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섬의 여왕’이라 불리는 정지선 셰프가 익선동에서 다양한 딤섬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딤섬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는 정지선 셰프는 여전히, 매일 노력 중이다.
섬세함과 우직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식. 무거운 웍, 둔탁해 보이지만 한없이 날카로운 중식도를 들고 주방을 오가는 중식 셰프는 어쩌면 그래서 남성 셰프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영역이었을지 모르겠다. 유난히 ‘센 자만 살아남는다’는 인식이 강한 중식에서 예민함과 카리스마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정지선 셰프가 핫한 레스토랑으로 꽉 들어찬 익선동 골목에 딤섬 전문 레스토랑 홍롱롱을 오픈했다. 대전점과 판교점에 이어 세 번째 매장이다. 동네 중국음식점부터 파인다이닝까지 차이니스 레스토랑은 넘쳐나지만 딤섬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웠다. 누구도 하지 못한 일에 정지선 셰프는 용감하게 도전했고, 3개월이 지난 지금 딤섬을 만드는 속도가 고객 수를 따라가지 못해 아쉬워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딤섬은 몇 개의 주름을 잡느냐로 실력을 판가름할 수 있을 만큼 고도의 손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갑자기 딤섬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뚝딱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기술뿐 아니라 끈기를 요하는 작업이라 적합한 한국인 셰프를 찾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딤섬 레스토랑에서 중국인 셰프를 고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홍롱롱의 오픈 시간은 정오, 정지선 셰프는 오전 9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익선동 매장에 출근해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미팅을 진행한다. 비교적 최근에 오픈한 익선동 매장에서 주로 손님들과 소통하는 편이지만 짬을 내 판교와 대전 매장에도 자주 방문한다. 각 매장의 지역적 특색을 살려 메뉴 변경을 고민하거나 기물 변경, 직원 교육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촬영을 위해 방문한 날에는 익선동 홍롱롱의 세트 메뉴 구성과 가격대 책정을 위해 직원들과 상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쏟아지는 직원들의 질문과 딤섬 소 체크, 직접 가지 못하는 다른 매장의 직원들로부터 날아오는 사진을 첨부한 메시지까지 정지선 셰프는 모든 일을 혼자 해냈다.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예민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바빠도 딤섬에 있어서는 양보와 타협이 없다. 대전점 직원에게 사진으로 받은 오늘 만든 멘보샤의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자 다시 만들라는 메시지를 바로 전송할 정도. 손님 테이블에 나가는 음식 역시 그의 까다로운 확인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정지선의 홍롱롱에 더욱 믿음이 갔다.

연기가 자욱한 이곳에서 위생과 딤섬의 상태를 늘 체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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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섬의 여왕이 되기까지
정지선 셰프는 한국의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고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 한식, 양식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친구들과 달리 그는 졸업이 다가오도록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헤맸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일주일간의 중국 연수를 떠나게 됐고, 그 일주일이 정지선 셰프의 운명을 바꿔놨다. “대학 졸업식 날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어요. 졸업장은 택배로 받고요. 중국행을 결정한 후에도 인맥은 물론 자문을 구할 사람 하나 없었어요. 학교에서도 한식, 양식 외에는 추천하지 않았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지만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떠났어요.” 중국 대학의 편입을 준비하면서 가장 문제 된것은 역시 언어였다. 중국어는 전혀 모르던 그가 HSK(중국어 능력시험) 공부를 시작했고, 편입이 가능한 급수의 자격증도 땄다. “궁금한 것도 많고, 묻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았어요. 질문할 수 없으니 몸소 부딪쳐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유학 가기 전 2년 가까이 다녔던 중식당에서는 알려주기보다는 숨기려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렇게 떠난 중국은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특별한 날에도 만지기 어려운, 살아 숨 쉬는 고가의 식재료들을 직접 만지고 요리했다. 한 가지 소스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메뉴를 하나부터 열까지 배울 수 있었다. 