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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채소 전문가의 뿌리채소 이야기

2019년 11월 14일 — 0

보라색, 노란색, 빨간색, 갈색 등 온전히 자신의 빛을 내는 뿌리채소가 땅속에서부터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그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interview 1

채소생활

채소를 키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와 관련된 공부를 하다 보니 농사야말로 본질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되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작물을 키우며 채소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채소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의 채소는 규범적이고 단위적이다. 채소는 단지 몸에 좋아서 먹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다양성과 풍부한 맛, 아름다움, 신비성, 재미 등 무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채소가 가진 재밌는 이야기가 많은데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채소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채소의 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었다.

채소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고 했는데, 계절에 어울리는 뿌리채소가 가진 이야기를 부탁한다.
야생의 ‘식물’이 인간화, 인문화된 것이 바로 ‘작물’이다. 야생의 식물이 인간의 작물이 되기까지, 다시 말해 인간의 삶과 문화에 관계를 맺으며 각각의 작물들은 고유의 이야기를 품게 되었다. 가령 당근 같은 경우에도 처음부터 주황색의 매끈한 모양이 아니었다. 당근의 원종은 보라색에 가까운 뿌리였고, 그중 흰색과 노란색도 더러 섞여 있었다. 그런 당근을 네덜란드인들이 개량해 자신들의 국가를 상징하는 오렌지색 당근으로 만들었고, 지금의 정형화된 당근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채소를 키우다 보면 각 채소들의 특성이 있을 것 같다. 뿌리채소의 특성은 무엇인가.
지금 이 시기가 뿌리채소만의 빛깔과 맛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뿌리채소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뿌리채소는 서늘한 시기에 잘 자란다. 순환하는 사계 속에 서늘한 시간은 두 차례 온다.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하지만 봄과 달리 가을은 무더위가 누그러지면서 서늘한 시간이 찾아오는 계절이고, 이때 뿌리채소가 가장 뿌리채소다운 맛과 식감을 낸다. 그리고 맛뿐만 아니라 품종 고유의 색을 가장 잘 드러내기도 한다.

채소를 더욱 건강하게 키우기 위한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노하우라기보다는 지키고 싶은 원칙이 있다. 우선 토양을 잘 돌보고 기르는 일이다. 채소 기르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땅 기르기이다. 토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토양을 돌보는 데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있다. 좋은 땅은 스스로 좋은 채소를 길러주기 때문이다. 뿌리채소의 경우에는 땅이 더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토양에 따라 채소가 자라는 발육이나 맛도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뿌리채소가 자라기에 좋은 토양은 어떤 것인가.
토양의 비옥함 다시 말해 토양의 건강함을 이야기할 때 토양의 물리성과 화학성, 생물성, 이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 번째 토양의 물리성이 좋다는 것은 토양이 깊고 부드럽다는 얘기다. 깊고 부드러운 땅에서 뿌리채소는 땅속 깊숙이 뿌리를 내릴 수 있고, 제 모양을 갖출 수 있다. 두 번째 화학성은 충분한 영양분이다. 영양분이 충분해야 뿌리채소도 잘 자랄 수 있다. 세 번째 생물성은 다양한 미생물과 소생물들이 살아 있는 것을 뜻한다. 생물성이 가장 중요한데 사실 이 생물성이 앞서 화학성과 물리성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 뿌리채소가 잘 자란다.

채소를 키울 때 철학이 있다면.
철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울 것 같고, 지속 가능한 채소 농사를 짓고 싶다. 생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채소 농사를 지어나가고 싶다.

요즘은 많은 청년들이 귀농을 선택하고, 다루는 작물도 다양해지고 있다. 젊은 농부가 점점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반가운 현상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에 우려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을 뿐, 구체적인 경험과 지식을 쌓을 기회와 경험이 없다. 토지와 자본, 농사 기술이 부족한 청년들이 접근하기엔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이 농업과 농촌의 현실이다. 청년 세대가 농업에 진입하고 농촌에 살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준비와 학습,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채소생활의 행보가 궁금하다.
채소가 지닌 다양한 가치를 함께 나누고 싶다. 지금은 채소 농사로 시작했지만, 채소가 지닌 매력과 신비, 맛과 멋, 아름다움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농업과 농장을 기반으로 ‘채소적인 삶’, ‘채소다운 삶’을 함께 묻고 교류하며, 좋은 삶, 지속 가능한 사회를 함께 만들고 싶다. 그래서 ‘채소(건강하고, 좋은)’하고도 ‘생활(삶)’이다.

다발무, 당근, 순무 등 뿌리채소가 재배되는 비닐하우스.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고 있다.
다발무, 당근, 순무 등 뿌리채소가 재배되는 비닐하우스.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고 있다.
바로 수확한 고구마, 적색 당근, 순무, 다발무.
바로 수확한 고구마, 적색 당근, 순무, 다발무.
흙에서 바로 뽑은 자색 당근들.
흙에서 바로 뽑은 자색 당근들.
비닐하우스 입구 쪽에 마련된 공구함의 모습.
비닐하우스 입구 쪽에 마련된 공구함의 모습.

