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서글하고 잘생긴 외모 덕분에 도회적인 이미지까지 겸비한 아나운서에겐 생각지 못했던 개그 본능이 숨어 있었다. 회식을 사랑하는 한 아재의 고백.
김일중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일상적인 느낌을 주는 소수의 게시물과 아재 개그와 몸 개그로 점철된 다수의 게시물을 보며 김일중이 가진 예능감과 캐릭터성을 가늠했다. 김일중은 최근 1년간의 기러기 아빠 생활을 졸업했다. 그의 아내 윤재희 YTN 아나운서가 아이들과 함께 해외연수를 떠난 사이 김일중은 기러기 라이프에 집중했다. SNS의 국내 원조 격인 ‘싸이월드’도 하지 않던 그는 2016년 12월에 올린 첫 인스타그램 게시물 이후 지난해 7월 두 번째 게시물을 올렸다.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 셔츠를 입고 공항 출국장에서 손을 흔드는 뒷모습이었다.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과 입가에 가득한 미소의 사진도 함께 올렸다. 1년간의 기러기 생활을 인스타에 담겠다는 글에 이어 이런 해시태그를 달았다. #기럭키 #눈물꾹 #새어나오는웃음도꾹. 영화 <나 홀로 집에>를 패러디한 영상이나 광복절에 함께한 세 여인이 소주 레이블에 프린트된 수지와 아이유, 손나은이라거나 공중전화 부스에서 수화기를 들고 임창정의 ‘소주 한잔’을 진지하게 부르는 모습은 방송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김일중이라는 사람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기러기 아빠와 인스타그램 이야기를 꺼내자 김일중은 허례허식 없고 솔직한 이야기를 꺼냈다. “부러워하는 친구가 많았죠. 어차피 기간제 기러기 아빠였기 때문에 서로에게 발전적인 시간이었어요.”
김일중은 SBS 아나운서 시절 <좋은 아침>이나 <생방송 투데이>, <한밤의 TV 연예>, 라디오 DJ, 스포츠 중계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추억의 프로그램인 <야심만만>이나 <기적의 승부사>, <백년손님>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김일중이 대중에게 가장 크게 각인된 건 <백년손님> 때다. 해당 프로그램으로 차를 자주 바꾸는 철부지 사위이자 남편 캐릭터로 ‘국민 밉상’에 등극했고, 당시 많이 사용하던 용어인 ‘아나테이터’의 막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로 인한 소위 ‘웃픈’ 에피소드도 있다. “한번은 방송 때문에 물놀이를 하러 갔어요. 촬영을 기다리는데 연배가 있는 아저씨 한 분이 오셔서 말을 거셨어요. 사진을 함께 찍자고요. 아저씨가 아내분도 같이 사진을 찍자고 손짓했어요. 그런데 아내분이 ‘차를 그렇게 자주 바꾸고 철부지시네’라며 본인은 안 찍는다는 거예요. 대신 사진을 찍어주셨는데 그 사이로 젊은 여자 두 명이 지나갔어요. 그냥 지나가는 걸 봤는데 아내분이 ‘저기요. 사진 찍다 말고 결혼하신 분이 그렇게 쳐다보면 안 되지’라고 핀잔을 주셔서 난감했어요. 철부지 같은 모습은 방송을 위한 과장된 캐릭터였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실제로 김일중은 차에 열광한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관련 사진이 더러 올라온다. 인터뷰 중에도 차 이야기를 꺼낼 때는 눈이 반짝였다. “차 좋아하죠. 웃긴 게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인가에 산 캐피탈을 제가 군대 제대할 때까지 타셨어요.” 캐피탈은 기아자동차가 1989년에 출시한 준중형 승용차다. “제가 그 피를 물려받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의 드림 카는 포르쉐 911이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마흔에 포르쉐 911 타기.” 실제로 그가 타는 차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HSE다. 질주 본능을 가진 차가 아니라 가족을 위한 대형 SUV다.
김일중은 SBS에 입사한 지 10년 되던 해에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나운서계의 양대 산맥은 전현무와 김성주다. 이를테면 에베레스트와 K2다. 그가 목표하는 바는 전현무와 김성주를 제외하면 엄청나게 두각을 나타내는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이 없는 만큼 무주공산의 ‘넘버 쓰리’다. “저는 김성주나 전현무처럼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톱을 찍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저 스스로 이 정도 하면 나가도 밥벌이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프리랜서는 혼자 일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부분도 있지만 잘하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올초 행사계의 유재석으로 불리는 MC딩동은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프리 선언 아나운서 때문에 점유율이 낮아졌다며 자신의 라이벌은 김일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을 정도니 그의 전향은 성공적인 편이다. “프리랜서는 늙을 수가 없더라고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되니까요. 끊임없이 일하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해요.”
