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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레인 이성우의 맛 대 맛

2019년 12월 3일 — 0

무대 위에서는 불도저같이 거침없는 천생 로커, 러블리즈 앞에서는 마냥 수줍어 코를 찡긋거리는 아재 팬. 좀처럼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양극단의 매력을 지닌 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의 맛.

인디 문화를 대중에 알린 1세대 펑크 밴드 노브레인의 등장은 한국 대중문화사에 방점을 찍을 만한 일이었다. 1996년 데뷔한 노브레인은 기존의 체제와 관습에 반발하는 반항적인 이미지로 N세대를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았다. 과격하고도 실험적인 노브레인의 음악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혀를 내둘렀고 젊은 세대는 열광했다. 그들 아닌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새파란 기상과 기백의 젊은 밴드는 23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저항하던 기성세대가 되어 돌아왔다. 2016년 정규 7집 발매 후 3년 만에 새로운 정규 앨범인 <직진>과 함께. 노브레인 특유의 분노하는 에너지가 가득 차 있던 7집과 달리 이번 앨범은 한결 다채롭고 밝아진 분위기가 눈에 띈다. 육중완 밴드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강준우는 노브레인의 신보를 듣고는 “이제 음악 더는 안 할 것처럼 보여줄 거 다 보여준 느낌”이란 감상을 전하기도 했다.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온 이성우를 그의 단골집 ‘잠깐주점’에서 만났다. ‘와장창’ 문을 열고 쏟아질 거란 기대와는 달리, 차분하고 점잖은 얼굴이었다.

아기자기한 잠깐주점의 외관.
아기자기한 잠깐주점의 외관.
조현보 셰프의 요리를 만날 수 있는 연남동의 잠깐주점.
조현보 셰프의 요리를 만날 수 있는 연남동의 잠깐주점.

불혹을 넘긴 로커

노브레인의 8집 <직진>은 스카, 펑크 록, 피아노 발라드, 포크송까지 개성 강한 수록곡이 수두룩하다. 구태여 하나의 콘셉트로 다듬어지길 거부하는 곡들은 그야말로 노브레인의 ‘직진’ DNA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보여줄 거 다 보여준 것 같다’는 동료 뮤지션 강준우의 말이 납득이 가는 대목. 마치 모둠 메뉴처럼 장르는 다채롭지만 그 저변에는 노브레인만의 색채가 깔렸다. “기본적으로 어려운 음악은 안 하고 싶어요. 저희가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을 표현하자면 시끄럽고 한 방에 알기 쉬운, 관통하는 음악들인 것 같아요. 음악엔 음악을 하는 사람의 성격이 묻어나거든요. 저희는 빙빙 꼬거나 돌려 말하는 스타일은 못 되는 거죠.” 23년 동안 음악을 하며 변하지 않은 것은 역시 무대에 올라가면 관객이 누가 됐든 간에 죽기 살기로 한다는 거다. 23년 세월이면 장인이고 노포 맛집 격이니 노브레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무대 위에선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다. 물론 긴 세월에 달라진 것도 있다. “아무래도 취향이 변했어요. 나이를 먹어가고 아이를 가진 친구들도 생기고, 주변 환경이 달라지다 보니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같아요.” 변화는 음악에도 영향을 준다. 과거 노브레인의 음악이 베일 것처럼 모나고 돌출됐다면 오늘날은 한결 숙성되고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기 노브레인을 생각하신 분들은 거칠고 반항적인 음악을 많이들 생각하시죠. 그때로 돌아가달라는 팬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당시 음악으로 표현한 절박함과 날것의 감정들은 그때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 그렇게 한다면 그건 연기죠. 거짓말이에요.” 이성우는 이번 앨범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으로 ‘죽어버릴만큼’을 꼽았다. 노브레인 역사상 최초로 처음부터 끝까지 피아노로 이어지는 발라드 곡이다. “이 곡을 무대에서 부를 때마다 현기증이 오면서 묘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게 돼요. 발라드에도 여러 장르가 있는데 이건 저희 밴드에 맞게 절규를 하는 스타일이라 많은 분들이 꼭 들어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로커의 사생활