처음엔 무서워 쳐다보지도 못하던 자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질 정도로 많이 보고, 요리했다. 다시 할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밀가루 공예, 조각 공예처럼 섬세한 작업이 저와 맞지 않아 많이 고생했어요. 나에게 없는 섬세함을 끌어내야만 하는 일이었죠. 오후 6시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따로 조각 공예 학원을 다녔어요. 중국인들과 시작점이 다르니 노력을 더 많이 하는 수밖에 없었죠.” 한국에 와서도 다양한 중식당에서 일했다. 프라자 호텔, 메이필드 호텔에서 일했고, 한국 최초로 네슬레의 R&D 셰프로도 이름을 알렸다. 모든 경험이 소중했지만 그는 중국 유학 후 잠깐 일했던 동네 중식당에서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음식을 만들다 설거지를 하고, 또 양파를 썰어야 했어요. 멀티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전쟁터였죠. 그렇게 다양한 과정을 한 번에, 그것도 단기간에 거치다 보니 요리 실력이 확 늘었어요. 유학까지 다녀와 동네 중식당에서 일한다고 하면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전 일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좋았어요.” 여자 중식 셰프라는 점이 독특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만큼 여성 셰프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면 내 자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포기하는 후배들을 봐왔다. 20kg이 넘는 밀가루 포대를 척척 옮기진 못해도 그것에 상응하는 기술을 익히면 어디든 일할 수 있는 곳은 있다고 믿는다. 끈기와 노력만으로 없는 길을 개척해온 정지선 셰프가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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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섬 전도사 정지선
‘딤섬’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샤오롱바오, 쇼마이 정도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을 꺼리는 한국 소비자들의 특성과 국내에 딤섬 기술자가 많지 않다는 이유가 만나 다양한 딤섬이 한국 시장에서 자리 잡지 못했다. 정지선 셰프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자 동시에 딤섬 전문 레스토랑에 매력을 느낀 지점이다. “딤섬은 유명 셰프님들도 어려워하는 영역이에요. 전문 인력을 찾는 것도 어렵고, 생각보다 정말 어려운 영역이거든요. 요리는 재료를 준비해서 오더가 들어오면 바로 해서 내면 되는데 딤섬은 일단 만들어야 하잖아요. 눈대중이란 것도 없고, 제과제빵처럼 피나 소의 그램 수도 일정해야 하고요. 처음에는 내가 노력한 만큼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말 그대로 도전이었죠.” 소비자들의 인식도 꽤 많이 변했다. 딤섬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나 홍콩 유명 딤섬 레스토랑인 딤딤섬에 이어 대만에서 온 팀호완도 올 11월 오픈 준비 중이다. 본토의 대규모 매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에도 정지선 셰프는 꽤 의연하다. “긴장되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딤섬이 우리나라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딤섬의 종류는 무궁무진해요. 어떤 맛을 내는지는 스스로의 도전이에요. 다른 곳에서 먹을 수 없는 딤섬을 열심히 만들어봐야죠.” 지금도 꾸준히 새로운 맛과 디자인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유튜브와 책을 통해서 보고, 검색은 중국 검색 엔진 바이두를 통해서만 한다. 본토의 스타일을 파악한 후, 어떻게 한국에 접목시킬지를 고민하고 한국에 없는 식재료는 무엇으로 대체하면 좋을지 등등 끊임없이 궁리한다. “가장 기본적인 재료인 밀가루, 이스트, 치킨 파우더 등이 많이 달라요. 강력분, 중력분을 어떤 비율로 섞을지, 이 딤섬에는 어떤 반죽이 좋을지를 매일 테스트하죠. 게다가 익선동이라는 동네 특성을 살려 다양한 색깔을 입힌 딤섬을 선보이고 있어서 더욱 고민이 많죠. 이제 조금씩 자리 잡아가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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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는 딤섬
수많은 사람들이 SNS로 일상을 공유하고, 하나의 이미지로 모든 것을 말하는 시대가 됐다. 익선동은 특히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좁은 골목을 누비는 사람들로 꽉 차는 곳. 날씨가 좋을 때면 한 발짝 나아가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골목이 사람들로 빽빽이 들어찬다. 이미지로 음식을 기록하는 요즘, 더군다나 익선동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비주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찍고 싶은 딤섬, 다시 사진으로 보고 싶은 딤섬을 만들기 위해 딤섬의 색부터 모양까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삼색 빠오즈는 백색 빠오즈에 색을 더한 메뉴로, 맛은 비슷하지만 색이 달라지니 전혀 다른 음식이 완성됐다. 여전히 핫한 마라를 활용한 마라 찜 교자는 비트로 색을 낸 피로 매운맛을 눈으로 먼저 경험할 수 있다. 예상보다 더 많은 손님이 맥주 안주로 찾고 있는 메뉴다. “중국에 가면 무조건 7~8끼를 먹어요. 