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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2015년 5월 5일 — 0

‘로칸다 몽로’의 오너이자 푸드 라이터인 박찬일 셰프가 생각하는 ‘미식의 정의’는 무엇일까. 미식과 정치는 같거나 모호한 경계선에 함께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글 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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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은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19세기에 ‘미식법’을 제정한 이래 널리 쓰이는 개념인데, 여전히 정치적으로 사용된다. 민감한 혀‐우리가 그것을 잴 수 있는 현란한 팔레트를 가졌다 해도‐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미식가의 태도를 설명하는데, 이는 당연히 매우 정치적인 구조 안에 있다. 16세기 프랑스 소설 <가르강튀아>에서 거론되는 음식과 섭생은 정치적 풍자로 연결되어 있고, 김지하의 지독한 독설로 유명한 <오적>조차 밥과 똥이라는 직설적 상징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슬로푸드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의 “정치적 관점이 없는 미식은 탐식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여전히 미식에 대해 얘기할 때 인용되는 것이다.

한때 많은 사람이 단순하게 인용한 브리야‐사바랭의 저 유명한 언설 “먹은 것을 말하면 누군지 알려주마”는 음식과 끼니야말로 정치적 입장과 계급을 가르는 중요한 명제임을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당대에 와서도 로컬푸드만 사서 먹는 사람을 뜻하는 미국식 용어 ‘로커보어(Locavore)’가 미식의 측면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을 설명하는 데 더 자주 쓰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무상급식에서 미식은 배제되어 있지만‐급식이란 용어 자체에 이미 미각적 부분이 거세되어 있다. 짬밥에서 맛을 찾는 건 연목구어란 뜻이다‐사실상 아이들은 급식으로 인해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치적 해석 안에 놓였다.

세계 미식과 요리의 기술적 아버지로 통하는 앙투앙 카렘(Antonin Careme)은 나폴레옹과 러시아 황제를 위해 요리했다. 카렘의 위대함은 당대에 보는 온갖 요리와 과자(페란 아드리아 등의 요란한 모던 퀴진도 물론)가 실은 카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새카만 제자들이란 데서 알 수 있다. 그의 삶을 다룬 전기 작가에 따르면, 임종 90분 전에 “생선 요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더군”이라고 지적할 만큼 집요했다. 그의 시대가 가고, 프랑스 혁명은 미식의 역사를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왕족과 귀족들을 위해 복무하던 요리사들이 비로소 ‘돈’과 ‘인기’를 좇아 요리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미식의 대중적 역사가 개봉되었음을 뜻했다. 더 많은 이가 음식에 대해 토론할 수 있었고(왕과 황제의 음식에 대해 누가 감히 비평할 수 있었을까), 미식이 철학의 한 갈래로 성장하고, 마침내 현대에 와서 통제 불능의 재능을 보이면서 대중 미디어와 예술까지 장악하고 있다. 그것은 미식을 둘러싼 여러 현상을 여전히 정치적 틀로 분석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특징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것은 여전히 계급의 문제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것은 가격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격은 곧 접근성을 의미하는데, 미식이 탈정치화되고 있는 몇 가지 징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유효하다) 예를 들어 칠레 농어(칠레산 농어가 아니다), 로마네 콩티(단 한병을 위해 우리의 연봉을 털어야 할 수도 있다), 쿨라텔로 지벨로(모나코 왕자 같은 이들에게 선약되는 햄) 같은 것은 가격과 제한 공급이라는 방법으로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 설사 무리해서 어느 월급쟁이가 사먹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미식 행위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광범위한 재료의 공급과 고급 기술을 가진 요리사의 폭증에도 여전히 우리들 다수는 전통적으로 미식 행위라고 부를 수 있는 밥상에 초대받기 어렵다. 또한 미식은 그 사회의 정치적 수준과도 당연히 연계되어 있다. 고급 식당과 좋은 재료의 소비는 미식의 조건에 해당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성숙이 동반되지 않은 까닭에 담론 형성이 뒤따르지 않고 있다. 초보적인 미식 담론 생성에 적극적인 일부 지식인과 단체 역시 스스로 그 행위를 정치적 견해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쇼비니즘 수준의 관념적 이해에 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맛에 대해 이해하려는 행위는 결국 정치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음에도 스스로 반정치적인 것이라고 선을 긋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진다. 특히 미식의 주체인 요리사들의 자각이 전무하거나 매우 낮은 단계에 머물고 있다. 요리사들은 텔레비전의 예능에서 소비될 뿐, 미식과 관련된 여러 담론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올해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엑스포의 주제는 미식인데, 전 세계 요리사들이 담론 생성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다. 미식을 산업 측면으로만 보고 있는 것이다. 미식은 그런 면에서 행위가 아니라 ‘사고’인지도 모르겠다. 정치는 생각에서 출발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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