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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골라 먹는 호빵

2019년 12월 13일 — 0

각양각색, 다양한 색과 맛으로 즐기는 추운 날씨 속에 깨어난 호빵.

text 정재훈 — edit 진찬호 — photograph 박인호

단팥과 야채를 두고 고민하던 시절은 지났다. 삼립에서 8종, 롯데에서 7종의 호빵 신제품을 내놓은 게 2017년 11월이다. 매콤닭강정, 고구마통통, 옥수수통통, 맥앤치즈, 양념치킨, 카라멜, 불짬뽕, 불짜장(삼립)과 김치불고기, 의성마늘햄, 의성마늘햄치즈, 동원참치, 카라멜, 초코, 스위트콘치즈(롯데)를 두고 고를 수 있게 된 게 벌써 2년 전이란 얘기다. 그리고 뉴스에 따르면 올해는 삼립 한 곳에서 출시한 호빵만 무려 24종이다. 올겨울 새로 나온 호빵을 다 맛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선택의 폭이 다양해졌다.

불과 2년이지만 호빵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대형 마트가 편의점에 밀리고 있는 게 확실하다. 올해 6월 드디어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체 매출 비중에서 편의점 3사(CU, GS25, 세븐일레븐)가 18.8%로 18.6%를 기록한 대형 마트 3사(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를 제쳤다. 수치상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호빵 신상품 뉴스를 보고 사러 간 사람이 체감하는 편의점과 마트의 차이는 엄청나다. 편의점 호빵의 세계는 뉴스에서 본 모습 그대로다. 순창고추장호빵, 담양식떡갈비호빵, 씨앗호떡호빵 같은 지역 명물을 응용한 호빵은 물론이고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한 조합의 쏘세지야채볶음만빵, 큐브스테이크만빵에 공화춘짬뽕호빵까지 눈에 띈다. 밥 대신 호빵을 먹고 다시 디저트 호빵으로 식사를 마무리할 수도 있다. 허쉬초코호빵, 단호박크림치즈호빵, 고구마치즈호빵 중에 어떤 걸 고르느냐가 고민일 뿐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호빵이 출시되기 시작하는 초겨울에 가끔 때를 잘 맞춰 가면 사은품으로 쥬시쿨까지 준다.

호빵의 종류만 다양해진 게 아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호빵의 포장 단위도 이제는 1개입이 주를 이룬다. 먹는 방식도 더 간편해져서 포장째 전자레인지에 넣고 20~30초만 돌리면 끝이다. 하지만 대형 마트는 기존의 4개 또는 8개씩 포장된 야채호빵과 팥호빵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뉴스 속 신상 호빵의 세계는 편의점에만 존재한다. 역사 저술가 하인리히 E. 야콥은 자신의 책 <빵의 역사>에 “인류는 동시에 여러 시대를 살고 있다”고 썼지만 우리가 먹는 호빵도 동시에 여러 시대를 살고 있다. 대형 마트에선 과거에, 편의점에선 현재에.

호빵 맛의 과학

호떡, 호밀, 호주머니의 ‘호’는 오랑캐란 뜻으로 원산지가 청나라 또는 중국이란 사실을 담고 있다. 하지만 호빵은 제품을 처음 출시한 삼립식품에서 만들어낸 이름이다. 음식점에서 팔던 찐빵을 공장제 빵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호호 불어서 나눠 먹는 빵’이라는 의미로 지어낸 것이다. 국어학자 한성우는 자신의 책 <우리 음식의 언어>에서 호빵의 작명법을 못 미더워 한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지못미로 쓰듯 ‘호호 불어서 나눠 먹는 빵’을 줄여서 이름을 짓는다면 ‘호불나빵’이라야 이치에 닿는단 거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보통명사화한 호빵을 다른 이름으로 바꿀 필요는 없을 듯하다. 작명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호빵이 중국에서 유래한 음식이란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축구가 영국에서, 유도가 일본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그 스포츠를 즐기는 데 별 영향이 없듯 음식의 유래도 딱 그 정도로 생각하고 즐기면 된다).

