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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Trend

지금, 비건의 면면

2020년 7월 28일 — 0

비건이 어떤 개념인지는 알고 있지만 아직도 생소하다. 게다가 국내에선 비건 음식도 좀처럼 보기 힘들다. 지금,
비건에 궁금증을 갖는 이들을 위한 비건의 면면들.

아직도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는 비건이나 베지테리언 식품을 찾기 어렵다. 2017년 현대백화점 판교점 식품관 베즐리 매장에는 작게나마 채식주의 빵 코너가 따로 있었고 2019년 3월에는 비건 베이커리 야미요밀도 입점했다. 그런데 지금은 베즐리의 비건 식빵이 전부다. 가격표에 ‘베스트상품’이란 문구가 붙은 걸로 짐작해보건대 비건 식빵을 찾는 사람 수가 적진 않은듯 했다. 이즈니 버터에 무항생제 달걀노른자를 넣어 만들었다는 황금식빵이 나란히 진열돼있어 비교시식을 위해 하나씩 구입했다. 비건 식빵의 맛은 호두가 들어간걸 빼면 일반식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유 대신 넣은 두유의 향이 느껴지긴 했지만 원재료를 확인하지 않고 먹으면 잘 모를 정도로 옅었다. 토스터에 구워 먹었을 때의 식감은 비건 식빵이 황금 식빵보다 더 바삭했다. 황금 식빵은 굽기 전에도 노란색이 진했다. 달걀노른자의 단백질로 마이야르Maillard 반응이 활발히 진행됐는지, 토스터에 굽고난 뒤 갈색으로 변한 부분의 색깔도 비건 식빵보다 더 진했다. 그럼에도 둘을 시식해본 느낌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았다. 사실 채식에 대해서는 묘한 편견이 있다. 종종 고기 대신 풀만 먹는 소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그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처음 깨닫게 된 건 2001년 토론토에서 인도인 친구 자낙의 집에 방문했을 때다. 자낙의 고향 구자라트주에서는 70%에 가까운 인구가 채식을 한다. 자낙의 가족도 모두 채식을 하는 베지테리언. 하지만 손님에게 간식으로 내온 음식은 곡물로 만든 튀김과자 몇 개가 전부였다. 채소는 없었다. 그들이 베지테리언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풀밭을 그렸지만 편견에 불과했다. 자낙 가족이 주로 먹는 음식도 곡물 이었다. 먹지 않는 음식을 놓고 보면 일반 식단과 채식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겹치는 음식이 훨씬 더 많다.
저명한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Sidney Mintz는 자신의 책 <설탕과 권력>에서 알곡이나 뿌리식물로 된 복합탄 수화물 주식에 맛을 내는 보조 식품이나 양념을 결합한 방식이 인간 식사의 기본적 양상이라고 단언한다. 마사 이족처럼 예외가 있긴 하지만 농업 정착민이 세운 문명 대부분은 복합탄수화물을 제공하는 식물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인류 문화는 채식에 기초한다. 채식이 건강 이나 환경에 더 유익한가, 윤리적인가에 대한 논의에 앞 서 기억해야 할 점이다.