이성우는 앨범 발매 전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록 스피릿 충만한 무대 위 모습과 상반된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가령 노란 장판, 오래된 장롱 등 전에 살던 사람의 살림새들을 뜯어 만지지 않고 그대로 생활하는 푼푼함이라든가 오프로드 차량을 몰 것 같은 분위기로 버스를 애용하는 천진한 모습은 인간 이성우를 새로 읽게 했다. 무엇보다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인생을 주도하는 모습이 세속의 때 없이 근사하게 늙은, N세대 아이돌 같았다. 이성우의 여러 모습 중에도 가장 압권은 아이돌 그룹 러블리즈 ‘덕후’로의 실체다. “4년 전쯤 제주도에서 공연이 끝나고 지친 몸으로 방에 들어와 TV를 켰는데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러블리즈가 나왔어요. TV에 대고 ‘나 이쁘지’ 하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수줍게 노래하는 모습에 묘하면서도 온갖 감정이 들더라고요. 처음엔 ‘이게 뭐지’ 부정했어요. 그 초기 증상을 전문 용어로 ‘입덕부정기’라고 하죠.(웃음)” 흔히 반대에 끌린다고 하지 않나. 예기치 못한 아재 팬의 ‘덕밍 아웃’에 대중들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열화와 같은 지지를 보냈다. 평소 일과를 마친 후나 중간에 잠깐 쉴 틈이 생기면 러블리즈 공연 영상을 찾아보는 것은 당연하고 간혹 가다 일반인 덕후들을 만나서 굿즈를 교환한다. 그의 ‘덕질’ 중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일은 역시 함께 공연을 한 것일 터. 2017년 MBC 연말 시상식인 가요대제전에서 노브레인은 러블리즈와 함께 합동 공연을 선보이며 ‘성덕(성공한 덕후)’을 인증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성우에게 러블리즈란 어떤 존재일까? “집에 들어올 때 사람들이 보통 지쳐서 들어오잖아요. 저는 러블리즈 영상을 볼 생각에 기운이 나요. 집 문을 들어서서 저를 반기는 반려견이 주는 기쁨, 환희와는 별개의 감정, 말하자면 마음의 안식처 같은 거죠.(웃음)”

러블리즈 앨범과 굿즈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러블리즈 앨범과 굿즈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로커의 미식 생활

