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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자급자족하는 사람들

2015년 5월 29일 — 0

3분이면 뚝딱 카레가 만들어지는 시대에 자급자족 식탁을 차리는 사람들이 있다. 과정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신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에디터: 문은정, 이윤정 / 사진: 심윤석, 박재현

1. 빵과 잼을 만드는 최병구
최병구 셰프는 일반인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변형된 레시피로 발효종 빵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최병구 셰프는 일반인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변형된 레시피로 발효종 빵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가로수길, 서초동, 이태원 등지의 대형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최병구 셰프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으로 음식을 만드는 환경이 지루해졌다. 단가를 맞추기 위해 시판 재료를 활용하며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식재료로 요리를 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에 가서 직접 보고 구매한 식재료로 요리를 하며 사람들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오픈한 것이 그람모 키친이다.

셰프가 음식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특이하게도 빵을 굽고 잼을 만든다. 빵의 경우 직접 키운 르뱅을 활용해 만드는데 주변 반응이 좋아 레스토랑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대형 체인 베이커리에서 만든 빵은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 됐어요. 제가 먹으려고 만들었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져 지금은 베이킹 클래스도 운영하고 있죠. 일반인들도 만들기 쉽도록 레시피를 수정해서요.” 재료 역시 까다롭게 선정한다. 밀은 전남 밀양에서 재배한 앉은뱅이밀과 호밀, 흑밀을 사용하며 프랑스 밀의 경우 방부제나 표백제, 개량제 등이 들어가지 않은 전통 밀을 쓴다. 그는 한국 최초로 글루텐 프리 빵을 만들기도 했다.
“포항에서 글루텐 프리 빵을 구매하고 싶다며 전화를 한 분이 계셨어요. 자녀가 글루텐 소화 능력이 떨어지는 셀리악 병을 앓고 있다며, 제가 만드는 빵을 택배로 받을 수 없냐고 하시더군요. 추운 겨울철이라 괜찮을것 같아 보냉 백에 담아 택배로 보내드린 적이 있어요. 마음 놓고 빵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하셔서 참 기뻤습니다.”

최병구 셰프는 제철 과일을 활용한 프리미엄 잼도 만든다. 시판 가루 펙틴이 아닌 과일에서 직접 추출한 천연 펙틴을 활용해 만드는데 맛과 풍미가 확연히 다르다. “프랑스에서 요리할 때 은사 셰프에게 배운 방식이에요. 그분이 잼을 만들 때 과일에서 추출한 펙틴을 활용했는데 시판되는 일반 잼과는 맛이 확연히 다르더라고요. 과일의 풍미가 다채롭게 느껴지면서 잼의 신세계를 본 것 같았죠.” 그는 프랑스에는 로마네 콩티처럼 오래된 잼이 있다며 냉장고로 가서 자그마한 잼 하나를 꺼내왔다. 로마네 콩티를 목표로 11년 전에 만든 배잼인데 아직도 상하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니 그는 “천연 재료인 생바닐라, 허브 등이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해요. 또한 잼을 병에 넣을 때 병입을 잘하면 오래 보관하는 것이 가능하다”라며 자부심있게 설명했다. 잼에 쓰이는 재료도 심상치 않다. 밀크티에 5년 숙성 명품 천일염을 첨가하거나 모엣샹동과 제철과일인 아오리를 함께 넣고 만드는식이다. 뿐만 아니라 제철 무화과와 레드 와인을 넣어 만든 잼도 있는데 3개월간 숙성해서 먹는 것이라고.“ 이렇게 만든 잼은 발효종 빵에 발라 먹어도 맛있지만 샐러드에 넣어 소스로 활용하기도 해요. 화이트 비니거와 올리브유를 섞은 뒤 샐러드에 넣어 먹으면 훌륭한 아침 식사가 돼요. 제가 평소에 먹는 방식이에요.” 다가오는 여름에는 레스토랑에서 직접 키운 허브로 요리를 낼 예정이라고. 식재료부터 완성까지 자신의 손길이 닿길 바라는 욕심 많은 셰프의 행보가 기대된다.

앉은뱅이밀로 만든 캉파뉴. 무쇠솥에 구운 것으로 바삭한 크러스트와 쫄깃한 크럼이 특징이다.
앉은뱅이밀로 만든 캉파뉴. 무쇠솥에 구운 것으로 바삭한 크러스트와 쫄깃한 크럼이 특징이다.
2. 맥주 만드는 이인호
맥주를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오픈한 수제맥주집 사계
맥주를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오픈한 수제맥주집 사계

