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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덕죽의 허우

2019년 12월 17일 — 0

‘최초’라는 말이 어울리는 후덕죽 셰프가 르 메르디앙으로 둥지를 옮겼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허우를 오픈하고 손님들과 좀 더 가깝게 만나고 있는 후덕죽 셰프를 만났다. 요리하는 후덕죽 셰프에게 ‘적당히’란 없었다.

후덕죽 셰프는 5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주방을 지켰다. 그 기간 동안 요리를 하면서 불도장을 한국에 최초로 소개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 ‘불도장=후덕죽’이라는 표현에 반기를 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셰프는 정년이 없다. 개인의 노력과 의지만 있으면 오래 일할 수 있는 분야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주방을 책임져야 하는 셰프는 어려운 자리다. 대단한 일을 해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한자리를 오랫동안 우직하게 지킨 것만으로도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후덕죽 셰프는 호텔 신라에서 상무로 40년 넘도록 한자리를 지키다 올해 초 르 메르디앙 호텔 부사장이 됐다. 르 메르디앙은 호텔 신라와는 위치부터 즐겨 찾는 연령층까지 달라 업계에서는 꽤 이슈가 된 이동이었다. 그렇게 허우가 대중에게 공개된 지 어느덧 6개월이 지났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지치지 않는 열정, 새로운 시도 덕분에 후덕죽 셰프의 허우는 앞으로 더 비상할 일만 남았다. 이대로라면 그의 정년은 앞으로도 10년은 남은 듯 보인다.

하루에 30개 한정으로 판매되는 허우의 시그너처 메뉴 불도장.
하루에 30개 한정으로 판매되는 허우의 시그너처 메뉴 불도장.

후덕죽의 허우를 만들다

르 메르디앙 호텔의 F층에 있는 허우. 의심할 여지 없이 르 메르디앙 호텔의 메인 레스토랑이다. “‘허우’는 제 성을 따서 만든 이름이에요 ‘후侯’의 중국어 발음이죠. 제 이름을 걸고 하는 레스토랑이라 음식에 더 정성이 들어가고, 책임감이 생깁니다.” 그는 중식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 허우는 후덕죽 셰프의 요리 내공이 고스란히 담긴 유일무이한 공간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고급스러우면서도 딱딱하지 않다. “그간 다져온 내공을 토대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층에게 건강한 중식의 진수를 선보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르 메르디앙 호텔에 허우를 오픈한 것은 저에게도 도전이었습니다.” 재료 준비부터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중식, 모든 메뉴들에 더욱 정성을 기울였다. 많은 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온 정성을 쏟아부어 소량의 음식을 귀하게 판매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요리 중인 허우의 요리사들.
각자의 자리에서 요리 중인 허우의 요리사들.
주방에서 능숙한 손길로 재료를 준비 중이다.
주방에서 능숙한 손길로 재료를 준비 중이다.

