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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People

스테파노 디 살보의 보르고 한남

2020년 6월 4일 — 0

서울의 다이닝 신을 화려하게 빛내던 스테파노 셰프. 이제는 자기만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행복의 맛을 선사하고 있다. 편안하고 따뜻한 그의 식탁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스테파노 디 살보 보르고한남 오너셰프

‘이탈리아 한남동’

요즘처럼 여행을 그리워 한 적 있었나.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그리움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남부 유럽의 보드라운 공기와 따사로운 햇볕, 이국적인 식탁이 유독 생각나던 날이었다. 비밀의 통로처럼 좁고 긴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이탈리아의 어느 작은 마을로 여행을 떠나온 듯했다. 흙으로 지은 집처럼 아늑한 미색의 공간. 장인이 만든 명품 조리도구와 커틀러리, 주렁주렁 먹음직스러운 살라미와 홈메이드 리몬첼로, 수십 종의 이탤리언 와인과 리큐어 등 멋있고 맛있는 것들이 가득했다. 기분 탓이었을까. 공기에서조차 언젠가 유럽 로컬 레스토랑에서 맡았던 것 같은 맛있는 냄새가 느껴졌다.

그곳의 이름은 보르고 한남이다. 파크하얏트 서울, 파크하얏트 부산,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 호텔의 총주방장이었던 스테파노 디 살보Stefano di Salvo(이하 스테파노) 셰프의 레스토랑. 보르고는 이탈리아어로 ‘동네’를 뜻한다. 보르고 한남은 한남동을 이탈리아식으로 표현한 셈이다. 그 이름처럼 보르고 한남에 가면 서울 한남동이 아닌 ‘이탈리아 한남동’에 간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에선 진짜 이탈리아 가정식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메뉴 구성부터 다르다. 보통 한국의 이탤리언 레스토랑들은 파스타와 피자 일색의 메뉴를 갖추고 있지만 보르고 한남의 메뉴는 10여 종의 안티파스티 Antipasti(이탈리아식 애피타이저)와 밀라네제Milanese, 비스테카Bistecca, 칼다로Caldaro 등 현지식 특선 요리 위주로 구성됐다. 파스타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네 가지는 즉석에서 생면을 뽑아 만든다. 이탈리아산 다니엘레 햄, 레자노 치즈 등 고품질의 콜드컷과 치즈를 담아내는 플레이트 메뉴도 다양하다.

아치형 테라스 입구가 매력적인 보르고 한남의 메인 홀. 톤TON의 원목 식탁과 의자들이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인터뷰 중인 스테파노 디 살보 오너 셰프.
나무로 만든 소품과 조리도구가 많은 보르고 한남.

스테파노 셰프는 보르고 한남의 음식을 ‘컴포트 푸드Comfort Food’ 라고 정의한다. 손님들을 집에 초대한 것처럼 편안하고 위로가 되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보르고 한남의 음식에는 지나친 기교나 자극적인 양념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최고 품질의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고, 식재료 자체의 풍미를 살려낸다. 화려한 기교 없이도 화려한 맛을 낸다. 그게 스테파노 셰프의 내공이다.

빈티지 베르켈 저울과 생면을 만들 때 사용하는 마카토 제면기.
스테파노 셰프가 매일 사용하는 주방 도구들.
스테파노 셰프가 직접 담근 리몬첼로. 이탈리아 남부에서 많이 마시는 레몬 술이다.

대표 메뉴로는 안티파스티 ‘베지타리아노Vegetariano’, ‘오라타 Orata’, ‘토나토Tonnato’와 밀라노식 소고기 요리인 ‘밀라네제’를 꼽았다. ‘베지타리아노’는 소금·후추·올리브 오일로 시즈닝해 오븐에서 1시간 동안 천천히 익힌 미니 양파, 달걀과 파르메산 치즈, 빵가루를 묻혀 크리스피하게 튀겨낸 콜리플라워, 껍질을 벗기고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에 버무린 방울토마토, 껍질을 새까맣게 태운 다음 손으로 벗겨낸 벨페퍼 등 네 가지 채소 요리다. 정성과 시간을 많이 들이는 만큼 맛에서도 굉장한 깊이가 느껴진다. ‘오라타’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날생선을 먹는 방식으로 만든 메뉴다. 신선한 국내산 도미를 익히지 않은 채로 얇게 저며 최상급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라임즙, 히말라야 핑크 솔트와 꽃 향기가 나는 후추로 간을 한 뒤 여러가지 식용꽃과 어린잎을 올려 완성한다. 화폭에 그린 수채화처럼 아름다워 먹기 아까울 정도지만, 맛을 보면 감탄이 절로 터져나온다.

