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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조 @정동현

2019년 8월 13일 — 0

작은 가게다. 찾기 쉽지 않다. 그러나 알음알음 사람들이 몰려든다. 오랜 단골집을 드나들듯 살갑게 인사하고 한 손 가득 장을 본다. 저녁이 되면 한 테이블이 놓인 식당으로 바뀐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나무 테이블에 앉아 오래된 식기를 앞에 두고 식사를 한다. 프랑스의 향이 느껴진다. 그들이 쌓아 올린 시간이 다가온다. ‘메종조’의 마술이다.

text 정동현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말한다. ‘불고기 맛있어요’, ‘김치 좋아요’ 특히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일수록 불고기가 제일 맛있었고 김치가 xp 부조화다. 그렇다 보니 프랑스 음식을 따지다 보면 종국에는 어니언 수프와 달팽이 요리가 빠지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식이 틀림없지만 그 메뉴가 없이는 장사가 안 되는 현실은 유쾌하지 않다. 실제 프랑스의 식단은 빵을 중심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샤르퀴트리(Charcuterie)로 통칭하는 가공육을 통해 단백질을 보충하는 구성이 일반적이다. 특히 샤르퀴트리는 바게트를 비롯한 빵에 올리거나 발라서 먹기 용이한 형태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소시지나 가공육을 중심 재료로 간단한 요리를 하는 경우도 흔하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고기를 먹었던 유럽의 전통은 고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존하는 기술을 발달시켰다. 햄처럼 염지를 하거나 기름에 절이는 콩피(Confit), 절인 고기를 부수고 합하여 테린(Terrine)을 만들기도 했다. 돼지머리 편육과 같이 고기의 젤라틴을 이용한 기술이다. 흔히 이탈리아 요리를 두고 재료의 맛을 살리는 심플한 조리가 돋보인다고 하는데 프랑스 요리 역시 가정식의 범주로 들어서면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단지 파인다이닝의 수준에 있어 프랑스가 높은 경지에 있고 자연스럽게 복잡한 조리 방법이 개발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프랑스 음식을 진정 즐기기 위해서는 빵과 샤르퀴트리라는 두 조각이 필요하다. 디저트 빵과 식빵 위주로 구성된 한국의 빵 시장은 여전히 바게트와 같은 발효빵이 취약하다. 최근 샌프란시스코발 타르틴 베이커리(Tartine Bakery)의 등장은 그 전형적인 구성에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나머지 한 조각 샤르퀴트리는 몇몇 프랑스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시도가 이뤄졌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남부터미널 근처 ‘메종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메종조는 지금도 거의 유일한 프랑스 샤르퀴트리 전문점이다. 프랑스 남부 바스크 지방에서 수련한 경험을 살려 프랑스의 가정집과 같은 분위기를 살린 아늑한 인테리어는 방문한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편안한 느낌을 준다. 오래된 시계, 벽에 붙인 흑백 엽서들, 나지막이 가게에 울리는 프랑스 라디오 방송도 그 분위기에 한몫한다. 여기에 조심스럽지만 세심히 설명을 건네는 주인장의 태도는 신뢰를 주기에 충분하다. 메종조를 즐기는 방법은 우선 진열대에 놓인 샤르퀴트리를 간단히 사가는 것이 첫째다. 돼지고기 뒷다리를 절인 잠봉(Jambon) 햄은 그중 가장 기본이다. 제주산 돼지로 만든 이 햄은 얇게 썬 빵 위에 올리거나 사이에 넣어 샌드위치로 먹는다. 프랑스 직장인과 학생들은 점심에 바게트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은데 백이면 백 바게트 사이에 끼워진 대표적인 햄이다. 한국의 피순대와 유사한 ‘부댕 누아르(Boudin Noir)’는 피순대와 마찬가지로 돼지 내장에 선지, 수수와 같은 곡류, 다진 고기를 넣어 만든다. 맛 또한 거의 유사한데 영국식 아침 식사에 빠지지 않는 ‘블러드 소시지(Blood Sausage)’ 역시 이와 비슷한 종류다. 그 외 다양한 종류의 테린이 있다. 푸아그라와 견과류, 오리 가슴살, 닭 가슴살 등을 넣어 굳힌 테린은 상온에서 살짝 기름기가 올라올 정도가 되었을 때 빵과 같이 먹는 게 좋다. 각종 소시지와 베이컨도 추천할 만하다. 베이컨은 낮은 불에서 서서히 익혀 지방을 녹여가며 굽는 것이 포인트다. 