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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A Meeting with Patissier

2019년 10월 12일 — 0

작고 달콤한 한 접시의 우주. 최근 파인 디저트 신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페이스트리 셰프 2인을 찾아 디저트 트렌드를 들어보았다.

L’inconnu

랑꼬뉴 김민선 셰프

제품의 완성도가 높아 오랜 시간 동안 제과를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과를 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남들과는 다른 시작이었을 것 같다.
뉴욕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한 후 한국 코즈메틱 브랜드의 글로벌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다 문득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른 살이 되던 해에 프랑스로 떠났다. 이왕 배울 것이라면 제대로 배우자는 마음으로 프랑스의 제과 학교 올리비에 바자르Olivier Bajard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후 파리의 유명 파티시에인 세드리크 그롤레Cedric Grole의 가게에서 경험을 쌓은 후 작년 8월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적인 색감을 담은 프렌치 디저트를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돌아오겠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랑꼬뉴가 지향하는 한국적인 색감의 프렌치 디저트는 어떤 것인가?
프렌치 디저트의 기본을 지켜나가되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식재료를 활용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식재료가 아니라면 그저 흉내 내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고민했다. 해바라기 씨를 이용한 파리 브레스트와 사과 등 지금의 쇼케이스를 지키고 있는 메뉴에는 그 고민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디저트에 활용했을 때 새로운 맛을 낼 수 있는 원재료가 한국에도 아주 많다. 제과는 갈수록 원재료가 중요해지고 있다. 누가 어떤 재료를 빨리 발견해서 제품으로 만드는지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단초가 될 것이다.

누가 어떤 재료를 빨리 발견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이 인상 깊다. 미래의 디저트는 결국 원재료 싸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좋은 원재료가 가진 힘을 넘어설 수는 없다. 좋은 재료가 좋은 제품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기본을 지켜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서는 사실 과일이나 허브를 이용해 디저트를 만든 지 오래되지 않았다. 새로운 ‘좋은’ 식재료를 찾아내는 일이 쉽지는 않다. 처음엔 연이 닿지 않아 재료를 구하는 데 고전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알음알음 찾아낸 농부들과 직접 소통하며 다음 계절의 식재료 이야기를 듣는 것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제주 청레몬 바질 타르트에 레몬 제스트를 올리고 있는 김민선 파티시에.
랑꼬뉴는 모던한 인테리어 사이에 한국적인 요소가 은은하게 더해져 있다.
랑꼬뉴는 모던한 인테리어 사이에 한국적인 요소가 은은하게 더해져 있다.

한국의 좋은 식재료를 이용한 디저트, 이것이 랑꼬뉴가 하고 싶은 가장 진솔한 이야기라고 느껴진다. 좋은 식재료로 만드는 디저트란 전 세계적인 디저트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는 듯싶다.
그렇다.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요즘의 트렌드는 자연스러움이다. 무언가를 더하는 게 아니라 그걸 덜어내며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가벼운 디저트가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지역의 색’을 담아내는 것 또한 최근의 큰 화두다. 개인적으로는 세드리크 그롤레의 원재료에 대한 엄청난 집착과 데가토에뒤팽Des Gateaux et du Pain의 클레르 다몽Claire Damon 셰프가 본인이 나고 자란 프랑스의 허브와 야생 꽃을 활용하는 것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다양한 스타일의 디저트 전문점이 생겨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가?
최근에 인스타그래머블한 디저트를 만드는 일을 굉장히 낮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꾸덕한 질감에 양이 많은 요즘의 한국 디저트 또한 하나의 장르다. 무엇이 됐든 맛이 있다면 그 디저트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편을 가르는 대신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지금의 이 다양성을 잃지 않고 발전해나가면 시장의 크기 자체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고유한 색채를 가진 디저트 전문점이 많아지길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랑꼬뉴를 8개월간 운영하며 느낀 것은 의외로 한국의 디저트 식문화가 생각보다 폐쇄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아직 랑꼬뉴의 디저트가 손님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디저트를 맛보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식재료, 인문학까지 아우르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주기적으로 마련해보려고 한다. 디저트와 제과에 대한 손님들의 이해도가 높아지면 업계도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제과는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깊이 들어갈수록 섬세한 정확성을 추구하는 미지의 세계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직 도전해볼 수 있는 여지가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사람들에게 이 미지의 세계를 안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랑꼬뉴의 메뉴는 계절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중에서도 시소와 아오리를 사용한 시소 아오리와 생무화과를 얹은 무화과 타르트는 이번 여름의 메뉴. 청귤청을 이용한 음료도 시즌 메뉴로 함께 선보이고 있다.

