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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릭 요구르트의 정통성에 관한 담론

2015년 5월 27일 — 0

이달에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그릭 요구르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정한’ 요구르트란 무엇이며 어떻게 먹을 것인가.

글: 정재훈/ 에디터: 권민지 / 사진: 박재현

시중에는 다양한 종류의 요구르트가 있다. 유명 브랜드의 그릭 요구르트를 구입하든 한정된 목장에서 만든 요구르트를 선택하든, 또는 집에서 만들어 먹든 건강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시중에는 다양한 종류의 요구르트가 있다. 유명 브랜드의 그릭 요구르트를 구입하든 한정된 목장에서 만든 요구르트를 선택하든, 또는 집에서 만들어 먹든 건강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광고 속에는 진실이 숨겨져 있다. 요즘 TV를 켜면 자주 눈에 띄는 그릭 요구르트 광고를 보자. 그리스 원어로 “이네 토 야우르티 스트라기스토?”라는 대사가 두 번 나온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청자들을 위해 곧 한글 자막이 이어진다. “그 그릭 요구르트 짰습니까?” 오역이다. 올바른 번역은 “그 요구르트 짰습니까? Is The Yogurt Strained?”이다. 원문에는 그리스를 가리키는 말이 들어 있지 않다. 그리스에는 그릭 요구르트가 없기 때문이다. 모 방송사의 프로듀서는 정통 그릭 요구르트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겠다며 그리스까지 날아가는 법석을 떨었지만, 정통 그릭 요구르트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면 보자기나 고운체에 물기를 뺀 요구르트가 있을 뿐이다.

그리스 사람들만 그런 요구르트를 먹는 것도 아니다. 체에 거른 요구르트는 터키, 레바논, 이집트, 인도에도 있다. 누가 원조인지 따질 정도로 만들기가 복잡하거나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음식도 아니다. 솜씨가 없어도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유산균 덕분이다. 유산균은 우유 속의 당분을 발효시켜 시큼한 맛의 산으로 바꾼다. 산성 환경에서 카제인 단백질은 서로 엉겨 스펀지 같은 구조물을 만든다. 그 속에 무게로 치면 25배나 더 무거운 액체 성분이 잡혀 있는데, 이걸 유청이라고 부른다. 구조물이 그리 단단하진 않아서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유청이 흘러나온다. 요구르트를 한 스푼 떠먹고 나면 그 자리에 물이 고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요구르트를 체에 거르면 물에 녹아 있는 유당도 함께 빠져나가 당분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단백질 함량이 높아진다. 이때 지방 함량도 높아지는데, 지방은 물과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물이 빠져나갈 때 그대로 남는다. 짜낸 요구르트는 단위 무게당 지방 함량이 일반 요구르트의 2배나 된다. 그리스나 터키에서는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그릴에 구운 고기를 즐겨 먹는데, 물을 짜낸 요구르 트로 만든 진한 차지키(Tzatziki) 소스는 여기에 딱 맞는다. 기름이 빠져 나가 퍽퍽해진 구운 고기에 차지키소스 속의 지방이 더해지면 맛이 살아나는 셈이다.

마트에 진열된 그릭 요구르트는 저마다 정통을 자부한다. 모두가 고단백을 주장하고 일부는 저지방을 내세우기도 한다.(원유 대신 저지방우유나 탈지유를 섞어 만들면 저지방이 되지만 지방이 빠진 만큼 질감이 뻑뻑하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변성 전분이나 펙틴을 추가한다.) 그리스 사람들의 식탁과는 다른 맥락이다. 우리에게 요구르트는 고기와 채소에 곁들여 맛을 더하는 음식이 아니라 간식 또는 디저트다. 잼을 더한 제품이 출시되고 나서야 비로소 요구르트를 받아들인 미국인들처럼 우리 역시 달콤한 요구르트를 선호한다. 요구르트는 건강을 생각해서 먹는 보충제이기도 하다. 제품 포장지에 억 소리 나는 세균 수를 표시하는 것도 요구르트의 건강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의미 있을까? 그렇지 않다.

몸의 관점에서 보면 음식의 세균은 골칫거리다. 유익균인지 유해균인지는 중요치 않다. 일단 없애야 안전하다. 음식을 삼키면 위는 제일 먼저 세균을 죽이는 일을 한다. 대부분의 효소도 단백질이라 산성 환경에서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위산을 분비하고, 강한 산성에서 잘 작동하는 단백질 소화효소인 펩신을 내놓는 것은 우선 세균을 멸절시키기 위해서다.(세균의 주성분도 결국 단백질이다.) 요구르트에 들어있는 유산균 수가 몇백 억 마리라 해도 소화 과정에서 위산과 담즙산에 대부분 죽기 때문에 건강한 성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설사 유산균 100억 마리가 살아서 장까지 간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에는 이미 100조 마리의 세균이 터를 잡고 있다. 전부 다 살아남아도 100만 대 1의 싸움을 펼쳐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다. 세균이 살아남든 말든, 차지키소스로 뿌리든 식사의 끝을 장식하는 달콤한 디저트로 맛보든 간에 영양과 맛이 풍부한 요구르트를 먹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직접 만들어보면 즐거움은 배가된다. 방치해둔 우유가 발효되어 만들어진 시큼한 요구르트를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세계 여러 지역에서 요구르트는 원래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전통이었다. 복잡한 장치나 특별한 종균 없이도 가능하다. 마트에서 사온 플레인 요구르트를 우유에 조금 넣고 잘 섞어서 적당히 따뜻한 곳에 예닐곱 시간 동안 두면 된다. 시간에 따라 발효 정도를 조절할 수 있으니 시큼한 맛이 덜한 요구르트를 입맛에 맞게 즐길 수 있다. 우유로 직접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으면 비용도 적게 든다. 대체로 요구르트가 같은 양의 우유보다 2배 정도 더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면 집에서 만든 요구르트의 세균 수는 얼마나 되냐고? 그건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모르고 먹는 게 정통이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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