삼립식품 창업자 허창성이 일본에서 공장 방식으로 제품화한 찐빵이 판매되는 걸 보고 영감을 얻어 1971년 호빵을 출시했다지만 중국에서는 2000년 전부터 증기로 쪄내는 방식의 찐빵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10~20분 동안 빠르게 쪄내는 것만으로 반죽을 충분히 익힐 수 있다. 발효시킨 밀반죽 덩어리의 표면에 뜨거운 증기가 닿으면서 물방울로 응축될 때 많은 양의 열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온도는 100℃에 머무르므로 마이야르 반응이나 캐러멜화 같은 갈변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증기로 찐빵의 겉면은 오븐에 구운 빵과 달리 흰색을 유지한다. 풍미도 다르다. 초콜릿과 견과를 속으로 넣은 허쉬초코호빵의 맛이 생각보다 싱겁게 느껴지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찐빵에는 단맛이나 감칠맛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향미 물질이 적다. 똑같은 냉동 만두를 군만두로 먹을 때 찐만두보다 풍미가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맛의 비교 기준으로 삼을 만한 원형이 되는 음식이 무엇인가도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큐브스테이크, 쏘세지야채볶음 호빵이나 공화춘짬뽕호빵을 먹고 실망하면서 야채호빵보다 맛이 없다고 결론짓는 시식평이 의외로 많다. 짬뽕은 물론이고 스테이크이나 소시지야채볶음을 찐빵에 싸 먹는 맛은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이에 비하면 전에 출시되었던 고기부추찐빵, 고추잡채찐빵은 중국음식점에서 부추잡채나 고추잡채를 꽃빵에 싸 먹어본 경험과 연관짓기 쉽다. 야채호빵은 왕만두다. 인간에게 맛은 기대한 대로 느끼는 것이며 그 기대는 비교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야채호빵은 만두 맛과 비슷하면 일단 성공이지만 공화춘 짬뽕과 큐브스테이크 호빵은 짬뽕과 스테이크 맛을 기준으로 삼으니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떡방아호빵과 고구마치즈호빵은 속에 넣은 재료는 다르지만 쫄깃한 식감 면에서 비슷하고 맛의 패턴도 과거 인기를 끈 떡방아빵, 찰떡쿠키와 흡사하다. 이들 기존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신제품 호빵도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유로 나도 이번 호빵 시식에서 고구마치즈호빵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호빵 어떻게 먹을 것인가

밥 대신 먹는 게 나을까, 간식으로 먹는 게 좋을까? 편의점 기준으로 호빵의 가격은 개당 1100원에서 1500원 선이다. 열량은 200~250kcal에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함량은 하루 영양성분 기준치의 10%를 조금 웃도는 정도다. 최근 출시된 호빵을 잘라 단면을 보면 소의 비중이 전보다 확연하게 늘어나기는 했지만 고기가 들어간 제품이나 단팥 소를 넣은 제품이나 단백질 함량에는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 개당 단백질 7g이고 큐브스테이크만빵이 12g으로 함량이 높다(큐브스테이크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리지만 고기를 더 넣은 게 맞긴 맞나 보다). 팥이나 고구마치즈 호빵에는 당류를 포함한 탄수화물이 더 많고 고기 또는 야채 호빵은 나트륨 함량이 높은 편이다. 보름달 같은 공장제 빵류가 탄수화물과 지방 쪽으로 조금 치우친 것에 비하면 호빵의 영양 구성은 밸런스가 좋다. 평소 영양 섭취가 부족한 사람에게 호빵은 간식으로 훌륭하다. 다만 영양 과잉을 걱정하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간식보다는 밥 대신 호빵을 먹는 게 나을 듯하다. 참고로 양념갈비호빵 두 개면 외식영양성분 자료집에 나오는 참치김밥 한 줄과 열량 및 영양성분 면에서 비슷한 수준이다.

요즘 호빵을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뒷면 포장에는 찜솥, 보온밥솥, 에어프라이어, 전자레인지까지 4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전자레인지에 뜯지 않고 그대로 돌려 먹어도 되는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안내문이 적혀 있는 제품의 포장재질은 전자레인지용 폴리프로필렌이며 환경호르몬으로 의심받는 비스페놀A나 프탈레이트가 들어 있지 않다. 미심쩍으면 제품 뒷면의 보관 방법 아래 적힌 포장재질을 확인해보면 된다. 전자레인지의 출력에 따라 20~30초를 가열하는 동안 발생하는 수증기는 호빵을 골고루 데워주기에 충분하지만 유해 성분을 용출시키지는 않는다. 전자레인지용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용기에 옮겨 담아 데우는 것보다 전자레인지용 봉지째 돌리는 게 훨씬 안전하다. 맛을 다르게 즐기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안전성이 걱정되어 전자레인지에 호빵을 데우는 걸 피할 이유는 없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SPC삼립에서 올겨울 출시한 호빵은 24종이지만 실제 기사 속의 호빵 수를 아무리 세어봐도 신제품의 수는 19종이었다. 나머지 5종의 호빵이 뭔지 알려주는 기사는 없었다. 회사 측에 전화로 문의했지만 담당자와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고객상담실에서 받은 답변도 23종으로 모자랐다. 호빵 출시에 대한 기사가 매체에 연이어 실린 게 지난 9월 말부터였는데 아직까지 사실 확인이 안 되었다는 건 조금 답답한 현실이다. 내년 이맘때는 호빵 신제품뿐만 아니라 제대로 취재한 식품 기사의 수도 늘어나길 바란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