Cédrat

세드라 최규성 셰프

세드라에서 가장 처음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아름다운 케이크다. 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니 케이크 쇼케이스보다 큰 빵, 구움 과자 섹션이 더욱 눈에 띈다.
세드라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단순히 케이크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제과점’으로 기능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작은 가게지만 케이크뿐만 아니라 빵, 잼, 마카롱, 구움 과자 등 제과라는 부문 안에 속하는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배우고 일해왔던 사람으로서, 일상적으로 경험했던 그곳의 제과점을 서울에 옮겨놓고자 했다.

요즘 들어 마들렌, 피낭시에 등의 구움 과자에 공을 들이는 업장이 많이 생겨나는 것 같다. 손님들의 반응을 통해 느껴지는 트렌드가 있는가?
마들렌을 찾는 손님이 늘었다. 다양한 마들렌을 선보이는 곳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그만큼 특화하려는 노력을 읽어내고 있다. 마들렌은 다른 구움 과자류에 비해 맛이 기본적이다 보니 새로운 맛을 첨가하기 쉬워서라고 생각한다. 별다른 특징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드라의 구움 과자만이 가지는 차별점은 무엇인가?
차별점은 없다. 다만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 먹어왔던 그대로를 재현할 뿐이다. 요즘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구움 과자는 질감이 가벼워 포슬한 식감이 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맛볼 수 있는 잘 만든 구움 과자는 입 안에서 느껴지는 밀도와 무게감이 다르다. 세드라의 구움 과자는 그 밀도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 일했다고 들었다. 특히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é에서 동양인 최초로 셰프라는 타이틀을 받았다고.
11년간 프랑스에서 경험을 쌓았다. 다양한 레스토랑과 호텔을 거친 후 피에르 에르메 팀에 합류했고 이때 재료에 접근하는 자세와 셰프로서의 철학을 배울 수 있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카페 인 스페이스Café in Space를 이끌며 한국 식재료를 프렌치 디저트에 접목시키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세드라는 그 고민의 완성형인 셈이다.

백년초 파블로바를 만들기 위해 몰드에 머랭을 얹고 있는 최규성 셰프.
백년초 파블로바를 만들기 위해 몰드에 머랭을 얹고 있는 최규성 셰프.
최규성 셰프는 구움 과자 중에서도 피낭시에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세드라의 피낭시에는 깊고 짙은 맛을 자랑한다.
최규성 셰프는 구움 과자 중에서도 피낭시에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세드라의 피낭시에는 깊고 짙은 맛을 자랑한다.

디저트를 개발할 때 어디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는가?
맛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 제품 개발은 어떤 맛을 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맛을 내기 위해 어떤 재료를 선택하는지, 그 재료에 어떤 조합을 더할지를 생각한 후 최종적으로 그 맛이 어떤 형태와 재질을 만났을 때 최선의 결과가 나올지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찾을 수 있는 맛을 알아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국의 과일 종류는 프랑스와 비교해 단순하고 한정적이었지만 새로운 식재료를 재배하는 농가가 늘어나면서 하나씩 알아가며 찾아내는 재미가 더해졌다.

새로운 식재료를 경험하고, 이용하는 데서 많은 즐거움을 느끼는 듯하다. 요즘 관심이 가는 식재료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제주도에서 나는 식재료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에 관심이 간다. 미지의 환상 같은 것이 있기도 했지만.(웃음) 재료와 공간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받는 편이라 제주도에 더욱 끌렸다. 제주도의 식재료인 백년초를 이용한 파블로바나, 금귤과 구좌 당근을 넣은 ‘섬 제주’라는 디저트를 판매하기도 했다.

‘단짠’이 계속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세이버리 디저트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앞으로 유행하리라 생각되는 디저트 스타일은 무엇인가?
세이버리 디저트는 디저트의 역사에서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늘 있었던 스타일이지만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조합을 선보이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 오늘의 유행이란 존재하지 않던 것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포장해서 소개하는지에 달려 있다. 소비자가 새로운 맛과 조합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어줌으로써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드라의 내일에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요즘의 디저트 트렌드는 ‘재해석’이다. 기존의 클래식한 제품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세드라는 본래의 맛과 기술을 지켜나가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누군가가 고전적인 제품을 재해석해 요즘의 트렌드에 맞게 선보인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클래식’을 지켜나가며 원래의 제품을 소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상 그것이 대중의 입맛과 맞을지는 조금 다른 문제지만, 꾸준히 대중에게 새롭고 좋은 것을 선보이고 싶은,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세드라의 시그너처 제품 세 가지. 밀크 초콜릿과 헤이즐넛을 이용한 쇼코젯Chocosette, 파인애플과 백년초를 이용한 제주 백년초 파블로바Pavlova, 그리고 피에르 에르메의 디저트인 사틴Satine에서 영감을 받은 오렌지 패션 치즈케이크.

edit 김나영(프리랜서) — photograph 류현준,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