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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음식은 다를까?

2020년 9월 7일 — 0

반려동물에게 사료가 아닌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은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개나 고양이는 인간의 음식을 먹으며 인류와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따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였다. 지금은 다르다. 많은 사람이 유튜브 동영상을 따라 반려동물을 위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기도 하고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었다는 반려동물용 요리나 수제 간식을 사다 먹이기도 한다. 쿠팡에서 ‘강아지 케이크’ 검색 결과만 6400건이 넘는다. 강아지에게 케이크를 준다는 말에 중세 유럽의 가톨릭 성인 로슈Saint Roch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 로슈는 이탈리아에서
흑사병이 유행할 때 환자들을 돌보다가 자신도 병에 걸려 숲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그때 사냥개 한 마리가 그를 발견하고 매일 자기 주인에게서 빵을 가져다주어 성 로슈는 아사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매년 8월 16일 성 로슈 축일이 되면 그의 제단 위로 개를 데리고 올라가 달콤한 스펀지 비스킷을 먹이며 기념했다. 흑사병이 퍼지며 성 로슈 축일도 따라 확
산됐고,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서부 유럽 전역에서 그를 기렸다고 전해진다. 개가 빵을 전달한 이야기에서 개에게 스펀지 비스킷을 먹이는 축일로 변형된 셈이지만 여기에는 흥미로운 사
실이 숨어 있다. 개가 빵, 과자, 케이크와 같은 전분질 음식을 먹고 소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 연구팀이 2013년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상 격인 늑대가 육식하는 데 반해 개는 탄수화물을 당으로 분해하고 흡수하기 쉽게 만드는 세 가지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 늑대가 어떻게 해서 개가 됐는지는 아직 논란이 많지만 해당 연구 결과는 적어도 한 가지 질문에는 확실한 답을 제공한다. 늑대처럼 날것 그대로 먹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에 로푸드Raw Food 다이어트를 따르도록 하기에는, 이미 개는 사람을 따라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인간이 농경 생활을 지속하며 전분질 음식을 더 잘 소화시킬 수 있도록 진화할 동안,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 역시 탄수화물 소화 능력을 발전시키며 곁을 지켜왔다. 이제 와서 다시 육류 중심의 생식으로 돌아간다고 개가 더 건강해질까? 근거는 미약하다.