‘토나토’는 한우를 낮은 온도에서 핑크색이 될 때까지 천천히 구워 만든다. 스테파노 셰프가 가장 아끼는 요리 도구인 베르켈Berkel 슬라이서로 얇게 슬라이스한 다음, 이탤리언 튜나와 안초비, 마요네즈로 만든 소스를 뿌리고 올리브를 곁들인 메뉴다. 이탈리아에선 굉장히 흔한 음식이지만 한국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밀라네제’는 밀라노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다. 한우 안심에 빵가루를 묻힌 다음 버터와 오일을 두른 팬에서 굽는다. 얼핏 보면 돈가스처럼 보이지만 먹어보면 전혀 다른 요리라는 걸 알 수 있다. 느끼하지 않아서 여름에도 가볍게 즐기기 좋다.

남부 이탈리아의 정취가 느껴지는 보르고 한남의 인테리어.

아침마다 스테파노 셰프가 직접 굽는 빵과 디저트도 보르고 한남에서 꼭 맛봐야 할 메뉴다. 제철 과일을 듬뿍 올린 타르트와 향긋한 이탤리언 리큐어를 넣은 초콜릿 등 매일 다른 디저트가 준비된다. 티라미수도 그의 스페셜티 디저트다. 미리 만들어 두지 않고 주문 즉시 따뜻한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갓 만든 크림을 사용해 신선한 티라미수를 완성한다. 페이스트리 셰프가 되고 싶었을 정도로 베이킹을 좋아하는 스테파노 셰프에겐 모두 놀이처럼 즐거운 일들이다.

매주 ‘준혁이네’ 농장에서 직접 따오는 식용 꽃과 허브.
베지타리아노의 유기농 미니 양파. 오븐에서 1시간 동안 천천히 익힌다.
그릴드 벨페퍼를 시즈닝 중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네제를 만들 때 송아지 고기를 사용하지만, 한국에선 송아지 고기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최상급 한우 안심을 사용한다.

성공의 맛과 행복의 맛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스테파노 셰프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디저트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요리사의 꿈을 품었다고 한다. 만 14세에 호텔 학교에 입학해 15세부터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30여 년 세월에 걸친 그의 요리 경력은 하나의 인터뷰 기사에 다 담아내기 벅찰 정도로 찬연하다. 그래서 스테파노 셰프에게 가장 의미있었던 경험을 세 가지만 골라줄 수 있겠냐고 청했다.

그가 꼽은 첫번째는 로마 에덴 호텔Hotel Eden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라 테라차La Terrazza에서 일한 1년이다. 당시 애피타이저 담당 셰프였던 그는 동료들과 함께 노력한 끝에 미쉐린 1스타를 받는 데 성공했다. 팀워크의 힘을 처음으로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두 번째는 토스카나의 일 펠리카노 호텔Hotel Il Pellicano에서 새로운 주방을 설계한 일이다. 일 펠리카노 호텔은 이탈리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초호화 호텔로, 유럽의 왕족들과 할리우드 스타들이 휴가를보내기 위해 찾는 곳이다. 주방시설도 그에 걸맞게 최고급으로 설계해야 했기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었고, 작은 결함도 용납되지 않았다고. 당시 만 26세의 신임 총주방장이었던 스테파노 셰프는 그 프로젝트를 총괄하면서 책임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배웠다고 한다.

세번째는 2015년 서울 DDP에서 열린 샤넬 크루즈쇼 애프터 파티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일이다.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비롯한 국내외 셀러브리티 1200여 명이 모인 세계적인 행사였다. 스테파노 셰프는 아름다운 도자기와 놋그릇에 모던하게 풀어낸 한식을 담아냈다. 참가자들은 극찬했다. 준비하는데 두 달 넘게 걸렸을 정도로 굉장히 힘든 프로젝트였지만 그만큼 성취도 컸다.

베르켈 슬라이서로 고기를 썰고 있는 스테파노 셰프.

한국에서 파크하얏트 서울, 파크하얏트 부산,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호텔 총주방장으로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스테파노 셰프는 2016년 싱가포르로 떠났다. JW메리어트 싱가포르 사우스비치 호텔의 총주방장으로 100여 명의 셰프들을 지휘하며 또 다른 2년을 보냈다. 그리고 2019년 11월, 그는 한국에 자기만의 작은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게 보르고 한남이다.

