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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호흡하는 법

2020년 6월 4일 — 0

소반 작가 양병용은 스스로를 목공예가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그를 장인이라고 부른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저 ‘옛것’으로 여기기엔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이 있다. 소반이 그러하다. 소반은 과거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이자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가구다. 좌식 문화가 사라진 지금, 사람들은 더 이상 소반 위에서 식사를 하진 않지만 여전히 이 오래된 아름다움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 파주 출판 단지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양병용 작가의 작업실이자 쇼룸인, 손님을 반긴다는 이름의 ‘반김 크래프트’가 나온다. 안으로 들어서니 수북하게 쌓여 있는 목재와 진한 나무 내음이 묵묵히 이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을 설명한다. 양병용 작가는 숲속 나무들과 벗하며 뛰놀던 어린 시절부터 나무의 질감과 향, 색, 무늬 등 나무의 모든 것과 함께했다. 행복했던 그때의 기억이 목공예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목기나 우드 트레이 같은 작업도 재미있지만 소반은 좀 더 깊이가 있는 전통 공예입니다. 누구에게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오브제이기도 하고요. 참죽나무나 느릅나무, 엄나무 등 어떤 나무를 대하든 그 시간은 늘 즐겁습니다.”

반김 크래프트 쇼룸에서의 양병용 작가.
개다리 모양의 구족반. 상판을 꽃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각각 고유의 무늬와 색을 갖고 있는 다양한 목재들.
대패질을 선보이는 양병용 작가.
모서리 부분에 쓰이는 대패 역시 직접 튜닝한 도구다.
의뢰를 받아 제작 중인 나주반. 미세하게 보이는 대패의 흔적에서 양병용 작가의 손맛이 느껴진다.
파주에 위치한 작업실. 소박하고 겸손한 그의 모습과 닮았다.

깊은 역사만큼 소반은 지역과 용도, 생김새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양병용 작가는 소박하고 별다른 장식이 없는 나주반과 투박한 강원반, 상판에 꽃 모양을 디자인한 치마상, 말 다리 모양의 마족반 등 다양한 소반을 만든다. 특히 나주반과 강원반은 단아하고 절제된 디자인을 선호하는 양 작가의 취향과 잘 맞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반 종류 중 하나다. 그가 요즘 제작 중인 나주반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설명했다. “상판 아래 꺾이는 부분의 비스듬 히 진 각에서 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손으로 잡을 때 안정감 있게 쥐어지는 인체공학적인 부분까지 모두 옛 선조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부드러운 면과 견고한 마감 처리가 인상적인 양 작가의 통원반 마족반에서도 노련한 기술이 엿보인다. 오랫동안 해 온 일임에도 여전히 옛 자료를 보며 왜 여기는 선을 이렇게 넣었을까, 이 다리는 왜 좁아지는 것일까 고민하며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소반이라는 기본적인 틀은 벗어나지 않으면서 모던한 감각을 결합시킨 세련미는 양병용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도면 한 장 없이 나무의 생김새만 보고 시작한다. 옻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샌드페이퍼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그 외의 모든 작업은 오직 손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물건 은 그 자체의 감성을 갖고 있어요.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물건보다 만든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사용하는 사람에게 더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그게 손맛의 매력 아닐까요? 우리가 어머니, 아버지의 손길을 바라는 것처럼요.” 잘 다듬어진 나무가 자아내는 균형 감과 단단함, 손으로 만지면 작은 물결처럼 남아 있는 대패 자국과 나무의 숨구멍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작업하는 양 작가의 소반은 톱질, 대패질, 칼질을 거쳐 나무와 호흡하듯 만들어진다. 재료를 다듬고 하나하나 구조를 짜 맞춰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그를 ‘소반의 대가’라고 인정하지만 양 작가는 아직도 소반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행복하게 작업한 흔적을 남기며 작품을 표현 하고 싶다는 양병용 작가. 그가 이어가는 전통 공예의 정신과 품위를 우리가 즐길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edit 김지현
photograph 류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