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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원의 라망시크레

2020년 6월 4일 — 0

재미있어서 재미있는 요리를 하는 손종원 셰프의 라망시크레. 일상의 즐거움을 되찾게 해줄 근사한 식사가 그곳에 있다.

쉽고 즐거운 파인다이닝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세상이 흉흉하고 어지러울수록 잘 먹는 게 중요하다 .때론 근사한 한끼 식사가 인생이 살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니까. 지겹도록 끝나지 않는 ‘코로나 시국’에 지쳐갈 때쯤, 라망시크레를 찾았다. 두 시간에 걸친 식사는 쉴틈없이 즐거웠고, 오랜만에 일상의 재미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레스케이프 호텔 최상층에 자리한 라망시크레는 손종원 헤드셰프가 이끄는 컨템퍼러리 레스토랑이다. 명동의 작은 한입거리들, 남산비프가스, 딸기위구름 등 이름만 보아도 위트 넘치는 메뉴들을 코스로 선보인다. 뉴욕이나 파리엔 없는, 오직 서울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양식. 손종원 셰프가 정의하는 라망시크레의 음식이다. “서양 음식이 한국에 들어와 새로운 스타일로 바뀌었잖아요. 그것 또한 한국 식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입혀 손님들이 다가가기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메뉴를 만들었어요.”

손종원 라망시크레 헤드셰프

이날 손종원 셰프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 정이 많은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손님의 이름을 프린트해 편지처럼 만든 메뉴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맞은 손님들에겐 축하 메시지도 적어준다. 평소 카드쓰기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을 반영한 서비스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손님들에겐 직접 구운 호두 마들렌을 호두과자 봉투에 담아 쥐여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 먹는 호두과자에서 착안해 조심히 살펴 가시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더 좋아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를 하나하나 서비스에 녹여내는 듯했다. 

모든 테이블에 붉은 장미꽃이 한 송이씩 꽂혀있다.

손종원 셰프의 취미 중 하나는 요리책을 모으는 것이다. 라망시크레에 가면 손종원 셰프가 그동안 모아온 요리책들을 볼 수 있다.

장난이 아니다 

메뉴에도 그런 고민의 흔적이 가득하다. 라망시크레의 음식은 모양에도 맛에도 디테일이 많다. 아뮈즈부슈로 나오는 당근꽃타르트는 너무 고와 먹기 미안할 정도다. 미니 당근으로 꽃잎을 만들고, 발효버터에 커피를 갈아 섞은 무스로 꽃잎을 모아 붙였다. 꽃잎 사이사이엔 깜찍한 당근 잎을 꽂아 장식했다. (잔인하게도) 한입에 쏙 넣으면 향긋하면서 고소한 맛이 식욕을 돋운다. ‘명동의 작은 한입거리들’은 라망시크레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애피타이저다. 명동 길거리 음식의 무대를 레 스토랑으로 옮겨와 새로운 메뉴로 탄생시켰다. 너무 귀여운 음식이라 장난 같기도 한데 들어가는 정성과 맛은 장난이 아니다. 회오리감자는 감자를 작은 나선형 모양으로 깎아 튀긴 다음 양파를 캐러멜라이징해 만든 무스로 속을 채우고 컬러풀한 식용 꽃을 얹었다. 맥반석오징어는 오징어를 직접 갈아서 오징어 모양 칩으로 만든 것이다. 타코야끼는 작은 슈를 문어로 만든 무스로 채우고 감태를 올려 표현했다. 

메인 디시 ‘남산 비프가스’도 재미있다. 돈가스인 척하는 최상급 투플러스 안심스테이크다. 손 셰프는 남산 왕돈가스를 먹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이 메뉴를 개발했다. 스테이크 위에 얇은 크러스트를 얹어 돈가스처럼 보이게 했고, 돈가스의 단짝인 양배추 샐러드는 숯에 구운 파인애플 위에 바삭하게 만든 미니 양배추를 올려서 표현했다. 봄을 맞아 새롭게 선보인 ‘봄나물과 가자미 뫼니에르’는 우리 봄나물의 가치를 조명하고 싶어서 만든 메뉴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런 나물류 채소가 무척 비싸거든요. 한국에선 봄나물을 한 봉지에 1000원 씩 저렴하게 파니까 그 가치에 비해 조명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가자미국을 먹다가 생각해냈다는 이 메뉴. 팬에 브라운 버터로 구운 가자미 위에 세발나물, 유채, 돌나물, 한련화, 미나리 등 8 종류 봄나물을 쌓아 올렸다. 가자미 뼈로 육수를 우려내 장시간 졸여 만든 소스는 된장으로 맛을 잡았고 조개를 넣어 식감을 더했다. 

