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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힘

2019년 11월 4일 — 0

모든 것은 해지고 닳는다. 쓸모를 다 했다 싶으면 우리는 쉬이 새것으로 교체한다. 낡은 것에 새 숨을 불어넣는 킨츠키 공법은 무엇이든 쉽게 가질 수 있는 이 시대에 균열과 결함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그릇의 깨진 곳과 흠집에 옻을 올려 메우는 킨츠키 기법을 알고부터는 깨진 찻잔을 사용하는 카페를 자주 찾고 있다. 불완전과 결함을 감추기보다는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비록 빛이 바랜 찻잔임에도 물건과 그에 깃든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는 운영자의 마음이 귀해서다. 킨츠키를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은 효창동 작업실 한 켠에서 킨츠키 기법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수미 작가를 만나고 나서 생겼다. 주로 도자로 화병을 작업해온 작가는 자신이 애써 만든 작품이 깨졌을 때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일본인 친구가 킨츠키 기법을 소개했고, 작가는 그길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며 킨츠키와 인연을 맺었다. 킨츠키는 일본의 정세가 비교적 풍요롭고 안정돼 있던 모모야마 시대(1573~1615)에 탄생한 기법으로 크게 칸이킨츠키와 혼킨츠키로 나뉜다. 칸이킨츠키는 합성 옻이나 접착제로 깨진 부분을 잇는 기법이고, 혼킨츠키는 생옻을 올린 다음 깨진 부분에 금이나 은을 뿌려 장식미를 보여주는 정교한 기법이다. 이 기법은 생칠, 풀, 흙 목분 등 모든 소재를 자연으로부터 얻는다. 킨츠키는 단순한 예술 기법을 넘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는데, 본인만의 흔적과 역사가 담긴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담기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위 세대가 물려준 식기들을 수리해 아래 세대에 계속해서 되물림하는 것을 문화처럼 여기곤 해요. 귀한 손님이 오면 킨츠키 그릇을 내곤 하죠.” 하지만 이러한 킨츠키 기법을 국내에 알리기로 결심한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으레 이가 나가거나 그릇이 깨지면 ‘재수 없다, 운이 없다’며 깨진 그릇을 사용하는 것을 터부시하기 때문. 그러나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가고, 현재 국내에서도 킨츠키 기법이 제법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킨츠키 기법에 대한 수강생들의 수요와 열정에 힘입어 작가는 이번 봄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을 개설했다. 오래된 것에 마음을 두는 사람들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수업이지만, 김수미 작가는 수강생들이 킨츠키를 능숙하게 다루도록 도와줌으로써 그들이 집에서 구멍 난 양말을 바늘로 꿰는 것처럼 당연하게 그릇을 수리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현재 김수미 작가는 연말을 목표로 사연과 역사가 있는 그릇들을 모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킨츠키 기법은 단순히 깨진 그릇을 수리하고 복원하는 것을 넘어 그릇에 서려 있는 추억을 다시 잇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또, 그녀는 합성수지를 이용하는 칸이킨츠키에 대한 환경적인 부분도 고심 중이다. 식기로 사용해야 하는 그릇에 합성 물질이 닿았을 때의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테스트하고 있다. 더하여 킨츠키를 소개하는 책 집필을 완성해가는 중이다. 그녀는 국내에 혼킨츠키에 관한 책자가 없는 아쉬움을 덜기 위해 스승이 알려준 노하우와 직접 체득한 팁이 가득한 책을 몇 달 새 내놓을 예정이다.

김수미 작가.
김수미 작가.

edit 박진명 — photograph 양성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