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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경 셰프의 휴135

2019년 8월 12일 — 0

손님과 고기를 굽는 사람의 눈에 불씨가 일렁이고, 벌거죽죽하던 고기는 뒤집을 때마다 ‘차르르’ 점잖지 못한 소리를 내며, 인중에는 단백질이 타는 고소한 냄새가 요요히 맺힌다. 한남동 휴135에는 ‘진짜’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와 직접 고기를 굽는 김세경 셰프가 있다.

휴135 다치 뒤에 선 김세경 셰프.
휴135 다치 뒤에 선 김세경 셰프.

불과 고기의 치명적인 조합

불과 고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테이블마다 은구렁이 같은 후드 하나씩은 드리운 고깃집이다. 별다른 기술 없이 슥슥 대충 구워도 혀에 찰싹 달라붙는 삼겹살의 맛과 기름을 씻어 내리는 소주잔이 부딪치는 으레적인 풍경이 그곳엔 있다. 셰프가 정성스레 구워 테이블로 대령하는 스테이크와 달리, 이곳에선 저마다 요리사 못지않은 가위 솜씨로 고기를 직접 굽는다. 굳이 성가시게 먹는 고기가 맛있는 데에는 화로의 고온과 불 향의 역할이 크다. 그러나 고기가 익으며 내는 지글지글 소리, 송골송골 맺히는 기름기, 고소한 냄새 같은 공감각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적당한 순간에 고기를 뒤집기 위해 내내 지켜보며 군침을 삼키고, 그렇게 잔뜩 안달 난 상태에서 성급하게 입에 넣기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면이나 세련됨은 가뿐히 포기해야 하는데 한국인의 고기 사랑이 얼마나 유난했는지 한국식 화로를 채택한 파인다이닝이 몇 년 전부터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애피타이저와 최상급 한우 구이를 포함한 메인 요리, 디저트 등으로 구성된 코스를 제공하는 ‘한우 파인다이닝’과 메뉴 구성을 전적으로 셰프에게 맡기는 오마카세 형식을 차용한 ‘한우 오마카세’가 그것이다. 거리의 고깃집과 상반된 분위기의 이곳에선 셰프가 정성스럽게 고기를 프레젠테이션하고 손님 앞의 화로에서 직접 구워준다. 육덕진 고깃덩이만 최고로 치는 것이 아니라 참치의 등살처럼 붉고 뱃살처럼 하얀, 감질날 만치 자그마한 살점이 극진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손님이 손수 가위와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울 일은 없지만 고기를 더 맛있게 느껴지게 하는 공감각적 효과는 이곳에서도 여전하다.

국내 다이닝 신의 최전선에 가세하고 있는 한남동 골목에 한국식 화로를 둔 휴135가 생겼을 때, 시류에 약간은 편승하고 저만의 참신함도 녹여낸 한우 오마카세라 짐작했다. 어두컴컴한 실내, 다치에 새겨진 모던한 화로, 야릇하게 전시된 고깃덩이들. 한우 오마카세와 상당 부분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이곳의 주제는 뜻밖에도 ‘한우’, ‘오마카세’ 둘 중 어느 것도 아니다. 최상급 한우 중에서도 특별히 맛있는 부위를 웨트에이징해 제공하는 한우 오마카세에서는 좀처럼 취급하지 않는 드라이에이징 고기가 휴135의 주제다. 더구나 이곳 셰프들은 손님들에게 마블링이 화려한 투 플러스 한우보다는 기름기가 적은 미국산 프라임이나 호주산 와규를 권하는 일이 잦다. 또 요청하는 손님에 한해 코스를 짜주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셰프가 온전히 구성하는 고정된 코스 메뉴는 전무하다. 모든 고기는 그램 수로 판매되며 전채, 사이드, 디저트 메뉴가 각각 단품으로 마련되어 있다. 고기는 100g만 즐겨도 되고 입에 맞는 전채 요리를 두어 번 거듭 요청할 수 있다. 휴135는 김세경 오너셰프가 이끄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퀴진이다.

육류 거래처에 방문하기 위해 마장동 축산시장 골목을 지나는 셰프.
육류 거래처에 방문하기 위해 마장동 축산시장 골목을 지나는 셰프.
드라이에이징된 안심의 딱딱하게 굳은 부위를 제거하고 있다.
드라이에이징된 안심의 딱딱하게 굳은 부위를 제거하고 있다.
굳은 부분을 제거하고 손님에게 선보일 포션으로 자른 안심의 단면.
굳은 부분을 제거하고 손님에게 선보일 포션으로 자른 안심의 단면.