이렇듯 손종원 셰프는 일상의 음식에서 영감을 얻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다가가기 쉽지만 예측하긴 어려운 메뉴들이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이런 걸 한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 법한 시도도 많이 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재미있어서. “예상한대로 나오는 음식은 재미없잖아요. 생각지 못한 위트를 주는 걸 좋아 해요.”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손종원 셰프는 매일 저녁 서비스 전 회의시간을 갖는다.
라망시크레의 인테리어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자크 가르시아Jacques Garcia의 작품이다.
입구의 꽃 장식은 영국의 유명 플로리스트 토니 마크루Tony Marklew가 맡고 있다.
라망시크레는 프랑스어로 비밀의 연인이라는 뜻이다.

재미있어서 요리하는 셰프 

손종원 셰프는 대학교 4학년에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10대부터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 조리업계에서 어쩌면 늦은 나이. 일찍 시작한다고 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의 힘을 무시하긴 어려웠을 테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헤드 셰프가 된 지금도 주 7일 업장을 떠나지 않고, 요리책을 탐독하며 공부에 몰두하는 건 그때 생긴 오래된 습관일지도 모른다. 

미국 인디애나의 명문대에서 토목학을 전공하던 그가 돌연 요리를 시작한 이유는 뭐였을까. 그것도 졸업할 때가 다 돼서 말이다. “공대 재학 시절 즐기면서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저 친구들을 절대로 못 따라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뭘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요리를 시작하게 됐죠.”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친구들을 초대해 카프레제샐러드, 봉골레파스타 같은 요리를 메뉴판까지 만들어 대접하던 그였다. 대학 때도 주말마다 친구들, 교수님들을 집으로 초대해 요리해 주는 걸 무척 좋아했다. “뉴욕 CIA 요리학교에 방문했다가 거기서 요리하는 학생들을 보고 ‘죽어도 요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어차피 요리할 건데 공대를 졸업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다니던 대학은 중퇴했어요. 부모님은 심하게 반대하셨지만요.” 단 한순간도 요리를 시작한걸 후회한 적 없었다고 ,지금도 요리하는 매 순간이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반짝이는 눈으로 말하는 손종원 셰프를 보니 요리는 그의 운명이 맞는 듯하다.

손종원 셰프는 주 7일 주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펜넬을 손질 중이다 .
가자미 뫼니에르에 올라가는 봄나물을 세팅 중이다.

CIA에서 1년간 공부한 뒤 첫 인턴을 경험한 곳은 샌프란시스코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베누Benu다. 이 후 덴마크 코펜하겐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노마Noma에서도 3개월간 인턴으로 일했다. 다시 CIA로 돌아가 1년간의 공부를 마쳐야 졸업할 수 있었지만 그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베누의 코릴 리 셰프로부터 정규직 제안을 받아서였다. “코릴 리 셰프님도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지만 정말 똑똑하고 대단한 분이거든요. 그분과 상담도 여러 번 하고 고민한 끝에 베누에 남기로 결정했죠.”

그때부터 손종원 셰프는 바싹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다양한 분야의 요리 경험과 지식을 섭렵했다. 베누에서 2년간 파인다이닝 요리를 익힌 다음에는 스타 셰프 마이클 미나의 스테이크 하우스로 옮겨 1년 6개월 동안 하루에 100개씩 스테이크를 구웠다. 대니얼 패터슨 셰프의 레스토랑 코아Coi에서 일하면서 로컬 식재료를 다루는 법을 배웠고,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퀸스Quince에선 대규모 파인다이닝을 운영하고 직접 정육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김범수 전 레스케이프 호텔 총지배인으로부터 라망시크레 헤드셰프 자리를 제안받았다. 아직은 미국의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더 쌓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기에 선뜻 수락하기 힘들었다고. 그렇지만 흔치 않은 기회임이 분명했다.

그해 7월, 손종원 셰프가 이끄는 라망시크레가 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이유는 명확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오픈 초반엔 서툴고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손종원 셰프는 회상한다. 라망시크레가 문을 연지 1년6개월여. 그동안 메뉴는 물론 인테리어, 조명, 음악, 테이블 배치까지 정말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바꿔왔다. “이제는 다이닝도 서비스도 부끄럽지 않게 내놓을 수 있어요. 손님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드리는 게 저에겐 가장 신나는 일이에요.” 자신있게 말하는 손종원 셰프의 라망시크레,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면 한번 가보기를. 특별한 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좋다.


