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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명품 푸드 @양평 수진원 장

2019년 8월 5일 — 0

햇살 가득한 땅 양평에서 장소의 혼이 담긴 장을 만났다.

양평楊平은 대한민국 국토 정중앙에 위치한 산과 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이다. 면적은 서울의 1.45배(878km²) 크기로 인구는 11만 명. 서울과 비교하면 대략 1인당 145배 정도 넓은 면적을 이용하는 셈이다. 지리적으로 남한강과 북한강 사이에 위치하고 75%가 산림이라 물과 공기가 깨끗하다. 조선 시대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에서 강조했던 살기 좋은 곳의 조건들인 “풍수가 좋은 지리地理, 비옥한 토지와 교역에 유리한 생리生理, 풍속과 사람들의 인심人心, 산과 하천이 아름다운 산수山水”를 모두 갖춘 지역이다.

한국인과 장醬

한국은 산지가 많아 목축이 적합하지 않았고, 경작지 또한 부족해 산과 들에서 식물의 잎, 열매, 뿌리를 채취하거나 텃밭에서 키우는 채소가 주요 식재료가 되었다. 때문에 채소의 조리, 저장, 발효 방법이 발달되었으며, 한국 음식 문화의 필수 식품인 장은 채식 식재료들과 함께 한국 음식 문화의 핵심으로 발전했다. 장류는 이 땅의 자연조건, 장소의 혼이 담긴 천연 조미료이다. 대표적인 3대 장은 간장, 된장, 고추장 3자매로, 주재료는 콩이고 소금과 함께 만들어진다. 콩은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잘 자라며, 소금 역시 서해안 갯벌에서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을 만들어왔다. 우리 토양에서 키운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어, 이 땅의 기후 조건에 적응한 미생물의 분해 작용을 거쳐, 깨끗한 물, 질 좋은 소금과 만나면 한국만의 독특한 장이 만들어진다.

수진원(修眞園)

양평의 용문산 자락 강가에 위치한 수진원은 아름다운 경치와 더불어 발효 식품 숙성에 최적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은 말표산업㈜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구두약 회사를 창업한 정두화 회장의 고향으로, 정 회장은 50대 초반 이른 나이에 성공한 기업의 회장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땅을 매입해 전통 방식의 궁중 장류를 만드는 농장을 개척했다. 지금은 좋은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70년대 중반에 간장, 된장 같은 전통 장류를 최고 품질로 만들기로 마음먹고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먹거리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았던 정 회장은 주변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일들을 자신의 원칙으로 삼아 철저히 지키며 묵묵히 실천에 옮겨 오늘날 수진원의 터전과 장맛을 만들어냈다. 그의 장인정신은 수진원 농장의 경영 방식이자 철학이 되어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다.

궁극의 싱글 오리진 간장, 된장

원두커피 중에 싱글 오리진(Single Origin)이라 불리는 상품이 있다. 특정 지역과 농장에서 생산된 단일 원산지 커피로 여러 품종이 섞인 블렌딩 커피보다 생산지의 맛과 특색이 잘 표현되는 탓에 일반적으로 품질과 가격이 고급에 속한다. 수진원 농장은 간장과 된장의 가장 중요한 식재료인 콩을 전량 이곳에서 직접 파종, 재배, 수확해 메주를 만들고, 장을 담가 간장, 된장을 만드는 곳이다. 이 때문에 농장 경영을 맡고 있는 박주형 원장은 매년 6월 콩을 심은 뒤 새싹이 올라오는 열흘 동안은 농장에서 밤을 새운다. 그 시기에 고라니가 출몰해 새싹을 먹어치우면 1년 장 담그기를 망치기 때문이다. 콩뿐 아니라 메주 발효에 필요한 짚 또한 농장 내의 논에서 키운 벼를 수확한 뒤에 나온 볏짚을 활용한다. 이 정도면 좋은 장을 만들기 위한 집착을 넘어 강박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표현일 듯하고,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장은 싱글 오리진보다 더 귀한 이름, 궁극의 싱글 오리진Ultimate Single Origin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싶다. 이런 정성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장류는 지출되는 비용들을 모두 원가에 넣고 계산하면 상품화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고 정두화 회장은 콩을 기르는 비용과 소금값은 아예 계산에 넣지 않았다고 한다. 수진원 창업 이래 장류 판매로 흑자를 낸 적은 없지만 궁중 장류 전통의 맥을 잇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최고의 장을 통해 한국 음식 문화 가치를 높이는 보람으로 농장을 운영한다.

임금님께 올리는 장

수진원에서 생산하는 장류는 인터넷 주문과 이곳을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직판한다. 농장 입구의 소박한 판매장에는 세월의 풍상이 느껴지는 ‘임금님께 올리는 醬’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나무 간판이 걸려 있다. 이 글귀는 결코 빈말이 아닐 듯싶다. 물론 농장이 세워진 연도로 보면 임금님이 실제로 드실 기회는 없었겠지만, 장인정신으로 3대를 이어온 수진원의 확신에 찬 자신감으로 새긴 글이다. 이 글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는 ‘임금님도 드셔보지 못한 장’이다. 그에 걸맞게 따뜻한 햇살, 맑은 공기, 깨끗한 물, 건강한 흙과 3대를 이어온 장인정신으로 빚어낸 장류는 맛의 깊이가 다르다. 그 명품을 맛볼 수 있음에 창업자 고 정두화 옹, 2대 정연수 회장, 3대 박주형 원장(손주사위)으로 3대째 이어온 분들의 노력과 헌신에 감사해야 한다.

해바랑의 5가지 명품

‘해바랑’은 양평의 맑은 햇살을 가득 담고 자란 우리 농산물을 장인의 정신으로 정성껏 담아낸 ‘햇살이 가득한 큰 주머니’라는 뜻이다. 수진원에서 생산되는 간장, 된장, 고추장, 현미식초, 청국장은 ‘해바랑’이라는 브랜드로 판매되며, 양평의 물, 공기, 흙이 빚은 맛의 원천이다. 이들이 다른 식재료들과 만나 만들어내는 깊고 조화로운 무한한 가능성들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진정한 맛이다.

edit 김옥철 — photograph 김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