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껍질 튀김, 라면 맛 과자, 라벤더 향 과자 등 생소한 조합의 먹거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 음식들은 과연 괴식일까.
text 정재훈 — edit 안상호 — photograph 박인호
포테이토칩에서 향수 맛이 났다. 1992년 프랑스 영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에서 주인공 앙투안과 그의 아내 마틸드가 술 대신 향수를 섞어 칵테일처럼 마시는 장면을 보고 나서부터 궁금했던 그 맛을 편의점에서 사온 과자에서 맛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라벤더&블루베리맛 허니버터칩은 분명히 라벤더 향수의 맛이었다. 원재료 함량으로 보면 블루베리가 라벤더 허브차보다 90배 더 많이 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루베리 향보다는 라벤더 향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체리블라썸 허니버터칩을 먹을 때도 느낌은 비슷했다. 벚꽃 향의 화장품을 입에 넣으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맛이 없진 않았다. 기존 허니버터칩의 달콤한 맛과 은은한 벚꽃 향이 썩 잘 어울렸다. (일부 시식평과 달리 체리 향은 나지 않았다. 체리블라썸은 체리가 아니라 영어로 벚꽃을 칭하는 말이다.)
괴식이란 무엇인가. 술 대신 향수를 마시는 정도라야 괴식인가 아니면 향수 맛이 나는 포테이토칩도 괴식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지난 6월 20일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였다. ‘닭껍질 튀김, 돼지꼬리 구이… 1020 왜 <괴식>에 열광하나’라는 표제의 기사는 괴식怪食의 세 가지 특징으로 지독하게 짜거나 단 식품, 외형이 신기한 먹거리,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구성된 메뉴를 들었다. 기사의 기준에 따르면 KFC 닭껍질 튀김과 돼지꼬리 구이는 외형이 신기한 먹거리여서 괴식, 뚱뚱이 마카롱과 흑당버블티는 지독하게 달아서 괴식, 치킨 프랜차이즈 멕시카나에서 내놓은 볶음김치맛 김치킨과 짬뽕라면맛 소스와 오징어볼을 치킨과 함께 버무린 오징어짬뽕치킨, 편의점 GS25에서 선보인 미니언즈 핫치킨맛 초코스틱, 농심에서 내놓은 포테토칩 육개장 사발면맛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어서 괴식이 되는 셈이다. 육개장 사발면맛 포테토칩에 너무 놀라지 마시라. 요즘 편의점 매대에는 짱구 허니시나몬 볶음면도 있고 옥수수와 체다치즈로 고소한 콘치즈면도 있다. 냉장 진열대에 인디안밥 우유와 초코바나나킥 우유도 실재한다. 과자는 라면이 되고 라면은 과자가 되는 시대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과자 사러 편의점 갔다가 컵라면이나 우유를 들고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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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식과 맛의 과학
제품을 실제로 맛보면 괴이하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짱구 허니시나몬 볶음면을 처음 코에 가져가면 짱구의 시나몬 향이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입에 넣고 씹을 때는 불닭볶음면의 안 매운 버전에 가까운 맛이다. 코로 냄새 맡을 때와 입 속에 넣었을 때의 풍미가 이렇게 달라지는 것은 들숨과 날숨 때 후각의 차이 때문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는 코로 들이마시는 공기를 통해 그 향기를 인식하게 된다. 이걸 전문 용어로 정비측 후각(Orthonasal Olfaction)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음식을 입 안에 넣고 씹을 때 방출되는 향기는 그와 반대 방향으로 입 뒤쪽에서 비인두를 타고 콧속 빈 공간으로 흘러들어가며 냄새를 인식하므로 후비측 후각(Retronasal Olfaction)이라고 부른다. 개는 정비측 후각이 발달해 있지만 사람은 후비측 후각이 더 중요하며 잘 발달한 감각이다. 음식을 먹을 때 추억이 떠오르고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은 주로 후비측 후각 덕분이다. 와인을 마실 때만 들숨과 날숨의 향이 다른 게 아니다. 짱구 허니시나몬 볶음면도 그렇다. 들숨 때는 짱구 향, 날숨 때는 볶음면 맛이다. 들숨 때는 재미있고 신기하지만 날숨 때는 먹을 만한 음식이 되는 것이다. 달콤한 콘치즈 같은 냄새가 나지만 막상 입에 콘치즈면을 넣고 씹으면 스위트콘을 넣어 만든 수프 맛이 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육개장 사발면맛 포테토칩 역시 괴식이라고 보기에는 맛이 평범했다. 이 제품에서는 육개장 사발면의 향이 나지 않았다. 라면을 먹을 때와 과자를 먹을 때의 온도 차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릇에 감자칩 몇 조각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보았다. 잠깐 동안이지만 라면 향이 느껴졌다. 확인을 위해 식품공학 전문가 노중섭 박사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라면을 끓여 먹을 때 휘발성 성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내는 풍미가 과자를 맛보게 되는 상온에서는 그대로 발현이 되지 않으므로 동일한 시즈닝을 넣는 것만으로 같은 맛을 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향을 내는 원료가 액상이냐 가루냐 또는 지용성이냐 수용성이냐에 따라서도 냄새의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했다. 라면 맛 과자를 만들고 과자 맛 라면을 만드는 것은 복잡한 과학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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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식과 건강