사람과 반려동물의 음식 공유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개가 잡식 동물로서 사람을 따라 소화력을 키웠다고는 해도 인간의 소화·대사 능력을 따라잡을 수준은 아니다. 인간이 먹는 모든 음식을 개에게 줄 수 없다. 성 로슈에게 빵을 가져다준 사냥개가 만약 중간에 빵 일부를 먹었다고 해도 별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건포도가 박힌 빵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포도나 건포도를 먹으면 개에게 신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는 동물에게 나타나는 독성 정보가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되면서 비교적 최근에야 밝혀진 사실이다. 하지만 정확히 포도 속의 어떤 성분으로 독성이 나타나는지, 얼마나 먹으면 위험한지는 아직 모른다. 개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약간의 포도나 건포도를 먹고도 심각한 독성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고, 약간은 먹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 2018년 여름, 아이스크림콘을 먹는 닥스훈트 동영상이 인스타그램에서 화제였다. 더운 여름날 반려견이 아이스크림콘을 스무 번 넘게 핥아 먹도록 한 뒤 다시 주인이 먹는 장면은 위생적으로 안전한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선택은 자유지만 여기저기 혀로 핥고 다니는 개와 음식을 공유하면, 개의 침 속에 들어 있을 지도 모르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큰 게 사실이다. 게다가 아이스크림 속의 유당은 개에게 복통과 설사를 일으킬 수도 있다. 강아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성견에게는 유당을 분해하는 소화 효소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영화 속 개나 고양이가 귀엽게 우유를 먹는 장면을 보고 그대로 따라 주었다가는 강아지나 어린 고양이가 아닌 이상 유당불내증으로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사람은 무해한데 반려동물에게 치명적인 대표적인 음식으로 초콜릿이 있다. 초콜릿을 많이 먹은 사람의 걱정거리는 불면증이나 체중 증가 정도지만, 개는 초콜릿 하나로도 즉각 사망할 수 있다. 초콜릿 속 테오브로민과 카페인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해 치사적 심장부정맥과 중추신경계 흥분과 같은 독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초콜릿 중독은 개에게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문제지만 고
양이를 비롯한 다른 동물에게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고양이는 단맛을 감지하는 미각수용체가 없어서 초콜릿을 먹을 가능성이 더 낮을 뿐이다. 초콜릿을 먹고 커피를 마셔도 별 탈 없는 인간이 신기한 존재일 뿐, 많은 동물은 카카오콩 껍질이나 코코아 부산물을 사료로 먹고 중독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반려동물의 음식과 건강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이는 것이 반려동물의 건강에 좋을까? 개도 채식하면 더 건강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반려견의 건강에는 육류를 포함한 잡식이 더 좋다. 고양이는 채식하는 주인을 따라 비건 다이어트를 하는 일자체가 불가능하다. 고양이는 고기를 먹어야 건강하다. 그런 이유로 대량 생산된 사료를 고양이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대개 사료에는 전체 열량의 20~40%에 해당하는 탄수화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양이의 탄수화물 소화력이 떨어지기는 해도 이 정도의 탄수화물은 감당할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탄수화물 섭취가 고양이에게 당뇨나 비만을 일으킨다는 주장도 있지만 실제 위험은 그리 크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직관과 달리 탄수화물 섭취가 고양이의 비만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육식 동물은 고기만, 초식 동물은 풀만 먹고 사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다른 동물도 어느 정도까지는 잡식이 가능하다. 사람처럼 광범위한 잡식성을 나타내는 게 어려울 뿐이다. 샐러드에 실수로 고기 한두조각이 들어간다면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는 불쾌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풀을 뜯다가 곤충을 함께 삼킨다고 소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있는 일이다. 실제로 곤충을 통한 단백질 섭취는 소와 같은 가축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도 해서 동물 부산물 대신 곤충으로 가축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반려동물을 아끼는 마음에 직접 요리한 음식을 대량 생산된 사료 대신 줄 수 있다. 동물의 영양학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가지고 독성이 나타날 수 있는 음식은 피하는 게 안전하다. 하지만 개나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이전 어느 때보다 더 길어졌다. 지난 40년 동안 개의 기대수명은 두 배로 증가했고 고양이도 야생일 때보다 두배 더 오래 산다. 바깥보다 위험이 적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여건도 나은 데다 반려동물이 받을 수 있는 최신 의료 기술 서비스까지 고려하면 수긍이 가는 결과다. 그럼에도 개나 고양이에게 로 푸드 다이어트를 시도해보고 싶다면, 과거 음식 찌꺼기를 주로 먹고 살았던 떠돌이 개나 고양이가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 언뜻 보기에 야생의 자연이 멋지게 보이지만 실제 들판에서의 삶이 위험투성이인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반려동물에게 반드시 사료를 줘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먹는 것과 동일한 최상급 스테이크를 구워주어야 할 이유도 없다. 반려인과 달리 개나 고양이가 스테이크 등급을 따질 가능성은 작다. 사람이 혐오하는 도축 부산물일지라도 반려동물에게는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 될 수 있고, 환경 생태계와 지속 가능성 면에서도 더 나은 선택이다. 2017년 UCLA 대학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1억6300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소비하는 육류의 양이 프랑스 전체 인구의 1년 육류 소비량과 맞먹는다. 이로 인한 탄소 배출량은 매년 자동차 1360만 대가 뿜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지구상의 다른 생물을 생각한다면 사람이든 반려동물이든 뭘 먹느냐에 집착하기보다 과식하지 않는 게 더 효과적이다. 적게 먹고 적게 먹이자.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text 정재훈 ——— edit 곽봉석 ——— photograph 박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