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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의 이력서

2020년 6월 4일 — 0

2000년 CB MASS 1집을 시작으로 2019년 다이나믹 듀오 9집까지. 20년간 최자의 이력은 빈틈없이 채워졌다. 동시에 미식 취향도 빼곡하게 쌓여왔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고 봐.” 2017년 스트리트 패션 매거진 <하입비 스트>와 연재 방식으로 시작된 tvN D <최자로드>가 어느덧 시즌 3를 맞았다. 유튜브 채널도 독립해 우뚝 섰다. 반면 ‘먹방’과 ‘맛집’ 트렌드를 이끌던 <테이스티 로드>와 <식신로드>는 진즉에 막을 내렸고, 음식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던 <수요미식회> 역시 기약 없는 종영 을 택했다. <맛있는 녀석들>은 계속되고 있지만 먹방이 모두의 관심을 한몸에 받던 시절은 지났다. 맛집 프로그램 역시 시들해진 아이템인 줄로만 알았고 <최자로드>는 무엇이 다를까 예의 주시했다.
그런데 <최자로드>는 건재했다. 여전히 믿을 수 있는 확실한 맛집 정보와 재미가 있었다. 시즌1과 2에 걸쳐 2600만이 넘는 뷰 수가 이를 증명한다. 무엇보다 건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최자로드>가 ‘최자의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이다. 최자는 먹는 게 좋다. 맛집을 찾아 다니고 자신의 취향과 주관을 기준으로 검증해서 인스타그램에 기록 한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누가 뭐라고 하든 최자의 합격점을 받은 가게만이 <최자로드>에 소개된다. 구설에 오를 만한 외부 개입이 끼어들 가능성이 없다는 건 트렌드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의 지속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텅 빈 주머니 배고파도 소신 있게
최자는 개코와 함께 국내 힙합신을 이끌며 굵직한 발자취를 남겨온 1세대 래퍼다. 작금의 래퍼들이 수도 없이 들으며 자라온 음악이 바로 최자와 개코의 음악. CB MASS로 활동하던 패기 어린 시절 최자와 개코의 ‘나침반’, ‘진짜’, ‘휘파람’, ‘Shout Out’ 등은 국내 힙합을 본격 적인 출발선에 올렸고, 멤버의 배신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나서 둘이 처음 발매한 다이나믹 듀오 1집 ‘Taxi Driver’는 최고의 힙합 명반으로 손꼽힌다. 수록된 모든 곡이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회자되며 힙합 입문자들에게 교과서 역할을 한다.
물론 처음에는 아니었다. 지금은 다이나믹 듀오든 최자든 개코든 힙합의 대명사로 인식되지만 그들이 2000년대 초반 데뷔했을 땐 힙합 자체가 생소했다. 국내에서 힙합은 어린애들 음악이었다. 힙합이 모두가 즐겨듣는 음악이 된 건 얼마 되지않은 일이다. 그렇기때문에 최자 스스로 부족함없이 자랐다고는 하지만 CB MASS 시절엔 패기만이 동력이었다. <최자로드>에서처럼 멀끔한 모습? 사람들과 여유있게 음식을 음미하고 평가하는 장면? 상상 할 수 없었다. 대신 먹기는 많이 먹었다. 덩치도 지금보다 우람했다.

좋아하던 음식을 보는 순간 표정이 바뀐 최자.
언노운다이너는 포장 방식부터 용기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 스테이크도 포장해 먹기 좋다.

최자는 어린 시절 강남 신사동에서 ‘푸드 파이터’로 통했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고기 뷔페에 가면 사장님이 환불해줄 테니까 나가라고 할 정도였어요.(웃음)” 하지만 많이 먹기만 한 건 아니다. 음식의 간 만큼은 명확한 기준을 가진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고, 음식을 즐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데뷔 직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먹는 것 만큼은 빚을 내서라도 잘 챙겨 먹었다. “먹는 건 놓칠 수 없었어요. 유일하게 현실을 잊게 해주는 시간이 먹는 시간이었거든요. 활동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위기가 있었는데 그럼에도 매일같이 뭘 먹을지 생각하면 행복했죠. 오늘은 이걸 꼭 맛있게 먹겠다고요.(웃음)”

최자는 개코와 함께 다이나믹 듀오 1집으로 돌아왔다. 2집을 내고 또 5집을 내고 군대를 다녀오고 다시 6집, 7집, 8집을 냈다. 함께 힙합을 시작했던 다른 래퍼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때 다이나믹 듀오는 빠르게 대중 곁으로 다가갔다. 앨범의 완성도는 갈수록 높아졌고, 1집의 틀에 따라 대중성을 갖춘 곡을 타이틀 곡으로 담되 시대의 현상을 반영한 곡과 힙합 팬들이 좋아할 곡을 절묘하게 섞어 균형을 맞췄다. 최근 발매한 9집 앨범 ‘OFF DUTY’까지. 다이나믹 듀오는 여전히 힙합을 하지만 노래는 누구든 재밌는 이야기처럼 즐길 수 있다.