인간 이성우의 또 다른 발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 혼자 산다>에는 평소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는 그가 직접 음식을 해 지인들을 대접하는 장면이 나왔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난 장소 ‘잠깐주점’은 <나 혼자 산다>에도 나왔던 곳이다. 화면 속 이성우는 이곳에서 ‘아츄특공대(러블리즈의 곡 제목 A-Choo의 아츄다)’ 멤버인 지인들과 음식을 먹고 러블리즈 영상을 함께 감상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일이 바쁘셔서 동생과 단둘이 남겨진 날이 많았어요. 동생과 먹으려고 집에 있던 재료로 음식을 하다 보니 요리도 늘고 점점 재미도 붙었죠.” 그가 집에서 즐겨 해먹는 메뉴는 짜장국수와 소고기뭇국이다. 그중 짜장국수는 어릴 적 동네 노포에서 먹던 맛을 더듬어 그의 식으로 재현한 것이다. 중식 면 대신 얇은 소면을 사용하는 것과 춘장에 설탕을 전혀 넣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설탕을 넣은 음식은 처음엔 맛있는데 단맛이 혀를 약간 지치게 한다고 해야 할까요. 단맛으로 현혹시키는 음식은 즐기지 않는 것 같아요.” 짜장국수와 마찬가지로 그가 자주 즐긴다던 소고기뭇국은 우리가 흔히 아는 하얀 소고기뭇국이 아닌 그의 고향인 경상도식으로 고추기름 내 칼칼하게 끓인 빨간 소고기뭇국이다. “나이를 먹더니 국물 요리가 좋아졌어요. 한국 사람들은 음식으로 몸을 따뜻하게 덥히는 경향이 있잖아요. 보편적으로 서양에서는 적당한 온도의 음식을 내는 반면 우리는 팔팔 끓는 국물을 후후 불어 먹어요. 냉장고에 있는 차가운 샌드위치와는 비견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한 음식이 주는 힘이 분명 있어요.” 그 스스로는 미식가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는 자신만의 맛집 좌표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술술 읊었다. 볶음밥과 제철 굴짬뽕은 이품, 깐풍기는 진진, 차돌짬뽕이 당길 때는 당가원으로 간다. 라멘이 당기는 날엔 맑은 닭 육수를 기가 막히게 뽑는 연남동의 사루카메로 향하고 한식은 망원역 옆에 위치한 서교고메가 제일이란다. 점심에는 순댓국밥, 저녁엔 순대와 제철 과일, 햄, 명태식해를 곁들인 순대 플래터가 유명하다. 농후한 순대와 시원한 명태식해를 번갈아 먹다 보면 젓가락질이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수많은 맛집 리스트 중 그가 가장 자주 찾는 곳은 역시 잠깐주점이다. 이곳에서는 위스키를 팔지 않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한쪽 벽면에 먹다 남긴 위스키 병이 가득하다. 바로 이성우의 것이다. 하나씩 맡겨두고 먹다 어느새 벽을 가득 채우게 됐다니, 그가 이곳을 얼마나 자주 찾는지 알 만하다. 이곳에서 그가 꼭 빼놓지 않고 주문하는 메뉴는 무덤닭이다. 평소 치킨을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이곳의 닭 요리만큼은 예외다. 이외에도 잠깐주점에는 계절 메뉴로 면처럼 얇게 썬 건두부와 푸짐한 해물을 넣고 특제 마라 소스로 조리한 마라해물, 소 힘줄을 3시간 이상 푹 끓여 쫀득하면서도 살살 녹는 식감이 인상적인 스지탕 등 매력적인 메뉴가 가득하다. 이성우와 잠깐주점의 조현보 셰프는 손님과 사장으로 인연을 맺게 된 이후 절친한 사이가 됐다. 이성우에게는 유독 요리사 지인이 많은데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맺게 된 인연들이다. “저는 기본적으로 요리하는 분들에게 존경심이 있어요. 음식을 하는 일이 더우나 추우나 식재료 손질에 불과 싸우면서 하는 거의 고행이에요. 물론 음식을 엉망진창으로 하는 사람은 해당 안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요리사분들께 감사하는 마음과 존경심을 가졌으면 해요.”

이성우는 중년으로 접어든 지금도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무대에서 날뛰고, 절규하듯 노래한다. 맛없는 건 가차 없이 혹평하고 제대로 된 음식엔 존경을 아끼지 않는다. 빙빙 돌려 말하기를 싫어하고 사근사근한 음악보다 귀를 찢는 시끄러운 음악이 좋다. 팔팔 끓는 소고기뭇국과 혀를 가격하는 마라 소스, 설탕 없는 짜장국수같이 아양을 떨지 않고 본디 제 모습으로만 이야기하는 것들에 마음을 쏟는다. 저답게 ‘직진’하는 것만이 불혹을 넘긴 이성우가 사는 법. 이성우는 이성우밖에 못하기에, 앞으로 더 오래도록 보게 될 것 같다.

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가 그의 아지트 연남동 잠깐주점에서 위스키 하이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가 그의 아지트 연남동 잠깐주점에서 위스키 하이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잠깐주점의 시그너처 요리 무덤닭과 마라해물.
잠깐주점의 시그너처 요리 무덤닭과 마라해물.
음식을 맛보며 대화를 나누는 이성우와 조현보 셰프의 모습.
음식을 맛보며 대화를 나누는 이성우와 조현보 셰프의 모습.

잠깐주점
잠깐주점에서는 미식가 이성우가 인정한 조현보 셰프의 다양한 요리를 만날 수 있다. 마라해물과 스지탕은 셰프의 오랜 연구가 역력히 빛나는 메뉴.
· 스지탕 1만9000원, 마라해물 2만1000원, 무덤닭 1만7500원
·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32길 8
· 오후 5시~새벽 3시(재료 소진 시 조기 마감)
· 02-3142-7942

edit 장은지 — photograph 박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