드라이에이징에 대한 오해와 진실

미국 명문 요리학교 CIA를 졸업한 김세경 셰프는 ‘컨템퍼러리 아메리칸 퀴진’의 선구자로 일컫는 찰리 파머 레스토랑에서 이그제큐티브 셰프를 거쳤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프렌치 요리의 테크닉과 식재료를 기반으로 다국적 식재료와 방식을 입히는 ‘컨템포러리 아메리칸 퀴진’과, 미국에 있을 당시 멘토로 삼은 단테 보쿠제 셰프로 인한 ‘이탤리언 퀴진’의 영향을 두루 받았다. “2015년쯤 찰리 파머 회사를 관두고 미국에서 레스토랑을 시작하려 했는데 서울 유수의 식음 회사들에서 외식 컨설팅을 요청해왔어요. 컨설팅을 위해 한국에 오가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 시장을 파악하게 됐죠.” 18년의 미국 생활 끝에 한국에 들어온 셰프는 뉴 아메리칸 요리를 선보이는 래미스에 이어 작년 10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퀴진 휴135를 선보이게 됐다. “전 세계 사람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이 뭘까 생각하니 아무래도 고기더라고요.(웃음) 제가 근무했던 찰리 파머도 스테이크 하우스로 유명했어요. 그곳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에 제대로 된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몇 년 전 다이닝 신에 들불처럼 번진 드라이에이징 열풍이 사그라든 것은 드라이에이징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업하며 드라이에이징 고기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 몇몇 업장의 탓도 있다. 본래 드라이에이징한 고깃덩이는 포션으로 자르기 전에 거뭇하게 굳은 겉면을 쳐내야 하는데 그대로 제공하거나, 고기 부위에 따른 숙성 정도를 맞추지 못하면서 높은 가격을 받는 곳도 있었다. 잘못 숙성된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는 시간과 노력, 비싼 가격에 비해 맛에서는 촉촉한 한우에 견줄 만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는 오해를 샀다.

드라이에이징은 온도만 조절하는 방식과 온도는 물론, 습도, 바람까지 전부 통제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휴135는 후자를 택한다. “한국에는 온도 조절만 가능한 숙성고뿐이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것은 직접 주문 제작 했어요.” 기름이 많은 부위는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 숙성하고 뼈가 있는 립아이는 쉬이 마르지 않아 좀 더 오랜 시간 숙성한다. 안심을 제외한 부위는 통상 30~40일 이상은 숙성해야 최적의 맛이 보장된다. “두껍지 않은 안심은 금방 수분이 마르고 수율이 크게 떨어져서 발효를 촉진시키는 누룩을 표면에 발라 14일 안팎으로 짧게 숙성해요. 아무리 드라이에이징한 고기라도 완전히 마르지 않은 안쪽의 촉촉한 스테이크를 드셔야 하니까요.” 굳은 부분을 제거하고 숙성 과정에서 수축하는 양까지 따지자면 결국 손님에게 제공 가능한 양은 원래 고깃덩이의 40~60%에 불과하게 된다. 적은 수율, 숙성 과정에 들어가는 시간과 유지 비용 탓에 높은 가격이 매겨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대로 드라이에이징한 고기는 하얀 지방질은 그대로 있으면서 빨간 살코기 부위는 수축해 상대적으로 마블링이 높고 진하게 느껴진다. 본래 마블링이 화려한 고기를 숙성하면 자칫 기름기가 많게 느껴질 수 있다. 김세경 셰프는 손님에게 지방질이 적은 원 플러스 한우나 미국산 또는 호주산 소고기를 추천하기도 한다. 살코기와 마블링의 균형은 물론 가격 면에서도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높은 경제적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드라이에이징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결국 ‘맛’이다. 제대로 드라이에이징된 스테이크에서는 견과류의 고소한 맛과 치즈 향, 산미가 난다는 것이 셰프의 설명이다. 육질이 부드러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재미있는 것은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하우스마다 제각기 독자적인 숙성 고기의 맛과 풍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숙성고에서 자라는 흰 곰팡이 때문이다. 드라이에이징 과정에서 고기 표면에 피는 흰 곰팡이는 인체에 무해하며 오히려 외부의 유해 요소로부터 고기를 보호하고 숙성을 돕는 역할을 한다. “저희가 직접 통제한 조건에서 배양된 흰 곰팡이는 저희 스테이크만의 고유한 풍미와 맛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요.” 억만금을 주고도 못 산다 하고, 대를 물려 비기처럼 내려오는 씨간장이나 씨육수 같은 존재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손님 앞 화로에서 김세경 셰프의 손으로 직접 구워지는 스테이크와 채소들.
손님 앞 화로에서 김세경 셰프의 손으로 직접 구워지는 스테이크와 채소들.
아보카도 위에 소이 라임 소스를 바르고 있다.
아보카도 위에 소이 라임 소스를 바르고 있다.
생참다랑어를 사용해 만든 튜나 타르타르.
생참다랑어를 사용해 만든 튜나 타르타르.