최자는 매일 맛있는 걸 먹고 느끼고 기록한다.

“어떤 한 가지 색깔로 꽉 채운다기보다 들었을 때 소설처럼 이야기의 흐름이 있어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을 만들려고 해요. 한장으로서의 매력이 있는 앨범이었으면 좋겠거든요. 빠른 곡이 한 두 개 있으면 미디엄 템포 곡도 한 두개있고, 새로운 시도가 담긴 곡도 들어가고. 본능적으로 개코나 저나 균형 감각을 맞추려고 하는 거 같아요.”

스테이크를 포장해 왔으면 한번 팬에 데워 먹어도 좋다며 직접 시범을 보이는 최자.

일도 많아 놀 일도 많아
<최자로드>를 유튜브로만 봐온 사람이라면 모를 수 있지만 <최자로 드>는 사실 잡지 기사로 처음 시작됐다. 2017년 <하입비스트>가 최자의 인스타그램에 기록된 맛집 사진과 이야기를 보고 제안해왔다. “맛집을 소개해보자고 하더군요. 이런 음악은 이런 음식이랑 어울리지 않을까? 이런 옷을 입었을 때는 유행하는 음식이 아니라 순댓국 같은 음식을 먹으면 좀 더 멋스럽지 않을까? 최대한 ‘힙’한 느낌을 주는 방식으로 맛집을 소개하기 시작한 거죠.” 글과 사진에 맛에 대한 최자의 시선이 오롯이 담겼다. 부연 설명은 담당 에디터가 붙이더라도 매 기사에는 식당과 음식의 기본 배경지식부터 먹는 방법까지 최자의 이야기를 통해 채워졌다. 음식은 늘 음악과 짝지어졌는데 이 역시 최자의 생각이었다. 첫 번째 <최자로드>가 연재되고 있을 때 tvN 채널을 운영하는 CJ로부터 연락이 왔다. <최자로 드>를 다음 시즌부터 유튜브 영상으로도 소개하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최자로드> 시즌 2는 <하입비스트> 지면과 유튜브 tvN D 채널에 동시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최자의 미식 취향은 영상과 소리에 담기며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부상했다. ‘힙합계의 황교익’, ‘최자가 안내하는 미각의 대동여지도’, ‘대한민국 맛집은 최자의 인스타그램에 있다’ 등 최자를 수식하는 수많은 표현이 생겨났다. <최자로드>에 소개된 맛집은 연일 장사진을 이루었고 블로그에는 연신 ‘최자로드 정리’라는 글이 올라왔다. <최자로드> 의 인기 요인은 뭘까. 매일같이 놀면서 일했기 때문이라고 최자는 말한다. 최자는 평소 음악 외에 어떤 활동을 하면 꾸준히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음식을 떠올렸다.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언노운다이너는 음식을 포장 주문한 손님이 차에 타고 있으면 직접 그 앞에서 음식을 건네고 계산하는 드라이빙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먹기 위해 산다고 할 정도로 매일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데, 그걸 콘텐츠로 만들면 지치지 않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스타그램에 먹은 음식과 다녀온 식당을 소개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였거든요. 먹으면서 생각했던 감상을 기록한다는 느낌으로 시작했죠.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서 할 때 나오는 에너지가 있잖아요. 그게 <최자로드>에 담겼고 사람들이 그걸 알아봐준 게 아닌가 싶어요.”

