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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관면옥 @정동현

2019년 7월 24일 — 0

지금까지 보던 냉면집이 아니다. 먹는 방법을 따지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맛이 격이 있지만 어렵지 않다. 여름을 이기겠다는 결기도 없다. 대신 이 땅에서 난 식재료로 이 땅이 품은 맛과 향기를 펼치겠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그곳은 황해도 해주, 평안도 평양과 의주를 잇는 선을 딴 ‘서관면옥’이다.

text 정동현 — illustrate 왕조현

평양냉면은 한국적이다. 사람들은 냉면 한 그릇을 먹을 때도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을 이야기한다. 그가 야식으로 냉면을 즐겨 먹었다는 기록을 무한히 인용한다. ‘먹는 법’을 운운하는 몇 안 되는 음식이다. 메밀로 만든 면을 잘라 먹어서는 안 되며 식초와 겨자도 함부로 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맛의 순수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본래 나온 그대로 ‘순정’ 상태의 맛을 즐겨야 한다. 면의 메밀 햠량도 논쟁거리다. 밀가루와 메밀가루의 비율이 전통적인 2:8보다 메밀가루만 쓴 순수한 ‘순면’을 높게 친다. 국물은 당연히 맑아야 한다. 한국 사람은 그 맑음 속에서 정신적 이상향을 발견한다. 맛은 무미無味에 가까워야 한다. 알아차리기 어려운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을 때, 그 맑음 속에서 변화를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미식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규칙과 논쟁을 보면 한국의 유교적 특성이 냉면이란 음식에 집약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인 오구라 기조가 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한국은 도덕 지향성 국가이며 탁한 기己를 맑은 이理가 이기고 지배하는 문화적·도덕적 가치 체계를 지녔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대통령 홍보 영상에서 소주 광고’까지 ‘맑고 깨끗한’이라는 형용사가 즐겨 쓰인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맑은 육수를 지닌 평양냉면은 우월하지만 난잡하게 겨자와 설탕, 식초를 쳐서 먹는 비빔냉면은 격이 낮은 음식이 된다. 더불어 평양냉면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형태다. 어느 나라도 기름이 뜨기 쉬운 육수를 얼음처럼 차갑게 만들어 면을 말아 먹지 않는다. 기껏해봐야 일본의 소바처럼 면을 식혀 먹는 정도다. 그렇다 보니 한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이보다 좋은 음식이 없다. 해방 이후 분단을 겪으면서 평양냉면은 더욱 특별한 지위에 올라갔다. 평양냉면의 원형은 갈 수 없는 이북에 있으니 더더욱 무엇이 원조인지, 무엇이 ‘옳은’ 평양냉면인지 답이 없는 논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음식 자체만 보자면 평양냉면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발전적인 형태의 요리다. 조선 시대부터 해방 이후 극도로 물자가 부족한 상태에서 발전한 원시적인 형태의 음식, 즉 국밥이나 찌개처럼 한번에 넣고 끓이면 되는 간단한 유가 아니다. 기술자가 달라붙어 육수를 우리고 기름기를 걷어내야 하며 다시 차갑게 식히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면 역시 한국의 다른 면 요리, 짬뽕, 짜장면, 잔치국수 등과 다르게 면의 식감, 재료, 탄성 등 세부에 취향이 갈리는 거의 유일한 음식이다. 즉 평양냉면은 맑고 깨끗한 것을 숭상하는 한국의 유교 문화적 특성, 분단의 특수성, 그리고 식문화의 특수성이 어우러진 문제적 음식이다. 여기에 평양냉면이 실상 그리 오래된 음식이 아니란 문제가 또 얹혀진다. 역사서에 기록된 바는 고려시대까지 그 시기가 올라가고 조선 시대 중후기에는 흔히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모든 음식들처럼 분명 지금 흔히 먹는 형태가 아니었을 것이다. 본래는 겨울철, 쉽게 구할 수 있는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에 그치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메밀 반죽을 유압식 기계에 넣어 면발을 뽑고 소고기 육수를 우린 형태는 흔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 보니 38선 너머 북한의 냉면이 ‘원조’이며 그래서 더 뛰어나다는 이상한 논리가 세워진다. 몇몇 유명 인사들이 옥류관 냉면을 먹고 한국 것보다 낫다는 식의 증언을 펼치는 것은 그런 논리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탈북 요리사 및 옥류관 냉면의 사진과 묘사,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그 냉면이 가장 뛰어난 형태라고 보기는 어렵다. 녹말 함량이 높아 면은 함흥냉면처럼 쫄깃하고 육수 역시 남쪽에서 유행하는 육향 짙은 담담한 형태도 아니다. 오래된 경제난, 시장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 경제 체제에 그 수준이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가설은 설득력 있다. 반면 한국의 냉면은 계속 발전 중이다. 과거처럼 고단백 식품이 모자라지 않은 지금, 보신탕 같은 보양식 식품의 선호는 줄어들었다. 대신 냉면으로 대표되는 계절성 식품은 매해 그 판매량을 경신 중이다. 시장이 커짐에 따라 경쟁도 격해졌다. 몇몇 노포老鋪 위주(실상 역사가 50년 된 집이 드물지만)로 장사가 되던 냉면도 새로운 집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노하우가 필요해 진입 장벽이 높지만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는 듯싶다. 수요가 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냉면 그 자체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가장 돋보이는 집은 교대역 부근 ‘서관면옥’이다.