CHEF’S INSPIRATION 9 

손종원 셰프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

제철 식재료
시장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다. 생각지 못한 제철 식재료를 만나면 새로운 메뉴가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농부시장 마르쉐는 각별하다.
미국에서 일했던 레스토랑들
올바른 요리에 대한 고집, 생각하며 요리하는 법. 당시에 배운 셰프로서의 마음가짐은 지금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카페에서의 여유로운 시간
일요일 저녁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일주일 중 유일하게 누리는 여유다. 그럴 때면 색다른 영감이 떠오르곤 한다.
일상의 음식
평소에 먹는 음식을 새로운 요리로 선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남산 비프가스는 돈가스를 먹다가, 랍스터 미네스트로네는 꽃게탕을 먹다가 생각해낸 메뉴다.
자연의풍경
거부할 수 없는 영감이다. 울긋불긋 물든 산을 보면 접시에 단풍을 올리고 싶고, 눈 쌓인 풍경을 보면 접시에 눈꽃을 올리고 싶다.
요리책
요리책을 모으는 것이 취미다. 음식도 트렌드가 중요한 만큼 신간이 나올 때마다 사보려고 한다. 특히 출판사 파이돈Phaidon과 그린쿡의 책을 좋아한다.
운동
최대한 하루일정을 빽빽하게 채워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주5일정도는 출근전에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한다. 운동하는 시간이 생각하는 여유를 준다.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들과 단골손님들이 나에겐 사랑이다. 그분들이 뭘 좋아할지 생각하면서 메뉴를 짜는 일이 정말 좋고 행복하다. 그러다가 새로운 메뉴가 탄생하는 경우도 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주방의 직원들과 대화를 많이 나눈다. 내가 아무리 많이 알아도 한 사람이 다양한 사람의 생각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협업의 힘을 믿는다.

MUST CHECK POINT 5

라망시크레에서 놓치면 안 되는 5가지

셰프가 들려주는 스토리 – 테이블당 한 번씩은 손종원 셰프가 직접 나가 메뉴에 담긴 스토리를 들려주려고 한다. 이야기를 알고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
붉은 장미를 닮은 인테리어 – 세계적인 디자이너 자크
가르시아Jacques Garcia가 디자인했다. 벽을 장식한 최랄라 작가의 작품은 그림처럼 보이지만 사진이다. 레스토랑 입구의 화려한 꽃 장식은 영국의 유명 플로리스트 토니 마크루Tony Marklew가 계절마다 한국을 방문해 디자인한다.
애피타이저 ‘명동의 작은 한입거리들’과 함께 나오는 명동 거리 모형. 레스케이프 호텔과 신세계백화점, 눈스퀘어 등 명동의 대표 건물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손종원 셰프가 프랑스 파리에 찾아가 직접 고른 식기. – 자크 페르게이Jacques Pergay의 도예가 오렐리아 페르 게이Aurelia Pergay의 작품으로, 연꽃·토마토·호박 등 자연을 닮은 디자인이 특징이다. 한국적인 식기로는 이도의 도자기, 광주요의 접시를 사용한다.
편지 같은 메뉴 – 손님의 이름을 적은 편지 같은 메뉴판과 식사를 마치고 떠나는 손님에게 ‘Bon Voyage’ 라는 메시지와 함께 쥐여주는 호두 마들렌 봉투. 다음 날 아침 마들렌을 꺼내 먹으면서 라망시크레에서의 식사를 한 번 더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L’AMANT SECRET 

1 명동의 작은 한입거리들. 명동 길거리 음식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애피타이저다.
2 명란 달걀찜. 서양식 달걀 커스터드에 명란을 가미했다.
3 장미광어. 구운 광어에 장미와 비트로 비늘 장식을 올렸다.
4 발효한 크림과 캐비아를 바삭하게 구운 브리오슈에 올려 먹는 메뉴.
5 봄나물 가자미 뫼니에르. 8종의 봄나물이 올라간다.
6 메인 메뉴인 남산 비프가스. 돈가스인 척하는 투 플러스 안심 스테이크다.

  • 라망시크레 INFO
    ∙비즈니스 런치 5만5000원, 셰프의 테이스팅 런치 9만원, 셰프의 테이스팅 디너 15만원
    ∙서울시 중구 퇴계로 67 레스케이프 호텔 26층
    ∙월~토요일 낮 12시~오후 10시(브레이크 타임 오후 3~6시), 일요일 낮 12시~오후 3시
    ∙02-317-4003

edit 고서령 – photograph 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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