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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뜨거운 인도 아재

2019년 11월 8일 — 0

럭키는 인도의 탄두리 치킨이나 버터 치킨보다는 램코르마 같고, 빈달루 같은 사람이다. 쉽게 빠지기 어렵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단 얘기다.

럭키인디아 내부. 미술 작품 앞에서 인도 전통 음료 라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럭키.
럭키인디아 내부. 미술 작품 앞에서 인도 전통 음료 라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럭키.

럭키는 처음 한국에 왔던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1996년 3월 24일 아침 6시 반.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열아홉이었다. 럭키가 그날을 마치 기념일이라도 되듯 정확히 기억하는 까닭은 193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한국을 두고 <동양의 등불>이란 시를 썼기 때문이다. 시를 접한 열아홉 살 인도 소년에게 머나먼 나라 한국은 일출이 아름다운 곳일 거란 어렴풋한 인상 정도였다. 비행기가 한국에 착륙하기 위해 저공 비행을 할 때 마침 창문 밖의 하늘이 여명으로 울긋불긋 물들고 있었다. 마치 시와 같았다. 럭키는 비행기 창으로 보였던 한국의 첫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도 아재’가 된 지금도 힘들 때면 그 풍경을 회상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럭키의 아버지는 석탄 사업을 했다. 한국에 외국인이 많지 않았던 1996년 당시 그의 아버지는 한국 기업과의 비즈니스로 한국에 자주 머물렀고 럭키와 형을 한국에서 공부하게 했다. “서울대학교 어학당을 다니고 다시 인도로 대학을 가서 경제학을 전공했어요. 왔다 갔다 하며 생활해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다 합쳐도 10년이 안 돼요.” 이따금씩 고급 단어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탓에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10년은 더 됐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처음 한 일이 여행사를 만들어 한국 사람들을 데리고 인도와 네팔, 스리랑카 관광을 가이드한 것이었어요. 한국 사람들을 많이 상대하다 보니까 말도 금방 늘고 ‘금강산도 식후경’ 같은 한국 사람의 문화와 정서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죠.(웃음)”

럭키인디아의 모던한 내부 전경.
럭키인디아의 모던한 내부 전경.
탄두리 모둠 플래터와 시금치, 버터 치킨 커리.
탄두리 모둠 플래터와 시금치, 버터 치킨 커리.

한국 사람들에게 인도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나라란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방송 화면을 통해 보여진 럭키의 모습은 딱딱한 것과 거리가 멀었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나온 럭키와 그의 절친한 친구들은 점잔을 떨지 않았다. 거리에서 노래가 나오면 허리를 돌렸고 그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 파티 현장이 되었다. 참을 수 없이 유쾌한 럭키와 세 친구의 모습은 그간 인도란 나라와 인도 사람들을 향한 한국 사람들의 편견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럭키는 오랜 시간 다수의 방송을 통해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도의 얼굴이 됐다. 방송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1년 무렵 KBS <세상의 아침>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당시 외국인 리포터로 활동하며 맺게 된 의외의 인연으로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대하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바로 한국 액션 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SBS <야인시대>다. 당시 럭키는 김두환을 쫓는 미국인 장교 ‘워태커’를 연기했다. 지금도 ‘야인시대 럭키’를 검색하면 볼살이 통통한 젊은 럭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듯 간간이 방송을 이어갔지만 한국 사람에게조차 문턱이 높은 방송 일이 생업이 될 순 없었다. 이후 2004년 무역 회사 인디아그로IndiAgro를 설립해 인도의 질 좋은 참깨를 한국에 수입하는 일을 하게 됐다. 방송 생활은 잠시 주춤했지만 사업이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방송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세상의 아침> 때 함께했던 작가가 15년 만에 연락해왔어요. 럭키 연락처 찾느라 정말 고생했다고. 한 미식 관련 방송에서 인도 특집을 하는데 제가 평소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출연을 부탁했죠.” 그 방송이 바로 <수요미식회>였다. <수요미식회> 출연은 <비정상회담 시즌2>, <대한외국인>,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로 이어졌다. 잠재되어 있던 그의 입담과 내재된 흥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현재 럭키는 <으라차차 만수로>에도 출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으라차차 만수로>의 방송 스케줄을 소화하려 영국 출장을 다녀온 그를 그가 운영하고 있는 인도 레스토랑 럭키인디아에서 만났다. 보잉 선글라스에 펑퍼짐한 배기팬츠, 몸에 꼭 맞는 블레이저를 걸치고 있는 그를 보자 태생이 연예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눈에 띄는 패션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목받는 것이 편안하고, 사람 대하는 것에 능란한 사람이란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우쭐대거나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과도하지 않은 친절과 위트로 방심한 틈에 느닷없이 곁을 내주게 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마실 것을 묻는 말에 물 한잔을 청하자 ‘우리 가게에선 물이 비싸니 맥주를 마시라’ 했고, 밥 먹은 지 얼마 안 됐다는 말에도 그는 몇 번이고 식사하고 가라며 다정하게 굴었다.

