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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People

김정호의 사녹

2020년 6월 4일 — 0

산•들•논•밭, 네 가지 녹색에서 나고 자란 건강한 식재료로 요리하는 사녹.
정식당에서의 10년을 뒤로하고 뚝심 있게 자신이 하고 싶은 요리를 펼치는 김정호 셰프를 만났다.

김정호 사녹 오너셰프
녹색이 가득한 사녹의 인테리어

맛만 있는 음식 말고 ‘좋은 음식’
당신이먹는음식이곧당신이라는말,들어본적있을 거다. 그렇다면 ‘좋은 음식’을 먹는 일이야말로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사녹의 김정호 셰프를 만나 그의요리철학에대한이야기를나눈뒤로그런생각 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녹은 산•들•논•밭에서 자연적으로 나고 자란 건강한 식재료로 요리하는 한식 비스트로다. 인위적으로 더 빨리, 더 크게 만들기 위해 비료와 촉진제를 주거나 약을 뿌린 식재료는 쓰지 않는다. 조금 못생기고 크기가 작 더라도 스스로 병충해를 이겨내며 자연스럽게 자란 농작물이 훨씬 영양가 있고 몸에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흔히 대중들이 좋아하는 소고기의 ‘마블링’은 소에게 유전자 변형 옥수수 사료를 먹여 만들어낸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좁은 우리에 여러 마리를 가둬놓고 키우는 돼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작은 케이스에 넣어놓고 알만 낳게 하는 닭은
어떤가. 이렇게 길러지는 가축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 질병에도 취약해 항생제 주사를 많이 맞는다. 그런 고기를 먹는다고 당장 몸에서 이상 반응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계속 쌓이다 보면 몸에 좋을리 없다. 김정호 셰프가 요리에 사용하는 소고기는 마블링이 없다. 소는 원래 목초를 먹고 자라는데, 목초만 먹고 자란 소는 (당연하게도) 마블링이 없기 때문이다. 마블링이 많 은소고기에익숙한사람이 사녹의 소고기 요리를 처음 먹으면 질기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씹을수록 고기 고유의 감칠맛과 고소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치아에 끼는 질감이 아니라 씹다보면 다 잘게 잘리는 질감이다.“ 고기는 씹어야 제맛이라는 옛말이 있잖아요. 그 시절엔 유전자 변형 옥수수가 없었기 때문에 고기의 진짜 맛을 알았던 것 아닐까요.”

사녹에서 사용하는 채소와 허브. 모양이 예쁘지 않더라도 영양가 있는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한다.

안타까운 건 아직 한국에 동물복지를 실천하는 소 농장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 다. 김 셰프가 전국으로 수소문해봤지만 지속적으로 거래할 만한 농장은 찾을 수 없었다고. 지금 사녹에서는 호주의 청정 지역에서 100% 목초만 먹인 소고기를 사 용하고 있다. 그래도 돼지 농가 중에선 동물복지 사육 을 지향하는 곳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당장은 도토리를 먹으며 자라는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쓰고 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의 돼지고기를 찾기 위해 요즘도 부지런히 농장주들을 만나는 중이다. “기존 농가들이 오랫동안 거래해온 방식이 있는데, 갑자기 작은 레스토랑 한 곳을 위해 여러가지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더군요. 농장주분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테스트도 해보면서 조율하고 있습니다.”

정식당과 함께 성장한 10년
김정호 셰프가 사녹을 시작하기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그는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정식당의 헤드셰프 출신이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의 세월을 정식당과함께했다.정식당과 인연이 닿기전,열정많은 조리학도였던 그는 분자요리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미국 인턴십을 떠났다. 여러 레스토랑에 무작정 이메일을 보낸 결과 시카고의 유명 분자요리 레스토랑에서 3개월간 무급 인턴으로 일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고. 그때도 그는 자신이 하고싶은 요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인턴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정식당의 주방에 막내로 취직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수셰프가 그만두면서 얼떨결에 수셰프의 몫을 해 내야하는상황이된것. “제가제몫을다해내지못해 서 싫은 소리를 듣거나, 임정식 셰프가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상황을 만드는 게 싫었어요. 제 실력이 부 족한만큼더늦게까지남아서하고,더일찍나와서하 고, 쉬는 날에도 나와서 했어요. 윗사람들의 빈자리가 느껴지지않게하려고정말열심히했던것같아요.”

주방에서 고기를 손질 중인 김정호 셰프

정 식당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김정호 셰프도 더 많은 경험을 할수있었다. 특히2011년 뉴욕에 오픈한 정식당을 2년 동안 이끌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은 사녹의 탄생에 밑거름이 됐다. 미국의 시장과 마트를 다니면서 그토록 다양한 식재료가 있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 것이다. 김정호 셰프가 식재료의 다양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그리고 2~3년 전, 한국에서도 농부들이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을 판매하는 ‘농부시 장 마르쉐’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됐다. “마르쉐의 식재료 로 요리를 해보고 싶은데 정식당은 규모가 큰 레스토랑 이기 때문에 농부들이 소량씩 재배한 작물을 받아서 사 용하는 건 불가능했어요.” 다양한 모양과 맛을 가진 건 강한 식재료로 요리하는 작은 레스토랑을 열고 싶었다. 임정식 셰프도 이런 김정호 셰프의 생각을 지지하고 응원해줬다. 사녹은 그렇게 탄생했다.