서관면옥의 첫인상은 어쩔 수 없이 발레파킹이다. 유명한 냉면집의 긴 줄과 감수해야 하는 불친절은 찾아보기 어렵다. 차를 맡기고 식당에 들어가면 펼쳐지는 풍경 역시 일반 냉면집과 차이가 있다. 가운데 길게 뻗은 큰 테이블은 교보문고의 대형 책상을 연상시킨다. 카페처럼 여유 있는 테이블 간격과 군데군데 놓인 식물, 높게 짜인 목조 천장을 보면 흔히 보는 냉면집의 형태가 아니다. 자리에 놓인 메뉴판도 평범하지 않다. ‘한국 냉면 문화의 가치와 장점을 인정’받겠다는 포부가 담긴 메뉴판에는 냉면 먹는 방법부터 시작해 최고의 냉면을 만들겠다는 다짐까지 적혀 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옛날과 달리 전문적인 교육과 브랜딩을 거친 현대식 냉면집의 선언과도 같다. ‘서관’이라는 이름도 황해도 해주, 평안도 평양과 의주를 잇는 선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쉬운 네이밍이 아니다. 메뉴도 일반적이지 않다. 우선 ‘서관의 면상’이라고 부르는 정식 메뉴가 따로 있다. 냉면뿐만 아니라 전유어, 편육, 수육, 동치미, 족편, 무화과, 녹두전, 게다가 디저트까지 한 쟁반에 받쳐 나온다. ‘그냥 냉면 한 그릇 먹으러 온 것인데 좀 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처음에는 들다가도 화려함과 정성을 보면 지금까지 그저 너무 간결한 형태의 음식을 먹어왔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 반상 자체도 옛 선비들이 먹던 냉면 상을 재현한 것이라고 하니 근본이 없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이곳 주인장이 가진 지향점과 욕심의 크기 또한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첫 방문이라면 거쳐갈 만한 메뉴다. 자작하게 육수를 부어 내는 한우 수육은 고기가 넉넉하고 손질이 잘되어 있어 촉촉하며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다. 지리산 흑돼지를 쓴 돌제육은 돼지고기를 삶았다 식혀 쫄깃한 식감을 살렸다.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장점을 두루 살린 메뉴다. 냉면으로 넘어가면 그 숫자부터 남다르다. 일반 ‘평양냉면’과 비빔냉면을 일컫는 ‘선비냉면’, 들기름과 김가루 등을 뿌려 먹는 ‘골동냉면’ 그리고 고기를 많이 넣은 쟁반냉면인 ‘맛박이냉면’ 총 네 개가 있다. 모두 메밀가루 100%를 쓴 순면이 제공된다. 기본이 되는 평양냉면부터 살펴보면 근래 본 냉면 중 가장 담음새가 좋다. 면은 단단히 여미어 흐트러짐이 없고 그 위로 편육과 반달 모양으로 자른 배, 그리고 오이와 동그랗게 말아 올린 달걀지단, 실고추가 차례로 쌓여 있다. 육수는 역시 육향이 짙은 고기 국물류다. 옛날과 같이 동치미 국물을 주로 쓰는 집은 남포면옥 정도뿐이다. 일정한 품질로 동치미 국물을 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름기 하나 없는 국물은 그 자체로는 잘 정제된 고기 국물이지만 메밀면을 만나서 맛의 상승 작용이 일어난다. 메밀의 구수한 향은 동치미를 만나면 대비되어 그 맛이 두드러지는 것과 다른 종류의 조합이다. 여러 메밀을 맛과 물성에 따라 배합해 만들었다는 순면은 뚝뚝 끊어지는 식감을 지녔지만 어느 정도 기분 좋은 탄성을 지니고 있다. 본래 글루텐이 적어 잘 풀어지는 메밀의 속성을 생각하면 기술적인 도약이 이루어진 셈이다. 비빔냉면인 선비냉면을 보면 역시 담음새에 여러모로 신경을 쓴 티가 역력하다. 매운맛과 고소한 맛이 강조된 전형적인 비빔냉면이다. 하지만 참기름으로 도배된 둔탁한 느낌은 없다. 여러 향신료를 배합한 소스는 순박한 메밀면과 만나 빠르고 경쾌한 맛을 낸다. 앞선 두 종류 모두 뛰어나지만 서관면옥에서 꼭 맛을 봐야 할 것은 골동냉면이다. 버섯, 무, 들깻가루, 김가루를 고명으로 올리고 들기름과 식초를 뿌려 먹는 골동냉면은 땅에서 비롯된 맛을 종합적으로 즐길 수 있다. 서양에서는 ‘Earthy’하다고 하는 이 맛은 한글로 표현하면 구수, 고소, 풍성, 부엽토, 나무 등등의 단어와 형용사로 대표된다. 풋풋한 향기를 품은 들기름을 뿌려 조심스럽게 비빈다. 국수 가락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려 입에 넣는다. 이를 아리게 하는 냉한 기운은 없다. 대신 혀와 입 안, 위장까지 단숨에 사로잡는 은은한 땅의 향기와 그 땅 위에 퍼진 추수의 기쁨, 그 편안한 맛이 펼쳐진다. 한반도가 가진 맛과 멋, 그리고 잡히지 않는 향기가 이 한 그릇에 있다. 이곳에 있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