interview 2

김니노

비건 푸드에 대한 관심만 봐도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채소 식생활에 대해 어느 때보다 관심이 많은 요즘, 채소 소믈리에의 역할은 무엇인가.
소비자들이 호기심을 갖고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우리가 평소 알지 못하는 채소와 과일에 대한 다른 매력을 발견하고 그에 따른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채소 소믈리에라면 메뉴 구성이나 레시피를 만들 때 더 신경이 쓰일 것 같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영양의 균형. 채소만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은 다른 재료를 활용해 보완해야 한다. 대부분 육류가 메인이고 채소는 서비스 개념이라는 인식이 굳어져서 채소를 중시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채소 소믈리에라면 육류든 채소든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에 맞게 연구하고 조리해야 한다. 채식주의자인 경우에는 좀 더 신경 쓰고 영양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뿌리채소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되는지.
뿌리채소는 다른 채소에 비해 요리의 활용도가 높은 것 같다. 엽채류의 경우 생으로 먹거나 무치거나 조리가 간편한 반면 요리의 활용도가 낮지만, 뿌리채소는 생으로도 먹을 수 있고 조리거나 찌는 등 모든 조리법이 가능하다. 때문에 한 가지 채소로 여러 가지 조리법으로 요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뿌리채소와 가장 어울리는 조리법이 궁금하다.
뿌리채소라고 통틀어 말하기는 힘들고 각 재료의 성분학적인 특색을 알고 그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연근과 우엉의 경우는 잘못 조리하면 쓴맛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살짝 데친 후 조림이나 튀김으로 채소 특유의 식감과 맛을 살리는 것이 좋다. 당근의 경우는 생으로 먹을 때보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소금 간만 살짝 해서 구우면 지금까지 몰랐던 당근의 단맛을 끌어올려줄 수 있다.

싱싱한 채소와 수란, 제철 맞은 뿌리채소가 들어가 맛의 균형감이 느껴지는 연근칩 수란 샐러드를 김니노 채소 소믈리에가 완성 중이다.
싱싱한 채소와 수란, 제철 맞은 뿌리채소가 들어가 맛의 균형감이 느껴지는 연근칩 수란 샐러드를 김니노 채소 소믈리에가 완성 중이다.

요즘 채식 레시피를 많이 찾는데, 영양학적 견해로는 어떤지 듣고 싶다.
다이어트를 한다면서 샐러드에 시제품 드레싱을 잔뜩 뿌려 먹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것은 채소 본연의 영양분을 섭취하는 데 방해가 된다. 물론 생채소를 먹는다는 건 힘든 일이지만 드레싱 대신 올리브유와 소금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느낄 수 있다. 소금만 잘 활용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채소의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있고, 채소만 먹을 때보다 더 많은 영양분을 몸에 흡수시킬 수 있다. 채소만으로 이루어진 식단은 영양적으로 불균형하지만 채식 식단에서 부족한 영양을 채울 수 있는 다른 재료들을 잘 알아봐야 한다. 지방이 부족하면 올리브유를 더하고 단백질이 필요하면 두부나 콩류 등을 추가하는 식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방법들이 있는데, 항상 같은 재료만 먹으면 물릴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조리법을 활용하면 맛도 달라지고 영양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뿌리채소를 중심으로 올 가을과 겨울 식단을 어떻게 구성하는 게 좋은지.
연근을 활용한다면 연근조림을, 우엉으로는 우엉밥, 무로는 국을 끓이고 무청의 연한 부분은 살짝 데쳐서 된장에 찍어 먹어도 좋다. 말려서 시래기로 만들면 오래 보관하기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무청에 들어 있는 영양 성분의 함유량이 더욱 늘어난다. 우엉밥과 연근조림, 소고기뭇국과 무청, 두부구이, 버섯볶음 또는 시금치무침 정도면 한 끼 식단에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

요즘 관심 있는 뿌리채소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비트가 요즘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비트 특유의 흙냄새와 강력한 붉은색 때문인지 대부분 요리에 색을 내는 용도 또는 피클같이 절임류로 많이 먹는데 비트의 맛을 메인으로 내는 요리는 보기 힘든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비트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를 해보고 싶다.

날씨가 차가워지는 계절에 추천할 만한 뿌리채소와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레시피를 부탁한다. 
무가 나오기 시작하면 뭇국을 추천한다. 보통 뭇국을 끓일 때 생무를 잘라 끓이는 것도 좋지만 무를 한 번 구운 뒤 끓이면 무의 깊은 맛을 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연근도 잘 말려두었다가 튀각으로 만들면 가족들의 반찬거리나 아이들의 간식거리로도 일품이며, 튀긴 연근을 활용한 샐러드도 좋다.

김니노 채소소믈리에가 운영 중인 레스토랑 소노의 실내 인테리어, 편안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김니노 채소소믈리에가 운영 중인 레스토랑 소노의 실내 인테리어, 편안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연근칩수란샐러드

연근칩수란샐러드
연근칩수란샐러드

재료
샐러드 채소 50g, 연근 칩 20g, 메추리알 수란 1개, 레몬 껍질청 1작은술, 파르메산 치즈 약간
드레싱: 달걀·레몬 1개씩, 올리브유 100ml,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달걀, 레몬, 소금을 핸드 블렌드에 넣고 올리브유를 부어가며 농도를 맞춰 드레싱을 만든다.
2. 샐러드 채소를 그릇에 담고 그 위에 드레싱을 올린 뒤 메추리알 수란을 얹는다.
3. 레몬 껍질청과 올리브유를 두르고 파르메산 치즈를 뿌린다.
4. 연근 칩을 올려 완성한다.

edit 김원정 — photograph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