국에 있는 레스토랑. 한국 사람이 요리를 하고 주문을 받고 운영을 한다. 또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다. 한국 사람은 한식을 가장 오랜 기간 먹으며 자라왔으니 묘미는 이미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묘미의 홀은 삼면이 유리창으로, 공간에 시시각각 날씨와 계절이 담긴다.
묘미에서 만나는 가장 멋진 경험은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절의 변화가 창덕궁을 감싸고 있는 숲을 통해 묘미에 담긴다.
율곡로와 창덕궁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모퉁이 테이블은 묘미에서 가장 좋은 자리다. 도심과 자연의 변화하는 역동성을 곁에 두고 먹는 묘미의 음식은 더 특별할 테니까.

공간의 힘
새로 이전한 장소는 경쟁력을 한층 높인다. 서울 아라리오 뮤지엄 건물은 마치 묘미를 위한 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물은 벽면을 가득 메우는 담쟁이덩굴이 매력적이다. 건물을 바라보고 오른편에 위치한 창덕궁은 울창한 숲이 어여쁘다. 묘미는 봄이면 따듯하고 여름이면 깨끗하며 가을이면 차분한, 겨울이면 순수한 분위기에 놓인다. 분위기는 계절에 따라 삼면에 창을 낸 묘미의 공간에 켜켜이 내려앉는다. 김정묵 셰프는 음식에도 계절을 담고 싶다. 창덕궁 숲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푸른 초록 잎에 올린 웰컴 스낵이 시작이다. 사계절은 우리 식재료로 만든 우리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뚜렷한 사계절 덕에 색과 향과 맛이 다른 다양한 농작물이 우리 땅에서 자란다. 시간이 빚어낸 발효 음식과 뚜렷한 지역별 음식의 색까지 더해지며 계절이 바뀌는 동안 묘미의 테이블 위에는 매번 다른 음식 오를 예정이다. “여름이어서 초당 옥수수와 수박, 토마토, 참외 등 제철 과일과 채소를 이용한 메뉴를 내놓았는데, 이제는 가을에 맞춘 또 다른 음식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여름에 오셨던 손님도 가을에 오셨을 땐 다른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김정묵 셰프는 묘미에 내려앉는 계절의 분위기와 계절을 담은 음식을 함께 버무리고 무쳐가며 좀 더 독특한 경험을 제안해나갈 예정이다. 코스에 따라 바뀌는 음식에 맞춰, 테이블에도 변화하는 시각적 경험을 제안할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묘미에 낮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방문하면 짐작해볼 수 있다. 묘미가 앞으로 어떤 경험을 제안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지 말이다. 런치의 밝은 분위기와 디너의 몽환적인 분위기의온도 차를 통해 계절의 온도 차 또한 가늠이 될 테니까. 김정묵 셰프와
묘미는 한식처럼 일상과 발맞추고 있다.

1 ———단 음식과 잘 어울리는 푸아그라를 산미와 달콤함이 매력적인 초당 옥수수와 옥수수로 만든 퓌레로 곁들여 먹는 아뮈즈부슈. 2 ——— 밥과 각종 나물을 비벼 먹는 우리네 비빔밥에서 모티브를 따온 아뮈즈부슈. 튀긴 흑미를 고추장에 볶고, 당근과 호박으로 만든 젤리 그리고 성게 알과 함께 비빔밥처럼 한입에 먹으면 색다른 질감과 맛을 느낄 수 있다. 3 ——— 웰컴 스낵을 먹고 난 뒤 나오는 첫 번째 아뮈즈부슈로, 여름이 제철인 토마토에 허브를 곁들여 샐러드 같은 아삭한 식감을 선사한다. 4 ——— 고기 메뉴와 고기 메뉴 사이, 입을 가시게 해줄 시원한 동치미 화채.
동치미 국물을 베이스로 삼아 수박, 자두, 참외, 무를 발효해 만들었다. 5 ——— 디너 코스에 총 3가지 고기 메뉴를 맛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인 드라이 숙성한 오리를 오븐에 구워 완성한 요리. 오렌지로 코팅한 당근 피클과 곁들인다. 6 ——— 묘미를 찾으면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는 웰컴 스낵. 묘미 건물 옆 창덕궁에서 영감을 받았다. 감자, 양파, 새콤한 사워크림이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새로운 묘미는 추억과 수년간의 여행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한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재미있고 흥취가 넘치는 최고의 요리로 입 안에 묘미를 선사한다.

edit 곽봉석 ———photograph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