<중앙일보> 기사는 한국 신문 기사의 전형적 공식을 따라 이어졌다. 괴식 문화는 이전의 웰빙 트렌드에 역행하는 일종의 반문화이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현상을 분석하면서 괴식은 건강상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으로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싫어요’를 누른 사람의 수가 498명으로 ‘좋아요’를 누른 30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댓글도 날 선 비판이 주를 이뤘다. 다른 나라 음식을 자기들이 익숙하지 않다고 괴식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 예전부터 돼지꼬리 수육을 즐겨 먹었는데 그걸 굽는다고 왜 괴식이냐,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다고 괴식이라고 몰아붙이면 곤란하다, 젊은 층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보는 꼰대 마인드라는 등의 반론이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다. 우리가 토스카나의 닭볏 요리나 집시의 고슴도치 요리에 익숙해지기는 어렵겠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고 괴식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하지만 괴식이 건강상 해로울 수 있다는 건 사실 아닌가?
반드시 그렇진 않다. 기존에 없던 생소한 식재료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해서 특별히 건강에도 더 해로운 것은 아니다. 감자칩에 라벤더나 벚꽃의 향을 낸다고 해서 열량이나 영양 성분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점심으로 라면을 먹느냐 비빔밥을 먹느냐의 차이에 비하면 컵라면으로 신라면 큰사발을 먹느냐 콘치즈면을 먹느냐의 차이는 사소하다. 콘치즈면 1인분은 신라면 큰사발보다 탄수화물이 5g 적고 당류와 지방은 각각 1g 많으며 단백질 함량은 동일하다. 맛이 다를 뿐 원재료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으니 영양 면에서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굳이 건강상 주의를 필요로 하는 음식이라면 괴물짜장, 내장파괴버거처럼 양이 엄청나게 많은 경우를 들 수 있겠으나 이 또한 괴식이라 특별히 더 해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뭐든지 지나치게 많이 먹어서 좋을 게 없다는 평범한 상식의 연장일 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즐겨 먹는 닭껍질 튀김을 괴식의 범주에 넣는 것이 합당하냐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만약 괴식으로 간주한다고 해도 고칼로리라는 걸 제외하면 영양상 나쁠 게 없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월터 윌렛 교수는 닭껍질이 다른 닭고기 부위에 비해 지방이 많긴 하지만 건강에 좋다는 불포화지방이 대부분이므로 요리할 때 굳이 벗겨낼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닭껍질만 먹는다고 해서 크게 해롭다고 보기도 어렵지 않은가.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면 KFC에 가서 닭껍질 튀김만 먹고 올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지난주 내가 그랬다. 치킨버거에 콜슬로와 콜라까지 다 먹고 나니 섭취 열량 1100kcal를 훌쩍 넘겼다. 닭껍질을 벗겨서 튀김옷을 입혀낸 가슴살과 닭껍질 튀김을 함께 먹고 있으니 기괴하진 않았지만 애매하게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KFC가 닭껍질을 많이 팔려고 닭껍질 튀김을 내놓은 건 아니라는 걸 꼭 기억해야겠다. 닭껍질 튀김을 처음 내놓은 인도네시아 KFC는 2017년에 초콜릿을 뿌린 치킨을 출시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킨 전력이 있다. 괴식이 나오면 띄워주면서 동시에 먹지는 말라는 언론 매체에 대중이 반발할 만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한우 채끝살 짜파구리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함께 섞는 걸 괴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괴식은 지역 식문화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 개념이다. 그러니 누군가 괴식이라 이름 붙인 음식에 대한 지나친 편견을 버릴 수 없거든 기억하라. 괴식은 그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에게만 괴식일 뿐이다.
*2014년 네이버 오픈사전에 실린 괴식의 정의는 “라면형 과자 뿌셔뿌셔를 라면처럼 끓여 먹고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함께 섞는 등 기이한 식습관을 일컫는 네티즌들의 신조어”였다. 2019년 7월 현재 이 항목이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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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