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DiningPeople

엄태철의 소설한남

2020년 6월 4일 — 0

한국 셰프에게 가장 쉬운 음식이자 가장 어려운 음식인 한식. 엄태철 셰프는 소설한남에서 ‘전통에 뿌리를 둔 모던 한식’을 그만의 방식으로 펼치고 있다.

소설한남 엄태철 헤드셰프

눈을 감고 ‘한식’을 떠올려보자. 무엇이 생각나는가. 흰 쌀밥과 김치찌개? 수십 가지 반찬을 정갈하게 차려낸 한정식? 혹은 삼겹살과 비빔냉면, 김밥과 떡볶이? 우리 모두의 머릿속엔 각자의 한식이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매일 즐겨 먹는 음식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이것이 정답이다’ 말하기 힘든 음식, 전국 팔도에 전문 가와 미식가가 넘쳐나는 음식이 한식이다. 15년 넘게 한식에만 전념해온 엄태철 셰프가 “한식은 가장 쉬우면 서도 가장 어려운 음식”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엄태철 셰프가 이끄는 소설한남은 한식 파인다이닝 레 스토랑이다. ‘소설So Seoul’이라는 이름엔 ‘소설책을 한 장씩 넘기듯 기대하게 만드는 음식’이라는 뜻과 ‘현대의 서울을 대표하는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라는 뜻이 함께 담겨 있다. 엄 셰프는 소설한남의 음식을 ‘전통에 뿌리를 둔 모던 한식’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전통의 맛과 재료는 오롯이 지키면서 참신한 구성과 조합을 통해 현대적인 한식을 표현해내고 있다. 양식을 하면서 한식의 재료나 소스를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한식다운 코스 요리
소설한남의 코스 요리는 일반적인 코스 요리의 틀을 깼다. 단순히 한식의 한상차림을 코스화한다면 수프 대신 죽 하나, 파스타 대신 국수 하나 식으로 나오겠지만, 그건 “한식답지 못하다”고 엄태철 셰프는 말한다. 소설한남에서는 한 코스에 서로 곁들여 먹을 수 있는 2~3개의 디시를 함께 낸다. 전체 코스에 걸쳐 찜, 조림, 구이, 전, 지짐, 밥, 면, 죽, 떡 등 다양한 종류를 고루 맛볼 수 있게 구성한 것도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다. “한식은 기본적으로 밥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반찬을 곁들여 먹는 음식입니다. 죽과 냉채, 찜과 밥, 칼국수와 지짐 등 서로 어울리는 음식을 같이 먹었을 때 진정한 한식의 맛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한식의 특징을 파인다이닝 코스 안에 반영해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지금 소설한남의 메뉴에는 그 고민의 결과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4월부터 새롭게 선보이기 시작한 봄 메뉴 점심 코스는 엄태철 셰프가 지향하는 한식에 더 가까워졌다. 봄 메뉴 첫 코스로는 돼지고기 편채와 구운 증편이 함께 나온다. 편채는 제주 흑돼지 오겹살을 삶아 직접 만든 새우장에 재운 다음 얇게 슬라이스 한것이다. 다음은 전복 내장으로 만든 죽과 전복살로 만든 냉채다. 죽만 먹으면 심심할 수 있는 맛을 새콤달콤한 냉채로 보완했다. 세 번째 코스는 주꾸미 칼국수와 주꾸미·두릅 튀김. 칼국수 면은 먹물로 반죽하고, 두릅과 주꾸미 튀김은 쌀가루로 튀긴다. 여기에 참나물을 달래 양념장으로 무쳐 만든 겉절이도 곁들인다. 네 번째 코스는 봄을 대표하는 생선인 도미로 만든 찜과 취나물밥이다. 도미찜에는 쑥으로 만든 오일을 뿌려 향을 내고, 취나물밥에는 제철 멍게 양념장을 올린다.

제주 구좌 당근으로 만든 주황색 소르베와 셀러리로 만든 초록 소르베로 입가심을 하고 나면, 메인요리인 떡갈비가 나올 차례다. 가니시로 돼지감자 칩과 송화버섯을 올려낸 떡갈비에는 간장을 빼고 만든 하얀 약밥을 곁들인다. 마지막으로 후식은 아이스크림과 다과. 흑미로 만든 아이스크림에 흑임자로 만든 크럼블로 바삭함과 고소함을 더하고 블루베리 소스를 끼얹는다. 가장 한국적인 디저트라고 할 수 있는 다과는 딸기양갱, 금귤정과와 호두강정, 검정콩 머랭과자, 파래강정, 쑥 주악 등 5종류로 구성했다. 접시에 올려놓으면 마치 미술 작품처럼 단아하고 곱다.