비건과 건강
채식주의자도 종류가 다양하다. 고기는 먹지 않되 유제품과 난류는 먹는 ‘락토오보베지테리언’, 고기와 난류는 먹지 않고 유제품은 먹는‘락토베지테리언’, 알외에 동물성 식품은 모두 피하는 ‘오보베지테리언’, 동물성 식품과 동물 유래 제품을 모두 피하는‘비건’이있다.물론 육류는 피하지만 생선은 먹는 ‘페스카테리언’, 채식을 추구하지만 상황에 따라 가끔 고기를 먹기도 하는 ‘플렉시테리언’은 엄밀히 말해 베지테리언으로 보기 어렵지만 넓은 의미에서 포함시키기도 한다.
건강에 유익하다는 이유로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도 많 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아널드 슈워제네거, 성룡이 제작을 맡아 화제가 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더 게임 체인저스>도 채식이 인간의 신체 능력을 강 화하고 건강을 증진한다는 주장을 바탕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잡식 동물이므로 다양한 음식을 먹을 때 필요한 영양을 얻기 쉽다. 엄격한 비건보다는 유제품이 나 난류를 먹는 락토오보베지테리언이 영양 균형을 맞추기 수월하다. 특히 아미노산의 경우 필수 아미노산을 골고루 얻기 위해서는 아미노산의 구성비가 좋은 동물의 고기를 먹는게 식물성 식품만 먹는 것보다 덜 복잡 할 수 있다. 다만 현실에서 식물성 단백질로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얻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다.
음식 선택에는 비용이 든다. 예나 지금이나 지구상 대 다수의 사람에게 고기를 먹는 일은 경제적 비용 면에서 훨씬 어려운 선택이다. 현재 식문화의 상당 부분은 ‘식물을 어떤 구성으로 섭취해 영양 균형을 맞출 것인가’ 에 대한 과거 고민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동아시아에서 쌀과 콩을 함께 먹거나 남아메리카에서 옥수수와 콩을 함께 먹는 것처럼, 각 지역의 식문화는 영양학적 지식 없이도 충분한 영양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채식을 하면 단백질이 부족할 거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종종 들리지만, 만약 채식으로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을 얻을 수 없다면 오늘의 인류 대부분은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건강 면에서 채식이 유익한 이유로 잡식보다 채식을 하는 사람의 전체 칼로리 섭취가 적으며, 섬유질 섭취량이 많다는 점도 들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1475명을 대상으로 한 벨기에 연구에서는 제한이 가장 엄격한 비건이 섭취 칼로리가 제일 적고 섬유질 섭취가 제일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칼로리 과잉으로 비만, 과체중을 겪던 사람과 섬유질 섭취 부족으로 인한 변비로 고생하던 사람이 채식을 하고 나서 건강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것도 여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비건의 단백질 섭취량과 칼슘 섭취량이 제일 낮게 나타났고 칼슘의 경우 권장량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도 채식을 이해할 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식단의 제한이 심할수록 단기적으로 체중 감량과 같은 가시적인 효과를 내기 쉬울 순 있지만 반대로 영양 결핍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성인의 경우 섬유질 섭취의 유익이 더 클 수 있으나 성장기 청소년에게는 철, 칼슘, 아연의 섭취를 방해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채식을 할 때는 식사를 통해 미네랄 섭취를 충분히 하고 있는지 꼼꼼한 점검이 필요하다.
비타민 B12의 부족은 또 다른 문제다. 비타민 B12는 동물성 식품으로만 섭취할 수 있는 영양소다. 일주일에 육류 섭취를 한 번 이하로 제한하는 세미베지테리언의 경우 정상치 이하인 경우가 20%에 불과하지만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은 47%, 락토베지테리언은 64%, 비건은 92%에 달할 정도로 정상치 이하인 사람의 비율이 증가한다. 엄격한 채식을 할수록 부족하기 쉽다는 의미다. 비타민B12는 간에 저장된 양으로 1~2년을 버틸 수 있으므로 갑자기 결핍 증상이 나타나진 않아도 장기적으로는 악성 빈혈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된장과 같은 발효 식품, 해조류에도 비타민 B12가 들어 있지만 인체에서 흡수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어서 별 도움은 되지 못한다. 비건 식단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보충제나 영양 강화 식품으로 비타민 B12를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식단을 식물성 식품으로 제한한다고 해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다양하다. 채식이 주는 건강상의 이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좋기만 한건 세상에 없다. 균형을 잘 잡아야 유익을 얻고 부작 용을 피할 수 있다.

비건 푸드의 전망
국내 인구에 있어 비건 인구 비중에 대한 통계자료는 아직 없다. 미국 수치는 조사기관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글로벌데이타사의 분석으로는 2014년 전 인구의 1%였던 비건이 2017년 5.5%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2018년 갤럽 조사에서는 베지테리언이 전 인구의 5%, 비건은 2012년의 2%보다 조금 증가한 3%로 나타났다. 최근 국내에서도 비건 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비건보다는 베지테리언이나 플렉시테리언의 수가 느는 방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비욘드미트, 저스트에그와 같은 동물성 식품과 유사한 풍미와 질감을 내는 식물성 대체품이 계속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엄격한 비건 식단을 오래 유지한 사람에게는 고기 맛이 나는 식물성 햄버거가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이제 막 식물성 식품 비중을 늘려보려고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채식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는 값이 비싸 호기심으로 한두 번 먹고 마는 수준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식물성 식품이 식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 날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채식을 경험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우리와 다른 음식을 먹는 사람에 대한 존중심도 함께 늘어나길 희망한다.

text 정재훈
edit 곽봉석
photograph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