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Dining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2015년 5월 28일 — 0

음식 평론가 이용재가 롯데호텔에 자리한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셰프 방한 기념 특별 갈라 디너인 ‘페랑&보카스텔 와인 디너’를 경험했다.

글: 이용재 / 일러스트: 이민진

0528-pierre

Lost In Translation 요리도 통역이 되나요?
사랑도 통역이 될까요? 잘 모르겠다. 하여간 ‘Lost In Translation’ 이라고 한다. 옮기는 과정에 잃는 게 있다는 말이다. 사랑은 잘 모르겠고, 번역이 업의 절반이라 고민해보면 글은 분명 그렇다. 그럼 음식, 특히 각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파인 다이닝은 어떤가? 미슐랭 별에 빛나는 프렌치 대가의 요리는? 지난 2~3년 동안 나는 답을 찾아 헤맸다. 국내에서 유일한 세계적 셰프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이야기다. 5년 전 첫 만남은 훌륭했다. 디저트인 오이가스파초(차가운 수프)의 고추냉이 맛의 여운은 아직도 뚜렷하다.

이후 나는 레스토랑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상과 현실이 엇박자로 2인 3각을 뛴다는 인상이었다. 완성도가 낮거나 고민 끝에 내놓은 콘셉트가 요리로는 잘 구현되지 않는 것이다. 조잡한 1월의 철지난 부시 드 노엘이나 푸아그라의 부드러움을 굳이 가리는 젤리의 막 등이 기억난다. 그래서 생각했다. 과연 셰프의 철학이 제대로 옮겨지는 것일까? 단백질, 탄수화물, 섬유질을 따로 조리해 합치는 형식 때문에라도, 서양 요리 주방은 수직적 위계질서를 지닌다. 셰프가 철학을 맛으로 구현하면 수 셰프(부주방장)-셰프 드 파티(각 분야 수석 요리사)-라인쿡(각 요소 요리사)-코미(재료 준비 담당) 순으로 내려오며 전파한다. 그래야 셰프가 자리를 비워도, 아니면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처럼 1년에 한 두 번만 들러도 완성도와 일관된 맛을 지킬 수 있다. 나의 불만족이 혹시 ‘Lost In Translation’ 때문인 걸까? 3월 말, 셰프가 서울에 머무를 때 다시 레스토랑을 찾았다. 와인과 짝을 맞춘 갈라 디너였다.

일단 메뉴는 실망스럽도록 평범했다. 새우, 호주산 양, 한우 안심의 흐름. 새로울 것이 없었다. 계절도 지역도 별 상관이 없었다. 모두가 프렌치를 먹는다고 말할 때 나올 전형적인 재료. 게다가 이건 뚜렷한 패턴이다. 바로 전 식사에서 나는 랑구스틴-달걀-푸아그라-한우 안심을, 그전에는 농어와 양 안심 등을 먹었다. 한편 푸아그라가 여러 요리에 겹쳐 등장했다. 세계적 셰프의 선택으로는 안일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봄은 도다리의 제철이다. 또한 납작한 흰 살 생선은 프랑스 요리의 단골 재료다.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맛의 가능성을 싹틔울 수 있다. 다양한 봄나물도 있다. 하지만 나의 갈라 디너는 물론 레스토랑 홈페이지의 현재 메뉴에도 그런 고민의 흔적은 없었다. 트러플과 푸아그라의 초월적 고급스러움이 자동으로 보장해주는 평범함이었다. 셰프의 말처럼 “세계로 열려 있다”기보다 프랑스를 향해 닫혀 있었다. 순간의 만족을 담보 삼아 긴 여운을 희생시켰다. 요리는 있지만 철학이 읽히지 않았다.

어쨌든 그런 재료의 주요리로 바로 건너뛰어 가보자. 첫 요리인 세테-프랑스 남부 해안도시식 루이소스의 큰 새우 로열은 정작 주연인 새우가 무능했다. 딱 적당한 소스의 따뜻함을 바탕으로 퍼지는 감자의 포근함, 그보다 살짝 더 씹히는 오징어에 은근히 올라오는 카이엔 고춧가루의 매운맛으로 요리가 이미 완결된 것. 이름을 감안하면 이 요리는 소스에 끓인 스튜로, 크게 보아 부야베스의 일종이었다. 나머지 재료와 함께 끓이지 않고 껍질의 정수만 퓌메(생선 육수)에 내준 뒤 막판에 합류한 새우의 자리는 좁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향은 나머지 두 가지 주요리 또한 관통했다. 안일한 단백질이 소스와 형식적으로 만났다. 접점도 없고, 소스가 지닌 맛의 켜에 주연이 기를 펴지 못했다. 뒤를 이은 ‘시에나의 흙(Terre De Sienne)’ 향이 나는 양 어깻살 콩피와 등심 또한 완벽에 가깝게 조리된 셀러리와 콜라플라워를 먹는 즐거움만 못했다. 양고기는 과조리로 푸석한 데다가 재료 특유의 뉘앙스도 없었다. 마지막인 한우 안심은 드러내놓고 체면치레였다. 애초에 운동하지 않으니 맛보다 부드러움으로 먹는 부위를, 맛보기용으로 100g 남짓 썰어 구웠다. 웬만해서는 레스토랑에서 제안하는 미디엄 레어를 넘겨 과조리되기 십상인데 정말 그러했다. 무미의 고기는 브로콜리휘레나 쇼롱소스(홀렌데이즈-베어네이즈의 응용)는 고사하고, 접시 바닥에 깔려 나온 라디치오의 쌉쌀함에도 맥을 못 췄다.