그래서일까. 올해는 기러기 아빠였던 시간적 여유 덕분에 유튜브 채널에 도전했다. “기러기 아빠가 괜찮은 콘셉트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해변에서 놀고 있지만 가족이 그립고, 주변이 클럽이지만 외로운 콘셉트였는데 기획이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강동원 같은 분은 면도만 하는 동영상을 올려도 조회수가 높은데 아무래도 저는 반응이 별로였어요.” 그는 ‘일중이의 이중생활’이라는 유튜브 닉네임으로 기러기 아빠를 위한 라면 리뷰나 햄버거 비교, 자동차 소개 등 다섯 가지 동영상을 쪼개서 업로드했다. 하지만 프리랜서 방송인으로서의 호황과 달리 sns에서의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꽤 공을 들였지만 동영상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까지 여러모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도 그렇고, 저는 오프라인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농담 섞인 자조였지만 그의 아재 감성에 공감하는 이로서 일중이의 이중생활 시즌 2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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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중의 이중생활
김일중은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한 지 이제 4년째다. SBS에 2005년 입사해 10년을 일했으니 방송을 시작한 지는 14년째가 됐다. “방송국에서의 시간은 정말 즐거웠고, 또 소중했어요. 가끔 방송국 시절이 그립기도 해요. 안정적이고 편하니까요. 그 시절 가장 그리운 건 회식이에요. 사무실에 있으면 제가 회식을 주도했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예정에 없던 회식 자리도 곧잘 만들던 그였다. 회식은 일과는 모두 끝났지만 무엇인가 허전하고 부족한 듯한 찝찝함을 지우고 하루의 마침표를 경쾌하게 찍을 수 있게 해주는 활력소였다.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시원한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켜며 다음 날의 업무를 기약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인터뷰 장소를 캐주얼한 펍인 ‘입가심’으로 고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여기는 회식으로 오기 좋은 장소예요. 1차보다는 2차에 적극 추천하는 곳이죠.”
5월에 문을 연 입가심은 경의선숲길을 낀 공덕오거리 인근에 위치해 있다. 작은 호프집이지만 광주 유명 한정식집의 부주방장 출신인 문종빈 셰프가 1년여의 푸드 트럭 생활을 청산하고 그동안의 노하우를 살려 소주와 맥주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안주를 선보이는 곳이다. 입가심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한쪽 벽을 가득 메운 귀여운 벽화다. 팝아트 작가이자 벽화를 주로 그리는 신주욱 아트 디렉터의 작품이다. 입가심의 호랑이 심벌이나 작은 소품에 그려진 그림도 모두 그의 손길을 거쳤다. 다른 하나는 친절한 서비스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환대와 상세한 메뉴 설명, 문을 나가는 순간까지의 응대 모두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다이닝 레스토랑에 온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다. 입가심의 시그너처 메뉴는 버무린 닭튀김이다. 얇은 튀김옷을 입힌 바삭한 닭튀김에 마늘간장 특제 소스로 매콤하면서도 단맛을 절묘하게 살렸다. 간장치킨과 깐풍기 사이의 어떤 맛인데 매운맛이 적당하게 혀를 쏘는 것이 중독성이 있다. 치맥은 여름이라지만 버무린 닭튀김은 계절에 상관없이 당기는 맛이다. “버무린 닭튀김의 양념이 상당히 독특해요. 여기 셰프님이 전라도 출신이라 그런지 양념이 정말 맛있고, 간이 딱 좋아요.” 일반적인 치킨인 닭튀김 역시 얇은 튀김옷을 옛날통닭 느낌으로 튀겨낸다. 수제 고추튀김은 매일 50개 한정으로 판매하는 특별한 메뉴다. 조금 과장해서 웬만한 사람 얼굴 길이만 한 커다란 오이고추를 갈라 속을 비워내고 돼지고기로 만든 소를 가득 채운 뒤 역시 얇은 튀김옷을 입혀 튀긴다. 함께 내놓는 깻잎장아찌에 싸서 먹거나 깻잎을 절인 간장에 찍어 먹으면 풍미와 감칠맛이 배가 된다. 씹을수록 단짠단짠의 파도가 밀어닥친다. 맥주를 부르는 맛이다. 이는 문 셰프의 어머니가 해주던 깻잎장아찌의 짜지 않고 깔끔한 감칠맛에서 착안한 곁들임이다. 그리고 입가심의 모든 튀김옷이 얇은 이유가 있다. 튀김옷이 두꺼워야 바삭한 게 아니라 얇아야 식재료의 맛과 간을 살리면서 바삭하다는 소신 때문이다. “지인들과 함께 왔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공덕역 바로 옆이라 접근성도 좋고요. 처음 방문한 뒤로 단골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다른 메뉴도 다 맛있어요. 골뱅이무침에는 골뱅이가 숨어 있지 않아요. 커다란 골뱅이가 아낌없이 들어 있죠. 떡이 긴 국물떡볶이도 술안주로 좋아요.”
그는 미식가는 아니다. 평범한 입맛을 가지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했고, 연애를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사랑하게 됐으며, 지방으로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가면 그 지역 향토음식 맛집을 찾아가는 정도였다. 줄을 서는 맛집이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옆집 문을 여는 정도다. “예전에는 음식이나 요리에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TV조선 <살림 9단의 만물상>이나 채널A <밥 한번 먹자> 같은 요리 비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과 맛집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맛을 음미하게 됐어요. 같은 요리라도 어떤 재료를 쓰고 첨가하느냐에 따라 맛이 확실히 달라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과 요리를 하는 일에 관심이 생겼죠. 이것도 방송일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요. 제 일이 끊임없이 재미있는 이유죠.”
입가심
한식을 전공한 문종빈 셰프는 1년 동안 전국을 돌며 다양한 음식을 푸드 트럭에서 선보인 뒤 입가심을 열었다. 입가심은 식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린 바삭한 튀김류와 다양한 안주가 술을 부르는 곳이다.
· 버무린 닭튀김 1만8000원, 닭튀김 1만7000원, 수제 고추튀김 1만원, 왕창골뱅이 1만8000원
·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 152 공덕파크자이 102동 상가
· 매일 오후 4시~새벽 2시
· 02-708-7892
@gongduk_ibgasim
edit 안상호 — photograph 양성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