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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I’m) ‘파인 캐주얼’

2019년 10월 15일 — 0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파인 캐주얼 레스토랑으로 지평이 확대되고 있는 지금, 그 안에서 건강을 보다.

text 정재훈 — edit 진찬호 — photograph 최준호

요즘 인기 있는 식당의 공통적 특징이 하나 있다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아님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인 정식당 아래층에 문을 연 정식카페는 낮에는 카페, 밤에는 와인 바로 운영된다. 서빙 속도도 빠른 편이다. 페코리노 치즈, 체더치즈, 튀긴 꽈리고추를 얹은 치즈 스파게티가 나온 뒤 달고기로 만든 피시 앤 칩스, 치킨 리소토까지 테이블에 올려지는 시간이 2분이 채 못 될 정도로 짧았다. 고추 치미추리를 곁들인 보습살 스테이크는 구워져 나올 때까지 15분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이미 한상에 쫙 펴놓고 음식을 먹으며 기다리는 일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강민구 셰프가 맡아 반얀트리 호텔에 새로 문을 연 페스타 바이 민구도 비슷했다. 점심 코스 메뉴도 가능하지만 저녁에는 다양한 음식을 한상차림으로 펼쳐두고 즐길 수 있다. 유럽인에게 익숙한 메뉴에 한식의 맛 구성 요소가 등장한다.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밍글스가 한식을 바탕으로 한 캔버스에 양식 기법으로 색채를 더한 방식이라면 페스타 바이 민구는 그와 반대로 양식을 기초로 한식 맛을 더한 음식을 낸다. 식기나 담음새가 밍글스처럼 화려하진 않고 공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가볍다. 하지만 음식 맛과 식재료의 품질만 놓고 보면 기존의 캐주얼 양식당보다는 파인다이닝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뉴욕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일레븐 매디슨 파크와 미쉐린 1스타인 그래머시 태번에서 수셰프로 일한 송훈 셰프의 레스토랑 더훈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장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서빙해도 될 것 같은 요리가 연이어 나오지만, 메뉴판도, 그 위에 적힌 음식 가격도 캐주얼 레스토랑을 표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원래 알고 있던 캐주얼 레스토랑과는 다른, 바야흐로 파인 캐주얼 레스토랑의 시대다.

파인 캐주얼이란 무엇인가

레스토랑 분류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사실이다. 패스트 캐주얼 레스토랑이 뜬다는 소식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파인 캐주얼이 대세다. 둘이 뭐가 다른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혼용될 때도 종종 있다. 그래도 구분하자면 둘은 출발점이 다르다. 패스트 캐주얼은 패스트푸드를 기준점으로 삼아 더 나은 음식을 비슷한 속도로 제공하되 서비스의 형태는 비슷한 방식이다. 파이브가이즈, 치포틀레 멕시칸 그릴이 대표적이고 인-앤-아웃도 종종 같은 범주로 분류된다. 쉽게 말해 더 나은 품질의 패스트푸드이지만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다. 주로 미국에서 인기를 끈 식당 형태다. 그런데 여기서 혼란이 시작된다. 쉐이크쉑은 패스트 캐주얼이 아니라 파인 캐주얼 레스토랑이다. 파인 캐주얼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뉴욕 외식업의 대부 대니 마이어에 의하면 그러하다. 쉑쉑에서 미국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2014년 서류에는 실제로 파인 캐주얼 레스토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파인 캐주얼은 패스트 캐주얼의 용이함, 가치, 편리함과 파인다이닝에 뿌리를 둔 재료 공급, 조리, 품질, 접객의 탁월함에 대한 높은 기준을 결합한 새로운 범주의 레스토랑이라는 것이다. 이듬해인 2015년 테드 강연에서도 대니 마이어는 자신이 설립한 레스토랑 체인 쉐이크쉑이 파인 캐주얼 레스토랑의 개척자임을 강조했다. (유튜브에 동영상이 올려져 있다. 대니 마이어의 책 <세팅 더 테이블>을 감명 깊게 읽은 독자라면 한 번 봐둘 만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5HVdOExw8Dw) 그는 강연에서 파인 캐주얼 레스토랑의 성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예약 관리자, 메트르 도텔, 웨이터, 바텐더, 셰프, 수셰프, 파티시에, 플로리스트와 같은 인력을 줄이고 테이블보와 고급 식기류를 없애면 파인다이닝과 동일한 품질의 음식을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패스트 캐주얼이 기존 패스트푸드를 고급화한 형태라면 파인 캐주얼 레스토랑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음식은 그대로 두고 서비스를 간소화한 형태라는 얘기다. 결과는 비슷해 보이지만 출발점이 다르다.