카메라를 응시한 채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럭키.
카메라를 응시한 채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럭키.

럭키는 누가 뭐래도 지금 한국에서 가장 얼굴이 많이 알려진 인도 사람이다. 대중들은 럭키의 말과 행동에 오늘날 인도의 모습을 비춰보게 된다. 그가 자신의 인지도를 통해 인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거나 제대로 알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음식에 관한 것이다. 자국의 음식을 소개할 때, 때론 그것이 가진 이미지가 너무 견고해 정확한 실체를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우리에게 ‘김치’가 그렇듯 인도인에게 ‘커리’가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밥 위에 올려 먹는 강황이 들어간 노랗고 매콤한 소스를 커리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건 커리의 한 종류일 뿐이에요. 예를 들어 한국의 ‘찌개’에도 된장찌개, 김치찌개, 순두부찌개며 다양하잖아요. 강황이 들어간 커리가 인도의 커리라는 것은 김치찌개만 찌개로 알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커리는 인도에서 ‘소스’에 가까운 존재다. 인도 커리의 종류는 500가지 정도 된다. 강황이 들어가지 않은 시금치 베이스, 녹두 베이스의 커리도 있다. 강황은 인도 요리의 일부에 사용될 뿐이다. 한국의 고추장이나 고춧가루같이 인도 요리의 뿌리가 되는 식재료가 있다면 다름 아닌 커민 씨다. 커민 씨는 한국에서 흔히 양꼬치를 먹을 때 고기에 뿌리거나 소스에 넣는 가는 벼 모양의 향신료다. 500가지의 커리는 물론 인도의 거의 모든 요리에 커민 씨가 들어간다. ”저는 집에서 김치찌개를 끓일 때 팬에 살짝 볶아서 곱게 간 커민 씨를 조금 넣어요. 그럼 커민의 은은한 아로마와 처음 맛보는 종류의 얼큰함을 느낄 수 있죠.” 럭키가 인도 요리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램코르마Lamb Korma다. 양고기가 들어간 커리의 일종인데 인도에서는 양고기를 가장 고급 고기로 친다. 코르마는 인도식 플레인 요거트라 할 수 있는 다히Dahi와 크림을 넣은 커리로 타지마할을 만든 인도의 왕이 즐겨 먹었다고 한다. 럭키가 즐겨 먹는 램코르마는 그의 레스토랑 럭키인디아에서도 맛볼 수 있다. 럭키인디아에서는 시금치 커리, 버터 치킨, 20가지의 인도 정통 커리를 비롯해 전통 화덕에서 구운 탄두리 치킨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이곳의 음식은 말하자면 인도 중에서도 북인도 스타일을 지향한다. 한국에서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의 음식 스타일이 다르듯, 땅의 면적이 넓은 인도 안에서도 음식 스타일은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도 북인도 요리는 과거 인도를 점령했던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았다. 럭키인디아의 커리 중 빈달루는 인도의 스파이스를 공유하면서도 포르투갈식으로 식초가 들어가 약간의 산미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선 쉽게 만날 수 없어 인도나 해외 경험이 많은 대사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때면 메뉴에 빈달루가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반긴다. 