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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를 사랑하는 사람들

2019년 9월 6일 — 0

오랜 시간 무르익어 따뜻한 물에 서서히 스미는 찻잎처럼 은근하고 겸손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티를 사랑해온 사람들을 만났다.

Tea Sommelier

오렌지리프 김진평 대표

‘국가대표 티 소믈리에’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티에 푹 빠져 사는 것 같다. 티의 매력은 무엇인가?
티는 정말 맛있다. 어떤 음료보다 향긋하고 복합적인 맛이 매력적이다. 티를 마시면 차분해진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나는 순전히 티의 맛 자체를 좋아한다.

현재의 티 트렌드는 무엇인가? 티 소믈리에가 하는 일에 트렌드가 어떤 영향을 주는가?
어느때보다 차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특히 밀크티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또 많은 호텔들이 시그너처 티를 내놓는 추세다. 그래서 협업의 범위가 달라진 것을 실감한다. 패션 브랜드부터 호텔에 이르기까지 협업의 대상이 다양해졌는데, 공통적으로 티 소믈리에는 티 컨설팅과 메뉴 개발을 맡는다. 우리가 하는 일은 맞춤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웃음) 호텔 측에서 원하는 것을 듣고 호텔의 분위기, 호텔의 내외관, 매장, 전반적인 것들을 꼼꼼히 고려해 티 메뉴를 개발하는 것이다. 호텔의 바나 라운지를 위한 티 페어링을 하기도 한다.

협업을 통해 외부 브랜드에서 받는 영감이나 자극이 있다면?
아무래도 현재 오렌지리프를 운영하는 입장인 터라 브랜드 운영과 관련한 것들을 배운다. 협업하는 브랜드가 역사를 탄탄히 유지해온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티 브랜드의 방향을 외부적인 기회를 통해 다양한 각도로 살펴보고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신선한 자극이다.

최근 흑당 밀크티의 인기가 뜨겁다. 티 소믈리에로서 이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개인적으로는 밀크티 열풍을 긍정적으로 본다. 사실 밀크티에는 우유와 차가 들어가는데 요즘은 우유와 특정한 재료가 섞여도 밀크티라고 불린다. 흑당 밀크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밀크티의 범주가 넓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들과 티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사람들 손에 테이크아웃 밀크티 잔이 들려 있는 광경이 흔하다. 현재 달달한 밀크티가 유행하면 곧 달지 않은 맛의 밀크티가 유행할 수 있다. 점점 차의 본질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한다.

오렌지리프를 운영하며 티 소믈리에로 활동하는 김진평 대표.
오렌지리프를 운영하며 티 소믈리에로 활동하는 김진평 대표.
오렌지리프 티하우스에는 다도 클래스를 위한 다양한 기물이 마련되어 있다.
오렌지리프 티하우스에는 다도 클래스를 위한 다양한 기물이 마련되어 있다.

티 소믈리에가 하는 일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있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차에 대한 기본 지식이다. 기본적인 이해가 없으면 어떤 베리에이션을 해도 깊이가 생길 수 없다. 산지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티 소믈리에를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산지를 꼭 가보라고 말한다. 직접 티가 생산되는 환경을 보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랑 얘기를 해보지 않으면 지식은 막연해진다.

티 소믈리에는 티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가장 가까이에서 대중의 반응을 보기도 한다. 한국의 티 문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과 고집하는 것은 무엇인가?
얼마 전 티가 대중에게 친근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렌지리프 티하우스를 열었다. 일종의 티 랩이라고 보면 된다. 제조하는 과정은 찻잎을 진하게 우리는 방법을 고집한다. 인도의 전통적인 방식이다. 찬 물에 차를 우리는 냉침 또는 단순히 시럽이나 우유를 넣어 간편하게 차 한 잔을 낼 수도 있지만 내가 고집하고 싶은 것은 차의 진한 맛이다. 오랜 시간 찻잎을 우려낸 차는 맛의 깊이가 다르다.

본인이 좋아하는 차는 어떤 것인가?
브랜드로는 프랑스의 마리아쥬 프레르(Mariage Frères)를 좋아하고 즐겨 마시는 차는 중국의 무이암차다. 중국의 무이산에서 나는 모든 차를 일컬어 무이암차라고 부른다. 예전에 중국에서 차를 공부하던 시절 선선한 날씨에 마시던 무이암차 맛이 그렇게 좋았다. 구수한 현미와 잘 익은 과일 향이 어우러진 맛이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은?
올해의 목표는 가장 한국적인 티를 만드는 것이다. 코리안 브렉퍼스트 티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웃음) 한국의 티는 정말 맛있다. 그 매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늦어도 올가을엔 출시하려고 한다. 한국의 각 산지별로 녹차, 인삼, 당귀, 감초 등 한국 고유의 재료를 집중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김진평 대표의 차를 우리는 과정은 단정하다. 티 제조에 꼭 필요한 기물만 소박하게 갖추어 우려낸다.
김진평 대표의 차를 우리는 과정은 단정하다. 티 제조에 꼭 필요한 기물만 소박하게 갖추어 우려낸다.