주방에서 조리 중인 엄태철 셰프와 소설한남의 요리사들.
등심 떡갈비를 숯불에 굽고 있다.
증편을 굽는 중이다.

한식을 향한 뚝심
‘한국의 요리사라면 한식은 기본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엄태철 셰프는 요리사로서의 진로를 결정했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한식조리학 전공이 있는 대학교를 찾아 진학했고, 지방음식·궁중음식·발효음식· 차례음식 등 다양한 한식의 전통과 역사를 깊이 있게 공부했다. 성실함과 열정이 좋은 운을 불러들인 걸까. 졸업 후 미국 호텔 레스토랑에서 인턴을 마치고 돌아오 자마자 노영희 셰프가 이끄는 ‘품 서울’의 오픈 멤버로 합류하게 됐다. “품 서울은 한식을 코스화시킨 1세대 레스토랑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에요. 노영희 선생님은 한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전통을 저버리면 안 된다’고 강조하셨죠. 품 서울에서 요리를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정말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훌륭한 일터이자 배움터였지만 엄태철 셰프는 2년 만에 품 서울을 떠났다. 한국에서만 한식을 하기엔 무언가 아쉽다, 틀에 박힌 사고를 깨려면 변화가 필요하다, 한살이라도 젊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식과 접목해서 한식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나라에서 요리를 해보고 싶었어요. 품 서울에 계속 있으면 더 많이 성장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는데, 그걸 포기하면서 떠나는 것이었기에 신중하게 목적지를 정했죠.” 많은 조사 끝에 그가 선택한 곳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유명한 미식 도시 산세바스티 안San Sebastian이다. 산세바스티안은 인구·면적 대비 가장 많은 미쉐린 스타를 받아 ‘별의 도시’라고 불린다. 그는 ‘엘 초코 델 고메El Txoko del Gourmet’라는 컬리너리 스쿨에 입학해 바스크 지방 요리를 공부했고, 이후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과 파인다이닝, 로컬 레스토랑 등 다양한 곳에서 일하며 요리 경험을 쌓았다. 스페인은 하루 5끼를 먹는 나라, 저녁식사를 밤 10시부터 시작하는 나라 아닌가. 매일 아침일찍 출근해 자정이 넘어 퇴근했고 쉬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몸은힘들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다 보니 금세 2년이 흘렀다.

진지한 표정의 엄태철 셰프.

돼지고기 수육 편채 요리를 플레이팅 중이다.
식기와 조리도구들.
메인 메뉴인 떡갈비를 플레이팅하고 있다.
즐겁게 요리하는 주방 스태프들.

스페인에서의 시간이 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느냐 물었더니, 의외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산세바스티안에서는 미쉐린 3스타 파인다이닝과 지역 전통 음식이 너무나도 조화롭게 공존하며 함께 발전하고 있어요. 이유가 무엇인지 봤더니 전통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강하더라고요. 신기하면서도 부러웠죠. 그걸 보고 전통의 뿌리를 지키면서 현대적인 한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어요.”

서정적인 분위기의 소설한남. 천장에서 길게 내려온 조명은 이상민 작가의 작품이다.
프랑스의 조명 디자이너 셀린 라이트Celine Wright의 작품. 수제 종이로 만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4년여 동안은 공관에서 의전 요리를 했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잠시 접어뒀던 한식에 대한 꿈은 CJ그룹에 입사하면서 다시 찾게됐다. “마침 의전 계약이 끝나갈 때쯤 CJ에서 소설한남 오픈을 준비 중이라며 입사 제안을 해왔어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웃음)” 그게 운이었든 실력이었든, 엄태철 셰프에겐 좋은 기회가 끊임없이 찾아왔다. 소설한남 오픈을 준비하는 동안 같은 CJ그룹 계열 레스토랑인 ‘모수 서울’에서 요리 경험을 쌓게 된 것이다. 안성재 셰프가 이끄는 모수 서울은 미쉐린 2스타를 받은 최고급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다. “모수에서 요리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안성재 셰프님의 요리에 대한 열정과 철학이었어요. 제가 잊고 있었던 한식 파인다이닝에 대한 꿈을 다시 불타오르게 해준 곳이었습니다.”

