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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줄 서서 먹는 ‘당’

2019년 9월 17일 — 0

흑당 밀크티부터 대만식 샌드위치까지, 대만 음식의 인기가 여전히 뜨겁다. 열풍의 너머로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들.

text 정재훈 — edit 김민형(프리랜서) — photograph 박재현 — product 모리셔스 브라운 대치점(02-6013-5234)

“이젠 이건가요?” 편의점 대만식 연유 샌드위치 포장의 제품명 위에 인쇄된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작년 3월 국내 진출한 대만 샌드위치 브랜드 ‘홍루이젠’의 매장 수가 벌써 260개를 넘어섰다. 집 근처에 프랜차이즈 매장이 없으면 편의점에서 대만식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다. 매장에 한 번에 입고되는 수량이 제한적이고, 들어오면 금방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 맞춰 방문하는 수고가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홍루이젠 샌드위치와 편의점 샌드위치 모두 공장에서 만든 완제품을 받아다 판매하는 것이지만 맛에 있어서는 차이가 크다. 촉촉하며 부드럽게 씹히는 홍루이젠에 비해 편의점 샌드위치는 퍽퍽한 느낌이었다. 하루 동안 냉장 보관한 뒤에는 홍루이젠 식빵도 마르고 퍽퍽해진 걸로 보아 빵을 만드는 기술의 차이보다는 냉장 보관한 시간 동안 수분이 날아가고 전분의 노화가 진행된 탓이 큰 것 같다. 맛의 밸런스도 다르다. 달콤한 버터크림 맛을 중심에 두고 햄과 치즈의 짠맛이 받쳐주는 식으로 균형을 맞춘 홍루이젠 샌드위치에 반해 CU 대만식 연유 샌드위치와 세븐일레븐 대만식 햄치즈샌드도 크림의 양은 넉넉한 편이었지만 햄과 치즈의 짠맛이 도드라지고 단맛은 덜했다. 비슷한 가격에 중량은 편의점 제품이 두 배 가까이 많다는 장점 말고는 편의점 대만식 샌드위치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웠다.

대만 음식 열풍이 편의점까지 불어닥친 건 분명하지만 볼수록 씁쓸한 제품이 많다. 대만 음식 트렌드에 그냥 업혀 가자는 생각으로 만든 식품이 대부분이다. 대만식을 내세운 고기덮밥 역시 대만 광부도시락의 조악한 모사품이다. 대만 광부들이 즐겨 먹던 목살 스테이크 도시락이라는 설명이 무색하게 얄팍한 고기는 썰어 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다. 뭐 대만식이라고 했지 대만 음식이라고 한 적은 없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냉장 진열된 브라운슈가 밀크티와 브라운슈가 라떼밀크티에 이르러서는 그런 변명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비자 기만이 극에 달했다.

흑당 밀크티 전문점 중 한 곳인 흑화당黑花堂에서 편의점 판매용으로 내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한자 표기는 자세히 들여다보니 흑유당黑乳堂이었고 브라운슈가 밀크티에 선명하게 드러난 호랑이 무늬는 알고 보니 인쇄된 그림이었다. 그제야 제품 하단에 적힌 “연출된 이미지”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제품 겉면에 브라운슈가라는 문구가 영문과 국문으로 여섯 번이나 등장하지만 주재료는 설탕이고 갈색 설탕의 비율은 0.6%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품에서 두 가지 장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밀크티 맛이 나긴 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칼로리를 확인하기 쉽다는 점이다.

대세 중의 대세, 흑당 밀크 버블티

한 나라의 음식을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다. 대만 샌드위치 외에 대왕연어초밥, 닭날개 볶음밥, 누가크래커도 요즘 한국에서 인기 있는 대만 음식이다. 알긴산 구슬에 과즙혼합액을 넣은 팝핑보바도 작년부터 유튜브를 타며 인기를 끌고 있다. 가히 편의점 버전 분자요리라고 칭할 만하다. 하지만 비교적 규모가 큰 점포에서만 구할 수 있다.