행복한 요리사 후덕죽

먹는 사람에게는 그저 먹는 일이지만 위험한 도구, 뜨거운 불을 다루는 요리사로서의 삶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요리가 일상이고,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인 후덕죽 셰프는 아직도 여전히 요리하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저는 늘 요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셀 수 없는 다양한 재료를 기본으로 다채롭게 변주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재미죠. 처음 접하는 식재료의 역사와 유래를 공부하면서 새로운 요리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낄 때가 많아요. 무엇보다 제 요리를 먹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보람도 느낍니다. 다시 태어나도 저는 요리사가 될 것 같아요.” 한 분야에서 50년을 일하고, 이제 그가 만들 수 없는 메뉴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새로운 식재료를 탐구하고, 메뉴를 창작하기 위해 노력한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미각이 둔감해질 수밖에 없는데도 후덕죽 셰프는 자신만만하다. “저는 담배를 안 하고, 술도 꼭 필요한 경우에만 마시는 편이에요. 정해진 일과에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헬스장에서 운동도 합니다. 틈나는 대로 산책도 게을리하지 않고요.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해서 그런지 저는 오히려 지금 더 자신 있습니다.” 허우의 런치 운영 시간은 오전 11시 30분부터다. 후덕죽 셰프의 출근 시간은 오전 9시, 준비가 다 된 주방에서 점검만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데 그는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서 예약 상황을 체크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오픈 시간 10분 전에는 모든 요리사들과 함께 전체 미팅을 진행한다. 어제 방문했던 손님의 피드백이나 오늘 방문할 손님의 특이 사항 등을 체크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영업이 시작되면 손님에게 제공되는 음식 하나하나 맛을 직접 체크합니다. 요리를 오래 하다 보니 저를 보고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많은 편이에요. 맛을 체크하는 것은 오래된 단골을 위한 저의 약속입니다. 기대 이상의 맛을 보여드리고자 항상 빼먹지 않는 루틴입니다.” 후덕죽 셰프는 그를 찾아온 손님에겐 홀에 나와 직접 인사를 건네는 편이다. 그의 음식을 기대하고 방문한 손님을 위한 후덕죽 셰프의 책임감이자 배려의 표시다. “가끔씩 특별 메뉴를 주문받기도 하고, 다 드신 후에는 마중을 나가기도 해요. 이렇게 디너 타임까지 보내고 9시쯤 퇴근합니다.” 거의 12시간을 주방에서 보낸 그는 퇴근 후에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11시쯤 잠이 든다. 규칙적인 생활을 셰프의 자기 관리라고 생각하는 후덕죽 셰프답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해진 일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후배 요리사들에게 요리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후덕죽 셰프.
후배 요리사들에게 요리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후덕죽 셰프.

음식으로 건강을 다스린다

후덕죽 셰프가 지금껏 놓지 않고 있는 가치관은 ‘의식동원醫食同源’이다. ‘의약과 음식은 본래 그 뿌리가 하나다’라는 뜻으로 음식을 통해 건강을 다스린다는 그의 신념이다. 맛있는 요리, 기억에 남는 요리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요리를 만드는 것이 그에게는 최우선이다. “의식동원은 제 요리 인생에서 뗄 수 없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 가정식은 일상적인 메뉴임에도 한약재를 많이 사용합니다. 한약재 자체를 보양을 위한 재료가 아니라 식재료의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제가 평상시 먹는 음식으로 보양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후덕죽 셰프의 이런 신념은 허우의 음식에도 반영된다. 급격히 추워진 계절에는 기관지에 좋은 디저트 ‘천패설리’로 손님의 건강을 챙긴다. 천패설리는 감기 예방을 위해 아이들에게 배를 달여 먹인 것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고급 한약재인 천패와 배를 쪄서 만든 달콤하고 건강한 디저트다. 달콤한 차처럼 편하게 즐길 수 있지만 기관지염, 가래, 기침, 편도선염에 효과가 좋아 맛있는 약이나 다름없다.

그날그날 필요한 재료를 주방에 프렙한 모습.
그날그날 필요한 재료를 주방에 프렙한 모습.
주방 상황에 따라 바뀌는 오늘의 후식.
주방 상황에 따라 바뀌는 오늘의 후식.

고독한 싸움을 위한 격려

겹겹이 쌓인 시간만큼 후덕죽 셰프에게 요리를 배우고 싶어 하는 후배 요리사들이 수없이 많다. 촬영을 위해 방문한 허우의 주방에서 후덕죽 셰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선배 요리사였다. “다양한 후배들이 저를 지나쳐갔어요. 저보다 더 훌륭한 후배 양성에 항상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요리는 기본적으로 엄격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에게도, 음식에도 엄격한 잣대를 댈 수 있어야 하죠. 반드시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을 거쳐야 합니다. 제 눈에는 조금 아쉽더라도 시대가 변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허우의 브레이크 타임은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총 3시간. 이 시간 동안 요리사들은 식사를 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디너 타임을 위한 재료 준비를 시작한다. 손님을 받지 않는 시간이지만 요리사들에게는 잠깐 멈춤만 있을 뿐 푹 쉬어갈 수는 없는 찰나의 시간인 것이다. 후덕죽 셰프와 허우의 요리사들은 조금 더 맛있는, 조금 더 건강한 요리를 손님에게 내기 위해 쉼 없이 일하고 있다. SNS로 오늘을 기록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진으로 소통하는 요즘, 후덕죽 셰프 역시 고민이 많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맛있어 보일까 싶어 직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눈다. “주방에서만 결정하지 않고, 홀과 마케팅 팀까지 관련 부서가 모두 모인 자리를 만들어요. 소스 및 요리 전체에 대한 밸런스를 고려해 어떤 접시에 어떤 음식을 플레이팅할지를 정하죠. 긴 몸집의 왕새우 요리는 편하게 썰어 먹는 것이 중요해서 긴 접시로 정하는 식이죠. 주방의 생각으로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런치 테이스팅 코스의 양갈비 메뉴. 손님에게 가기 전 마지막 점검 중이다.
런치 테이스팅 코스의 양갈비 메뉴. 손님에게 가기 전 마지막 점검 중이다.
에그 타르트와 함께 서브되는 오늘의 후식.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다른 후식이 제공된다.
에그 타르트와 함께 서브되는 오늘의 후식.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다른 후식이 제공된다.
마지막 플레이팅 중인 샐러드.
마지막 플레이팅 중인 샐러드.
후덕죽 셰프가 젊은 층의 고객을 위해 특별히 만든 신메뉴 챠오멘.
후덕죽 셰프가 젊은 층의 고객을 위해 특별히 만든 신메뉴 챠오멘.