계속 보고, 먹고, 느끼려고 노력하죠. 특이한 딤섬들을 한국에도 많이 소개하고 싶어요. 최근엔 익선동 매장에 왕눈이 포자를 세팅했어요. 손이 많이 가는 메뉴라 직원들의 원성을 사고 있긴 하지만 손님들이 신기해하니 뿌듯하죠. 오늘도 새우소 테스트를 다시 했어요. 맛은 유지하고, 식감과 모양에 조금 변화를 주려고요. 인기 있는 메뉴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바꿔가고 싶어요.” 기계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만들 수 있는 딤섬의 양은 한계가 있다. 아직 한국에는 딤섬 기술자가 많지 않아 물량을 늘리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매출에 비해서 개수가 부족하다 보니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정통의 방식을 고수할 예정이다. “어제부터 딤섬을 만드는 직원들 앞에 초시계를 뒀어요. 10초에 2~3개는 만들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죠.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딤섬을 만들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계속 노력할 예정이에요.” 중국의 다양한 딤섬을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레시피를 만들어내는 것도 정지선 셰프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전통만 따라가다 한국인들에게 딤섬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는 것보다는 레시피 변경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중국의 샤오롱바오는 돼지 껍데기를 삶아서 가운데를 떠내요. 그걸 피동이라고 하는데 그 부분을 돼지고기와 섞어서 소를 만들었죠.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돼지 특유의 누린내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에 젤라틴화를 해서 사용하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업이지만 이렇게 조금씩 레시피를 변경하면서 입맛을 맞춰나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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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르쾅쾅, 홍롱롱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홍롱롱’이란 이름은 정지선 셰프가 직접 지었다. 이름을 직접 지어서인지 더 애정이 간다. “홍롱롱은 ‘우르르쾅쾅’이라는 중국 의성어예요. 거창한 의미나 포부가 담긴 이름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죠. 브랜드를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 중국에서 배운 요리를 한국에 많이 알리고 싶어요.” 오픈한 지 3개월을 넘겼을 뿐인데 벌써 눈에 익은 단골손님도 제법 생겼다. 정지선 셰프에게 먼저 “메뉴가 바뀌었네요?”라며 말을 거는 손님도 적지 않다. “샤오롱바오는 이제 흔해졌고, 많은 분들이 먹는 딤섬이잖아요. 그런데 홍롱롱에서 샤오롱바오를 먹고 나가는 분들이 ‘육즙이 많아요. 고기 냄새 안 나요’라고 해주시면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요. 내가 가장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을 손님들이 알아주시면 정말 감사해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요리를 했지만 맛있다는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요. 무뎌지지도 않고요.”
1. 딤섬 대표 주자 샤오롱바오. 작은 대나무 찜통인 샤오롱에 쪄내 육즙이 가득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딤섬이다.
2. 치자로 물들인 피에 오징어 먹물을 더한 소로 색을 입혔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송로버섯 향이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트러플 쇼마이.
3. 돼지고기, 닭고기로 맛을 낸 삼색 빠오즈. 세 가지 색의 피가 입맛을 돋운다.
4. 속이 다 비치는 얇은 피에 날치 알과 새우가 가득 찬 새우살 수정교.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진리의 맛.
5. 돼지고기로 맛을 낸 매콤한 중화풍 비빔면 랑반면.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맛 덕분에 입 안이 개운해진다.
6. ‘입에 고이는 침을 주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는 뜻의 구수계. 닭고기 살에 매콤한 소스와 고소한 견과류를 더한 냉채 요리다.
7. 마라샹궈, 마라탕과는 다른 마라 향을 느낄 수 있는 마라 찜 교자. 비트로 반죽의 색을 살렸다.
정지선의 홍롱롱 INFO
대중적인 맛으로 사랑받은 중화복춘의 총괄셰프 정지선 셰프가 오픈한 딤섬 전문 레스토랑. 대전, 판교에 이어 익선동에 3호점을 오픈했다. 판교점은 백화점 매장이라는 특수성을 살려 식사 메뉴 위주를 판매하고, 대전점은 식사 메뉴와 딤섬 메뉴를 절반씩 선보인다. 익선동은 딤섬 전문점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딤섬 메뉴를 위주로 판매 중이다. 맛은 물론 고운 색깔을 살린 딤섬 덕분에 오픈 3개월 만에 이미 SNS에 인증샷이 줄을 잇는다.
· 샤오롱바오·삼색 빠오즈 8000원씩, 마라 찜 교자 7000원
· 서울시 종로구 수표로28길 33-7
· 02-741-1339
edit 류창희(프리랜서) — photograph 박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