그렇게 주요리 삼총사는 큰 감흥 없이 사라지며 2가지 의문을 남겼다. 첫 번째는 접시 너머까지 감안한 맛이었다. 와인과의 짝짓기 말이다. 이 갈라 디너에는 프랑스 남부 론 지방의 대표 브랜드 파미유 페랑(Famille Perrin)의 와인이 등장했다. 화이트라면 그르나슈 블랑-비오 니에의 복숭아나 열대 과일, 레드라면 그르나슈-시라 등의 체리와 베 리, 후추 등의 향이 각자의 짝인 요리의 기를 눌렀다. 사실 와인만으로도 즐거운 식사였지만, 그게 미슐랭 별 셋의 셰프 브랜드 레스토랑에 걸맞은 기대일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뼈아픈 비판일 수 있다.

두 번째 의문은 주요리 이외 요소의 복잡함이다. 아뮤즈 부시와 빵은 둘 다 가짓수도 양도 많았다. 전자는 5가지, 후자는 4가지다. 늘어놓았 지만 완성도는 떨어졌다. 복잡하지만 정교하지 않고, 따라서 주요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여러 가지를 내놓았을 뿐이다. 아뮤즈 부시 는 식사 전 ‘한입거리’지만, 그걸 다섯 입에 차례로 먹으면 서로를 지워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않는다. 빵도 마찬가지. 맛보기를 위한 주요리의 양을 감안할 때 불필요하다. 또한 요리와 어울리는지 의심도 간다. 완성도가 받쳐주지 않으면 이 둘은 파인 다이닝의 ‘깔아주는 반찬’으로 전락한다. 밥집에서 가짓수를 늘리기 위해 습관적으로 올리는, 마른 당근 쪼가리 말이다. 복잡함에 목적이 없어 보일 때 음식은 의미를 잃는다. 주요리의 의도적 단순함, 나머지의 의도적 복잡함이 한데 만나 패러독스를 빚는다.

코스는 주요리의 고개를 넘어서고 나서야 오히려 안정을 찾았다. 주문 제조한 임실 톰므(Tome) 치즈는 중간 정도의 숙성도 및 단단함을 지녀 짭짤함과 고소함, 그 너머의 단맛이 아스파라거스의 아삭함과 풀내음, 고구마칩의 바삭함과 한데 어우러져 다채로움을 자아냈다. 다만 모두를 아우르는 레몬꿀드레싱에서 레몬이 소심한 게 옥의 티였다. 제소리를 내주었더라면 완벽해, 코스 전체의 보석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세 가지 디저트에서는 인삼파르페가 돋보였다. 커피머랭, 밤크림, 조린 건포도, 튀일, 헤이즐넛크림 등, 흐름보다 나열에 가까운 단맛의 다소 강한 파도 사이에서 휩쓸리지 않는 쓴맛으로 균형과 중심을 확실히 잡아 주었다. 마지막의 미냐디즈에서는 유리잔의 라즈베리크럼블(과육)만이 전체의 경험에 의미를 더하는 부분이었다. 언제나처럼 커피는 뜨겁고 진하지만 얄팍해 디저트에 남발하는, 윤기 없는 머랭과 더불어 실패였다.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은 여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아니다. 미슐랭 별 셋에 빛나는 프랑스 요리 대가의 브랜드다. 게다가 이후 어떤 셰프도 서울에 진출하지 않아 독보적 존재다. 그래서 인테리어와 가격이 미슐 랭 별 셋 수준이다. 옮겨오는 데, 즉 통역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핵심인 요리는 언제나 미진하다. 먹는 이가 맛 이전에 완성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또한 재료 선택도 평범하다. 언제나 완전히 옮겨오지 못한 무엇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그건 정말 ‘무엇’일까. 인터뷰와 그 준비 작업을 통해, 나는 그가 논리보다 열정을 말하는 셰프라는 걸 알았다. 예술을 향한 열정, 그게 옮기지 못하는 ‘무엇’일까? 아니면 그가 서울에 자리 잡은 지 6년 반이 지났는데도 제2, 3의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소식이 들리지 않는 현실이 원활한 통역을 방해하는 것일까? 나는 알고 싶다.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Pierre Gagnaire Seoul)
서비스: 적절한 여유는 장점, 요리의 세부사항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못 하는 건 단점.
분위기: 황금색 인테리어, 조용한 편, 넉넉한 개인 거리.
가격: 점심 코스 8만5,000~14만원, 저녁 코스 17만~34만원.
와인: 270여 종. 하지만 갈라 디너를 빼놓고는 공식적 와인 짝짓기 부재. 잔별 선택은 가능.
예약: 필수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81 롯데호텔 신관 35층 
› 02-317-7181~2
www.pierregagnaire.co.kr
› 월~일요일 오후 5~11시(마지막 주문 10시)

이 기사도 읽어보세요
오파스 태국 음식과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연남동의 오파스Opas. 핫 플레이스로 유명한 이곳을 제대로 들여다보았다. edit 권민지 — photograph 안세경 ©안세경 The Pro - 안세경 뉴욕 C...
우유 고소한 맛으로 남녀노소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우유는 완전식품으로 일컬어질 만큼 영양소가 풍부하다. 우유 맛 좀 아는 이들에게 어떤 우유를 마시는지 물었다. 우유는 주성분인 수분, 지방, 단백질, 유당 및...
윌리엄 르되이 인터뷰 요리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는 윌리엄 르되이 셰프. 그에게 있어 요리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선보이는 한 편의 연극이다. © SDL Conseil 작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국빈 방한 시, 한국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