쉴 휴休 그리고 135

휴135를 찾은 모든 손님에게는 가장 먼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아뮈즈부슈로 가스파초가 제공된다. 여름에 맞게 청포도와 아보카도를 갈아 게살을 올려 상큼하고 깔끔한 가스파초의 여운이 입 안을 정리해주고 나면 전채 요리가 이어진다. 전채는 그릴 아보카도, 그릴 아스파라거스, 참치 타르타르 등 다양하게 선택 가능하다. 아보카도와 아스파라거스는 화로에서 셰프가 직접 구워준다. 아보카도는 칼집을 내 구운 다음 유자 향이 들어간 소이 라임 소스를 발라 내고, 아스파라거스는 살사 토르토파(트러플) 소스, 베이컨 라동, 그라나 파다노 치즈, 1시간 포칭한 수란을 곁들인다. 이윽고 셰프가 프레젠테이션한 고기를 불에 올렸다. 이곳에서는 향을 입히는 참숯과 온도를 높이는 비장탄을 섞은 불에 고기를 굽는다. 숙성 스테이크의 맛을 가장 최대치로 느끼고 싶다면 미디엄 레어 굽기 정도를 추천한다. 드라이에이징한 스테이크는 자칫 비위가 상할 수 있는 핏물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셰프의 기술로 구운 고기는 래스팅을 거친 후 비로소 손님 앞에 서브된다. 잔열로 고기가 익혀지는 레스팅 과정은 표면으로 올라온 육즙을 다시 가두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아주 중요한 단계다. 이때 고기 속의 온도가 섭씨 57.2℃, 화씨 135°F다. 그러니까 휴135의 ‘135’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가장 맛있게 먹는 온도를 의미한다. 그 앞에 붙는 ‘쉴 휴休’는 손님들이 편안하게 쉬다 갔으면 하는 마음과, 고기가 때를 기다리며 숙성되는 과정, 구운 고기의 레스팅 과정을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다.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퀴진을 운영하는 데 고기의 품질, 숙성, 굽기, 레스팅, 서비스 어느 하나 덜 중요한 요소가 없다고 말하는 김세경 셰프는 그럼에도 직원 교육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버와 셰프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기를 알맞게 구워야 하는 셰프가 와인이나 사케와의 페어링도 잘 알아야 하고 손님 안내도 신경 써야 해요. 제가 오랜 시간 습득한 방식을 입히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김세경 셰프는 서비스 시간 외에도 레스토랑에 늘 상주하며 손님이 앉기에 좀 더 편한 의자나 보다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을 고민하는 등 작은 디테일도 꼼꼼하게 체크한다. 얼마 전에는 인기 메뉴 솥밥을 위주로 한 런치를 개시하며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많은 것을 이룬 듯 보이지만 김세경 셰프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앞으로의 계획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서울에서 매장을 하나 더 늘리고 미국에도 다른 형식의 레스토랑을 선보일 계획이다. 셰프가 닻을 올렸고 다른 요리사들이 열심히 노를 저으며 동력을 보탠다. 설정한 항로로 나아가기 위해 매일같이 분주한 요리사들 중, 가장 바삐 움직이는 건 언제나 김세경 셰프였다.

동양적이고도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휴135의 내부 전경.
동양적이고도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휴135의 내부 전경.

휴135
· 그릴 아보카도 8000원, 그릴 아스파라거스 1만3000원, 한우 1등급++ 안심 100g 5만2000원, 미국산 안심 100g 3만9000원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5나길 6
· 런치 월~금요일 오전 11시 30분~오후 3시(주말은 4시까지) 디너 월~금요일 오후 5시 30분~10시(금요일은 10시 30분까지), 주말 5시~10시 30분(일요일은 9시 30분까지)
· 070-4155-0135

edit 장은지 — photograph 박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