파인 캐주얼과 건강

건강 면에서는 어떻게 다를까? 패스트푸드를 먹느냐 파인 캐주얼 식사를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까? 창업자 대니 마이어의 말대로 쉐이크쉑에서 항생제와 성장 호르몬을 사용하지 않고 사육한 소에서 얻은 고기로 햄버거와 핫도그를 만들어 파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이 맥도널드와 같은 패스트푸드에도 영향을 주어 항생제와 성장 호르몬 사용이 줄어드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도 항생제와 성장 호르몬에 대한 사회의 우려가 커지는 상황을 생각해볼 때 긍정적이다. 다만 아직까지 밝혀진 바로는 매일 점심으로 햄버거, 콜라, 프렌치프라이를 맥도널드에서 먹느냐 쉐이크쉑에서 먹느냐의 차이는 햄버거를 먹느냐 비빔밥 한 그릇을 먹느냐의 차이에 비해 크지 않다. 비빔밥 1인분(707kcal)에 비슷하게 맞춰 햄버거를 먹으려면 프렌치프라이는 절반만 먹고 음료는 제로콜라로 마셔야 한다.
맛의 차원에서 쉐이크쉑이 더 나은 햄버거인가 인-앤-아웃이 더 나은가는 논외로 하고 부드럽게 씹히는 쉐이크쉑의 햄버거 번이 다른 햄버거에 비해 조금 더 파인다이닝에 가깝게 느껴질 수는 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입을 크게 벌리거나 단단한 음식을 씹느라 고생해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보면 왜 대니 마이어가 CBS <60minutes>의 진행자 앤더슨 쿠퍼와의 인터뷰에서 치아에 저항하지 않는 햄버거 번을 쉐이크쉑의 중요한 특징으로 언급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건강 면에서 파인 캐주얼 음식에 섭취 칼로리를 뛰어넘는 가치가 숨어 있지는 않다. 이 점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도 마찬가지다. 음식물리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옥스퍼드 대학의 찰스 스펜스 교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실상 제공하는 식사의 건강함이나 영양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다수의 고객이 어쩌다 한번 방문해서 먹을 음식이니 건강이나 영양보다는 놀라움과 새로움을 주는 음식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믿을 수 없다면 식당 평가 사이트에 오르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리뷰에 음식이 다 맛좋긴 했지만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았다며 별점을 깎아내리는 평가자가 얼마나 많은지 찬찬히 살펴보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그러하다면 거기서 출발한 파인 캐주얼 레스토랑이라고 다를 게 없다. 맛과 품질이 더 나은 음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강에서 그만큼의 차이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우리의 복부를 감싸는 뱃살은 재료를 따지지 않는다. 파인다이닝, 파인 캐주얼, 패스트푸드이건 간에 많이 먹으면 해로운 건 엇비슷하다.

파인 캐주얼의 진정한 미덕

대니 마이어는 자신이 파인과 캐주얼을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레스토랑 개념을 창안하는 데 두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도 체인처럼 운영할 수 있음을 라틀리에 드 로부숑을 통해 보여준 조엘 로부숑과 아시아의 흔한 대중 음식을 파인다이닝 퀄리티로 가벼운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음을 보여준 데이비드 장을 통해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니 마이어가 청중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이들을 예로 들었을 뿐, 실제로는 이미 20여 년 전 본인 스스로 파인 캐주얼 다이닝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뉴욕에서 유니언 스퀘어 카페에 이어 두 번째로 연 레스토랑인 그래머시 태번의 다이닝 룸은 분명히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지만 입구 쪽의 태번에서 즐기는 바 메뉴는 파인 캐주얼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레스토랑에서 동일한 품질의 식재료로 만든 요리이지만 장식이 덜하고 가격도 저렴하며 예약 없이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뉴욕의 유명 식당평론가 로버트 시엣세마는 젊은 시절 다른 고급 레스토랑에는 발을 들여놓을 엄두를 내지 못하면서도 그래머시 태번은 바 메뉴 덕분에 자주 즐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다가가기 쉬운 곳이 많아져야 음식 문화도 더 활짝 꽃피지 않을까. 내가 서울에서 더 많은 파인 캐주얼 레스토랑을 보고 싶은 이유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