Tea Blender

큐앤리브즈 성현진 대표

티 블렌딩에 대해 소개해달라.
블렌딩은 말 그대로 ‘혼합’, ‘섞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카멜리아 시넨시스라는 찾잎을 가지고 숙성도에 따라 홍차, 녹차, 보이차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블렌딩 티는 찻잎에 허브나 꽃잎, 곡물, 과일 등의 재료를 배합한 티를 의미한다. 가장 잘 알려진 블렌딩 티는 영국의 식민지 시대부터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기 시작한 잉글리시 브렉렉퍼스트, 그리고 얼그레이가 있다. 얼그레이는 홍차에 베르가모트에서 추출한 향료를 더해 가향차(Flavored Tea)라고도 하는데, 넓은 범위에서 플레이버드 티도 블렌딩 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티 블렌더는 아직 국내에 생소한데 비교적 잘 알려진 티 소믈리에와 어떻게 다른가?
티 소믈리에가 다양한 티의 맛을 감별하고 상황, 효능, 페어링에 따라 티를 제안하는 역할을 한다면 티 블렌더는 재료를 직접 혼합해 새로운 티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티 블렌더가 티를 감별하고 제안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블렌딩에 특화됐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티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도 높아지고 티 브랜드와 제품들도 다양화되고 있다. 실감하는가?
물론이다. 예로부터 다례 문화가 발달한 한국은 티에 대한 기반을 가졌지만 현대에 들어 커피에 비해 티의 입지가 월등 좁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중적으로 티에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여가와 휴식에 초점을 맞춘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도 있겠지만 스타벅스가 티바나를 인수한 것이 큰 작용을 한 것 같다. 스타벅스 매장에 티를 접목한 다양한 음료와 티 관련 MD 상품이 나오면서 티가 트렌디하고 친숙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티를 활용한 음료를 넘어 티 칵테일로도 관심이 확대됐다. 근래 밀크티 열풍은 말할 것도 없다.(웃음)

성현진 대표가 직접 블렌딩한 티의 향을 테이스팅하고 있다.
성현진 대표가 직접 블렌딩한 티의 향을 테이스팅하고 있다.
성현진 대표가 직접 작업해 탄생시킨 큐앤리브즈의 블렌딩 티들. 블랙유주와 시트러스 러브는 국제미각심사기구에서 인정받았다.
성현진 대표가 직접 작업해 탄생시킨 큐앤리브즈의 블렌딩 티들. 블랙유주와 시트러스 러브는 국제미각심사기구에서 인정받았다.

직접 블렌딩한 티 제품들로 브랜드 큐앤리브즈를 론칭했다. 평소 블렌딩 과정이 궁금하다. 하나의 블렌딩 티 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나?
처음에는 콘셉트를 잡고 그다음 홍차로 블렌딩을 할 건지, 허브로 블렌딩을 할 건지를 정한다. 예를 들어 홍차라면 아침에 마시는 티를 만들지, 저녁에 마시는 티를 만들지를 정한다. 아침에 마실 거라면 아쌈이나 몰티한 홍차를 사용할 것이고, 여기에 부합하는 다양한 다원의 차를 테이스팅하며 주제에 가장 적합한 원료를 선별하게 된다. 그다음 말린 과일 등의 부재료를 테이스팅하고 더해가며 균형을 맞춘다. 그룹별로 시음 기회를 제공해 피드백을 받고 수정, 보완한 뒤에야 하나의 제품이 완성된다. 훌륭한 식재료를 찾아 전 세계를 탐방하는 셰프처럼, 티 블렌더에게도 좋은 원료를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보니 원료 선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적게는 한 달, 길게는 1년도 더 걸린다.(웃음)

국내 티 업계에서는 최초로 세계 식음료계의 미쉐린이라 할 수 잇는 iTQi(국제미각심사기구)에 출품한 큐앤리브즈의 블렌딩 티가 최고 점수인 별 3개를 획득한 것으로 안다.
가장 처음 수상한 것은 국내 대회였다. 2016년 골든 티 어워드에 허브 블렌딩 티를 출품해 1등을 했다. 그때 내가 설정한 콘셉트가 온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티로 누룽지와 말린 바나나, 캐머마일을 넣어 구수하면서도 단맛이 있는 티였다. 다음 해인 2017년부터는 해외로 출품을 많이 했다. 티를 블렌딩할 때 한국의 재료를 사용해 한국적인 요소를 녹여내는 편인데 외국인의 입맛에도 경쟁력이 있는지 궁금했다. 루이보스 베이스에 말린 고흥 유기농 유자와 장미, 홍차를 넣은 ‘블랙유주’가 iTQi에서 별 3개를 받았고 캐머마일에 제주 유기농 귤피, 레몬머틀, 루이보스를 넣은 ‘시트러스 러브’가 별 2개의 성과를 얻었다.

국내 마스터 티 블렌더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큐앤리브즈의 슬로건이 ‘100년 후에도 사랑받는 블렌딩 티’다.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손자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세대를 아우르는 티. 말하자면 클래식하고 타임리스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나 얼그레이 같은 차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웃음)

찻잎과 다양한 부재료를 배합하며 티를 블렌딩하는 성현진 대표의 모습.
찻잎과 다양한 부재료를 배합하며 티를 블렌딩하는 성현진 대표의 모습.

edit 장은지, 김민형(프리랜서) — photograph 류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