수제 맥주집 사계의 이인호 공동 대표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온라인 교육 기획자로 근무하던 그가 맥주에 빠져든 것은 맥주집에 걸린 사소한 포스터 하나 때문이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 시무식을 마치고 상암동으로 순댓국을 먹으러 갔어요. 그 맞은편에 에딩어하우스란 맥주집이 있었는데 문에 ‘천 년의 밀로 만든 맥주’라는 문구가 붙어 있더라고요. 맥주는 보리로 만드는 줄만 알았는데 밀맥주라니 호기심이 일었죠.” 궁금함을 참지 못했던 그는 퇴근 후 바로 에딩어하우스로 향했다. 그렇게 맛본 헤페바이스 비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진한 바나나 맛이 나며 그간 마셔왔던 시판 맥주와 확연히 다른 맛이 느껴졌다. 정말 너무 맛있었다. “그게 인생의 망조가 될줄은몰랐죠….” 그는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한번 빠지면 깊게 파고드는 성격 탓에 그는 2년간 퇴근 후 맥주 관련 글을 읽고 마시기를 반복했다. 맥주 관련 정보를 읽으며 그 맥주를 맛보고 있노라면 마치 글과 술을 페어링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옥토버페스트, 퀸스헤드, 바네하임 등 유명 수제 맥주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당시에 <다큐 3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어요. 맥주를 만들어 먹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죠. 그때 또 한 번 충격을 받았어요. 맥주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는 건 생각도 못했거든요.” 역시나 특유의 성격처럼 그는 마음먹은 바를 바로 실행에 옮겼다. 맥주 만들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동호회에서 주관하는 교육도 듣기 시작했다. 자가 양조를 즐기는 동호회 멤버를 찾아가 설거지하며 요리를 배우는 셰프처럼 맥주 만들기를 배우기도 했다. 물론 당연히 시행착오는 있었다. 원했던 맛이 나오지 않았던 것. 레시피에 대한 원리 이해가 부족했던 탓이다. “맥주를 잘 만들려면 많이 만들고 맛보는 것이 중요해요. 외국의 몇몇 브루마스터는 자신을 셰프라고 소개하기도 해요. 맥아와 홉, 이스트(효모), 물로 만드는 일종의 요리이기 때문이죠.” 초록색 식물인 홉의 경우 맛과 특성이 다양하다. 미생물은 발효된 뒤 술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데, 이때 효모마다 과일 향, 후추향 등 다양한 향을 남긴다. 이 특성을 이해한 뒤 무한의 조합을 시도해야 한다.

회사와 사계를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던 그가 일을 그만두고 맥주에 전념한 지 벌써 6개월째다. 요즘도 자신의 작업실에서 새로운 맥주 레시피 연구를 위해 꾸준히 자가 양조를 하고 있다. 취미가 직업이 되어버릴 정도로 수제 맥주에 빠진 이유를 묻자 그는 “다양해서 좋다”고 말한다. 맛과 향이 확연히 다른 수십 종의 맥주를 맛보고 있노라면 마치 변화무쌍한 변주곡을 듣는 기분이라며 말이다.

좋은 맥주를 만들려면 많이 만들고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맥주를 만들려면 많이 만들고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
3. 수제 햄 만드는 박말이
수제 햄 만들기는 박말이 씨의 힐링 타임이다.
수제 햄 만들기는 박말이 씨의 힐링 타임이다.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는 박말이 씨는 캐나다인 남편, 세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집에서 취미로 수제 햄을 만들며 도심형 장터 마르쉐@에 나가 판매도 한다. “4년간 캐나다에서 살았어요. 다양한 인종과 마주하며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볼 기회가 많았죠. 그때 요리에 대한 욕구가 폭발했어요.” 늦은 나이임에도 한국으로 돌아와 전문대 조리과에 입학했으니 그녀의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만하다. 캐나다에서 만난
남편과 함께 떠난 신혼여행도 향신료를 배우고 싶어 인도로 떠났을 정도다. 요리사로 직업을 바꿔볼까도 생각했지만 새로운 직업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그녀에게 요리는 직업 같은 취미가 되었다. “수제햄은 시어머니에게 배운 레시피예요. 프랑스 분이라 미각이 엄청나게 발달했죠. 하지만 아이가 7~8명이나 되는데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저렴한 식재료로 푸짐하면서도 다양한 요리를 하셔야 했어요.

주부로 요리실력을 계속 발달시켜 오신거죠. 그 덕택에 맛있는수제햄레시피를 전수할 수 있었고요.” 1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신선한 치즈나 갓 만든 햄, 소시지 같은 것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남편과 함께 먹으려 조금씩 만들기 시작한 것이 주변에 맛있다고 소문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가끔 장터에 나가 판매까지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손으로 만드는 음식이 모두 그렇지만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굉장히 많았어요. 햄은 일정기간 양념에 절여야 하기기 때문에 어떠한 변수가 생길지 모르잖아요. 절임 과정 중 미생물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니까요.” 지금이야 척하면 척이지만 그때는 잦은 실패에 버리는 것도 많았다. 요즘은 베이컨부터 등심, 목살, 안심, 항정살은 물론 볼살, 뒷다리살, 앞다릿살까지 못 만드는 햄이 없다. 수제햄 만드는 과정은 고기 종류에 관계없이 비슷하다. 일단 신선한 상태의 고기를 소금물과 허브에 일주일간 절인 뒤 팬달린 냉장고에 2~3일간 넣어 말린다. 그 다음 7~8시간 정도 스모킹 과정을 거친 뒤 숯을 잔뜩 넣어 고기가 속까지 익도록 4~7시간 오븐에 익힌다. 햄에 사용하는 고기는 전라도 광주 가톨릭농민회와 마장동 단골집에서 구입한다. 요즘은 수제 햄뿐 아니라 블루 치즈 등의 간단한 연성치즈, 수제맥주까지 다양한 영역으로분야를 넓히고 있다.

수제 햄을 만드는 것이 즐겁냐고 묻자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한다. “당연하죠. 제가 수제 햄을 얼마나 예뻐하는데요. 재미는 물론 일종의 희열도 있어요. 흐물흐물하던 고깃덩어리가 절임, 발효 등의 과정을 거쳐 단단해지고, 스모킹 과정을 통해 건조되어 근사한 음식으로 탈바꿈하는 거잖아요. 마카롱이나 컵케이크처럼 아름답진 않지만 저는 수제햄이 귀엽고 참 예뻐요.” 수북이 쌓인 수제햄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당장 달려가 뽀뽀라도 할 기세다. 주말에도 수제햄을 만들며 바쁜 시간을 보내는 그녀에게 요리는 일종의 힐링 타임이다.

도심형 장터 마르쉐@에서 그녀의 수제 햄은 인기 코너다. 다소 비싼 가격에도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사간다.
도심형 장터 마르쉐@에서 그녀의 수제 햄은 인기 코너다. 다소 비싼 가격에도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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