최자는 래퍼다. 래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자질은 본인 노래의 가사를 직접 쓰는 행위다. 1세대 래퍼로서 오랜 시간 직접 가사를 쓰며 노래를 만들어왔기에 최자는 누구보다 본인이 느끼는 감정이나 사회적인 현상, 주변에서 겪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 그 자질이 음식을 표현하는 데도 발휘됐다. ‘힙합계의 황교익’이란 말이 붙여진 것도 그래서다. ‘난 레몬 안 뿌리고 먹어. 닭도 닭비린내가 좀 나야 맛있어. 돼지도 돼지 냄새가 나야 맛있듯이. 꼭 다른 향신료로 죽일 필요는 없잖아.’ 단지 음식 어쩌고저쩌고 나열하는 것만이 아니라 본인의 취향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킨다. 그 취향을 따라 해보고 싶게끔 말이다. 그게 최자가 맛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최자는 가장 좋아하는 볼라레 피자 앞에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무대 다 서 봤고 맛집 다 가봤고
이번 시즌 <최자로드>는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음식을 포장해서 먹는 콘셉트로 시작했다. 맛집을 찾아다니기에 앞서 포장한 맛집의 음식과 그 음식의 배경이 되는 ‘썰’을 풀어낸다. 최자가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에 제안했다. 집에서 좀처럼 해 먹기 어려운 스테이크와 뜨겁든 차갑든 맛있는 피자, 그리고 이 두 음식이랑 잘 어울리는 내추럴와인을 집에서 먹어 보면 어떻겠냐고.
“포장 음식 중에 괜찮은 게 많거든요. 언노운다이너의 스테이크와 볼라레의 화덕 피자가 그래요. 내추럴 와인까지 곁들이면 더 좋죠. 그래서 에세테라를 추천했어요. 언노운다이너, 볼라레, 에세테라 세 곳 모 두 고집을 자랑하는데 언노운다이너는 스테이크류의 세분화를 잘해 놨어요. 어떤 걸 선택해도 맛있지만 취향에 맞게 종류별로 부위별로 고를 수 있죠. 볼라레는 딱 더할 것도 뺄 것도 없 는화덕 피자의 표본이라고 해야 할까요? 재료별 맛의 균형감이 최고예요. 에세테라는 라피네에서 오픈한거니 두말할 것 없고요.” 벌써시작이좋다.짜장면편,부대찌개편등유튜브에업로드된<최 자로드> 시즌 3의 에피소드들이 빠르게 조회 수를 높여가고 있다. 채 널독립과동시에구독자수가66만명을넘어선이유도있겠지만이 번에도 최자의 취향과 이야기가 통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쯤 되 면최자의안목을인정할수밖에없다.최자는앞서개코와함께선배 로서 후배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프로듀서로서 아티스트를 성공시키는데도 일가견을 보여왔다.

버벌진트, 도끼, 팔로알토, 더콰이엇, 나플라, 페노메코가 다이나믹 듀오 앨범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쌈디와 이센스로 구성된 슈프림팀, 자이언티, 크러쉬가 아메바 컬쳐에서 말할 수 없는 성공을 거두고 새출발을 시작했다. “같이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를 찾는 거 같아요. 새로운 친구들 중 누가 잘하나 늘 관심을 가지고 봐요. 오래 해오다 보니까 저희 나름의 보는 안목도 생겼고요. 이 친구는 이런 색깔이 너무 좋은거 같아. 다행히 함께했던 친구들 중 잘된 친구가 많았던 거 같아요.”

볼라레 피자는 이탤리언 화덕 피자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큼 맛이 균형이 좋다.

볼라레는 명성에 걸맞게 화덕 역시 최고의 설비를 자랑한다.

최자는 이제 음악 활동 20년 차에 접어들었다. 나이도 어느덧 40대. 20대 때의 패기는 사라졌는지 몰라도 그 자리에 현명함이 들어섰다. 명반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그저 즐기고 싶다. 늘 신선한 재료로 따끈따끈한 음악을 작업해서 내놓는 일.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즐기는 일. 한자리에서 꾸준히 맛있는 걸 먹으며 재미를 만들고 찾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욕심을 낸다면 낚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기록에 가까운 크기를 자랑하는 물고기를 잡고, 사진을 찍고, 집안 벽에 걸어두고 싶은 정도 다.

HIS CHOICE

언노운다이너
가장 신선하고 가장 좋은 재료로 맛을 내보이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파스타와 피자 등 다른 메뉴도 좋지만 특히 스테이크가 맛있기로 정평이 났다. 다양한 종류의 화려한 한우 스테이크가 계절에 맞춘 가니시와 곁들여진다.

∙1++한우채끝스테이크 210g 9만9000원, 1++한우안심스테이크 180g 8만8000원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28길 42
∙매일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브레이크 타임 오후 3시~5시 30분)
∙02-573-6672

에세테라
네오프렌치 비스트로 라피네에서 문을 연 와인 바이자 카페다. 낮에는 커피를 마시러, 저녁에는 와인을 마시러 가면 좋은데 특히 내추럴 와인의 수입과 판매를 동시에 하고 있어 내추럴 와인을 믿고 마시기 좋다.

∙tierra extraña 2018 9만원, Give up the Ghost 2018 13만원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170길 28
∙매일 오전 11시~ 12시
∙025471182

볼라레
정통 이탤리언 화덕 피자로 유명한 곳이다. ‘나폴리 피자협회’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은 보기 드문 피체리아다. 토마토소스와 올리브 오일, 마늘을 이용한 나폴리 피자의 가장 기본인 마리나라 피자가 대표적.

∙마리나라 피자 1만6000원, 마르게리따 피자 2만3000원
∙서울시 서초구 사평대로20길 8
∙매일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
∙025371100 

edit 곽봉석
photograph 양성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