인도 현지의 스파이스가 부담스럽다면 커리의 한 종류인 버터 치킨으로 인도 요리에 입문하는 것이 좋다. 버터 치킨은 인도 전통 요리이긴 하지만 다른 음식에 비해 비교적 역사가 짧다. 인도인의 기준에 짧다고 해도 거의 100여 년 된 얘기다. 100년 전 인도의 한 음식점을 운영하던 사장이 더운 날씨에 탄두리 치킨의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는 법을 고민하다 버터와 토마토를 이용한 소스를 만들어 재웠고 그것이 오늘날 버터 치킨으로 발전하게 됐다. 버터 치킨은 향신료의 향이 덜하고 담백해 인도 요리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이 쉽게 먹을 수 있는 메뉴다. “버터 치킨이 외국인에게 제일 먼저 소개하는 한국의 불고기 격이라면, 제가 좋아하는 램코르마는 낙지볶음이라 할 수 있어요.(웃음) 손님들이 잘 알려진 버터 치킨이나 탄두리 치킨 외에도 다양한 인도의 맛을 즐겨보았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럭키가 럭키인디아를 위해 인도에서 직접 스카우트한 수라지Suraj 셰프.
럭키가 럭키인디아를 위해 인도에서 직접 스카우트한 수라지Suraj 셰프.
인도 정통 방식으로 화덕에서 구워지는 난.
인도 정통 방식으로 화덕에서 구워지는 난.
화덕에서 굽기 편리하게 쇠꼬챙이에 끼워진 재료들.
화덕에서 굽기 편리하게 쇠꼬챙이에 끼워진 재료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 음식을 거의 입에도 대지 못했다는 럭키는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음식 마니아가 됐다. 김치가 잘 익었는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을 정도.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한식 중에서도 특히 감자탕을 좋아한다. 들깨가 들들 끓는 걸쭉한 국물과 양념이 잘 밴 돼지고기의 조합이 최고다. 빨간 소스의 닭찜도 그가 즐겨 찾는 메뉴다. 우리가 아는 찜닭이나 닭볶음탕과는 다르다. 닭찜을 먹으러 마포에 있는 마포나루란 음식점을 가는데 이곳에서는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생닭과 재료와 양념을 압력솥에 넣고 찐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국물이 적은 닭볶음탕 같은데 압력솥에 푹 쪄서 닭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한국 음식에 애정이 두터운 그는 한국에 인도 음식을 소개하는 것만큼 인도에 한식을 소개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현재 그는 방송이나 유튜브 등의 채널을 통해 인도에 한식을 알리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인도의 강렬한 스파이스와 한국의 매운맛을 사랑하는 가슴이 뜨거운 남자, 언제나 유쾌한 ‘아재미’를 발산하며 주변을 즐겁게 하는 천생 연예인. 이렇듯 지치지 않는 그의 에너지라면, 인도 뭄바이에 ‘럭키코리아’가 생길 날도 머지않은 듯 보인다.

럭키인디아
무역 회사 CEO이자 방송인인 럭키가 운영하는 인도 레스토랑. 이곳에서는 인도 정통 커리와 탄두리 치킨 등을 맛볼 수 있다.
· 치킨 팔락Palak(시금치커리) 1만9000원, 버터 치킨 1만9000원, 탄두리 치킨 Half 1만8000원
·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7길 6-5
· 화~일요일 오전 11시 30분~오후 8시, 월요일 휴무
· 02-336-7782

edit 장은지 — photograph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