더 올라갈 곳이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호텔 셰프로서 그는 정상에 서 있었다. 인생의 여러가지 맛 중에 ‘성공의 맛’이라는게 있다면 차고 넘칠 정도로 맛보았을 것이다. 총주방장으로 일할 때와 보르고 한남을 운영하는 지금, 무엇이 가장 크게 달라졌느냐고 물었을 때 스테파노 셰프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지금은 행복해요I am Happy Now.” 이제 그는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놓고 마음껏 하고 싶은 요리를 하며 손님들에게 행복의 맛을 선사하고 있다. 앞으론 유럽 여행이 그리 워질 때 훌쩍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총주방장이 요리해주는 이탈리아 가정집, 보르고 한남으로.


Chef’s Inspiration
스테파노 디 살보 셰프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

경험
20대까지는 이탈리아 최고의 호텔들에서 경험을 쌓았고, 30대부터는 아시아의 방콕, 상하이, 뭄바이, 교토, 서울과 부산, 싱가포르에서 요리했다. 그 시간은 지금도 영감을 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카메라
모든 음식 사진을 직접 촬영한다. 자신의 요리를 기록하는 동시에 후배 셰프들에게 일관된 가이드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요리책
600권이 넘는 요리책을 소장하고 있다. 모든 책에 자신의 도장을 찍어두었을 정도로 애지중지한다.
토스카나
이탈리아의 많은 지역 중 토스카나에 유독 애정을 갖고 있다. 훌륭한 식재료와 최고의 와인이 있는 지역이자, 처음으로 총괄 셰프를 맡았던 호텔이있는곳이다.
식기
좋은 식재료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식기를 볼 때 많은 영감을 받는다. 보르고 한남에서는 이창화 작가가 맞춤 제작해준 도자식기를 사용하고 있다.
예술작품
아름다운 색감의 예술작품 역시 많은 영감을 준다. 이왈종 작가의 파스텔 톤 그림 작품을 좋아한다.
세계 각지의 식재료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내는 전 세계의 다양한 식재료는 늘 많은 영감을 준다. 식재료로 유명한 곳들은 여행할 때 꼭 방문하려고 한다.
마켓
특산물과 제철 식재료를 만날 수 있고 그 지역의 음식 문화를 볼 수 있는 로컬마켓. 파크하얏트 부산에서 총주방장으로 근무할 땐 자갈치시장을 즐겨찾았고, 제주동문시장, 정선오일장도 좋아한다.

Must Check Point
보르고 한남에서 놓치면 안 되는 5가지

이탤리언 와인과 음료
보르고 한남의 와인 리스트는 오직 이탤리언 와인으로만 구성돼 있다. 또 한식 전주와 그라파, 아티잔 비어, 오가닉 소다, 콜라까지 모두 이탈리아산이다.
스페셜 케이크
생일, 기념일 등 특별한 날을 맞은 손님을 위해 준비해주는 3단 케이크다. 하루 전까지 사전 예약하면 스테파노 셰프가 당일 아침 직접 만든다.
셰프 테이블
레스토랑 메인 홀과 조금 떨어진 라운드 테이블. 스테파노 셰프의 테이스팅 코스 메뉴를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최소 4명부터 최대 6명까지 이용 가능하다.
홈메이드 베이커리
베이킹과 페이스트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스테파노 셰프는 매일 아침 가장 일찍 레스토랑 에 출근해 식전빵과 데일리 디저트를 직접 준비한다.
베르켈 슬라이서
‘슬라이서계의 페라리’라고 불리는 수동 슬라이서. 자신의 레스토랑에 베르켈 슬라이서를 들이는 것은 스테파노 셰프의 오랜 위시리스트였 다. 프로슈토와 살라미를 자를 때 이 슬라이서를 사용한다.

Borgo Hannam 

1 베지테리언 안티파스티, 베지타리아노. 채소의 깊은 풍미를 느낄 있다.
2 밀라노 사람들이 즐겨 먹는 비프 요리, 밀라네제.
3 오라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4 토나토. 이탈리아에서는 굉장히 흔하게 먹는 음식이지만 한국에선 찾기 힘들다.

  • 보르고 한남
    ∙베지타리아노(2인분) 3만8000원, 오라타 2만3000원, 토나토 2만6000원, 밀라네제 9만2000원, 셰프 테이블 코스(4인 이상 이용 가능) 1인 15만원, 3단 케이크(하루 전까지 사전 예약) 3만5000원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4길 31 3층
    ∙오후 5시~10시 30분, 월요일 휴무
    ∙0260822727

edit 고서령 – photograph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