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시작된 열대야. 잠 못 이루는 밤에 생각나는 메뉴들을 선보이는 새로운 레스토랑 4곳.

수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조선시대의 반가 음식
“이 술잔은 맑고 티가 없어서 술을 따르면 티 끌이 다 보인다. 이를 사람에게 비유하면 마 치 한 점 허물도 없는 이와 같다” 조선 성종 임 금은 신하에게 백자 잔을 하사하면서 이 말을 전했다고 한다. 화려한 무늬조차 없었던 조선 시대의 백자는 청렴과 절제의 미를 그대로 보 여주고 있다. 사치스럽진 않지만 은은하게 빛 이 도는 백자는 어느 시대 백자보다도 우아하 고 고급스럽다. 그래서 더 눈이 가고 손길이 간다. 이와 닮은 고급 한식당 ‘수운’이 종로에 새롭게 오픈했다. 수운은 조선 시대 조리서 <수운잡방>을 모티브로 품격 있는 반가 음 식을 정갈하고 세련된 표현법으로 재해석해 선보이고 있다. 전국의 유명 산지를 수소문해 좋은 식재료를 찾고 음식의 기본 베이스가 되는 장류는 물론 식혜나 병과 등 디저트도 직접 만들어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인다. 특히 홍천의 황잣을 듬뿍 넣어 만든 삼계탕은 단품 메뉴 중 셰프 추천 메뉴로 걸쭉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일일이 껍질을 벗겨야 하는 황잣은 손이 많이 가지만 그 맛과 품질은 세계 적으로 으뜸이다. 수운의 반가 음식은 화려한 멋을 부리진 않았으나, 음식마다 진정성이 느껴진다. 또한 재료 본연의 맛이 보여주는 맛의 완성도가 높아 여운이 길게 남는 곳이다. 그래서 자주 발걸음을 옮기고 싶은 곳 중 한 곳이 될 것 같다.






∙육회비빔밥 2만4000원, 삼계탕 2만5000원, 향 6만5000원, 풍 8만8000원, 미 15만4000원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26, 센트로폴리스 2층
∙점심 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30분, 저녁 오후 5시 30분~10시
∙02-722-4310

갓포준×에스테반
프라이빗한 바를 품은 갓포 요리 전문 일식당
요즘 새로운 곳을 찾고 있다면, 일상이 조금 답답하고 지루하다면 주목해보자. 압구정에 흥미로운 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갓포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일식당과 비밀스러운 스피키지 바를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바로 ‘갓 포준×에스테반’이다. 한자어 ‘준’의 뜻을 담아 계절에 따라 바뀌는 신선한 식재료로 정성 들 여 음식을 담는 갓포준은 사시미, 구이, 튀김, 조림 등 일본 정석의 고급 갓포 요리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카즈 요시카와 셰프는 일본에서 운동선수를 하다가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음식에 흥미가 생겨 20년이 넘는 지 금까지 요리를 해오고 있다. 그의 손에서 완성 된 모든 음식은 일본 조리학교에서 배운 정석 을 바탕에 두고 있다. 오로지 그가 배운 맛, 알 고 있는 최상의 맛만을 손님에게 내고 있다. 꽃꽂이까지 배운 그가 만든 메뉴들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다. 특히 여자 손님들에 게 인기가 많은 우니니쿠는 한우 살치살과 성 게 알, 캐비아, 금가루, 꽃을 올려 휘황찬란하다. 자리를 옮겨 비밀스러운 문을 지나 들어갈 수 있는 에스테반은 굉장히 고급스럽다. 인테리어와 소품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쓴 티가 팍팍난다.칵테일도다른곳에서는맛볼수 없는 유니크한 것들로 준비되어 있다. 캐리비언 해적에서 모티브를 얻은 ‘Find Teasure’ 는 모양만큼이나 맛도 특이하다. 친구들과 연 인과 새로운 곳을 탐닉한다면, 무료한 일상에 자극이 되어줄 곳을 찾고 있다면 두말없이 이 곳이다.