2018년 7월 문을 연 소설한남의 음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엄태철 셰프가 하고 싶었던 한식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소설한남의 음식이 아직 완성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앞으로도 ‘전통에 뿌리를 둔 모던 한식’이라는 방향이 변질되지 않도록 지키면서, 꾸준히 발전하는 음식을 구현하기 위해 연구와 노력을 계속할 겁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 보다 내일, 소설한남의 음식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Chef’s Inspiration 8
엄태철 셰프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

마켓
거의 매일 직접 장을 본다. 발품을 많이 팔아야 원하는 식재료를 더 많이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 나온 제철 식재료를 볼 때 새로운 메뉴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는다.
매일의 식사
가리는 것 없이 다 잘먹는 것이야말로 복이 아닐까. 먹는 시간은 오직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기에 더 소중히 보내려고 한다.
여행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지역마다 특산품이 다르고 식문화의 특징이 뚜렷하다. 여행을 하면서 지역 음식의 매력을 새롭게 접할 때마다 신이 날 정도다.
고객
요리사의 음식에 완벽은 없다고 생각한다. 고객에게 최상의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피드백을 자주 듣고 완벽에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절기
4계절 24절기가 있는 한국은 절기마다 먹는 음식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다양한 시절식이 존재하는 나라다. 절기에 따른 식재료와 조리법, 음식은 한식을 하는 사람에게 무척 중요하다.
전통 한식 서적
다양한 요리책을 보는 걸 좋아하지만 전통 한식 서적을 가장 많이 본다. 한식을 현대적으로 재구성 또는 재해석하려면 한식의 전통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식기
소설 한남에서는 작가들이 만든 아름다운 식기를 많이 사용한다. 새로운 형태의 그릇을 볼 때마다 어떤 음식이 어울릴지를 생각한다.
동료
아무리 뛰어난 지휘관이라도 동료들이 없다면 그 능력을 다 발휘하기 힘들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동료들이 있기에 더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

Must Check Point 5
소설한남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5가지

다과 – 한식 레스토랑 셰프들이 가장고민 하는 것 중 하나가 디저트일 것이다. 소설 한남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디저트인 다과를 만들어 제공한다.
메뉴판 – 접으면책같고, 펼치면 병풍처럼 보이는 메뉴판. ‘소설’이라는 레스토랑 이름과도 잘 어울린다.
떡케이크 – 생일 등 특별한 기념일을 맞은 손님에게 떡케이크를 준비해 준다. 단호박 퓌레를 쌀가루와 섞은 다음 쪄낸 떡에 사과 소스를 넣어 만든다. 떡케이크는 예약 시 사전요청 해야한다.
갤러리 같은 인테리어 – 소설 한남 곳곳을 장식한 조형물과 그림, 조명은 모두 작가들의 작품이다. 사진 속 조형물은 노기쁨 작가의 작품.
주류 페어링 – 소설한남의 소믈리에가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을 하나하나 페어링해 주는 서비스. 손님들에게 반응이 좋다. 다양한 와인과 전통주 리스트를 갖추고 있다.

SO SEOUL

1 제주 흑돼지 수육 편채와 구운 증편.
2 전복 내장과 감태를 끓여 만든 죽 그리고 전복 살로 만든 냉채.
3 주꾸미 칼국수와 주꾸미·두릅 튀김, 겉절이.
4 봄을 대표하는 생선인 도미로 만든 찜과 멍게 양념장을 곁들인 취나물밥.
5 메인 요리인 떡갈비와 하얀 약밥.

  • 소설한남
    ∙점심 코스 8만5000원, 점심 주류 페어링 (전통주 1잔, 와인 3잔) 7만원, 저녁 코스 15만원, 저녁 주류 페어링(전통주 2잔, 와인 3잔) 10만원
    ∙서울시 용산구 한남대로 20길 2118
    ∙월~금요일 12시~오후 3시, 오후 6~10시 (브레이크 타임 오후 3~6시), 토요일 12시~오후 3시, 일요일 휴무
    ∙027975995

edit 고서령 – photograph 박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