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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닮은 가구

2020년 7월 20일 — 0

오랜 세월이 지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본인의 스타일을 확고히 녹여낸 가구를 만드는 박종선 작가를 만났다.

2020 오스카 4관왕에 오르며 한국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영화 <기생충>. 영화 속 상류층을 대변하는 박 사장의 집에는 고가의 가구와 소품으로 가득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이 집을 비우고 캠핑을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기택의 가족이 거실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기는 장면에 나온 테이블을 비롯한 주방의 다이닝 테이블과 의자 등이 모두 박종선 작가의 작품이다. 박종선 작가는 서미갤러리 소속 작가로 활동하며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중, 영화 <기생충>을 만나고 나서 그의 이름을 세계에 또렷이 각인시켰다. 이후 국내외 예술 애호가 사이에서 사랑받는 아트퍼니처 작가로 입지를 굳힌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작업실이 있는 강원도 원주의 산골 마을을 찾았다.

작가의 작업실은 꽃이 만발한 배나무밭 뒤에 자리하고 있다. 작업실 내부에 들어서니 크고 작은 목재부터 가구들까지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다듬다 만 나무 패널부터 대패와 망치 등의 작업 도구들, 그리고 그 가운데 오롯이 놓여 있는 작가의 정결한 작품들. 박종선 작가에게 처음 꺼낸 이야기는 영화 <기생충>. 멋쩍은 미소를 보이며 작가가 말문을 텄다. “성공한 영화 역사에 무임승차한 기분이에요. 저와 제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됐죠. 그 뒤로 인터뷰도, 작업량도 더 늘었어요. 서울에도 쇼룸이 있지만 굳이 작업실까지 찾아와 작품을 구매해가는 분들이 늘었으니까요.” 작가는 어릴 때부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 대부분을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곤 했다. 문득 예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가 한 말이 떠올랐다. “세상 모든 어린아이는 화가다. 문제는 커서도 화가로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박종선 작가는 학창 시절 미대 진학을 준비할 만큼 그림을 즐겼지만, 어느 순간 입시 미술에 치중한 국내의 미술 환경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는 결국 화가의 길이 아닌 목수의 길을 택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과 친했던 까닭에 예술적 감각을 자연스레 지니게 된 덕분일까. 목수 일을 하는 데 과거의 경험이 큰 영감의 원천이 됐다. “기술적인 부분은 2~3년만 배우면 누구나 습득할 수 있어요. 문제는 그 이후부터라고 생각해요. 작품에 어떤 마음을 담느냐가 중요한것 같아요.” 모든 예술 작품에는 결국 작가의 성정이 자연스럽게 배어들기 마련이다. “500년이 지난 조선 시대의 고가구가 지금 봐도 훌륭하듯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요.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구.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낸, 화장기없는 정직한 마음을 담는 것. 이 마음에 가까워지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담금질합니다.”

다양한 쓰임의 가구를 만들어온 박종선 작가의 작품 중심에는 다이닝 테이블이 있다. 우리삶에 들이기 가장 쉽고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주 보며 앉아 있던 테이블을 가리키며 도화지처럼 밝고 화려한 결을 가진 메이플 나무로 만든 작품이라고 소개해주었다. “메이플 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아요. 그래서 메이플 나무로 만든 작품에 이질감을 느끼죠. 그런데 저는 볼수록 특유의 매력이 가슴에 와닿는 거예요. 불특정 다수의 기호에 편승하지 않고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그런 작품에 더 애정이 가요.” 작가는 오늘도 작업이 본인의 일부인 것처럼 숨 쉬듯 자연스럽게 드로잉 노트를 펼친다. 그날의 날씨, 온도, 밝기, 오감에 스치는 모든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펜을 든다. 작가는 언제나 나무와 하나가 되어 호흡하듯 ‘이건, 분명 박종선이다’라고 말을 건네는 그런 작품을 세상에 빚어내고 있다.

작업실에는 박종선 작가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영화 <기생충>에 등장했던 이 테이블이다.

박종선작가의 작품들 가운데 형태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작품 중 하나인 의자와 다이닝 테이블.

작가는 작업실 한쪽에 대패와 망치 등 작업에 필요한 도구들을 모아두었다.

edit 박솔비 photograph 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