맛있는 음식을 위한 여행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 후덕죽 셰프는 쉬는 날이면 시간을 내 미식 여행을 자주 떠난다. 그가 추천한 미식 여행지는 경기도 이천. “이천은 도자기가 유명한 도시잖아요. 도기에 소담스럽게 담긴 한정식을 맛보면서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어요. 또 반찬 종류가 놀랄 정도로 많은 전라도 여행도 종종 하지요.” 중식 마스터 셰프가 추천하는 한식 여행지라니, 이천이 새롭게 느껴진다. 해외 미식 여행지로는 역시 홍콩과 광저우를 추천한다. 특히 광저우는 최근 들어 홍콩 대비 가격 부담은 적으면서 수준급 이상의 음식들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어 떠오르는 미식 성지다. “‘식재광주食在廣州’라고 ‘먹는 것은 광저우에 있다’는 말이 있어요. 요즘 광저우를 보면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후덕죽 셰프는 오늘도 르 메르디앙 서울의 허우를 광저우처럼 먹는 것이 모두 모이는 성지로 만들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이다.

홀 손님에게 제공되기 전 후배 요리사들과 함께 플레이팅 중인 후덕죽 셰프.
홀 손님에게 제공되기 전 후배 요리사들과 함께 플레이팅 중인 후덕죽 셰프.

허우 INFO
호텔 신라의 ‘팔선’을 42년간 이끌어온 후덕죽 셰프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오픈한 레스토랑. 시그너처 불도장을 비롯해 보양식과 주류 페어링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중식 레스토랑으로는 드물게 소믈리에가 상주하여 요리와 잘 어울리는 주류를 추천받을 수 있다. 허우의 시그너처 메뉴인 ‘허우 고법 불도장’은 오골계, 자연송이, 건관자, 건해삼, 샥스핀 등 귀한 산해진미를 6시간 이상 고아낸 보양식이다. 불도장은 물론, 젊은 층에게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여러 메뉴를 출시하는 등 색다른 시도를 이어가는 중이다.
· 런치 테이스팅 코스 5만5000원, 챠오멘 2만5000원
·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120 르 메르디앙 서울 F층
· 02-3451-8488

1. 두툼한 식감이 인상적인 사천식 어향 소스 양갈비.
2. 흑식초를 곁들인 상큼한 오리 샐러드.
3. 특유의 탱글탱글한 식감을 살린 사천식 마라소스 왕새우.
4. 맛과 비주얼을 모두 잡은 디저트 에그 타르트와 오늘의 후식.
5. 불향을 입혀 더욱 입맛을 돋우는 오채 춘권 소고기말이.
6. ‘제철 통영 굴’을 풍성하게 넣고 궁합이 좋은 배추와 함께 굴의 풍미를 살려낸 굴짬뽕.
7. 고급스러운 맛이 돋보이는 챠오멘. 윤기가 도는 비주얼에 매콤한 맛을 더해 새롭게 선보이는 메뉴다.
8. 흑식초로 맛을 낸 새우 샐러드. 오리와 새우 중 선택 가능하다.

edit 류창희(프리랜서) — photograph 박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