마트에서 파는 저가 베이컨은 염지액을 다량 주입해 구우면 수분이 많이 나오는 반면 메종조의 베이컨은 맑은 기름이 잔잔히 깔릴 정도가 된다. 이 베이컨 기름으로 달걀을 구우면 감칠맛이 돌아 더 맛이 좋다. 베이컨 기름은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가 사랑했던 식재료 중 하나다. 조금 더 메종조의 음식을 즐기고 싶다면 저녁 식사 예약을 하는 방법이 있다. 가게 중앙에 놓인 널따란 나무 테이블이 바로 그 용도다. 최대 8인 정도 되는 작은 좌석에 영업을 하는지라 예약은 필수다.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메뉴는 한정적이다. 그러나 온갖 장식적인 요소가 덕지덕지 붙은 요리에 비해 훨씬 큰 만족을 준다. 가격도 1만원에서 2만원대 초반으로 부담도 적다. 버터를 비롯한 유지류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샐러드를 한 종류 시키고 시작하자. 산미가 제법 느껴지는 당근 샐러드는 그 자체로 이곳의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줬다. 커민과 같은 향신료로 향을 내고 올리브유와 와인 식초로 만든 드레싱을 뿌린 이 샐러드는 산미를 쓰는 데 소극적인 한국의 양식과 차별화된다. 산미는 본질적으로 발효가 상당히 진행되었을 때 생겨나는 맛이다. 발효는 다른 말로 하면 썩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익숙해지는 데 꽤 노력이 필요하다. 신 김치를 예로 들 수 있다. 관광음식점에서 파는 김치가 보쌈김치같이 산미를 줄이고 아삭한 식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해가 어려운 산미 대신 익숙한 단맛, 경쾌한 식감 위주로 맛을 설계하는 편이 초심자에게 더 알맞기 때문이다. 무조건은 아니겠지만 가정식으로 갈수록 해당 문화 특유의 산미는 더 짙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그 이유다. 메종조에서 내놓는 와인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미국 나파 밸리에서 나는 와인이 보이는 흔한 성향, 즉 확연한 바닐라와 오크 터치, 무겁고 진한 바디와 단맛 위주의 와인은 찾기 힘들다. 대신 역시 산미가 돋보이는 와인이 대부분인데 이는 유지류를 많이 쓰는 음식과도 관련이 있는 듯했다. 샐러드와 와인이 세팅되면 빵 한 접시가 놓였다. 이 집에서 직접 구운 발효빵이었다. 코로 숨을 쉬니 내장 깊숙이 쿰쿰한 향이 느껴졌다. 샐러드, 와인, 빵에 이르기까지 식욕을 돋게 하는 신맛이 큰 맥락을 이루고 있었다. 샤르퀴트리 전문점에 왔으니 모둠이라 할 수 있는 샤르퀴트리 플레이트를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절인 오이인 코르니숑과 잠봉 햄, 매콤한 초리소, 테린 등이 아담히 쌓여 있었다. 한번에 해치우기보다는 이후 나오는 요리와 함께 천천히 즐기는 게 좋다. 뒤이어 나온 요리는 ‘버터에 구운 오소리감투와 루꼴라 샐러드’였다. 버터가 갈색으로 끓을 때까지 온도를 올려 구워 고소한 견과류 향이 올라왔다. 오소리감투의 쫄깃한 식감도 인상적이었다. 금속성 맛이 나는 루꼴라 샐러드는 내장 부속인 오소리감투의 진한 육향과도 잘 어울렸다. ‘팬에 구운 돼지귀 테린과 아이올리 소스, 야채볶음’도 맛의 밀도가 높았다. 한국의 돼지 편육을 구웠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돼지귀 테린과 마늘의 강한 맛이 살아 있는 아이올리 소스는 맛에 있어서 강과 강의 대결이었다. 야채볶음을 곁들였을 때는 자연스럽게 와인 잔에 손이 갔다. 뒤이은 ‘프렌치 뇨끼와 토마토 소시지 라구’는 만약 단 하나의 요리밖에 시키지 못한다면 추천 순위 맨 위에 올라 있을 것 같았다. 바삭한 겉면과 폭신한 속을 가진 뇨끼에 새큼한 토마토소스, 알알이 씹히는 다진 소시지가 밑에 깔린 이 요리는 한 접시를 비우는 데 짧은 시간이 필요했다. ‘제주 흑돼지 목살구이’는 가장 단순한 요리마저도 어떻게 다루고 내는가에 따라 격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였다. 온도를 최고로 높인 팬에 짙은 갈색이 돌게 구운 흑돼지 목살은 조밀한 육질과 그만큼 농도가 짙은 육향을 품고 있었다. 디저트였던 ‘테린 드 쇼콜라’는 앞선 요리들의 존재감을 작게 만들 정도로 묵직했다. 꽃향기가 도는 리큐어를 넣어 굳힌 초콜릿은 입에 넣을 때마다 전신에 자극이 왔다. 사랑, 러브, 아무르, 이런 말들이 작은 초콜릿 테린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작지만 비교할 수 없는, 비교당할 수 없는 그곳만의 개성과 색깔이 있었다. 우리가 프랑스 음식에 대해 몰랐던 특별한 일상이었다. 맛과 향으로 이루어진 그곳의 평범한 삶이었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