편의점을 기준으로 대만 음식 열풍을 이끄는 원톱은 단연 흑당 밀크 버블티다. 다른 대만 음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풍적이다. 더앨리, 타이거슈가, 흑화당 같은 흑당 버블티 전문점에서뿐만 아니라 공차에서도 마실 수 있고 이디야 같은 커피 전문점이나 던킨도너츠, 파리바게뜨에서도 마실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편의점에서 흑당 시럽을 구입하여 집에서 흑당라떼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심지어 흑당 밀크 버블티의 인기가 그 구성 요소인 흑당이라는 식재료의 인기로까지 확장되어가는 형국이다. 흑당 카라멜맛 팝콘, 흑당충전 흑당밀크티 샌드케익에 흑당밀크티 샌드위치까지 있다. 다양한 대만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흑당 밀크 버블티야말로 대세 중의 대세라는 방증이다. 흑당 음료라고 건강에 더 좋은 건 아니다, 당뇨병, 심장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등의 건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들린다.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하다. 어떤 음식이든 정말 대세가 되면 건강에 해롭다는 식의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흑당이 건강 면에서 백설탕보다 특별히 나은 점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흑당 밀크 버블티 450ml 한 잔에 백설탕은 하나도 없이 미네랄이 풍부하다는 흑당으로만 35g 들어 있다고 해도 칼슘의 양이 21mg에 불과하다. 우유 18ml에 들어 있는 칼슘의 양과 동일하다. 흑당 밀크 버블티 한 컵과 같은 양의 백설탕 밀크 버블티의 영양상 차이는 칼슘만 놓고 보면 우유 한 모금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영양소 함량 수치는 식약처 식품안전정보 포털의 식품영양성분DB를 사용했다. 제시된 흑설탕 두 가지 중 칼슘 함량이 높은 것으로 계산했다.) 밥 대신 설탕을 퍼먹을 사람이 아니라면 건강을 생각해서 흑당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다. 흑당 밀크 버블티 한 잔의 칼로리는 스타벅스 음료 중 가장 높은 수준인 카페 모카와 비슷한 수준이다. 버블티에 들어 있는 타피오카 펄의 일부가 저항성 전분으로 잘 소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버블티로 인한 복통으로 화제가 되었던 중국 소녀의 사례도 이 때문이다) 감안하면 실제 섭취하게 되는 칼로리가 조금 낮아질 수 있긴 하지만 흑당 밀크 버블티 한 잔에 한국인 하루 평균 당류 섭취량(72g)의 절반에 해당하는 당류가 들어 있다. 흑당이라고 너무 많이 먹어서는 곤란하다.

흑당 밀크 버블티에 숨겨진 사실

흑설탕과 황설탕(갈색 설탕)과 흑당은 어떻게 다른가. 대만에서는 흑설탕이 곧 흑당인데 한국에서는 그런 듯 아닌 듯 헷갈린다. 정제당에 캐러멜을 넣어 만든 흑설탕, 황설탕을 재래식 흑당인 줄 알고 사먹던 시절도 있었다. 식품 역사 연구자 이은희는 자신의 책 <설탕, 근대의 혁명>에서 이러한 혼동이 일제 전시 체제에 비롯되었음을 지적한다. 설탕은 검은색의 끈끈한 액체인 당밀을 분리 제거하느냐 그대로 함유하느냐에 따라 분밀당과 함밀당으로 나눌 수 있다. 흑당 또는 흑설탕은 당밀을 제거하지 않고 재래 방식으로 만든 함밀당이고 갈색 설탕 또는 황설탕은 당밀을 산업적으로 제거하고 만든 분밀당이다. 20세기 초 백설탕을 효율적 에너지 공급원으로 권장하던 조선총독부는 중일전쟁으로 식량 사정이 나빠지자 모자란 백설탕의 소비를 줄이고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흑설탕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대만 분밀당인 황설탕을 가져다 팔았다. 당시 값이 더 비쌌던 정제 백설탕은 일본에서 소비하고 제조 비용이 적게 드는 황설탕을 조선에 공급한 것이다. 흑설탕과 백설탕의 영양상 차이도 크지 않지만 황설탕과 백설탕의 차이는 더 미미하다. 미네랄이 백설탕보다 많이 들어 있다며 요즘 광고하는 갈색 설탕의 영양 성분을 봐도 100g당 칼슘 함량은 고작 4mg에 불과하다. 흑당과 갈색 설탕의 뜻이 뒤섞이고 흑설탕이 백설탕보다 몸에 좋다는 대중의 편견이 생긴 것은 과거 조선총독부가 알면서도 사기를 친 결과인 것이다. 씁쓸한 역사다.

그래도 맛을 생각하면 흑당 밀크 버블티의 인기를 이해할 만하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딱 좋은 진한 갈색 무늬와 캐러멜 향 덕분에 더 달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쫀득한 타피오카 펄을 씹을 때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은은한 단맛도 재미있다. 이전에도 버블티가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2017년부터 시작된 흑당 밀크 버블티의 인기는 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다. “Q” taste라고 불리는 쫀득한 맛은 아시아인만 좋아한다는 편견을 무너뜨리듯 유럽과 북미에서도 버블티를 마시려는 줄이 길다.

모든 것은 포도당에서 시작되었다. 사실이다. 대만 음식의 열풍처럼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는 포도당이 있다. 흑당 버블티의 흑당도 쪼개보면 반은 포도당이며 나머지 반을 차지하는 과당도 몸속으로 들어가면 포도당으로 바뀐다. 타피오카 펄의 전분도 포도당이다. 대만 샌드위치에 겹으로 쌓인 식빵도 포도당이다. 인류는 포도당을 공유한다. 흑당 밀크 버블티가 인스타그램을 타고 세계적 트렌드로 떠오르기 수백 년 전에 이미 세계는 포도당 음식을 공유했다. 브라질이 원산지인 카사바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인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퍼지고 마침내 대만의 밀크 버블티 속 타피오카 펄을 만들어낸 밑바탕에는 우리 모두가 포도당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깔려 있다. 혼란의 시대에 그래도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다행이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