익숙하지만 색다른
사녹은 캐주얼한 한식 비스트로다. 파인다이닝 레스 토랑에서만 줄곧 요리해온 김정호 셰프에겐 새로운 시 도다. 정해진 코스를 통해 셰프의 생각을 명확하게 보 여줄 수 있는 파인다이닝도 그만의 매력이 있지만, 먹 고싶은음식만골라편하게이야기나누며즐기는공 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대표 메뉴는 오리들깨누들, 애호박 부라타 샐러드, 무항생제 달걀, 목초 먹인 소갈 비 등이다. 한식에 프렌치 등 서양식 조리법을 응용해 차별화했다. 익숙하지만 색다른 경험. 사녹을 찾는 손 님들이 가장 많이 주는 피드백이다.

오리들깨누들은 전 라도 지방 음식인 오리들깨탕에서 영감을 받았다. 오리와 들깨, 칼국수 면까지 영락없는 한식 재료에 녹진한 크림을 넣어 파스타처럼 만들었다. 전채 요리로 인기 있는 무항생제 달걀은 어머니의 꼬시래기 반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들기름에 볶은 꼬시래기와 반숙 달걀의 진한 노른자가 무척 잘 어울린다. 애호박부라타 샐러드는 정식당에서 채식 메뉴를 준비하다가 만 든 음식이다. “애호박을 저온으로 조리하면 멜론의 향이 많이 느껴져요. 유럽에서 멜론과 하몽, 치즈를 같이 먹는 조합을 애호박에 접목해봤어요.” 애호박을 단순한 국거리 재료로만 생각하는 걸 넘어서 이렇게 샐러드로 먹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식재료를 중시하는 김정호 셰프가 조리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주재료 본연의 풍미를 끌어올리 는것이다. 단단한 채소를 조리할 땐 단순히 삶거나 찌지 않고 저온 조리를 한다. 67°C 정도에서 1시간~1시간 30분정도 천천히 익히면 너무 무르지도 않고 생것처럼 너무 아삭하지도 않은 최적의 식감과 함께 채소 본연의 단맛이 살아난다는 설명이다.

무항생제 달걀 요리를 플레이팅 중이다
애호박 부라타 샐러드에 허브를 올리고 있다

와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사녹을 찾는 손님들의 8할은 와인과 함께 음식을 즐긴다. 사녹의 와인 리스트는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너무 어렵지 않은 와인들로 구성했다. 김정호 셰프가 가장 좋아하는 와인을 몇가지 꼽아 달라고 요청했다. 목초 먹인 소갈비와 잘 어울리는 프랑스 레드 와인 ‘라스토Rasteau’, 오리들깨누들과 페어링하기 좋은 이탈리아 내추럴 와인 ‘카베르네 프랑 Cabernet Franc’, 애호박 부라타 샐러드와 함께 즐기기 좋은 남아공 내추럴 와인 ‘베이비 반디토 킵 온 펀 칭Baby Bandito Keep on Punching’, 버섯 요리에 곁들이기 좋은 이탈리아 레드 와인 ‘일 로쏘다타볼라Il Rossodatavola’를 추천해줬다.

김정호 셰프가 추천한 와인들. 사녹의 대표 메뉴들과 페어링하면 더 맛있다.

지난해 말 사녹은 처음으로 농부시장 마르쉐에 참여해 요리를 선보였다. 사녹을 오픈하는 데 큰 영향을 준 마르쉐를 김정호 셰프는 무척 각별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마르쉐는 지속 가능한 식문화, 더나아가 우리의 후손과 환경에 대한 영향까지 고민하는 곳이에요.” 올해는 매달 꾸준히 마르쉐에 참여해 농부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곳에서 찾은 식재료로 더 다양한 요리를 하고 싶다는 게 그 의 소박한 바람이다. 단순히 맛만 있는 음식이 아닌 영양이 있는 음식, 건강한 음식, 지속가능한 음식을 고민하는 레스토랑. 어렵지만 가치 있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김정호 셰프의 사녹을 응원한다.

1 . 전라도 음식인 오리들깨탕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오리들깨누들. 칼국수 면을 사용했다. 녹진한 크림을 넣어 크림파스타처럼 만들었다.
2. 호박을 저온 조리하면 멜론과 비슷한 향이 난다. 식재료의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애호박 부라타 샐러드.
3.  1 0 0 % 목 초 만 먹 인 소 고 기 는 씹 을 수 록 고 기 본 연 의 고 소 한 맛 을 느 낄 수 있 다 .
4. 전채 요리로 인기 있는 무항생제 달걀. 들기름에 볶은 꼬시래기 위에 반숙 달걀을 올리고 산미가 있는 소스를 더했다.

  • 사녹 INFO
    · 애호박 부라타 샐러드 1만9000원, 오리들깨누들 2만4000원, 목초 먹인 소갈비 4만원, 무항생제 달걀 8000원
    ·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170길 36 2층
    · 오후 6시~자정(라스트 오더 오후 10시 30분), 일요일 휴무
    · 010-6456-1617

edit 고서령 — photograph 박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