∙우니니쿠 3만8000원, 마구로 타르타르 2만8000원, 츠쿠에야끼(2p) 1만6000원, Find Teasure 2만2000원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163길 10 B1
∙갓포준 매일 오후 6시~오전 2시, 에스테반 매일 오후 6시~오전 3시
∙02-6326-0307

쿠나
성수동에서 즐기는 이탤리언 가정식 백반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일 만석인 성수동의 쿠나는 이탤리언 가정식을 선보이는 곳이다. 이태원의 이타인을 비롯해 다양한 업장에서 경험을 쌓은 박건아 오너셰프가 야심 차게 준비했다. “문턱 높은 가격대의 다이닝 요 리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편하게 음식을 먹으러 오라고 하기가 어려웠죠. 합리적인 가격으로 퀄리티 좋은 음식 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던 대표는 이탈리아의 어느 시골을 여행하던 도중 할머니가 운영하는 밥집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엄마 밥은 어딜 가나 맛있다’는 대표의 철학은 음식에서 단연 돋보였다. 공산품은 자제하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린 음식을 선보이는 것. 당연히 음식이 맛 좋을 수밖에 없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포르치니와 4가지 버섯으로 맛을 낸 크림 뇨끼다. 베이컨을 볶다가 나온 기름에 크림과 버섯, 포르치니 육수를 넣고 끓이다가 뇨끼를 넣고 마지막으로 치즈로만 간을 한다. 크림소스 에 젖은 감자 뇨끼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감자와 크림의 진한 향이 입 안을 감싼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과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촉촉한 식감이 인상적이다. 뇨끼 반죽만 300번 넘 는 연습을 거쳐 완성했다는 대표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정성을 가득 쏟은 곳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대중들이 먼저 알아채지 않나. 그래서인지 늘 손님들로 붐벼 쿠나를 찾을 때 꼭 사전에 예약할 것을 당부했다. 요즘 핫한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틀림없다.






∙포르치니와 4가지 버섯 베이컨 크림 뇨끼 1만9000원, 리코타 제철 과일 샐러드 1만6000원, 문어 당근 퓨레 2만3000원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5길 9-16 105호
∙매일 낮 12시~오후 10시(브레이크 타임 오후 3~5시)
∙010-8008-1028

바 5412
눈이 즐거운 한식과 곁들이는 전통주
물엿 대신 쌀로 만든 조청을, 백설탕 대신 직접 담근 매실청을 사용한다. 장독대에는 오래 묵힌 묵은지가 있다. 커다란 가마솥에는 닭백숙을 삶고, 직접 볶은 참깨를 방앗간에 가져가 기름을 짠다. 모두 지금 한남동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도로명 주소 이태원로54가길 12에 위치한 바 5412는 한식 메뉴와 한국의 술을 판매한다. 파스타에 와인을 마시는 게 익숙한 동네지만 밤이면 엄마가 만든 매콤한 두부조림을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해서다. 감태와 멍게 젓갈로 만든 충무김밥과 짭조름한 명란이 포인트인 감자 샐러드처럼 투박하고 캐주얼한 메뉴도 세련된 비주얼로 담겨 나온다. 홍콩 란콰이펑 그룹에서 총주방장으로 있던 박지선 셰프가 지휘하는 한국 음식에, 해외 경력 4년 이승관 셰프의 크리에이티브한 감각과 해산물 생선회 전문가 이상호 실장의 스킬이 더해진 결과다. 바 5412는 우리네 음식이 그렇듯 제철 식재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가 가장 달고 맛있는 6월에는 무조림을 만들고, 보쌈에 곁들이는 무김치까지 담갔다. 6월 말에 채취해 영양가 높은 유기농 청매실은 하나하나 손질해 매실청으로 만들었다. 번거롭고 오래 걸리는 과정이지만 손님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에 정성을 쏟는다. 이렇게 만든 메뉴는 한국의 술과 가장 잘 어울린다. 술이 가장 고픈 밤 10시부터는 밤참 메뉴의 주문이 가능하다. 그날그날 달라지는 밤참 메뉴를 기대하며 방문하는 재미도 있다.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집 같은 곳. 오늘 밤은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오돌뼈볶음과 오이쌈 1만5000원, 모듬 사시미 4만7000원, 육회김밥 1만4000원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4가길 12 지하 1층
∙화~일요일 오후 6시~밤 12시(월요일 휴무)
∙02-790-7990
edit 박솔비, 김지현, 김원정
photograph 최준호, 류현준, 박다빈, 김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