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의 눈을 100% 믿는가? 사람의 신체 감각 중에서 가장 많이 의존하는 것이 시각이지만 가장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시각이다. 전보경 작가는 단순화된 형태 속에 우리 감각의 한계와 감정을 담아낸다.
신당동 골목 한편에 위치한 작업실. 공간은 단정하다. 하얀 벽을 배경으로 나무 소재의 가구 작품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고, 작품마다 발하는 색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실뭉치가 칸칸이 정돈되어 있고, 책상에는 작가의 작업 도구들이 아직 온기를 머금은 채로 어지러운 듯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이제 2년이 채 안 된 신인 작가인 전보경은 디자인 스튜디오 피아즈 소속 작가로 초기에는 단순한 목공예를 바탕으로 가구 디자인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전통을 주제로 실을 사용한 소반 작품인 ‘아기자기 시리즈’로 2019 공예트렌드페어에 참가해 주목을 받았다. “전통 가구를 보면 우리 선조들의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어요. 제가 미니멀리즘을 좋아해 그런 간결하고 절제된 전통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풀어보자는 콘셉트로 아기자기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전통의 현대화. 표현은 다소 진부하나 그녀의 작품은 신선하다. 합판을 링 형태로 가공해 실을 한 가닥 한 가닥 반복하여 감는 코어링 기법으로 색면色面을 만들고, 이런 색면들이 모여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 그리고 그 위에 잘 다듬은 나무 상판을 고정시킨다.


“나무는 정직해서 좋아요. 제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만큼 휘고 변형이 생기지만, 반대로 소중하게 다루고 신경 쓰면 그만큼 결도 더 예뻐지고, 마감도 잘 나와요.” 그녀의 작품 속 나무는 시각적으로나 촉각적으로나 어느 한 군데 튀지 않고 깨끗하면서, 질감은 부드러웠다. 소재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섬세함이 느껴졌다.
소반 받침의 컬러는 추상화처럼 기하학적이었고, 조화로우면서 리듬감이 느껴졌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았어요. 색과 면이라는 단순한 표현 속에서 그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이 감명 깊었어요. 이런 표현 방식을 가구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추상화는 우리 전통 가구와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작가는 이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잘 풀어낸 듯했다. “작업할 때 그날 기분에 따라 실을 감아요. 감상적인 날에는 짙은 색의 실을 잡고, 기분 좋은 날에는 산뜻한 느낌의 실을 잡아요.” 그래서일까 어떤 소반에서는 따뜻한 느낌, 어떤 소반에서는 발랄한 느낌, 어떤 소반에서는 시원시원한 느낌을 받아 소반마다 당시 작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갔다. 형태는 비슷해도 하나하나 다른 감정으로 엮어진 것이다.

두꺼운 실을 사용하면 작업 시간도 단축되고, 특별한 소재로 더 잘 인식이 될 텐데 작가는 굳이 얇은 실을 사용하여 가까이 다가가서 보아야만 알 수 있게 만든 것이 의아했다. “실이라는 전통 소재로 반전 매력을 주고 싶었어요. 얇은 실을 감으면 사람들이 멀리서 보았을 때 물감으로 칠한 것이라고 착각을 해요. 그리고 가까이 와서 보고는 실이라는 것에 놀라곤 하죠.” 시각의 착각. 우리는 시각에 매우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이 때론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는 그 한계를 소반이라는 일상의 가구 안에 담았다. 신인 작가로서의 포부를 물었다. “제 작품을 보는 분들이 신선하다고 느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전보경 하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가’라고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외모나 말투는 분명 이제 막 시작하는 작가인데 작품에서 연륜이 느껴지는 것은 내 감각의 한계였을까.

edit 김기석 — photograph 양성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